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스가] 너 더불어 나 Part 2
2016. 1. 1. 02:10




12월에 나왔던 너 더불어 나의 뒷 이야기, 외전격 이야기 입니다.











검정 구두, 검정 나비넥타이, 검정 수트. 그 안의 흰 셔츠까지. 거울 속, 완벽한 제 모습을 확인하며 스가와라는 최대한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애써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 내보이는 오기와 같아서 그런지 웃음은 영 자연스럽지 못하고 어색해 보이기만 했다.



"이상하죠?"
"너 그 질문 벌써 34번째야."
"이상하지 않아요?"
"35번째."



질린 얼굴로 매니저가 대꾸했다. 35번이나 물었나 싶었지만, 집에서 준비하는 순간부터 계속 묻긴 했으니 아마 그 정도 물었던 거 같기도 했다. 하지만 불안한 걸 어떡해. 만족이 안 되는 걸 어떡해. 저도 모르게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돌아보자 그제야 매니저가 한숨과 함께 "괜찮아, 멋있어, 잘생겼어!" 라고 칭찬했다. 평소라면 그 영혼 없는 대답에도 안심되었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도 그럴게 오늘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이자 바로 시상식이 있는 날이었으니까. 전과 같았으면 자신과는 조금도 인연이 없는 장소였지만 올해는 달랐다. 딱 시기 좋게 종영한 <체포합니다>가 나쁘지 않은 시청률로 끝나며 좋은 성적을 거둔 덕에 무려 '신인상' 후보에 올랐기 때문이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수상 가능성은 매우 낮았지만 '인기상' 후보에도 당당하게 이름이 올랐다. 그러니 오늘은 누구보다 멋있어야 했다. 괜찮아, 멋있어, 잘생겼어 라는 말로는 모자를 정도로 더, 좀 더.



"선배 연기자들도 많은 자리이니 화려한 색보다는 그냥 단순한 블랙이 나아. 여기서 더 힘주면 너 더 꼴 우스워져."



그 좀 더 라는 목표치에 제 모습이 부족한 듯하여 발만 동동 구르자 아침부터 온갖 브랜드에서 협찬받아 온 수트를 정리하던 스타일리스트가 딱 잘라내며 그만하길 종용했다. 아닌데, 이걸로 모자란 데.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영 마음에 차지 않았지만 뭐 별수 있나. 하는 수 없이 끄덕이며 스가와라는 마지막으로 단정하게 가르마를 탄 머리를 정돈했다.



"이렇게 유난을 떨다가 상 못 받으면 어쩌려고 그러냐."
"왜 김칫국을 마시고 그래요?"
"김칫국 마시는 건 너지."



거울 앞에서 떨어지자 매니저가 놀려댔다. 수상, 하면 좋지. 하지만 못해도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이 자리가 자신의 첫 시상식이라는 것. 그 외에 더 큰 바람이나 기대는 품지 않을 생각이었다.


언제나처럼 이용하던 숍을 나오자 최근에 사장님이 새로 뽑아준 벤이 저를 반겼다. 아직 새것의 냄새가 가득한 차에 오르기 무섭게 수트 안에 넣어둔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서둘러 손을 넣어 확인하자 액정 가득 [애인님]라는 글자가 반짝였다.



"여보세요?"
-"어디에요?"
"어, 지금 숍 나가는 길이요. 그...쪽은요?"



저도 지금 나가는 길이에요. 수화기 너머 오이카와 토오루의 목소리가 듣기 좋게 울려왔다.
그와 사귄 지 이제 막 두 달 남짓. 마음속으론 수백 번도 토오루라 부르면서 실제로는 여전히 어색해 자꾸만 좋지 않은 호칭이 튀어나가고 말았다. 집에서 홀로 소리 내어 연습도 해보고 "오늘은 꼭!" 이라며 마음도 몇 번이나 먹어봤지만 입만 열면 튀어나가는 호칭은 '그쪽'. 물론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쪽이란 표현을 쓰는 걸 그만두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아니었다. 언제나 주어 없는 대화가 연인 사이에서 오갔다. 두 달이면 가장 사이좋고 깨가 쏟아져야 할 단계인데 서로가 처음이라 그런지 모든 게 어색하고 부끄럽고 조심스러웠다.



-"같이 들어갈래요?"
"싫어요!"



오늘 시상자로 행사에 참여하는 그의 제안에 스가와라는 빼액 외쳤다. 같이라니, 절대로 싫었다. 오이카와 토오루와 함께 레드카펫을 밟는 순간 자신이 들러리가 될 게 뻔한데! 다른 날이면 몰라도 배우 스가와라 코우시로 처음 서는 시상식, 이기적이라고 할지 몰라도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홀로 받아내고 싶었다.



-"그래요, 그럼. 행사장에서 봐요."



한두 번 더 물어볼 법도 한데 그는 쿨하게 포기하며 전화를 끊었다. 오늘 잘해요, 수상 기대할게요 뭐 그런 다정한 말 하나 없이 참으로 무뚝뚝한 통화였다. 어쩐지 조금 서운해서 슬쩍 입을 삐죽이며 스가와라는 다시금 휴대폰을 챙겨 넣었다. 그리곤 출발하는 차체에 몸을 완전히 기대며 눈을 감았다. 오이카와 토오루가 아닌 시상식을 떠올리자 방금 살짝 떠오른 서운함은 사라지고 아주 조금 긴장한 심장 소리만이 몸 안을 쿵쿵 울렸다. 그 소리에만 온전히 집중하고 있으려니 더 쿵쿵 뛰기 시작했다. 이러다 아침으로 먹은 샌드위치를 다 뱉어낼 기세라 스가와라는 서둘러 다시금 눈을 떴다.


정신을 다른 데로 돌리자.


다른 걸 생각하고 다른 걸 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서둘러 벤 안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저번에 읽던 만화책이 어딘가에 있을 텐데. 책이 없으면 매니저가 자주 쓰는 게임기라도. 그게 아니라면-



"어.."



뭐든 좋으니 아무거나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의자 바닥에서 얇은 잡지 하나가 딸려 나왔다. 저번 주에 나온 주간지로 자신과 오이카와 토오루의 파파라치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낀 자신과 후드를 뒤집어 쓴 오이카와 토오루, 장소는 그의 맨션 앞. 표제목은 <밤부터 아침까지! 초 러브러브한 두 사람의 심야 데이트>였다.



"초 러브러브는 무슨."



그들이 말하는 초 러브러브는 그저 귀엽고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표현이 아니었다. 연인이 밤에 상대의 맨션에 들어가 아침에 나온다는 것은 딱 한 가지 밖에 의미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들과의 기대와 달리 스가와라 코우시는 그와의 벼락같던 키스 후, 손도 제대로 잡지 못했다. 손이 뭐야. 이름도 안 불러 주는걸!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초 러브러브한 현실은 둘 사이에 없었다. 언젠가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아직도 멀고 멀었으며 험난하고 또 험난해 보였다.



"초 러브러브하면 내가 억울하지도 않지!!"



초 러브러브하고 싶었다. 연인 사이에 드는 당연한 욕구이니 숨기고 싶지 않았다. 일부러 그의 앞에서 술도 마셔보고 심지어 같이 DVD를 빌려보다 어깨를 빌려 잠자는 척까지 해보았는데 매너가 좋은 건지, 아니면 멍청한 건지 매번 침대에 눕혀주곤 그는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초 러브러브는 커녕 같은 침대에서 자고 일어나는 러브러브도 무리였다.


아 짜증 나! 애써 긴장감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했다가 괜한 짜증만 돋구었다. 마구 머리를 헝클어트리고 싶었지만 단정하게 고정시킨 가르마가 망가질까 그러지도 못했다.


그래도 그 덕에 행사가 열리는 방송국 앞에 도착했을 때에는 두근대던 심장도 그 두근거림의 원인이었던 긴장감도 모두 녹아 사라졌다. 바리케이트 너머로 자신을 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스가와라는 자연스레 차에서 내려 레드카펫을 밟았다.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보고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하고 내미는 손을 잡아준 후, 겨우 안으로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스태프가 회장 안으로 안내했다. 오늘 춥죠? 기분은 어때요? 긴장을 풀어주려는지 마이크를 찬 스태프가 연신 웃으며 상태를 체크했다.



"괜찮아요, 좋아요."



웃으며 대답하자 그가 "30분 전에 오이카와상도 도착했어요." 라며 무대 뒤를 손가락질했다. 수상 대상자인 자신과 달리 시상자로 참석한 그는 뒤에서 대기하는 모양이었다. 스태프의 도움으로 들어서자 웅성대는 회장 안으로 익숙한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체포합니다>라고 적힌 테이블에 함께 몇 달 동안 고생했던 배우들이 저마다 인사를 하며 반겨주었다. 신인상 후보 축하해! 진심 어린 그들의 인사에 하나하나 고개 숙여 인사하며 스가와라는 비어있던 사와무라 다이치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긴장했어?"

"너는?"
"나는 조금. 기대는 안 하지만."



쟁쟁한 후보들과 함께 최우수상에 오른 사와무라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난 조금 기대는 하는데. 장난스레 웃으며 농담처럼 말하자 "네가 탈거야." 라며 그가 진지하게도 말했다. 그랬으면 좋겠는데. 나름대로 사장님과 함께 수상소감도 정리했는데. 물론 기회가 된다면 받고 싶었지만, 아니라도 크게 마음은 쓰지 않겠다 결심하며 스가와라는 눈앞의 물병을 들었다. 결심과 달리 자릴 잡고 앉으니 목이 탔다. 물로 마른 목을 적시고 또 적시고 얼마나 그렇게 적셨을까, 생방송 시작을 알리는 안내 멘트가 회장을 가득 채웠다. 각각의 드라마마다 참여했던 배우들이 속속 들어와 자리를 채웠다. 언제나 티비로만 보던 풍경을 실제로 보고 있으려니 신기해 자꾸만 두리번거리게 되었다. 그만 두리번거려요. 반대편에 앉은 여배우가 웃으며 놀려댔다.



"그럼 신호 들어갑니다!"



우렁찬 스태프의 목소리와 함께 회장이 어둠으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생방송 시작 사인과 함께 무대 위로 환한 빛이 올랐다. 시상식을 여는 무대는 현재 공연 중이라는 뮤지컬 극단이었다. 한정된 시간에 보여줘야 하는 짧은 무대라서 그런지 아니면 실제 상황에 다시 긴장감을 집어 삼킨 것인지 전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수시로 얼굴로 들이미는 카메라 렌즈에 스가와라는 최대한 집중한 척 웃으며 리액션을 취했다. 가장 첫 순서가 '신인상' 순서라 그런지 정신이 없었다.


화려한 무대가 끝나자 오늘의 사회를 맡은 여 아나운서와 남자 배우가 올라와 오프닝 멘트를 유려하게 쏟아냈다. 올 한 해는 어떤 작품들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을까요? 올 한 해에는 어떤 배우가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을까요? 질리지도 않는 단골 멘트들이 줄줄 흘러나왔다.



"그럼 가장 첫 번째로 올 한 해, 브라운관에서 빛났던 신인 배우 시상이 있겠습니다!"



드디어 첫 순서이자 자신의 무대. 스가와라는 절로 넘어가는 침을 꼴깍 삼키며 옆자리의 사와무라 손을 꽉 쥐였다. 축축해 기분이 나쁠 만한데도 이런 자신을 이해하는지 그는 토닥이며 웃었다. 시상에는 아주 작은 체구의 여배우와 함께 익숙한 얼굴 후타쿠치 켄지가 올랐다. 진 녹색의 수트를 말끔하게 차려입은 그는 어깨에 겨우 닿는 작은 여배우를 능숙하게 에스코트하며 무대 가운데에 섰다.



"작년에 제가 이 상을 타고 엉엉 울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시상자로 서게 되었습니다. 감회가 새로워요."
"저도요, 후타쿠치군과 함께 나란히 서서 수상 소감을 한 게 바로 어제의 일처럼 생생해요!"



아마도 대본일 게 분명한 멘트를 내뱉는데도 배우라 그런지 둘 다 어색함도 막힘도 없었다.



"그럼 더 시간 끌지 말고 발표하도록 할까요?"
"네! 배우의 삶에서 단 한 번밖에 받을 수 없는 신인상, 후보들부터 만나보시죠!"



멘트의 끝과 함께 무대 뒤 커다란 스크린으로 남녀 신인상 후보들이 발표되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쟁쟁한 후보들과 함께 자신의 VTR이 나오니 스가와라는 창피해서 어떤 얼굴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하지만 단독으로 카메라 한 대가 제 앞에 붙어있는 탓에 최대한 웃으며 긴장하지 않는 척, 상에 여유 있는 척 웃었다. 자신이 배우라서 다행이었다.



"먼저 남자 신인상을 발표하겠습니다."



모든 영상이 끝나고 나자 후타쿠치가 망설임 없이 봉투를 열며 외쳤다.



"축하합니다. 수상자는 스가와라 코우시상입니다!"



지체 없는 아주 빠르고 간결한 발표. 그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쿵, 심장이 떨어져 앉았다. 제 이름이 불리길 바랐으면서 막상 불리고 나니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축하해, 바로 곁에서 사와무라가 인사를 건넸지만 대답할 정신도 없이 그의 손에 이끌려 겨우 몸을 일으켰다. 올라가야 해? 눈으로 묻자 사와무라가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촬영하느라 고생했던 팀 식구들의 포옹과 어마어마한 축하 인사를 받으며 겨우 걸음을 떼자 회장 가득 여 아나운서의 소개 멘트가 흘러나왔다.



"스가와라 코우시상은 <체포합니다>에서 어리숙한 순경 나오토 역으로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올 한해 가장 반짝이는 배우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사실 나오토로 이름을 알렸다기보다 오이카와 토오루 덕에 알렸지만, 뭐 어때. 결과가 좋으면 그만이지. 떨리는 걸음으로 무대에 오르자 기다리고 있던 후타쿠치가 축하한다는 인사와 함께 트로피와 꽃다발을 건네었다. 여배우와도 가벼운 포옹 후 드디어 꿈에 그리던 무대에 그리고 순간에 발을 디뎠다.


제 입가에 닿은 스탠딩 마이크. 모든 카메라의 앞. 자리를 함께한 모든 사람의 시선의 끝. 언제나 꿈꾸었지만 자신에게는 너무도 멀었던 무대. 허락되지 않을 거로 생각했던 자리. 누가 보면 고작 신인상이고 겨우 신인상이겠지만, 스가와라 코우시에게는 무려 신인상이었고 드디어 신인상이었다.



"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래서 그런가, 바보같이 시야가 뿌옇게 변했다. 목소리가 마구 흔들렸다.



"제가 사실은 어.. 그.. 조금 연습을 했거든요? 이 상이 받고 싶어서...? 그런데 막상 이 자리에 서니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네요. 그러니까... 생각나는 대로 감사 인사를 전할게요."



어리숙한 수상 소감에 회장 곳곳에서 작은 웃음이 터지자 그나마 잔뜩 얼었던 몸에서 힘이 풀려나가는 게 느껴졌다. 한 박자 쉬고, 숨을 한 번 들이켜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선 멀리서 TV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부모님, 배우가 되겠다며 집 떠나 오래 좋은 모습 못 보여드려서 늘 죄송했는데.. 이제는 조금 당당하게 안부 전화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항상 감사합니다. 그리고 부족한 저를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함께 해주신 사장님, 매니저 형, 스타일리스트 누나... 항상 제 멋대로인 저를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어 그리고 또... 아, 우리 <체포합니다> 식구들, 나카무라 PD님, 하나지마 작가님, 촬영 내내 고생 너무나 많으셨고 함께 하게 되어 큰 영광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정말 많은데... 정신이 너무 없어서.. 죄송합니다. 항상 열심히 하는 배우 되겠습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이만하면 다 불렀나? 생각나는 대로 이름을 줄줄 부르고 나서야 겨우 수상소감이 끝났다. 한걸음 물러서자 뒤 편에 서 있던 스태프가 빠져나오라는 듯 손짓했다. 아직 다 풀어진 게 아니었는지 삐걱대는 걸음을 끌고 돌아서자 등 뒤로 어마어마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잘 참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소리를 들으니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축하해요!"



무대 뒤로 돌아오자 저마다 축하 인사를 건네왔다. 아는 얼굴 모르는 얼굴이 뒤섞인 자리에서 스가와라는 연신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며 후두둑 떨어지는 눈물을 닦아내었다.



"스가와라상!"



그리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려는 순간, 시상 순서가 다 끝났는지 멀리서 후타쿠치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수상 축하해요!!!"
"응!"
"왜 울고 그래요? 좋은 날인데?"



놀리듯 그가 웃으며 비싸 보이는 셔츠로 아무렇지 않게 눈물을 닦아내 주었다. 그러는 본인은? 본인도 작년 수상 때 펑펑 울었으면서.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하늘을 날고 싶을 정도로 기쁘니 부러 놀리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괜찮아요?"
"뭐가?"
"수상 소감에 애인 이름 쏙 빼먹었던데?!"
"어...?!"



내가? 후타쿠치의 지적에 놀라 흐르던 눈물이 뚝, 멈췄다. 아니야! 다 이야기했는데?! 더듬더듬 자신이 뱉었던 이름을 줄줄이 떠올려 보았지만, 이미 기억이 하얗게 질려버렸는지 아무것도 생각이 나질 않았다.



"같이 오지 않았어요? 완전 섭섭해 할 것 같은데? 오이카와상은 선수상 받을 때, 스가와라상 이야기했었잖아요!"



그래, 그랬었다. 그날 너무 당황하고 놀라서 그의 수상 소감에 전혀 집중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사귀고 나서야 그 시상식 영상을 다시 보며 알게 되었다. 오늘 어려운 자리임에도 함께해 준 연인에게 이 상을 바친다고. 나란히 앉아 그 영상을 돌려보며 "이 말 진심이었어요?!" 라고 얼마나 놀렸던가. 그랬는데 자신은 쏙 그의 이름을 빼먹었단다. 다 불렀는데 그의 이름만.



"이게 다.. 이름을 안 불러서 그래."
"네?"



그쪽 이쪽 저쪽이 여전히 입에 붙어서 그래. 토오루라는 이름이 익숙했다면 이렇게 까먹진 않았을 텐데. 어쩌지? 상을 탄 기쁨도 잠시, 당황스러움에 벌벌 손이 떨려왔다. 품에 안은 꽃다발도 트로피도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괜..찮지 않을까요?"



기억만큼이나 허옇게 질려가는 얼굴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후타쿠치가 말끝을 올렸다. 괜찮다고 하겠지. 하지만 분명 섭섭해 할 것이었다. 세상에, 초 러브러브해도 모자랄 시간에 연인을 잊어버리다니. 스가와라 코우시 미쳤구나, 미쳤어. 긴장이 사라진 손에 당황으로 땀이 찼다. 일단은 자리로 돌아가라는 그의 말에 끄덕이며 돌아섰지만 어떻게 자리까지 돌아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저마다 축하 인사를 건네고 두드리고 안아주었지만 머릿속은 상을 받았다는 사실보다 온통 오이카와 토오루밖에 없었다. 당장 찾아가서 사과하고 싶은데. 변명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으니 너무도 답답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이 난장판이 되든 말든 당연하게도 시상식은 계속 이어졌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공로상 부분에서 시상하러 등장했다. 진한 네이비색 수트를 멋들어지게 차려입고 미스 재팬이라는 여자와 팔짱을 끼고 나타난 그는 불행 중 다행으로 표정이 그리 나빠 보이진 않았다. 혹시, 소감을 못 들었나? 시상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아직 모르는 걸 지도.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싶어 스가와라는 멍하니 그만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열심히 빌었다. 그리고 시상식은 끝으로 치달았다. 공로상에 이어 인기상, 우수상, 최우수상, 마지막 대상까지. 한 해가 넘어가는 긴 시간 동안 이어진 시상식은 다른 드라마의 중년 연기자의 대상으로 드디어 막을 내렸다.



"끝나고 일정 있어? 같이 소바라도 먹으러 갈래?"



카메라가 꺼지고 내부의 불이 다 켜지자 저마다 다들 새해 인사를 하며 돌아갈 채비를 서둘렀다. 인기상을 받은 사와무라가 꽃다발과 트로피를 챙기며 물었지만, 스가와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 애인도 와 있었지? 미안 미안! 내가 실수했네."
"아니야, 괜찮아!"
"나중에 먹지 뭐, 둘이 좋은 시간 보내!"



좋은 시간이라, 과연 좋은 시간이 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지만 스가와라는 크게 끄덕이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묵직한 트로피와 꽃다발을 한 손에 품고 휴대폰을 들어 급히 통화 목록 가장 위에 차지한 [애인님]의 번호를 꾸욱 눌렀다. 몇 번의 신호 끝에 여보세요라는 말 대신 "주차장에 있어요."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목소리도 괜찮은데?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걸까? 평소와 다름없는 평온한 목소리에 괜히 긴장했다 싶어 웃음이 나왔다.
분주하게 자리를 정리하는 스태프들 하나하나와 인사를 하며 주차장으로 내려서자 익숙한 차가 눈에 들어왔다. 검게 선팅 된 차량으로 다가서자 달칵, 소리와 함께 문의 잠금장치가 해제되었다. 스스럼없이 문을 열고 조수석에 올라타자 운전대를 잡은 오이카와 토오루가 "축하해요." 라며 인사를 건네왔다. 그리고 뒤이어



"수상 소감에서 내 이름은 쏙 빠졌지만."



올 것이 왔다.


삐딱하게 핸들에 팔을 기대고 이쪽을 돌아보는 얼굴에 '심기 불편'이라 쓰여있어 스가와라는 눈만 깜빡이며 그를 마주했다. 뭐라 이야기를 해야 할까. 이게 다 당신을 위해서 한 일이라고 할까? 당신 팬들이 알면 또 득달같이 왕왕거리니까 뺐다고? 아니면 사무실에서 하지 말라고 했다 할까? 너무 게이 이미지 내세운다고? 둘 다 꽤 그럴듯한 핑계였지만, 스가와라는 서둘러 머릿속에서 변명들을 지워냈다. 그에게 거짓말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다. 거짓말이란 처음이 어렵지 그 이후는 너무도 쉬우니까. 하지만 단 한 번 오이카와 토오루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순간일 경우에만 사용하고 싶었지 이렇게 허무하게 써먹고 싶지 않았다.



"잊어버렸어요."



그래서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너무 당황해서 그랬어요."
"그래요, 뭐 그럴 수도 있죠."
"화났어요?"
"화는 안 났어요."
"그럼요?"
"그냥, 조금 서운하네. 첫 수상 소감에서 내 이름이 빠지다니."



아, 이렇게 말하니 죄책감이 밀려왔다. 어쩌지? 어떻게 해야 그의 마음을 풀 수 있을까. 속상한 마음이 답을 찾지 못하고 애먼 입술만 달싹이게 만들었다. 그런 제 모습이 웃겼는지 이내 오이카와 토오루가 풉, 하고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괜찮아요. 다음번에는 잊어먹지 말고 불러주면 용서해주죠, 뭐."
"...진짜로?"
"진짜로."



스르륵 풀려난 그의 표정에 가득 굳어있던 제 마음도 풀려났다. 바보처럼 웃자 그가 "그렇다고 내가 섭섭하지 않다는 건 아니에요." 라며 괜히 또 콕콕 찔러왔다.



"알았어요, 알았어! 그보다 저 상 탔는데 뭐 선물 같은 거 없어요?"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트로피를 흔들며 묻자 그가 "글쎄요? 뭐가 갖고 싶은데요?" 라고 물어왔다. 갖고 싶은 거. 음, 많은데. 우선 새 휴대폰도 갖고 싶고 새로 나온 노트북도 갖고 싶었다. 날이 추워지니 작은 집에 둘 고타츠도 하나 갖고 싶었고 얼마 전에 모 브랜드에서 새 로나온 코트도 갖고 싶었다. 집 앞 마트에 갈 때 탈 자전거도 갖고 싶었고 이왕이면 자가용도 갖고 싶었다. 갖고 싶은게 너무 많았다. 하지만 오이카와 토오루에게 받고 싶은 건 아니었다.



"이름, 이름 불러줘요."



그에게 받고 싶은 건 그런 물질적인 게 아니라, 그냥 좋아해 주고 있다는 증거, 흔적, 표현.




"사귀기로 한 날 이후로 한 번도 안 불러 준 거 알아요?"
"익숙해지면요."
"두 달이면 익숙해지지 않았어요?"
"조금만 더 시간을-"
"아, 도대체 얼마나 더요!"



손도 안 잡아, 잠도 같이 안자, 이름도 안 불러. 이게 무슨 애인이야! 저도 모르게 빼액 소리를 지르자 그가 난감한지 잘생긴 미간을 찌푸렸다.



"이름 불러줘요. 그거 받을래."
"...그게 무슨 선물-"
"은 받고 싶은 사람 마음이죠. 자, 빨리. 얼른."



이름 한 번 부르는 게 이렇게 어려워서야. 보채고 또 보채자 그제야 오이카와 토오루가 조심스레 입술을 열었다.



"코우시, 됐죠?"
"우리 이제 이름 부르기로 해요. 여기저기서 우리보고 초 러브러브하다고 하는데 이름도 서로 안부르는 거 알면 얼마나 놀라겠어요. 안 그래요? 토오루?"



먼저 불러보라 시켰던 주제에 자신도 이름을 부르려니 어색했다. 그래서 더 목소리를 키우고 과장하며 그를 불러보았다. 고백할 때에는 참 당당하게도 불렀는데, 뭐가 이렇게 부끄럽고 쑥스러운지. 이제 오이카와 토오루는 스가와라 코우시 것이었고 가리고 미루고 할 일도 없는데 참 조심스러웠다. 뭐, 그만큼 그가 좋다는 이야기이겠지. 실수하기 싫고, 미운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고. 그러니 조심스럽고 부끄럽고.



"상, 그거면 돼요?"
"아뇨!"



그래도 이제는 좀 더 러브러브하고 싶었다. 그냥 러브러브말고, 초 러브러브. 사귄 지 고작 두 달이지만 마음을 쓰고 끓고 다스린데에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었다. 그렇게 애를 먹고 쓰며 겨우 손에 쥔 상대가 이렇게 눈앞에 있는데 더는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우리 집에 가요."
"네?"
"우리 집에 가자고요. 지금."



그게 제가 원하는 선물이에요. 말뜻을 이해했는지 당황해하는 오이카와 토오루를 바라보며 스가와라는 말했다. 작은 집, 원룸이라 방도 없었고 침대도 하나였다. 그가 배려하고 도망칠 곳은 이제 없었다.



"나 처음이에요."
"나도 처음이에요."



잊었어요? 그쪽이 내 첫사랑이었다니까? 아니라 생각했지만 맞았던 그 언젠가의 인터뷰를 들이대며 말하자 슬쩍 붉어진 귀를 손가락 사이로 감추며 그가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어둑한 주차장 조명 사이로 그의 목이 벌겋게 타오르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이 귀여워 스가와라는 망설임 없이 허리를 세워 그의 볼에 꾸욱 입술을 내리눌렀다.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놀랐는지 그가 놀란 눈동자로 돌아보았다. 그런 그의 모습을 한가득 눈에 담으며 스가와라는 물었다.



"갈 거예요, 말 거에요?"



선택권은 오이카와 토오루에게. 싫으면 말고. 두근두근 떨리는 맘을 들키지 않으려 애써 가볍게. 또로록 그가 눈동자를 굴리는가 싶더니 오이카와 토오루가 아주 작게, 속삭였다.



"가요, 선물 풀어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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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부터 음.. 전에 냈던 책의 뒷 이야기들을 써보고 시펐는데.... 2016년이 되었고요...

11시 넘어 집에 귀가해서 홀로 전력 120분을 한 느낌... 지금 약 23시간 눈을 뜨고 있기 때무네 피곤해서

더는 못 쓰겠고... 외전을 이렇게 날려 써서 뎨송하지만... 퇴고와 수정은 후에 차차.................. ZzZz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5년 감사했습니다. 2016년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