"헉..!"
삐빅, 삐빅. 알람이 울렸다. 마치 물에 잠겨있던 사람처럼 하카제는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방금까지 누군가 목을 조른 기분이었다. 엄청난 악몽이었다. 비명이 이명처럼 귓가를 울려댔다. 축축한 머릿속의 덩어리를 애써 지워내며 삐걱대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일어났나요?"
텁텁한 목을 축이기 위해 문을 열고 나오자 신카이 카나타가 반겼다. 해양 다큐멘터리가 흐르는 TV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하카제는 물을 포기하고 그의 곁에 앉았다. 동시에 탁자 위에 던져둔 휴대폰이 메시지 음들을 요란하게 뱉어냈다.
"나 악몽 꿨어."
느릿느릿 꿈 이야기를 하며 차갑게 직은 손을 뻗어 휴대폰을 들었다.
"카오루는 어린아이네요."
아니지, 크리스마스에 악몽을 꾸는 거야말로 어른인 거라고. 신카이 카나타의 놀림에 반박하며 서둘러 쌓여있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얼마 전,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단체 그룹 방으로 화면 상단에 <유메노사키 동창>이라는 이상한 타이틀이 붙어 있었다. 부회장을 지냈던 하스미 케이토의 센스로 보였다.
-기자들 엄청 많이 왔다. 날이 날이라 그런가. 망할 크리스마스.
휙휙 올라가는 메시지창 속에서 세나 이즈미의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날이 날이라니. 하카제는 휴대폰의 날짜를 확인했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아 오늘 크리스마스구나. 하카제는 어색하게 웃으며 신카이 카나타를 바라보았다. "메리 크리스마스." 우물쭈물 인사를 건네자 그가 웃음을 터트리며 같은 인사를 건네왔다.
"선물 풀어봤어?"
거실 구석에 둔 선물 꾸러미를 턱으로 가리켰다. 한 달도 전부터 준비했던 선물이었다. 화보 촬영차 미국에 갔을 때 들렸던 빈티지 숍에서 발견한 수조였다. 물결 모양의 입구에 푸른 보석이 박힌 제품으로 작은 크기에 비해 꽤 가격이 나갔던 제품이었다. 주인은 영어로 수조의 가치에 대해 설명했지만, 그 가치를 알아볼 사람은 자신이 아니었기에 하카제는 듣는 둥 마는 둥 끄덕이고 결제만 했다. 그러면서 저걸 풀어보고 기뻐할 신카이 카나타만 떠올렸다.
"제 선물인가요?"
"그럼 누구 선물이겠어?"
"고마워요. 저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는데..."
"바쁜 신카이 카나타의 시간을 달라고 했었잖아. 오늘 함께 있는 거지? 그거면 됐어."
미안해하는 얼굴을 바라보며 하카제는 조용히 웃었다. 화보에 인터뷰에 컴백을 앞두고 신카이 카나타가 소속된 유성대는 무척 바빴다. 10분의 통화도 겨우 얻어낼 정도로. 물론 시간이야 내면 낼 수도 있었지만, 서로 마주할 시간에 수면을 취하는 게 더 도움이 된다는 걸 아는 동업자로서 억지를 부릴 수는 없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만큼은 연인과 함께 보내고 싶었기에 조금이라도 시간을 달라 부탁했고, 고맙게도 신카이 카나타는 소원을 들어주었다.
"아침은? 먹었어?"
"전 괜찮아요. 카오루는요?"
"나도 괜찮아."
어차피 집에 먹을 것도 없었다. 그럴 기분도 아니었고. 밥은 제대로 먹어야죠, 강하게 잔소리하는 신카이의 말에 대충 끄덕이곤 하카제는 드레스룸으로 향했다. 온갖 셔츠 자켓들이 걸려있는 공간에 미리 빼놓은 검은 정장이 눈에 들어왔다. 칙칙해 보이는 옷을 그대로 지나쳐 샤워룸으로 향했다.
어렸을 때는 신보다 산타의 존재가 더 강력했다. 신은 기도해도 들어주지 않지만, 산타는 양말에 종이를 넣어두면 늘 이루어주었으니까. 그래서 모든 어린이가 그렇듯 일 년 중 크리스마스가 가장 좋았다. 소원이 이루어지는 날. 종이에 적기만 하면 갖고 싶었던 장난감도 귀여운 강아지도 모두 품에 안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믿음도 금방 깨지고 말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해, 어머니를 다시 돌려달라는 부름에 산타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단 하루의 기적을 바랐지만, 슬프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하카제 카오루는 조금 서둘러 아이를 졸업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없는 산타를 믿고 싶어지다니."
찬물 아래에서 하카제는 뻑뻑한 눈을 비비며 중얼댔다. 약간 웃음도 나왔다. 대충 씻고 물을 털어내자 거울 속에는 제 기억보다는 좀 마르고 야윈 남자가 서 있었다. 활동기라도 들어서면 억지로 관리받고 억지로 관리해주니 이 정도까진 아닌데 휴식기이다 보니 엉망도 이런 엉망이 없었다. 선반에는 온갖 스킨로션 그리고 헤어 제품이 가득했지만, 하카제는 대충 머리의 물방울만 털어낸 후, 샤워룸을 나섰다.
"오늘 이거 입나요?"
다큐멘터리가 끝났는지 드레스룸에 들어선 신카이 카나타가 꺼내놓은 정장을 보며 물었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웃으며 "카오루는 블랙이 잘 어울려요."라 미운 칭찬을 해왔다.
"그룹 컬러가 칙칙해서 그런가 봐. 거칠어 보이고 배덕한 이미지라 그런가?"
"노란색도 잘 어울려요."
"머리색 이야기?"
"네. 카오루는 귀여우니까요."
또 이상한 소리. 연인의 칭찬 아닌 칭찬에 하카제는 눈썹을 찌푸리며 그의 손에서 채듯 셔츠를 빼앗았다. 부끄러운가요? 빤히 묻는 말에 붉어진 귀가 보일까 그를 얼른 방에서 쫓아냈다. 쿵쿵쿵, 멀어지는 발소리를 귀담아들으며 빠르게 옷을 갈아입었다. 매니저가 준비해 놨던 건지, 새 옷의 냄새가 강하게 퍼졌다. 흰 셔츠에 마지막으로 타이를 단단하게 묶고 나오자 벌써 나갈 준비를 끝낸 신카이 카나타가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어딜 가는 줄 알고. 그리 따져 물으려다 하카제는 꾹 입을 다물었다.
날은 겨울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따뜻했다. 하늘도 높고 맑았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물 건너 갔지만, 깨끗한 하늘을 보니 아무래도 좋았다. 신카이 카나타는 익숙하게 조수석을 차지해 앉았다. 안전벨트를 꽉 채우는 그를 보며 뒷자리에 앉으라 하려다 하카제는 그만두었다.
"데이트 못 해서 미안해요."
차에 시동을 걸기 무섭게 신카이가 말을 걸어왔다. 괜찮아. 하카제는 앞만 보며 차를 몰았다. 연휴치고 도로엔 그다지 차가 없었다. 미묘한 침묵이 견디기 어려웠는지 신카이가 라디오 버튼을 눌렀다. 길고 하얀 손이 여러 가지 소식을, 대부분은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지워내며 돌렸다. 이윽고 날에 어울리는 채널을 찾아냈다. 누가 불렀는지 모를 캐롤이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익숙한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신카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가 틀어놓은 채널은 종교 방송이었는지, 잠깐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멘트를 하더니 다시 끊임없이 캐롤이 흘러나왔다. 따뜻한 멜로디, 부드러운 목소리. 듣기만 해도 설레고 좋았던 적이 있는데 지금은 잘 알 수가 없어서 하카제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꽤 긴 시간을 운전해 도착한 곳은 세나 이즈미의 말대로 기자들로 북적였다. 다시는 오지 않을 줄 알았던 커다란 담과 대문을 보며 하카제는 한숨을 쉬었다.
"카나타군."
"네?"
"...아니야."
신카이, 반듯하게 대문에 붙은 명패를 바라보다 하카제는 하려던 말을 다물었다. 차 문을 열고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방금 들었던 라디오에선 누군가의 탄생을 축하하고 축복했는데 번쩍이는 플래시와 마이크는 죽음과 슬픔에 대해 떠들었다. 하카제는 뭐라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먹잇감 하나 주지 않고 대문으로 향했다. 문 양 옆에는 하얀 등이 걸려 꽃과 함께 장식되어 있었다. 그 옆에는 흰 푯말에 익숙한 이름이 굵은 그리고 검은 글자로 반듯하게도 적혀 내려가 있었다.
"어때, 본인의 장례식장에 온 기분은."
하카제는 신카이 카나타의 이름을 바라보며 물었다. 곁에 서 있던 연인은 울거나 웃지도 않고 그저 덤덤하게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네요."라 대꾸했다. 그래, 그거 다행이네. 나는 지금도 꽤 고통스러운데. 까슬까슬하게 목을 찔러대는 말을 억지로 참아 삼키며 하카제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왔군."
멀지 않은 곳에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차게 식은 이츠키 슈의 얼굴을 보며 하카제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오랜만이네. 해외에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급히 귀국했다는 거다. 어제 비행기로."
"카나타군도 기뻐할 거야."
봐,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모습에 웃고 있잖아. 하카제는 슬쩍 신카이 카나타를 돌아보았다. 슈, 조금 자랐네요. 손을 올려 키를 비교하는 그의 모습은 이츠키 슈에게는 보이지 않는 모양인지, 이츠키 슈는 혀를 차며 고갤 숙였다.
"너는?"
"나?"
"그래."
"나야 뭐..... 괜찮아."
실은 하나도 안 괜찮아. 말을 삼키며 다시 목에 상처를 냈다.
신카이 카나타가 세상을 떠난 지 일주일, 하카제 카오루는 끝없는 지옥을 맛보았다. 불행엔 끝이 있어도 행복엔 끝이 없다 믿고 살았는데 그 믿음을 이번에 제 안에서 완벽하게 지워냈다. 갑작스러운 사고였다. 지방에서 있던 개인 스케줄을 끝내고 매니저와 올라오던 길, 졸음 운전 중이던 차가 들이박아 신카이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가 타고 있었던 박살 난 조수석 사진이 뉴스며 신문의 1면을 차지했다. 정상을 지켜온 아이돌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중은 슬퍼하고 팬들은 울었다. 유성대는 그 누구도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 그게 당연했다. 10년을 함께 해온 동료가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들이 입을 다무니 이어서 마이크를 받는 건 이쪽이었다. 유메노사키 출신이라는 이유로 누군가가 총대를 메어야 했다. 하카제는 걸려오는 전화와 들이미는 마이크에 욕을 하고 싶었다. 이 말도 안 되는 꿈에서 악몽에서 깨도록 비명을 내지르고 싶었다. 피를 토해내고 계속해서 끔찍한 걸 토해내는 머리를 박살 내고 싶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냈다. 세상은 반짝이는 전구와 커다란 트리로 크리스마스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하카제 카오루는 억지로 신카이 카나타의 죽음을 준비해야만 했다.
장례는 간소하게 가족끼리 치러질 예정이었지만, 그를 보내는 날만큼은 고맙게도 외부인을 허락해주었다. 집이라는 공간을 그리고 가족이란 존재를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던 신카이를 생각하면 그의 집안이 주도하는 장례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피도 이어지지 않은 사람은 할 수 있는 건 그다지 없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은 어땠어?"
이츠키 슈와 헤어져 안으로 들어서며 하카제는 물었다. 그냥 차가웠어요. 찬 바닥을 걸으며 신카이가 쓸쓸하게 중얼댔다.
"그래도 오늘은 반가운 얼굴들이 많아서 기쁘네요."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신카이가 말했다. 검은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은 대부분 신카이가에서 일하는 사람들로 얼굴에 슬픔 하나 담지 않고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기계적인 모습에 조금 화가 났지만, 하카제는 애써 무시하며 안내받은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여러 개의 방의 문을 열어 하나의 방으로 만든 공간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대부분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 반가워하며 이야기를 나누던 다른 때와 달리 이번에는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비하지 못한 이들만 모여서인지 분위기가 당연하게도 가라앉아있었다. 눈물이 찬 듯 습기가 머무는 공간으로 들어서며 하카제는 막 방 끝에서 나오던 모리사와 치아키와 눈을 마주쳤다. 얼마나 울었는지 그의 눈은 멀리서 봐도 처참할 정도였다.
"결국 네가 모리사와 치아키를 울렸어."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아요."
그의 꿈을 이루어 주고 싶다며 그를 웃게 해주고 싶다며 붙어 어울려 놓고 결말은 눈물이었다. 제 잔인한 지적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신카이는 성큼성큼 먼저 앞서 걸었다. 흰옷을 입은 등이 모리사와 앞에 멈추었다. 눈물이라도 닦아주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슬프게도 신카이의 찬 손은 모리사와에게 닿을 수가 없었다.
"어, 왔군. 하카제."
곁에 있는 게 누군 줄도 모르고 모리사와가 정장 자켓에 마구 얼굴을 닦아내곤 인사를 해왔다. 축축한 자켓 끝에서 시선을 떼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랄까, 아직도 믿기지 않아서 말이지. 저 안에 있는 카나타가... 이제 카나타가 아니라는 게 말이다. 그냥 잠든 거 같아."
"그래."
"그냥.. 잠든 거 같아서.... 깨워보려고 이름을 불렀는데... 일어나질 않더군."
"...."
"... 미안, 미안. 이런 추태를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그가 다시 눈물을 쏟아냈다. 바닥에 자국을 남기는 모리사와를 바라보며 하카제는 그의 곁에 선 신카이를 바라보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엉망이 된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겨우 말려 놓은 눈물이 젖어들 것만 같았다.
"...나도 들어가 볼게."
"그래.. 있다가.. 있다가 보자."
급히 얼굴을 다시 훔친 모리사와가 발걸음을 옮겼다. 무거운 소리를 들으며 하카제는 절대로, 절대로 들어서고 싶지 않았던 공간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어둑한 조명, 깔끔하게 비워진 방. 그 가운데에 신카이 카나타가 누워있었다. 모리사와 치아키의 말대로 그저 잠든 것 같은 모습으로. 당장 이름을 부르면 눈을 뜰 거 같은 모습으로. 그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카오루, 그렇게 불러줄 거 같은 입술을 가끔 장난스레 닿았던 코끝을 그리고 바다와 같이 깊었던 보이지 않는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한참을, 또 한참을 바라보다 하카제는 조심스럽게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카나타군."
그리고 제 곁에 함께 앉은 이를 불렀다. 저를 달래주려는 듯 손이 포개져 있었지만, 아무런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그랬잖아. 저번에 바다에 갔을 때. 우리 사랑은 이 바다의 모래알 같다고. 이렇게 수북하다고."
아마도 차가울 손을 내려보며 하카제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제가 그랬잖아요. 하지만 파도가 몰려오면-"
"쓸려 바다에 잠겨버린다고. 그래, 그랬었어. 그리고? 그 이후에 내가 했던 말도 기억나?"
감길 거 같은 눈에 힘을 주고 신카이 카나타를 바라보았다. 너른 거리는 시야로 언제나처럼 웃고 있는 얼굴이 물들어갔다.
"네. 그럼 바다로 하자고 했었죠."
"응. 그럼 마르지도 않고 쓸려 사라지지도 않을 바다로 하자고 그랬어."
하지만 참고 참아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말을 삼켜 목에 무수한 상처가 난 것처럼 고통을 삼켜 제 안이 피투성이가 된 것처럼 눈물도 버텨보았지만, 잠들어 있는 신카이 카나타를 앞에 두니 방법이 없었다. 흐르는 걸 막을 방법이 없었다.
"카나타군, 나는... 나는 말이야. 마르지도 사라지지도 않을 바다를 볼 때마다 카나타군을 떠올릴 거야. 차를 타고 가다가 TV를 보다가 책을 보다가 문득 찾아드는 그 소금 냄새에 널 늘 떠올릴 거야."
"..."
"네가 없어도 나는 그렇게 바다처럼 어쩌지도 못하고 우리 사랑을 품고 살 거야."
"카오루.."
"약속, 지켜줘서 고마워."
크리스마스 선물, 뭐가 갖고 싶나요? 수조를 샀던 밤, 호텔에서 전화기를 붙잡고 그에게 말했다.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했으니 기대하라고. 의기양양한 자신의 말에 신카이가 그렇게 물었다. 뭐가 갖고 싶냐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네 시간을 갖고 싶다고 했던, 내 소원 들어줘서 고마워."
바빠서 얼굴 한 번 보기 힘들었던 연인에게 조금의 시간을 달라 부탁했다. 함께 선물을 교환하고 케이크를 먹고 샴페인을 나누고 입맞춤을 할 수 있는 그 조금의 시간. 모습은 달랐지만, 어쨌거나 착한 아이로 산 보상인지 산타는 그리고 연인은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이제 너와 인사할 거야."
크리스마스 선물은 손에 쥐면 내 것이었다. 그러니 신카이 카나타의 이 모습도 손에 쥐고 살고 싶었다. 그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더라도 손을 잡거나 안을 수 없어도 이렇게 인사하고 마주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그거로도 좋았다. 하지만 이미 신카이 카나타는 죽었다. 죽어서 바로 옆에 잠들어 있었다. 하카제 카오루는 오는 길에 악몽을 떠올렸다. 신카이 카나타가 우는 악몽, 비명을 지르는 악몽, 죽어가는 악몽. 그 악몽에서 벗어나고 깨어날 때마다 무수히도 그의 죽음을 알아차리고 또 알아차렸다. 더는 그 안에 가두고 싶지 않았다. 붙잡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별할 거야. 너와, 제대로.
"혼자 두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혼자 둬서 미안해."
"..."
"추운 거 싫어하는데 이렇게 차갑게 만들어서 너무 미안해."
"..."
"우린 다시 만나게 될 거야."
신카이 카나타에게 키스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분명히 입을 맞추었다. 느껴지지 않은 손을 꼭 잡았다. 그가 제 악몽 속에서 더는 아프지 않길 바랐다. 눈을 감고 따스한 곳에서 그가 좋아하는 것들에 둘러싸여 그저 행복하길 바랐다.
눈을 떴을 때, 세상은 고요했다. 잠든 연인만이 곁에 있었다. 미약한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하카제는 현실조차도 악몽 같다고 느꼈다. 깨어나야 한다고 느끼면서도 반복되는 꿈일까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래서 다시 눈을 감았다. 코끝에 소금 냄새가 돌았다.
-
꿈과 현실을 계속 혼동하는 크리스마스의 하카제 카오루가 보고싶어서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