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스가/카게스가] 네모의 눈에 보이는 것
2016. 7. 14. 21:26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요? 그냥 한 2주 정도 잠잠하게 자숙하고 있으면 되는 일을 왜 이렇게 크게 벌려? 안 그래요? 사이토상?"



터벅터벅, 신발 바닥으로 울리는 덜 포장된 길의 느낌이 별로였다. 발끝에 치이는 낡은 자갈들을 툭툭 걷어차듯이 치워내며 툴툴대는 오이카와의 말에 커다란 카메라 가방을 든 사이토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공사하다 말았는지 아스팔트가 채 깔리지 않은 길은 좁기까지 해서 차가 오를 수가 없었다. 언덕 아래 주차장부터 눈앞에 보이는 작은 병원까지, 사실 두 다리가 있다면 그리 먼 거리도 아니지만 오늘따라 머리 꼭대기에서 쏟아지는 햇볕이 뜨거워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러게 누가 상대 선수 도발에 넘어가서 얼굴에 침을 뱉으래!"
"그 자식이 먼저 비꼬았잖아요."



뒤늦게 타고 왔던 차의 문을 잠그고 따라붙은 매니저 리츠코에 말에 지지 않으며 오이카와가 당당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당당함도 잠시 "그렇다고, 경기장에서 침을 뱉어? 그것도 상대 선수 얼굴에?!!" 라며 날아드는 리츠코의 잔소리에는 할 말이 없었다. 일단, 자신도 잘못은 했으니까. 아니 그래도 그렇지, 봉사 활동이라니. 팔자에도 없는 일을 위해 먼 거리를 달려왔더니 온몸이 쑤시는 것 같았다. 자숙을 핑계로 몇 주 푸욱 집에서 놀고먹고 쉬면 된다 가볍게 생각했더니 예상 밖의 일이었다. 올바르지 못한 행동에 대한 거센 비난을 구단 측에서 막아내겠다며 내민 카드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 점점 가까워지는 병원의 풍경이 싫기만 했다.



"그냥 보도용으로 풀 사진 몇 장 찍고 가만히 앉아만 있다가 오면 돼."
"여기서 지내야 한다면서요. 주변에 편의점도 없고 그 흔한 패스트푸드도 안보이는 이 시골 동네에서!"
"3주, 고작 21일입니다. 오이카와 토오루 선수."



냉정한 그녀의 말에 도와달라는 의미로 사이토를 바라보았지만 뻘뻘 땀을 흘리며 걷는 그 역시도 어쩔 수 없었는지 어깨만 으쓱할 뿐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기서 지내는 동안 SNS는 금지야. 조용히 자숙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대중들 화가 풀리지."



대중들이 화를 풀든 말든 오이카와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우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중의 반응은 몰라도 제 이름에 달라붙은 스폰서와 광고가 잘려나가는 것에는 관심이 많았다. 이 귀찮은 '봉사활동'은 다 그것들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스스로 말하기 참 부끄럽지만, 일본의 슈퍼스타 그리고 배구천재 오이카와 토오루의 금이 간 이미지는 다시 돌려놓아야만 했다.



"그럼, 제가 이렇게 개고생하는 동안 그 새끼는 뭐 한답니까?"



자신이 침을 뱉었던 상대를 언급하며 물었다. 먼저 "그렇게 점프 서브만 해대다 무릎 병신이나 되라지."라고 도발했던 것은 그놈이었다. 물론, 그 말에 참지 못하고 달려들어 침을 뱉었던 것은 잘못이었으나 따지고 보면 정당방위에 가까운 일이었다. 일주일 전에 있었던 작은 사고를 떠올리며 묻는 말에 리츠코는 슬쩍 이마를 문지르며 말했다.



"그건 그쪽 구단이 알아서 처리하겠지."
"일주일 전 시합에서 있던 일인데 알아서 처리를 하겠다고요? 내가 여기 와있는 동안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거기는 그냥 피해자 코스프레 하면서 넘어가겠다 이거네."



먼저 도발한 것은 잘못했으나 그렇다고 침을 뱉을 줄은 몰랐다, 당황스럽다, 수치스럽다 등등 이런 말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갈 것이 분명했다.



"그러게 좀 성질 죽이라고 했잖아. 너."



죽일 성질이 따로 있지. 같은 동업자에게 부상 소릴 하는 막돼먹은 놈에게까지 성질을 죽여가며 쉽게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털털 모래와 자갈로 엉망이었던 언덕을 올라 그나마 병원 근처라고 꾸며진 작은 정원으로 들어서며 오이카와가 입을 꾹 다물었다. 어쨌거나, 여기서 제발 말 잘 듣고 있어. 그녀의 간절한 부탁에도 입은 열리지 않았다. 물론 말은 잘 들을 생각이지만 청개구리 심보와도 같았다. 죄 없는 자신을 이곳에 던져 가두는 그녀와 구단을 향한.

선수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자신의 실력, 돈, 명예, 트로피, 인기. 물론 그것들을 다 갖추고 있으면 좋겠지만, 가장 기본적이면서 소중한 것은 몸이었다. 몸이 곧 재산이었고 무기와 같았다. 오이카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심할 정도로 자기 관리에 집착했다. 사귀던 여자와의 데이트 약속이나 잡지 인터뷰에는 자주 늦어도 절대로 구단 연습이나 시합에는 늦어본 적이 없었다. 경기 전에는 반드시 워밍업에 참여했고 틈이 나면 구단 연습장을 찾아가 개인 운동에도 열성을 다했다. 먹는 것도 까다로워 자극적인 것들은 대부분 피했으며 하루 아침을 푸르고 칙칙한 건강 주스로 열었다. 정크푸드는 정말 급할 때, 그 외에는 스스로 요리를 하거나 괜찮은 곳에 가 식사를 했다. 몸 관리가 제대로 되어 있어야 컨디션이 완벽했고 컨디션이 완벽해야 시합에서 좋은 플레이를 보여줄 수 있었다. 물론 오이카와 토오루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자신이 소속된 팀 '아오바죠사이'의 팀원을 비롯한 모든 운동선수들이 이런 삶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을 것이었다. 다만, 배구계의 아이돌 혹은 슈퍼스타처럼 다루어지는 오이카와 토오루이기 때문에 더 특별해 보이는 것뿐이었다. 운동도 잘하는데 얼굴도 잘생겼고 심지어 자기 관리까지 철저하다는 그 말, 이미지가 오이카와 토오루를 대변하는 모습이었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그렇게 완벽하고 싶었다. 모두가 사랑하는 선수로 완벽하게 코트에 서고 싶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그렇게 점프 서브만 해대다 무릎 병신이나 되라지."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 그런 저주라니, 너무하지 않은가. 뭐 인터넷에서 누군가가 그렇게 혼자 떠드는 이야기였다면 오이카와도 그리 흥분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좋은 경기를 끝내고 수고했다는 의미로 형식적인 악수를 건넸을때 던져지는 말이 저런 형태라면 누구라도 화났을 것이었다. 무릎 병신이라니, 이 무릎이 얼마짜리 무릎인데. 화가 난 것은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곁에 서 있던 이와이즈미도 발끈했고 심지어 반대편 네트에 선 놈의 동료도 당황해 눈이 커질 정도였다. 선수에게 가장 예민한 문제인 부상을 그런 식으로 떠들어 대는 녀석에게 오이카와는 예의를 차리거나 팬들에게 하듯 웃으며 넘길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그래서



"병신은 너지."



라고 갚아주며 침을 뱉었을 뿐이었다. 하필 그 침이 아주 날카롭게 날아 놈의 얼굴에 떨어졌고, 아직 중계 카메라는 돌고 있었으며 기자들이 이 모습을 셔터에 담고 있어 문제가 커졌다. 포털 사이트 메인에 히드라처럼 침을 뱉는 자신의 사진이 올라섰고 경기가 끝나면 늘 차지하던 실시간 1위를 다른 이유로 차지했다. 연관 검색어에는 '오이카와 토오루 히드라'라는 것이 생겼고 심지어 이상한 합성 사진까지도 나돌기 시작했다. 인기가 많은 만큼 안티도 많다고, 그동안 얼마나 다들 벼르고 있었던 건지 오이카와 토오루를 물어뜯느라 모두가 신이 났다. 아침 뉴스의 톱을 차지하고 심지어 낮 그리고 저녁 뉴스까지도 끊임없이 나왔다. 정당방위였다, 그럴 수도 있다고 지지해주는 팬들도 있었지만 실망이라며 돌아서는 팬들도 생기자 구단 측에서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는지 공식적인 사과를 날리고 자숙과 함께 이 웃기지도 않은 '봉사활동'을 기획했다. 팀닥터의 오랜 지인이 차린 개인 병원 시설로 말이 병원이지 오이카와에게는 공기 좋고 맑은 시골 한구석에 떨어진 감옥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거기다 그냥 병원도 아니고, 정신 병원."



정신 병원 아니라니까? 딱 잘라 말하며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리츠코의 말에 오이카와는 못 들은 척 기지개를 켰다. 병원 건물 앞에 <이나카 심리 병원 센터>라고 적혀있지만 결국은 그게 그 말이 아니던가. 보내주려면 차라리 무슨 동물 보호소나 그런 곳이나 보내줄 것이지. 입을 타고 절로 한숨이 나왔다. 정신- 아니 그러니까 심리 병원 센터에서 도대체 무슨 봉사 활동을 하라는 건지. "표정 좀 풀어요." 사이토가 어색하게 웃으며 지적했지만 구겨진 인상은 쉬이 제자리를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름 병원이라는 구색을 갖추려는 것인지 내부에는 미미한 약품 냄새가 돋아 있었지만 그 외에는 그저 텅 빈 건물과 다르지 않게 보였다. 작은 현관 앞에는 주르륵 나무로 된 신발장과 방문객용 낡은 슬리퍼들이 <이나카 병원>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색색별로 놓여져 있었다. 오이카와는 신고 온 운동화를 벗어 가지런히 넣은 후 큰 사이즈의 슬리퍼를 꺼내 발에 꿰어 신었다. 탈탈 소리를 내며 천장 위에서 돌아가는 낡은 선풍기 소리를 들으며 안으로 들어서자 접수 카운터에 선 지긋한 나이의 아주머니가 웃으며 반겨왔다.



"오셨어요?!"



그녀의 인사에 "또 뵙네요."라며 리츠코가 아는 척을 해댔다. 봉사 활동 일정을 잡느라 그녀가 저번 주에 먼저 방문했다는 이야기를 사이토에게 소곤소곤 들으며 오이카와는 얼굴 한가득 피어있던 짜증을 지우고 미소를 띄워냈다. 팬들이 말하길 '상투스 울리는 미소' 즉, 철저한 관리된 미소였다.



"아오바죠사이의 오이카와 토오루입니다. 3주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어머, 반가워요. 우리 원장님이 엄청 팬인데. 저야말로 3주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카나코라고 해요, 그녀가 가슴팍에 달린 간호사 명찰을 흔들며 인사했다. 그리고는 거추장스러운 다른 소리 없이 시설을 안내하겠다며 먼저 걸음을 옮겼다.



"시설이 작아서 크게 힘들지는 않을 거예요. 저희가 오이카와 선수에게 부탁하고 싶은 일은 간단한 청소와 식사배급 정도에요. 가끔 아이들에게 배구를 알려주시면 더 좋고요."



하얗게 펼쳐진 복도를 걸으며 그녀가 차근차근 설명했다. 몇 없는 의사들의 진료실을 안내하고 입원실 그리고 공동 휴식실과 아동 놀이방, 화장실과 샤워실 마지막으로 식당까지 안내한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별로 복잡하지 않죠?" 하고 물어왔다. 실제로 꽤 소박한 공간이었기에 오이카와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는 이 장소를 위탁소라고 생각하고 관리하고 있어요. 아직 세상에 나갈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을 잠시 보살펴주고 도와주는 곳이라고요. 오이카와 선수도 부디 편견 없이 환자분들을 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네, 그럴게요."



전혀 그럴 생각도 마음도 없었지만 오이카와는 유려하게 미소 지으며 끄덕였다. 곁에 선 리츠코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슬쩍 흘겼지만 반응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오이카와 선수가 지낼 방은 선생님들 기숙사 실에 마련해놨어요. 좁아서 불편하겠지만.."이라는 말에는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좁은 건 질색인데. 설마 2인 1실은 아니겠지. 아니야, 고작 3주인데. 3주만 버티면 되는데. 그래, 고작 3주였다. 무언가 크게 변하고 일어나기엔 짧은 시간처럼 느껴졌다. 입 다물고 조용히 죽은 듯이 지내면 이 길어 보이는 시간은 금방 끝나 있을 것이었다. 오이카와는 스스로 그렇게 위로하며 목의 끝을 채우는 한숨을 애써 집어삼켰다. 그리고는 깔끔하게 거짓말을 뱉었다. "괜찮아요."라고.
하지만 안내받은 방을 보기 무섭게 깔끔하게 뱉은 자신의 거짓말을 후회했다. 거짓말이지? 리츠코를 향해 눈빛을 보냈지만 그녀는 어깨를 으쓱일 뿐 도와주지는 않았다. 척 보아도 허리가 아플 거 같은 철제 침대며, 매트리스는 낡아 보였다. 그 아래의 간이침대를 보니 전에는 병실로 썼을 것이 분명했다. 그 외에는 작은 냉장고 하나, 먼지 쌓인 TV 하나. 심지어 디지털 TV도 아니었다. 거기다 저 창에 달린 창살들은 다 뭐고. 좁은 게 문제가 아니라 완전 감옥 아니야 이거? 그렇게 따져 묻고 싶은 것을 꾹꾹 참아내며 오이카와는 어색하게 가방을 내려놓았다.



"짐 정리 끝내시고 푹 쉬세요. 스케쥴은 저녁에 다시 알려드릴게요."



카나코가 밝게 웃으며 말했지만, 과연 이 방에서 쉴 수나 있을까. 오이카와는 최대한 삐걱대지 않게 매트리스에 걸터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그럼 사진 좀 찍고 올게. 얄밉게도 리츠코가 웃으며 사이토를 끌고 나가자 안 그래도 휑한 방이 더 휑하게 느껴졌다. 덩그러니, 그 단어를 머리로 떠올리며 오이카와는 몸에서 힘을 빼었다. 기다렸다는 듯 매트리스가 요란하게 울었다.



"..여기서 3주라고?"



고작 3주라고 위안했던 아까의 자신이 우스워졌다. 거기다 스케쥴이라, 무슨 스케쥴이지. 환자를 돌보라거나 그런 일을 시키진 않겠지? 아이도 무리였다. 노인은 더더욱 무리였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 어떤 대화를 해야 하고 어떻게 말을 이어가야 하는지 오이카와는 몰랐다. 자신도 없었다. 지금껏 모두 자신에게 맞춰주니 문제없었지만, 분명 환자라면 자신이 맞춰야 할 게 분명했다.



"절대로 무리."



귀가 안 들리는 할아버지 앞에서 어색하게 웃으며 대화를 이어가려는 자신을 떠올리니 등이 쭈뼛 섰다. 애초에 '봉사'라는 단어 자체가 자신에게는 먼 이야기었다.



"이런 건 이와짱에게나 어울리지."



평소에도 여러 봉사활동을 나서는 팀메이트를 떠올리며 오이카와는 좌절했다. 당장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으나, 리츠코가 가만 있지 않을 게 뻔했다. 그녀가 아니더라도 그가 친히 여기까지 방문해 저를 도와줄 것 같지는 않았다.
아 안 되겠다. 리츠코에게 빌어보자. 그녀에게 빌어서 1주, 아니 2주로 줄여달라고 해보자. 어영부영 대충 3주같이만 보이면 되는 거 아닌가! 오이카와는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아직 10분도 안 지났는데 이 방에 있으려니 답답해 죽을 거 같았다. 그런데 여기서 3주라고? 21일? 절대로 무리였다. 다음 시즌엔 더 잘하겠다고 빌자, 빌고 무조건 잘못했다고 말하자. 그럴 생각으로 서둘러 문을 열었다.



"잠깐, 위험...!!!"



그리고 열기 무섭게 커다란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동시에 쿵, 무언가가 몸에 부딪혔다. 얼마나 세게 부딪혔는지 신음이 나올 정도의 고통이 찌르르 몸을 울렸다. 다행히 그리 큰 충돌은 아닌지라 넘어지진 않았지만, 상대에게는 달랐는지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스가와라상!!!"



뒤따라 달려오던 남자가 놀라 외쳤다. 그가 달릴 때마다 흰 가운이 펄럭댔다. 잠깐잠깐, 달려든 건 저쪽이라고? 급히 다가온 그가 노려보는 시선에 오이카와는 인상을 구겼다.



"문을 너무 함부로 여시는 거 아닙니까?"
"...뭐?"



무슨 소리야. 함부로라니. 그냥 열었다고. 오이카와는 어이가 없어 잡고 있던 문고리를 잡아 흔들었다. 이렇게 살짝, 평범하게 열었다고 보여주었으나 자신에겐 관심도 없는지 사내는 서둘러 넘어진 상대를 일으켜 세웠다. 아파, 작게 중얼대는 목소리가 울렸다. 오이카와는 멍하니 일어서는 상대를 바라보았다.



"그러게, 봉투 벗으라고 했잖아요."



의사가 슬쩍 화를 냈다. 자신에게 내비친 화에 조금 감정을 담아서. 약간의 애정 같은, 뭐 그런 것. 오이카와는 그의 잔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상대를 바라보았다. 보고 또 보았다. 도대체 저게 뭐야, 싶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게 상대는 봉투를 쓰고 있었다. 네모난 크라프트지의 누런 봉투. 그 아래로는 깡 마른 몸에 환자복이 걸처져 있었다. 입었다는 표현보다는 걸쳐진 게 더 맞는 표현처럼 느껴졌다.



"어디 멍들거나 아픈 데 없어요?"
"괜찮은데..."
"일단, 방으로 돌아가요. 미용사 선생님 돌려보낼 테니까."
"진짜로?"
"네."
"약속하는 거다. 카게야마?"



카게야마, 봉투에서 웅웅 울리는 이름에 오이카와는 슬쩍 가운에 걸린 이름표를 확인했다. 병원 스태프 카게야마 토비오라는 글자가 그의 가슴팍에서 출렁댔다. 가운을 입었길래 의사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만 가요, 스태프가 환자의 손을 잡았다. 둘둘 말려진 소매 아래로 튀어나온 마른 뼈들이 그의 손에서 감춰 사라졌다.



"실례했습니다."



그래도 갈 때는 예의 있게 꾸벅, 스태프가 고개를 숙였다. 덩달아 오이카와도 고개를 숙였다. 아니, 자신은 숙일 필요 따위 없었으나 저도 모르게 숙여졌다. 하지만 정작 달려든 봉투 인간은 사과 한마디도 없이 남자를 따라 사라졌다.



"뭐야..."



기가 차서 웃음이 나왔다. 문을 닫지도 그렇다고 활짝 열지도 못하고 오이카와는 멍하니 서 있었다. 방금, 꿈 꾼 거 아니지? 제가 본 게 너무도 희한해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러기에 여기 장소가



"정신병원."



리츠코는 아니라 했으나 제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방금의 봉투 인간 같은 걸 설명할 수는 없었다.



"...정신병원 맞잖아!!!"



눈앞이 핑글 도는 기분이 들었다.






-





폴더 정리하다가.. 작년 6월에 이런걸 썼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아마 트위터에서도 이런 거 보고싶다고 징징댔던 거 같은데...


어쨌거나, 뒤는 없지만.........

마이웨이 배구선수 오이카와 x 봉투남 스가 x 봉사활동 하는 카게야마라는 설정이어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