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스가] 8년 전
2015. 1. 2. 00:02

http://sannen-sei.tistory.com/15 의 외전.

그러므로 당연히 사!망!소!재! 있음. 













"일어나 토오루. 벌써 8시 30분이야."



달콤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푸스스 오이카와는 입꼬리를 당겨 웃으며 이불 속에서 얼굴을 빼내었다. 침대에 걸터앉은 스가와라가 "이러다 늦겠어." 라며 일찍이 잔소리를 해왔다. 그럼에도 머리를 넘겨주는 손은 얼마나 다정한지 오이카와는 그 손을 잡아 뺨으로 누르며 웃었다.



"일어나기 싫다."
"안돼. 나 먹여 살려야지."



단호한 그 말에 오이카와는 어쩔 수 없이 따스운 손을 놓아주었다. 하지만 그 대신 팔을 잡아당기며 스가와라의 몸을 침대로 무너트렸다. 어엇, 소리를 내며 무너진 연인의 위로 올라탄 오이카와는 자신의 올려보는 사랑스러운 얼굴, 정확하게는 입술 위를 손바닥으로 덮은 후 쪽 입을 맞췄다.



"나 아직 이 안 닦았으니까 이걸로 참아."



그리 말한 후 오이카와는 서둘러 스가와라를 놓아주었다. 그리곤 자신을 벗어나 컴퓨터 앞으로 향하는 연인을 등지고 서둘러 욕실로 향했다. 뜨뜻하게 온도를 설정해 둔 스가와라 덕분에 물을 틀기가 무섭게 적당한 온수가 콸콸 쏟아져 내렸다. 거울 근처에 붙어있는 패널을 젖은 손으로 눌러 오늘의 날씨를 확인했다. 뚝뚝 물기가 서린 유리창 아래로 영하 10도라는 어마어마한 기온이 오이카와를 반겼다. 받아놓은 물로 얼굴을 말끔하게 씻어 낸 오이카와는 그 화면을 손바닥으로 밀어 없앤 후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며 욕실에서 나왔다.



"커피 타 놨어."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스가와라가 대답했다. 키친의 테이블에는 블랙커피와 토스트가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다. 오이카와는 근처에 놓여진 설탕통에서 설탕 몇 개와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섞었다. 코드를 입력하고 프로그램을 짜는 데에는 누구도 따라오지 못 할 정도의 연인은 이상할 리 만치 커피를 못탔다. 커피 포트에 불을 넣는다, 그리고 커피를 잔에 따른다. 그게 스가와라 코우시의 최선이었기에 달달하고 부드러운 커피를 좋아하는 오이카와는 항상 준비된 블랙커피에 기호를 맞춰 설탕과 우유를 섞었다. 왜 제대로 커피도 못타냐는 불만은 단 한 번도 입에 담아 본 적이 없었다.




"아침은?"
"난 있다가."
"뭘 그렇게 하는데 식사를 걸러? 먹고 하지."




여전히 돌려진 작은 등을 보며 오이카와가 살짝 잔소리를 뱉었다. "조금만 더 하고." 시선을 푸른 모니터에서 떼지 않은 채로 그가 말했다. 최근 스가와라 코우시가 들어간 프로젝트는 인공 지능 프로그램을 다루고 있었다. 성공적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면 어마어마한 변화가 찾아올 것이라며 흥분해 설명하긴 했으나 사실 오이카와에게는 크게 와 닿거나 이해가 되는 부분은 아니었다. 다 비운 그릇을 싱크에 던져 놓으며 오이카와는 습관적으로 근처에 두었던 담배를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막 입에 물려는 찰나였다.



"토오루, 담배 끊으라고 했잖아. 아니면 나가서 피워. 환기 시키는 거 힘들어!"



집안을 울리는 목소리에 오이카와가 놀라 담배 개비를 떨어트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스가와라가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신기하지?" 라고 물어왔다.



"뭐야? 방금? 네 목소리 아니야?"
"응. 아직 시험판이라 내 목소리를 인식시켜서 녹음했거든. 이런 식으로 프로그램이 집을 총 관리하고 주인을 서포트 하는 거야."
"네가 말하는 줄 알고 놀랐어."
"내 목소리니까."



즐거운 얼굴로 그리 말하는 스가에게 다가간 오이카와는 담배 대신 입술을 꾹 스가의 머리 위로 눌러 내렸다. 꽉 뒤에서 끌어안자 체온이 낮은 손이 툭툭 팔을 두드리며 토닥였다. 



"이게 완성되면 내가 집에 없어도 얘가 날 대신해서 토오루에게 잔소리를 할 거야."
"괜찮아. 네 잔소리야 백번도 더 들을 수 있어."
"그거 영광이네요."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대답했다. 더 끌어안고 더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진짜 이대로 가다간 회사에 지각을 할 것 같아 오이카와는 아쉬운 마음으로 스가를 놓아주고 드레스룸으로 향했다. 미리 골라놨다는 옷들이 오이카와를 반기고 있었다. 단정한 셔츠와 자켓, 그리고 바지에 코트까지. 스가와라는 항상 오이카와의 옷을 골라주는 것을 좋아했다. 본인은 항상 연구소에 나갈 경우를 제외하고는 집에서 티셔츠와 편한 바지로 돌아다니면서 오이카와의 옷만큼은 항상 신경 썼다. 언젠가 이유를 물었더니 "어디 가서 내 남자가 무시당하는 거 싫어." 라며 알 수 없는 대답을 던져 놓았다.



"나 넥타이 맨다!"



그가 골라 준 셔츠, 그가 골라 준 벨트, 그가 골라 준 시계- 하나하나 몸에 두르고 채우며 오이카와가 외치자 드르륵 의자 밀리는 소리와 함께 스가와라가 드레스룸으로 달려 들어왔다. 



"안돼. 이건 내 몫이야."



막 오이카와가 손에 쥔 넥타이를 빼앗아 가며 스가와라가 외쳤다. 아침마다 출근하는 자신의 넥타이를 매어 주는 것 역시 스가와라의 고집 중 하나였다. 자연스레 셔츠 깃을 올려주며 살짝 목을 숙이자 냉큼 넥타이를 둘러 빠르고 깔끔하게 매었다. 마지막으로 꽉 고정시켜 올린 후 셔츠 깃까지 내려준다. 



"완벽해?"



오이카와의 질문에 스가와라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마지막 마무리는 얼마 전 선물 받은 코트를 입었다. 스가와라가 보너스를 받았다며 사 온 카멜색 코트였다. 



"누구 남자인지 진짜 멋있네."



비스듬하게 거울 앞에 선 스가와라가 말했다.



"스가와라 코우시의 남잔데요."



오이카와가 거울을 통해 웃음으로 받아치며 말했다. 스가와라 코우시의 남자가 된 지, 5년- 매일매일 이루어지는 이 아침 행사는 전혀 질리지 않았다. 질리기는커녕, 늘 새롭고 사랑스러워서-


"다녀올게."


현관에서 신을 신는 순간이, 우리들의 집을 나서는 순간이, 현관문 사이로 사라지는 스가와라의 모습이 항상 아쉽고 아쉬웠다. 오이카와 토오루에게 스가와라 코우시는 그런 존재였다. 가득 채워도 항상 부족하고 아쉬운 사람이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스가와라 코우시 일 것이라 오이카와는 늘 생각했다. 그래서,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라고는 그때에는 몰랐다. 전혀.







그 날은 평소의 아침과는 달랐다. 스가와라의 출장이 잡힌 터라 오이카와가 먼저 일어난 날이었다. 늘 스가와라가 그랬듯이 아침 식사를 차리고, 물의 온도를 맞추고, 집의 난방을 올리고, 입고 갈 옷을 골라놨다. 한쪽에 들고 갈 가방과 서류까지 완벽하게 준비해 그를 깨웠다. 이마에 입을 맞추며 이불 속으로 도망가려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가기 싫다."
"중요한 일이라며."
"응, 투자자들을 만나러 가는 거니까. 개발자인 내가 가야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스가와라가 중얼거렸다. 잔뜩 졸음이 묻은 목소리가 안타까웠지만 오이카와는 서둘러 뻗친 그의 머리를 정돈해주며 욕실로 밀어 넣었다. 간단하게 식탁 위에 올려놓았던 토스트를 다시 펜으로 옮겨 데운 후, 스가와라가 나오는 타이밍에 맞춰 다시 그릇에 담았다. "우유? 커피? 티?" 탈탈 머리를 털며 자리를 잡는 스가와라에게 묻자 서둘러 포크를 들며 "우유!"라고 대답했다. 유리컵에 가득 우유를 따라 내려주며 오이카와는 맞은 편에 앉아 오물오물 아침 식사를 넘기는 연인을 눈에 담았다. 그 시선이 이제 익숙한 스가와라는 옆에 놓여있던 신문을 뒤적이며 잼이 발린 토스트를 금세 비워냈다. 



"옷 골라 놨어."
"어쩐지 느낌이 이상해. 항상 반대였는데."
"그만둘까? 들어가서 나 그냥 자?"
"아니, 싫어."



탁탁 부스러기가 묻은 손을 털어 닦아내며 스가와라가 대답했다. 그리곤 그릇을 치우기 위해 싱크로 향하는 오이카와를 두고는 서둘러 드레스룸으로 사라졌다. 싱크에 달려있는 세척기에 자동 버튼을 눌러놓고 서둘러 따라 들어서자 자신이 골라 놓은 옷을 갈아입고 있는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속옷 차림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꺼내놓은 니트를 들어 쏙 얼굴을 빼내는 모습이 귀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문에 기대있던 몸을 떼어내 낚아채듯이 스가와라의 허리를 안아 품으로 당겨 안았다. "안돼. 나 늦었어." 웃음 섞인 투정이 오이카와를 밀어냈다. 



"너 없이 2박 3일 외로워서 어쩌지?"
"난 바빠서 2박 3일도 모자랄 것 같은데."
"너무하네"
"그걸 이제 알았어?"



쏙 몸을 돌려 오이카와를 바라보며 스가와라가 쪽 뺨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는 품에서 달아나 서둘러 바지를 다리에 꿰입었다. 드라이까지 완벽하게 해 두었던 코트를 걸치는 등을 바라보며 오이카와는 머플러를 꺼내 휑한 목이 사라지게 둘둘 감아주었다. 그리곤 급히 현관으로 향하는 스가와라를 대신해 가방과 서류를 챙겨 내밀었다. 구두를 구겨 신던 그가 고개를 들어 그것을 받아내며 툴툴거렸다.



"내가 빨리 갔으면 좋겠어? 이렇게 착착 준비를 해주고?"
"중요한 날이잖아. 지각하면 안 되니까."
"가지 말라는 소리는 안 하네?"



그 말에 오이카와는 그저 웃었다. 스가와라 코우시가 자신의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번 프로젝트에 얼마나 목을 매는지 옆에서 지켜보았으니 그런 투정을 부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사실은 정말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될 수 있으면 휴일 내내 함께 지내고 싶었다. 그런 아쉬움을 담아 오이카와가 슬쩍 입을 열어 물었다.



"데려다 줄까?"
"그러지 마, 모처럼 휴무인데."
"그럼 데리러 갈까?"
"됐거든요."
"그것도 싫으면 같이 갈까?"
"마음만 받을게. 2박 3일 동안 나 없다고 울지 말고, 푹 쉬어."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끝낸 스가와라가 말했다. 그리곤 손을 뻗어 오이카와의 목을 살짝 당겨 잡더니 촉, 입을 맞추는 것으로 굿바이 인사를 대신했다. 멀어지는 손을, 팔을, 얼굴을, 몸을 잡아 한번은 품에 안아 보고 싶었으나 오이카와는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그 행동을 후회하는 데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오이카와의 아침잠을 깨운 것은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였다. 요란하게 몰아치는 그 빗소리에 결국 졸음 섞인 눈을 올려 뜨고 옆 서랍에 있던 리모컨을 들어 창문을 향해 버튼을 눌렀다. 삑 소리와 함께 밖과의 소음이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하지만 이미 깨어버린 잠은 쉬이 다시 찾아오지 않아 몸을 일으켰다. 늘 두 사람이 누웠던 침대가 혼자라 그런지 이상하게도 크고 휑하게 느껴졌다. 빈 스가와라의 자리를 손바닥으로 조심스레 쓸어 본 오이카와는 머리맡에 둔 핸드폰을 확인했다. 반짝이는 불빛이 스가와라 코우시라는 이름을 뱉어내고 있었다. 자신이 잠든 사이 온 메시지였다.


[토오라]

메시지는 그것이 끝이었다. 토오라? 설마 자신의 이름을 쓰려던걸까. 라에서 두 번만 더 누르면 루가 나오는데 그게 다 귀찮았던걸까. 오이카와는 웃으며 시간을 확인했다. 아침 7시 34분. 지금 전화하면 깨우는 일이 될 것 같아 그대로 핸드폰을 닫았다. 그리고 막 씻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조용한 공간에 벨소리가 울렸다. 반짝이는 액정에 스가와라의 이름이 둥둥 떠다녔다. 어쩐지 마음이 통한 기분이 들어 웃음이 세었다. 



"뭐야, 코우시. 더 자지 않고 아침..."



부터? 라고 장난스레 인사하려던 오이카와의 목소리는 경찰이라는 상대방의 말에 사라지고 말았다. 수화기를 타고 흘러나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손이 덜덜 떨려왔다. 경찰이라는 남자가 뱉는 말이 너무도 우습고 우스워서 오이카와는 웃었다. 그리고 화를 냈다.



"아침부터 무슨 헛소리에요? 스가와라 ... 아니 코우시 바꿔. 당신 누구야."



우습지도 않은 농담이자 장난이었다. 오이카와는 떨리는 손으로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기며 초조하게 스가와라의 목소리가 들리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믿기 힘들다는 거 압니다만, 교통사고로 스가와라 코우시상이 사망하셨습니다."


들려오는 이야기는 전혀 달리 지지 않아서 오이카와는 쥐고 있던 핸드폰을 놓쳤다. 비명과 같은 울음소리가 빗방울을 차단시킨 공간에 내질러졌다.




가족끼리 장례를 치르고 싶다는 스가와라의 부모님의 요청에 오이카와는 제대로 된 이별도 할 수 없었다. 병원에서 상태조차도 확인할 수 없었다. 그저, 스가와라 코우시의 핸드폰에 남겨진 마지막 기록이 자신에게로의 메시지라 경찰의 확인 전화를 받은 것이 전부였다. 출장 에서 일을 끝내고 호텔로 가는 길, 요란한 빗길에서 차가 미끄러지며 가드레일을 박고 전복되었다. 하지만 사고 시간과 달리 스가와라의 사망 추정 시각은 무려 5시간 뒤였다. 5시간이나 빗속에서 살아 있었다. 시간이 늦은 저녁 시간인 데다, 인적이 드문 시골이라 발견이 늦었다. 무려 사망하고 나서 3시간 뒤인 아침 7시에서야 지나가던 행인이 사고를 신고했다. 오이카와는 경찰이 전해 온 이야기들이 너무도 무서웠다. 5시간 안 그 빗속에서 홀로 남아있었을 스가와라를 생각하니 무서웠고, 그가 자신에게 보낸 차마 끝을 내지 못한 이름을 생각하니 무서웠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홀로 눈을 감는 순간, 편히 침대에 눈을 감고 있던 자신이 무서웠다. 어째서 몰랐을까. 어째서 이토록 사랑하는 이가 죽어가는 순간 자신은 조금도 몰랐을까. 그가 마지막으로 자신을 찾던 그 순간, 왜 아무것도 몰랐을까. 왜. 왜.



장례식장에는 초대받지 않았지만 오이카와는 스가와라가 떠나는 그 날, 본가까지 찾아갔다. 멀리서라도 조금이라도 그를 보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돌아오는 길, 더이상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스가와라 코우시가 없는 우리의 집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그가 더이상 돌아오지 않을 그 집으로 홀로 들어가는 게 무서웠다. 그가 없는 방에서 그를 기다리는 게 무서웠다. 그가 없는 세상에서 자신만이 그를 잊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 게 너무도 무서웠다. 하지만 자신에게 남은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스가와라 코우시의 칫솔, 스가와라 코우시의 책들, 스가와라 코우시의 옷, 스가와라 코우시의 사진, 스가와라 코우시의 로션- 그가 남기고 간 모든 것이 그 집에 있었다. 그래서 버릴 수가 없었다. 그 모든 게 오이카와에게 있어서는 추억이였고 전부였다. 스가와라 코우시였다.



네가 사랑하는 나로 남기 위해 나는 나를 죽일 거야. 



오이카와는 그렇게 결심했다. 이대로 자신이 무너지면 그 언젠가 다시 만나는 날, 스가와라 코우시가 뺨이라도 후려칠 것 같으니 자신을 죽이기로 결심했다. 괜찮은 척 웃었고, 괜찮은 척 거리를 걸었다. 그러다 우연히 거리에서 스가와라가 즐겨 쓰던 향수 냄새라도 맡는 날은 저도 모르게 펑펑 울고, 그가 좋아하는 음악이 들려오면 토하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지만 오이카와는 그렇게 괜찮다는 가면을 쓰며 자신을 죽여갔다. 스가와라 코우시가 사랑하는 오이카와가 되기 위해서. 사랑했던 오이카와 토오루로 남기 위해서 아득아득 버텼다. 그를 위해 자신을 죽여갔다.



그리고 그 괴로움이 차곡차곡 쌓여 넘쳐 흐를 때 즈음 집으로 우편물이 도착했다. 스가와라 코우시가 만들었던 그 프로그램의 무료 배포용 CD였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 오이카와는 <스가와라 코우시앞>이라고 적힌 전표를 바라보며 웃었다. 이걸 완성 시키기 위해 그 날, 그곳에 간 것이었다. 이깟 프로그램의 투자자를 잡기 위해서. 꼴도 보기 싫은 상자를 당장 버리려던 오이카와는 문득 스가와라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이게 완성되면 내가 집에 없어도 얘가 날 대신해서 토오루에게 잔소리를 할 거야." 라던 그 말. 그리고 마치 무언가에 홀 린 사람처럼 상자를 뜯어내 안의 CD를 컴퓨터로 밀어 넣었다. 프로그램을 구동시키자 커다란 화면 가득 푸른 화면이 반짝였다. 오이카와 토오루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었다. 목소리를 고르라는 선택 과정에서 오이카와는 어렵지 않게 스가와라의 목소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이 목소리가 마음에 든다는 거지?"



공간에 너무도 그리웠던 목소리가 울렸다.



"좋아, 그럼 이제 내 이름을 알려줘."
"코우시, 스가와라 코우시."



오이카와는 급히 그 이름을 불렀다.



"코우시! 나 이 이름 알아. 날 만들어 준 사람의 이름이야. 맞지?"
"응."
"그럼, 당신은? 내가 당신을 뭐라고 부르면 될까?"
"토오루- 오이카와... 오이카와 토오루."



푸른 화면에 파도처럼 곡선이 물결쳤다.



"토오루! 세상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름이야!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를 때 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아!"
"...그래?"
"응! 그래, 그럼 토오루. 만나서 반가워, 일단은-"



웃음기 섞인 코우시의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네 이야기를 들려줄래?"



얼마든지. 오이카와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며 재빨리 대답했다. 그에게 해줄 이야기들이 너무도 많았다. 하지만 그 마음과 달리 입을 열자 터져 나오는 것은 억눌린 울음소리였다. 괴로운 울음소리만이 지금의 오이카와가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전부였다. 괜찮아, 코우시의 다정한 위로가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다정한 네가 아직 여기 살아있다. 마저 다 부르지 못했던 내 이름을 다시 불러준다. 그러니, 괜찮다. 괜찮을 것이다. 나는. 오이카와 토오루는.











-



몰라.. 갑자기 쓰고 싶었다. 기계 말고 진짜 스가와라 코우시를 사랑했던 오이카와가.

근데 별로 안썼다... 배가 고프니까... 표지 날라가서 복구해야하니까!!!!!!!!!!!! .. 엉엉엉

나 어떡해... 너 갑자기... 가버리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