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스가] 그가 어느날 나를 채웠다. ver.료타
2016. 6. 17. 13:20







빌어먹을, 못 해먹겠다. 그 말이 목을 치고 나왔다. 당장에라도 때려치우고 싶은 충동에 이가 으득으득 갈렸다. 하지만 사사키 료타는 자신의 부인을 떠올렸다.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게 해줄게, 그리 말했던 과거의 자신도 떠올렸다. 아이가 태어난 날 끌어안고 울던 날도 떠올랐다. 집을 마련하느라 빌린 대출도 떠올랐고, 곧 자라날 아이에게 들어갈 돈도 떠올랐다.



"미안."



떠올리고 나니 자존심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알면 됐어요. 참 뭐 없는 말투가 머리 위로 던져졌다. 탁,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사사키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제 앞에 엉망으로 쏟아진 도시락 꼴을 보니 욕이 치밀어 올랐으나, 꾹 참았다. 몇 주 전에 약간 비리다는 이유로 머리에 뒤집어썼던 게살 볶음밥에 비하면 던져진 도시락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거기다, 이 일을 선택한 건 자신이었다. 그러니 어디 원망하고 탓할 곳도 없었다.



-"료타, 너 오이카와 토오루 매니저 할래?"



원흉은 타네무라의 그 한 마디에서 시작되었다. 유명 연예 프로덕션 사무소의 팀장인 그는 이 회사를 이끄는 대표만큼이나 얼굴 보기가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신인 연습생 오디션이나 연습일정을 관리하는 말단인 자신을 찾아와 '그' 오이카와 토오루의 매니저를 권하다니, 사사키는 자신이 꿈을 꾼다고 생각했다.



-"모리타가 그만둬서 말이야, 마땅한 사람을 찾는데... 너 근성도 있고 성격도 서글하니 잘 어울릴 거 같아서."



거기다, 결혼도 했잖아. 슬슬 너도 한 명 제대로 담당해야지. 그가 웃으며 배려하듯 굴었다. 그 웃음은 사사키에겐 기회였다. 사무소 내 매니저들 사이에서 '그' 오이카와 토오루의 관리는 지옥과 같은 경험이라 익히 알려져 있었지만, 그거야 어떤 유명 연예인을 담당해도 마찬가지였기에 사사키는 고개를 젓지 않았다. 지옥이래 봤자 얼마나 지옥이겠는가, 싶었다. 언제까지고 보석이 되기 전의 원석이나 닦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제대로 된 명함도 돌리고 싶었고, 당당하게 "내가 누구를 담당하는데-" 라고 으스대고 싶었다. 그리고 그러기에 오이카와 토오루는 완벽한 보석이었다. 그래서 고개를 젓지 않았다.



"...그때 고개를 저었어야 했는데..."



뒤늦은 후회를 하며 사사키는 서둘러 도시락을 치웠다. 안 그래도 저 빌어먹을 성질머리가 불쑥불쑥 튀어나와 여기저기 말이 많은데 대기실까지 더럽게 쓴다 하면 평판이 더 나빴다. 오이카와 토오루라면 이제 이가 갈릴 정도로 싫었지만, 슬프게도 여전히 자신은 그의 매니저였다.



"이게 얼마나 비싼 건데.."



2,000엔짜리 스테이크 덮밥이 오늘의 점심 메뉴였다. 화보 촬영장에 나오는 도시락이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라 해서 차를 끌고, 검색까지 해서 근처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가게에서 포장까지 빌고 빌어 부탁해 사다 날랐더니 손에 닿지도 못하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유는 간단. "요즘 저 체중 관리 하는 거 모르세요?" 였다. 샐러드에 드레싱을 넣는 것도 스트레스인데, 지금 자신보고 이걸 먹고 죽으라는 거냐며 짜증을 냈다. 물론, 더 격하고 재수 없게. 그렇다고 편의점에서 대충 샐러드를 사 줬으면 이딴 걸 지금 먹으라는 거냐며 던졌을 거면서.



"하여간 고급진 새끼.."



누가 저런 놈을 캐스팅 해서. 사사키는 서둘러 빛도 바라지 못한 비싼 도시락을 쓰레기통에 처박으며 한숨을 쉬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그래도 괜찮았다. 자신보다 10살은 어렸지만, 꼬박꼬박 존댓말로 예의를 갖췄다. 유명한 만큼 제 잘난 맛에 버릇없이 구는 놈들이 발에 치이는 곳에서 오이카와 토오루의 행동은 사사키의 마음에 쏘옥 들었다. 하지만, 그건 예의가 아니라 선이었다. 타인에게 긋는 선. 남이 자신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선을 긋고 벽을 치고 딱딱하게 구는 것이었다. 그게 그저 행동이나 말뿐이면 다행이지. 결벽증도 아닌 주제에 집에 사람 들이는 건 물론이요 스타일리스트가 손대는 것도 질색을 했다. "아, 시발. 지금 어딜 만져요?" 그 말에 울며 뛰어나간 여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 성격 머리로 잘도 2년 차까지 모델을 했구나 싶어 어이가 없었다. 그나마 자신은 매니저라는 이유로 집에 들여보내기는 했으나 "만지지 마세요." 라는 말이 늘 달라붙었고, 실제로도 그의 집에서 소파에 앉아본 적도 없었다. 그럴 거면 정리라도 제대로 하던가. 그건 또 더럽게 못 해 언제나 집안은 그야말로 우리였다. 돼지우리. 한 번은 몰래 아주머니를 불러 청소했다가 가구며 옷이며 물건을 몽땅 갈아치우는 것을 보고 포기했다. 그래, 니 집이지 내 집이냐. 그렇게 생각하니 좀 편해졌다. 뭐, 그래도 그건 나았다. 아침마다 그 잠 많은 놈을 깨우느라 온갖 욕설을 듣고 종일 심기 불편한 놈의 비위를 맞추고 눈치 보는 일보다는야. 전쟁이나 다름없는 하루하루에 이미 한 달도 전에 타네무라에게 "담당 바꿔주세요." 라고 부탁했으나 돌아온 것은 '너도?'와 같은 눈이었다.



"속았어."



제 결혼을 들먹이며 보인 배려는 다 가짜였다. 이 지옥 같은 자리에 들어갈 놈이 없으니 속여먹은 것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명함 팔 생각에 신이 나서 홀랑. 그래, 내 탓이로다. 사사키는 마지막으로 숨을 크게 내뱉고 대기실을 나왔다. 나오기 무섭게 방금까지 지었던 억울함과 울분을 감추며 스태프에게 오이카와 토오루의 위치를 물었다. 다음 일정이 없으니 집에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제 생각과는 달리



"어? 아까 나가시는 거 같던데?"



스태프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그러니까, 어딜!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제멋대로 굴 때마다 화가 터졌다. 빌어먹을 놈, 가면 간다 이야기를 하던가. 제멋대로 돌아다닐 거면 매니저는 왜 두는데? 빼액 그렇게 외치고 싶은 마음을 지갑 속 아이의 사진을 떠올리며 참았다.



"고맙습니다."



아무 문제도 없는 척, 웃는 일은 이제 도가 텄다. 누가 연기자인지 모르겠어. 사사키는 그리 떠올리며 서둘려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세 번 만에 연결된 전화는 "누구세요?" 라는 말도 없이



-"세 번이나 안 받으면 안 받는 줄 알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라는 말로 시작되었다.



"어디야?"
-"백화점 가는 길인데요."
"....미..!!"



미쳤어? 매니저도 없이? 혼자? 사람들 몰려서 깔려 죽으려고 환장했냐? 그리 외치고 싶었으나 다시 아이 사진을 떠올렸다.



-"미?"
"미...안하다고, 너 갈 줄 알았으면 내가 빨리빨리 움직여서 차 대기했을 텐데.. 하하..하..!!"
-"금방 물건만 찾고 돌아갈 거라 상관없어요."
"....음, 그래? 근데 갑자기 웬 백화점...?"




어차피 심부름은 죄다 자길 시키면서 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조심스레 묻자 수화기 너머로 "시계."라는 단어만 덜렁 돌아왔다. 시계? 무슨 시계? 한참을 머리를 굴리다 사사키는 이내 얼마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래, 시계. 오이카와 토오루가 얼마 전에 무슨 기념으로 시계를 사야 한다 했다. 한동안 온갖 브랜드의 카탈로그를 뒤적이고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쇼를 하나 싶었더니 결정되었는지 자신에게 어떠냐며 보여주었다. 메탈이 은은한 물건으로 그리 과한 디자인은 아니었다. 오히려 심플하고 단조로웠다. 그럼에도 비싸 보이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오이카와 토오루의 손목에서 항상 빛나는 놈들하곤 조금 이미지가 달라 "안 어울리지 않아?" 라고 했더니 녀석은 "상관없어요." 라 대답했다. 그리곤



"GPS가 탑재된 모델 중에서 얘가 제일 추적 범위가 넓데요."



라고 했다. GPS라니. 자신에게 목줄을 쥐여주게 할 셈인가? 물론 그동안 그의 동분서주 알 수 없는 행동반경에 애를 먹긴 했지만, 이런 기특한 생각이라니. 슬쩍 감동해 "다시 보니 잘 어울릴 거 같다, 야!" 하고 칭찬했었다. 그때의 그 시계를 찾으러 가는 모양이었다. 슬쩍 웃으며 다시 전화에 집중하자 그가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대표님 연락 왔는데."
"응."
-"대본 가지고 가래요. 사무실에 도착했다고. 대충 보고 시청률 안 나올 거 같은 건 다 돌려보내 주세요. 곧 미국 가야 하니까, 시기 겹치는 일 다 취소해주시고요. 아, 그리고 이마무라 감독에게 제 전화번호 알려준 거, 매니저님이에요?"
"응.왜?"



시발. 수화기 너머로 욕설이 들려왔다. 웃음은 사라지고 사사키는 침을 꼴깍 삼켰다.



-"내가 그 감독하고 작품 하기 싫다고 한 백 번은 말 한 거 같은데, 귀 없어요? 왜 멋대로 남의 번호를 뿌려요? 혹시 내 번호로 장사해요? 투자금도 없고 극장에도 얼마나 걸릴지 모를 영화에 내가 시간을 써야 할 이유, 모르겠다고 저번에 분명히 말하면서 제대로 처리해달라고 말했던 거- 기억 안 나요?"
"아니, 그래도 이마무라 감독 방송사에서는 알아주는 감독이고.. 본인이 잔잔한 거 좋아해서 좀 밋밋한 작품만 만들지만, 그래도 괜찮은 감독이니까 분명 좋은-"
-"밋밋하고 잔잔한 영화 찍고, 밋밋하고 잔잔하게 끝나 보실래요?"
"아니, 오이카와-"
-"흥행 보장되지 않은 작품 싫다고 처음부터 말씀드렸던 거 같은데, 제발 기억 좀 하시죠. .....뭐, 됐고. 대본이나 확인하시고 연락 주세요."



뚝, 전화가 끊겼다.



"이...개..!!!"



아무도 없는 복도로 휴대폰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박살이 났다. 부들대는 손으로 머리를 꽉 쥐였다 놓았다.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 좋은 가장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걸 참아야 하지? 언제까지 저 자식 비위를 맞춰줘야 하느냐고. 사사키는 부들대는 몸을 무시하고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더는 안 되겠다. 타네무라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비는 수밖에. 그도 안된다면 나카지마 대표라고 찾아가야 했다. 저 망할 놈, 케어할 자신 없으니 다른 놈 붙여달라고 외치던가 아니면 출산 휴가라도 받아 쉬어야 할 거 같았다. 1년이면 많이 참았다. 전 선임이었던 모리타가 석 달 만에 그만두었다 했으니, 정말 1년이면 많이 버티다 못해 끈질기게 버틴 셈이었다.


자존심상, 사직서는 가슴에 품지 못하고 서둘러 사무실로 향했다. 차를 대충 주차하고 들어서자 연습을 끝내고 나오는지 오랜만에 자신들의 원석들이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게 중에서 가장 착하고 보석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카게야마 토비오가 "얼굴 많이 상했어요. 매니저님. 무슨 일 있어요?" 이라 살갑게 굴어주었다. 그래, 이거다. 자신이 원한 건 이것이었다. 서로 열심히 하고, 서로를 의지하고, 서로를 걱정하며 나아가는 관계. 울컥 눈물이 차오르는 걸 무시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냐, 아무 일도 없어."



일은 더럽게 많았지만, 어쨌거나 아직은 오이카와 토오루의 매니저였다. 소문이 빠른 바닥에서 함부로 입을 놀리는 건 제 얼굴에 침을 뱉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비타민이라도 챙겨 드세요. 무뚝뚝하지만 살가운 그의 걱정에 차오른 눈물을 훌쩍 삼키고 서둘러 타네무라를 찾기 위해 실장실로 향했다. 노크를 하고, 이름을 밝히는 게 예의지만 자신이 참을 만큼 참은 것을 보여주기 위해 사사키는 예의도 잊고 벌컥,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세요?"



하지만 자신의 등장에 놀란 건 타네무라가 아니었다. 그의 사무실을 대신 지키고 있던 다른 청년이었다.



"... 실장님은요?"
"잠깐 대표님 호출받고 올라갔는데."



그가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대꾸했다. 표정은 평온했지만, 놀라긴 한 모양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꾸벅 사과하고 돌아서려 했더니 그가 "저기-" 하고 자신을 붙잡았다.



"급한 일은 아니라 아마 곧 오실 텐데, 그냥 기다리세요."



물론 제가 방해되지 않는다면요. 예의 있게도 웃으며 그가 소파를 권했다. 오늘 하루 사나웠던 자신에게 또다시 내리 쫴준 다정함에 사사키는 거절도 못 하고 실례하겠다는 말과 함께 자리를 차지했다. 항상 깔끔하기 그지없던 타네무라의 커피 테이블에는 온갖 프로필 파일들로 엉망이었다. 아마 주말마다 있는 오디션을 본 이들의 것으로 보였다. 청년은 마치 기계처럼 그걸 이름순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사무직인가? 싶었지만, 사무직 직원이 왜 실장의 사무실에서 이러고 있을까 싶었다. 비서가 없으니 그의 비서일 리도 없었고, 얼굴을 보아하니 꽤 단정하고 예쁘장한 게 사무실 연습생인가 싶었지만 연습생이라면 더더욱 여기 있을 이유가 없었다. 여기가 지하 연습실도 아니고. 한참을 빤히 들여보던 제 시선이 불편했는지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곤



"뭐 묻었어요?"



라고 똑같이 빤히 마주했다.



"아...아뇨! 아뇨, 그냥...."



마주한 눈에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휘저었다. 나쁜 의미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보고 있으니 묘하게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그래서 실례임을 알면서도 사사키는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어요?"



약간은 작업 멘트처럼 느껴지는 말에 스스로가 소름이 돋아 부르르 떨렸다. 하지만 상대는 웃지도 않으며 "홈페이지에서 보셨나 보죠." 라고 퉁명하게 대꾸했다. 홈페이지라니. 사무실 홈페이지? 거기에 실려있을 얼굴이라면 대표와 소속 연예인뿐...



"아..."



거기까지 생각하자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소속 연예인 목록 가장 아래, 그리고 가장 끝에 위치한 얼굴. 입사 당시를 제외하곤 홈페이지에 들어갈 일도 없었고 거기까지 스크롤을 내릴 일도 없었지만, 그 얼굴을 기억하는 이유는 단 하나. 오이카와 토오루 때문이었다. 정확하겐 그 녀석이 매일같이 돌려보는 DVD 때문에. 일이 피곤해도, 늦게 끝나도, 안 좋게 끝나도 혹은 좋게 끝나도 녀석은 집에 돌아오면 그 DVD를 항상 돌려보았다. 아니 사실 돌려보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집안에 틀어놓는 것뿐. 마치 뮤직비디오처럼 30분가량 노래만 나오는 영화 속에서 소년티를 덜 벗은 남자가 자전거 일주를 하는 내용이었다. 비를 맞고, 넘어지고 그러다 다시 일어서고, 웃고. 한 번은 그를 데려다주고 궁금해 그가 씻는 동안 TV 앞에서 각 잡고 봤었는데 이렇다 할 스토리가 없어 하품만 나오는 영화였다. 계속 가사없는 노래만 흘러나오다, 마지막에서야 집으로 돌아온 사내가 카메라를 보곤 "다녀왔어." 라는 대사 한 마디로 끝나는 그 영화. 이 재미없는 영화가 뭐길래 이렇게 보나 싶어 찾아봤을 때, 그 배우가 같은 소속사라 떠 홈페이지에서 확인했었다. 이런 배우도 있었나? 하고 넘겼는데. 진짜 있었다니.



"...<길고 긴 산책> 주연배우 맞죠?"



놀라움을 가득 담아 묻자 아까보다 더 눈을 크게 뜨며 그가 자신을 마주했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아... 봤거든요."
"그거 보셨다는 분, 대표님이랑 실장님 빼고 저 처음 만나요."



고마워요.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진짜 영화를 본 이는 따로 있었지만, 굳이 사사키는 그 이름을 입에 올리진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뭐 하고 있어요? 그렇게 무심코 물으려다 합, 입을 다물었다. 있는 줄도 몰랐던 배우란 즉 활동하지 않는 배우라는 의미였다. 홈페이지에 프로필이 올려져 있으니 분명 계약상태이긴 하겠지만, 누구 씨와 달리 안 팔리는 배우라는 뜻이었다. 거기다 서류를 정리하는 모습은 퍽 익숙했다. 자신의 질문은 실례를 떠나 상처가 될 수도 있었기에 삼켰다. 삼켜진 제 말의 뒤를 기다리는 청년을 가만히 보다 사사키는 번뜩, 무언가를 떠올렸다. 혹시, 혹시-



"저 혹시, 정리 같은 거 잘해요?"



오이카와 토오루가 그렇게 DVD를 돌려본 게



"요리도 할 줄 알아요?"



운동 잘하고 있다가 다 그만두고 데뷔하기로 결심한 게



"그럼..청소 같은 건요?"



좋은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예인이 된 게



"운전은 해요?"



끈질긴 타네무라의 구애 아닌 구애에 넘어간 게



"누구 돌보는 건요?"



그 언젠가 인터뷰에서 '데뷔 이유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요'라던 게

모두 눈앞의 이 남자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면, 이 사람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면, 이거야말로 기회가 아닐까? 모든 질문에 떨떠름하게 "네." 라고 대답한 스가와라 코우시를 보며 사사키 료타는 눈을 반짝였다. 오이카와 토오루라는 지옥에서 벗어나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 작은 열쇠를 지금 자신이 쥔 것 같았다. 그리고 자유의 문을 열 수 있다면 그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하지만 사사키는 열쇠를 놓칠 생각이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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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매니저 사사키 료타의 버전.

현 매니저 스가와라 코우시의 버전은 이쪽

http://sannen-sei.tistory.com/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