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타스가] Sledge Hammer
2016. 1. 10. 22:16



처음부터 잘 될 거라 생각하지 않고 시작한 고백이었다. 그래서 좋아한다는 고백에 "좋아." 라고 대답해 줬을 때, 꿈을 꾼다고 생각했었다.



"그러게 내가 스트레잇은 안된다고 말했잖아."



딱하다는 듯 던지는 바텐더의 말에 스가와라는 흡 눈물을 삼키며 제 앞에 놓인 칵테일을 시원하게 비웠다. 얘, 그게 맥주니? 그가 황당하다는 듯 말했지만 잔 안에 든 액체가 무엇인지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애인이, 자신을 버젓하게 두고,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자신보다 무려 6살이나 어린 스무 살짜리 여자아이와.



"남자들은 다 뻔해. 다 똑같아. 치마 두르고 어린 여자라면 다 넘어간다니까. 거기에 안 넘어가는 남자는 이 세상에 딱 한 종류밖에 없어. 게이. 오케이? 그러니까 그냥 싹 정리하고 코우짱, 좋은 남자 만나. 나이도 젊겠다 한창 즐거울 나이에 왜 그런 쓰레기 때문에 울고불고 난리야? 응? 애초에 저번에 소개해준다고 왔을 때부터 별로였어."
"별로였으면 별로였다고 말해주지 그랬어요!!"



이 바를 몇 년이나 오가며 고민상담을 해줬던 바텐더라, 고백에 성공하기 무섭게 그를 데려와 소개했다. 그때에는 반반하니 귀엽네, 직업도 좋고, 인상도 멀끔하고 완벽하다며 칭찬했던 그가 이제와서 딴소리를 하니 열 받아 저도 모르게 바락 외치고 말았다.



"눈에 콩깍지 쓰인 사람에게 별로라고 솔직하게 말하면 그게 통할 거 같니?! 흥, 어림도 없는 소리."
"...저 이제 어쩌죠?"
"어쩌긴 뭐 어째. 헤어져야지. 애초에 게이도 아닌 놈이었잖아. 갈 길 찾아간 거야."
"그래도 3년을 사귀었다고요!"

"네 26년 인생에서 고작 3년이다, 얘. 30년 만날 남자 물면 되는 거지 뭘 그렇게 질질 짜고 있어."



너무도 현실적인 그의 조언이었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고작 3년이라 할지라도 스가와라에게 있어서는 너무도 완벽했던 3년이었다. 잘생기고 몸도 좋고 다정했던 애인. 신입생 시절부터 학교에 복학했다며 나타난 그를 보자마자 마음에 품고 있었다. 그가 얼굴값 한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때에 자신은 너무 어렸고 바텐더의 말대로 콩깍지가 제대로 씌워져 있었다. 그래서 그의 졸업을 앞두고 누군가 채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멋대로 "선배 좋아해요." 라는 참 무드 없는 고백을 던졌고 생각보다 너무도 간단하게 "좋아."라는 대답을 끌어냈다. 그렇게 사귄 게 3년. 학교와 그의 직장 사이에 작은 맨션을 빌려 동거를 했다. 틈만 나면 입술을 맞대고 몸을 섞었다. 그를 위해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하는 게 즐거웠고, 늦은 귀가하는 그를 맞이하는 것도 행복했다. 그랬는데 그 끝이 바람으로 인한 이별이라니. 억울하고 분하고 황당해서 이대로 죽을 것만 같았다. 배신감으로 감정의 반은 분노가, 나머지 반은 슬픔이 차지해 마구 뒤섞였다. 한 잔 더요! 매섭게 외치며 빈 잔을 두드리자 바텐더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 새 남자 찾아. 코우짱, 세상에 반이 남자라고!"



세상의 반은 남자지만 그 중 반은 스트레잇이잖아요. 우물우물, 눈물 젖은 목소리를 내며 스가와라는 바 테이블에 뺨을 대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가고 싶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 그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알 수가 없었고 무엇보다 아무렇지 않게 마주할 자신도 없었다.



"차라리 모를 걸 그랬어요."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술이 녹아내린 혀로 중얼대자 바텐더가 새로 칵테일 하나를 내밀며 매섭게 말했다.



"그건 속는 거잖아. 코우짱, 사랑이 아니라고."
"저에겐 사랑이니까 상관없어요."



어휴 미련한 놈. 끌끌 혀를 차는 그의 말을 안주 삼아 이번에도 기다란 잔을 시원하게 그리고 깔끔하게 비었다. 그리고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다음날, 정신을 차렸을 때는 모르는 방에 누워있었다. 너무 울어 퉁퉁 부은 눈으로 몸을 일으키자 낡은 매트리스가 끼익거리며 비명을 내었다. 제 몸에서 나는 비명처럼 느껴져 티셔츠 안 등허리로 소름이 삐죽삐죽 돋았다. 도대체 여긴 어디야. 바텐더의 집은 아니었다. 몇 번이나 취해 그의 집에 드나들었는데 그는 이렇게 정리정돈을 못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좁은 방에 늘어진 옷가지 하며 벽에 붙은 온갖 밴드의 포스터 하며. 도대체 여긴 뭔가 싶어 스가와라는 찡한 머리를 꾹꾹 눌러가며 주변을 살폈다. 기절한 사이 누가 자신의 옷을 갈아입혔는지 어제 입었던 옷은 곱게 접어 침대 근처에 놓여 있었다. 일단 아무도 없는 것 같으니 조용히 나가자. 꽝꽝 울려대는 머리를 흔들며 스가와라는 서둘러 침대 밖으로 발을 빼내었다. 다시금 끼익하는 매트리스의 비명과 함께



"어, 일어났어요?"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덜렁 파자마 바지만 걸친 사내 하나가 명랑하게도 아침인사를 건넸다.



"어.. 안녕하세요."



전혀 모르는 얼굴. 비명을 지르는 게 자신이 아닌 매트리스인 걸 보니 간밤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게 확실했지만, 초면에 상의 탈의를 한 남자라니 조금 당황스러워 스가와라는 어색하게 고개를 돌리며 인사를 건넸다.



"말 놔요. 어제 말 놓기로 했는데?"
"어제요?"
"네. 연인 사이에 무슨 존댓말이냐며 말 놓으신다면서요. 그래놓고 저보곤 연하니까 올리라고 빡빡 우기는데.. 혹시 이런 데 패티시 있어요?"
"....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연인 사이는 뭐고 말을 놓고 올리는 건 뭐고 패티시는 뭐란 말인가. 머리에 하나도 입력되지 않는 소리에 스가가 눈만 껌뻑이자 그가 털썩 곁에 마주앉았다.



"아, 설마. 까먹었어요? 어제 일?"
"....네. 그런 것 같은데."
"하나도 기억 안 나요?"
"네, 안 나는데.."
"와 어제 장난 아니었는데?"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외쳤다. 말투에서 흘러나오는 즐거움 더불어 가벼움에 스가와라는 최대한 빨리 이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왜, 어제 바에서 소리 질렀잖아요. 바람 피울 사람 구한다고. 애인이 바람 피웠는데 엿 먹이고 싶다면서."
"...제가요?"



미친 스가와라 코우시.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놀라 입을 벌리자 친절하게도 그가 손바닥으로 꾹 눌러 닫아주었다.



"재밌어 보여서 제가 하겠다고 했는데. 저 사람 엿 먹이는 거 좋아하거든요."



그 엿을 지금 제가 먹는 거 같은데요. 그 말이 목구멍을 비집고 올라왔으나 스가와라는 끝내 참아내었다. 술에 약한 편은 아니었으나 이것저것 섞어 마시면 항상 탈이 났다. 어젠 칵테일을 있는 대로 골라 시켜 마셨으니 탈이 나도 이상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렇지. 탈이 나려면 구토를 하든가 통곡을 하든가 해야지, 바람 피울 상대를 모집해? 그것도 단골 얼굴 다 아는 자주 가는 바에서? 스스로가 생각해도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헛헛한 웃음만 튀어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내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싱글싱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후타쿠치 켄지. 25세. 요 앞에 다테공대 다녀요. 전화번호는 어제 교환했고. 사실 이름하고 학교도 어제 이야기했는데 기억 못 하죠."
"네, 안 나네요."
"그래서 뭐부터 할래요?"



뭐가요? 무슨 소릴 하는가 싶어 물끄러미 그가 내민 손과 그의 반질한 얼굴을 번갈아 보며 묻자 그가 여전히 미소 지은 채로 입을 열었다.



"바람 핀 애인 엿 먹이는 일이요. 저 공구 많아요."
"..."
"기계도 잘 만지고."
"..."
"어때요? 저랑 바람 필 생각 들어요?"



아뇨, 전혀요. 평소라면 그 말이 튀어 나갔어야 했는데 어째서일까. 짝사랑까지 포함해 도합 5년은 훌쩍 넘는 제 감정에 배신당한 탓인지 아니면 어제 엉망진창으로 들이부었던 술이 아직 안 깼는지 벌려진 입술에선 거절의 말이 나가지 않았다.



"네."



될 대로 대라. 자신의 눈에서 눈물 뽑았으니 그의 눈에서도 꼭 눈물은 뽑아야겠다. 스가와라는 저도 모르게 아주 짧은 대답을 던지고 말았다. 그래도 꽤 마음에 드는 대답이었는지 멋대로 남의 손을 가져가 잡으며 후타쿠치 켄지가 말했다.



"그럼, 잘 해봐요. 애인씨."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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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주제 바람.

원래는 엿먹이는 걸 쓰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벌써 10시가 넘었구.... 난 졸립구...zzz

요즘 나의 마이붐 ... 후타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