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떨어졌다. 10살만 더 어렸어도 걷던 걸음을 멈추고 두 손을 모아 재빠르게 소원을 빌었겠지만, 서른 살의 유메노 겐타로는 더는 별이 소원을 들어준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무언가를 빌 만큼 절실하지도 않았다. 멈추어 설 열정도 없었다.
"꼴사나운 어른이 되어버렸군요. 소생은."
오래 살게 해주세요, 혹은 부자가 되게 해주세요. 그런 우스운 소원이라도 슬쩍 던져봐도 좋을 텐데. 농담처럼 툭 던져도 나쁘지 않을 텐데. 하지만 누구나 뱉는 그 소원도 유메노 겐타로에겐 의미가 없었다. 하아, 탄 숨이 입술을 타고 숨이 날았다. 밤거리로 사라지는 걸 굳이 붙잡지 않은 채, 걸음을 옮겼다. 2년 전, 이사한 집은 가격 대비 꽤 괜찮았으나 역에서 무척이나 멀었다. 버스를 타고도 몇 정거장을 들어가야 했지만, 오늘은 빨리 집에 들어가고 싶은 기분이 아닌지라 천천히 걸었다. 하지만 그 천천히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차리니 낡은 아파트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2층짜리 작은 건물은 복도가 철제 난간이었는데 비가 올 때마다 차곡차곡 쓴 녹이 벽을 타고 흘러내려 겉으로 보기엔 흉가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사를 축하한다며 집들이를 하자고 쳐들어왔던 아메무라 라무다는 그 날을 기점으로 절대로 이 집에 오지 않았다. 이런 집에서 어떻게 살아? 식겁해서 묻던 그 작은 얼굴을 떠올리며 유메노는 느릿하게 계단을 밟았다. 어떻게 살긴, 그냥 사는 거지.
"다녀왔습니다."
혼자 지낸 지 벌써 2년이 흘렀는데 이 습관은 버리질 못했다. 집 안으로 들어서며 툭 튀어나온 인사에 유메노는 작게 혀를 찼다. 전등을 켜고 정리하지 않은 이불에 쓰러지듯 몸을 뉘었다.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데, 씻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뭉그적거리다 휴대폰을 확인했다. 담당자로부터 걸려온 부재중 전화가 48통을 향해 달라고 있었다. 그리고 귀신같이 49번째 전화벨이 울렸다. 사적인 감정을 일에 끌고 오는 것만큼 멍청한 짓도 없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손가락을 종료 버튼으로 가져가다 이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저야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위에서 월급 받고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피가 마를 일이었다.
"여보세요?"
-"왜... 전화를 안 받으세요... 선생님."
저 미치는 꼴 보시려고 그러세요? 예상대로 우는 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넘어왔다. 1년 동안 함께 합을 맞춰온 출판사 담당자는 저와 달리 열정적이었다. 48개의 부재중 통화 기록만큼.
"미안해요. 귀가 중이라 몰랐네요."
-"그렇게 가버리시면 어떡해요. 미팅 자리 완전 분위기 싸했다고요. 저쪽 담당자는 또 무슨 죕니까. 네?"
"멋대로 군 거에 대해선 미안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저는 싫습니다. 그러니 그 건은 알아서 거절해주세요."
-"왜요?! 처음엔 선생님도 좋다고 하셨잖아요! 영화화 이야기가 그렇게 막 들어오는 건 줄 아세요? 투자가 이렇게 턱턱 들어오는 건 줄 아시냐고요! 이건 기회에요, 선생님!"
다 큰 사내가 꼴사납게 우는 소리를 내며 외쳤다. 하지만 유메노는 멍하니 깜빡이는 전등만 올려보았다. 지직대는 게 곧 나갈 모양이었다.
-"책 판매량도 늘 거고요, 선생님 다음 작품에도 도움이 될 거고요!"
"늘지 않아도 괜찮고 다음 작품도 괜찮습니다."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아, 일단 댁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늦었으니 내일 이야기해요."
매정한 말이 서운했는지 꽥 외친 그가 달래듯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뚜우, 뚜우. 신호음이 끊겼다는 알림을 들으며 유메노는 천천히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작년, 책이 한 권 나왔다. 한 사내와 떠돌이 개의 이야기였다. 가족도 친구도 없이 홀로 지내던 사내는 어느 날 길거리에서 굶어 죽어가던 개를 줍게 된다. 곧 죽으려나 싶었던 개는 사내가 대충 우유에 적셔둔 빵을 허겁지겁 먹으며 살겠다는 의지를 내보인다. 컹컹 짖기 시작할 즈음 사내는 다시 개를 밖으로 내보내지만, 그를 주인으로 착각이라도 한 것인지 개는 떠나지 않고 늘 사내의 집으로 돌아온다. 문 앞에서 자꾸만 잠드는 개가 안쓰러워 결국 사내는 개를 집으로 들인다. 씻기고 먹이고 입힌다. 일하고 돌아와 던지는 작은 인사에 반응하는 개에게 애정을 느낀다. 무럭무럭 자라는 개는 좁은 집에서 늘 사고를 쳐댔지만, 사내는 전주인처럼 개를 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훈련시키고 고쳐나가며 함께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개의 진짜 주인이 나타난다. 사내는 버려진 개를 제가 주웠으니 돌려주지 않으려 하지만, 전 주인은 버린 게 아니라 가출한 개였다며 다시 돌려주기를 요구해온다. 전주인은 좋은 옷을 입었다. 차도 있었다. 아마 좋은 집도 가지고 있을 거 같았다. 그래서 사내는 개를 돌려준다. 개가 떠난 후, 사내는 매일 매일 개를 떠올린다. 잘 자고 있을지, 잘 먹고 있을지, 사고는 치지 않을지. 그리고 문 앞에서 컹컹 짖는 소리가 울린다. 끝. 대단한 내용도 없는 책이었다. 써내리면서도 이렇게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는 어떤 출판사에서도 받아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예상대로 원고를 보낸 곳 어디에서도 답변이 오지 않았다. 유일하게 온 곳이 지금 계약된 오가와 출판이었다. 고독한 현대인이 감정을 배워가는 휴머니즘 스토리라며 우스운 찬사를 쏟아내더니 출판하고 싶다 청해왔다. 거절할 일은 아니었기에 유메노는 어렵지 않게 사인을 했다.
그리고 당연히 책은 서점 구석 어딘가로 사라졌다. 오늘의 신간 코너에도 가지 못한 책은 <현대 소설> 코너 <유 행>어딘가에 꽂혀 있을 때도 있었고 아예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통장의 금액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잊히는 책이 되려는 듯했다.
그런데
"영화화라니. 웃기지도 않지."
그런 소설을 누군가가 영화로 만들고 싶다 했다. 심지어 영화계에서 주목받는 젊은 감독이었다. 출판사는 만세를 외쳤고, 유메노 역시 비명이라도 내지를까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영화요, 영화! 그렇게 외치는 담당자에게 몇 번이고 "거짓말 아니죠?"라 확인도 했었다.
누가 보아도 좋은 기회, 다시 없을 기회였다. 그리고 오늘은 그 기회의 첫 삽을 뜨는 날이었다. 가장 단정한 옷을 입고 들뜨는 마음으로 출판사로 향했다. 회의실에서 만난 감독은 첫인상도 좋았고 대화도 잘 통했다. 그는 책에 대해서 후한 평가를 내려놓으며 꼭 이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고 싶다 말했다. 완벽한 대화의 흐름. 더없이 좋은 시간들. 그래, 거기까진 그랬다. 하지만 제작 보고서에 적힌 정확하겐 투자사 칸에 적힌 이름을 본 순간 모든 꿈이 깨져나갔다.
"...잔인해도 이렇게 잔인하면 안 되는 거지."
옷 위로 대충 이불을 끌어 안아 덮으며 유메노는 구석에 던져둔 신물을 노려보았다. 한 제약회사의 신약 발표에 대한 기사가 크게 실려 있었다. 세계 최초, 그런 말이 덧붙은 기사 제목에는 '아리스가와 제약'이란 이름이 함께였다.
"아리스가와 다이스."
환하게 웃고 있는 늙은이들 사이에서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사내의 얼굴을 들여보다 가만히 이름을 불러보았다. 컹컹, 짖어줄 개는 이미 떠난 지 오래였지만 이름은 잊혀지지 않았다. 진득하게 눈을 타고 쏟아져 나오는 미련을 어쩌지도 못하고 흘리다 유메노는 꾹 눈을 감았다.
아리스가와 다이스와 만난 건 6년 전으로 그는 아메무라 라무다가 주워온 개였다. 제대로 입지도 먹지도 자지도 못한 개. 돌봄이 필요한 개. 히프노시스 마이크를 쥐고 배틀을 벌이는 팀을 짜겠다며 사람을 모아놓고 아메무라는 "유메노! 한가하면 다이스 좀 돌봐주라!"고 멋대로 떠들었다. 누군가를 돌볼 여유따위 없었다. 그런 게 있었다면 진즉 금붕어라도 키웠을 것이었다. 하지만 아메무라 라무다도 아리스가와 다이스도 막무가내였다. 결국 "길바닥에서 시체로 발견되면 불쌍하잖아~"라는 말과 "그냥 숨만 쉬고 있을게!!"라는 말에 무너졌다.
그리고... 4년을 함께 살았다. 처음엔 정말 며칠만, 갈 곳이 없다는 그가 갈 곳을 찾을 때까지만 지내게 할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4년이 흘렀다. 그사이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가르쳤다. 마음도 주고 몸도 주었다. 텅 비어있던 자리에 그는 엉망으로 침범해 멋대로 어지르곤 존재로만 꽉 채웠다. 매번 어디서 돈을 왕창 잃거나 혹은 왕창 따오는 일 외에는 제대로 하는 게 없었지만, 그래도 그가 있는 저녁 시간이 좋았다. 함께 눈을 뜨는 아침이 좋았다. 딱히 인생이 행복하다거나 불행하다거나 생각한 적은 없으나,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이 시간을 행복이라 붙여야겠다고 유메노는 생각했다.
"아리스가와 다이치입니다."
그 남자가 나타날 때까지는. 그날은 아침부터 지독한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잠든 제 이마에 입을 맞추곤 아리스가와 다이스는 "편의점에 다녀올게."란 말만 남기고 사라져 보이지 않는 날이었다. 쏟아지는 비를 등에 둔 사내는 말쑥한 정장 차림에 척 보아도 엘리트의 느낌이 났다. 그가 두드린 헐거운 문과는 어울리지 않는 인생을 살고 있을 거처럼 보였다. 그래서 아리스가와 다이스와 같은 이름을 들었음에도 유메노는 의심하지 못했다.
"아리스가와 다이스의 형입니다."
그가 아리스가와 다이스의 가족이라는 걸.
남자는 아리스가와 다이스와 달리 말이 많지 않았다. 변명이나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저 동생을 데리러 왔고, 동생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 물었을 뿐이었다. 편의점. 유메노는 멍하니 그렇게 대답했다.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잘 파악되지 않았다. 형이라니, 자신이 알기론 그런 존재는 아리스가와 다이스에게 없었다. 그는 늘 입버릇처럼 가족은 없다고 했으니까. 유메노 겐타로만이 제 가족이라 쑥스럽게 웃었으니까. 갑작스러운 불청객의 존재에 어쩌지도 못하고 현관을 막고 있는 사이,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아리스가와 다이스가 나타났다. 편의점에 간다던 말은 정말이었는지, 손에는 익숙한 봉투가 들려있었다. 만화 잡지와 물, 그리고 과자. 덜렁 봉투를 쥔 그는 꽤 놀란 얼굴이었고 동시에 당황했다.
"할아버지가 쓰러지셨다. 널 보고 싶어 하셔. 애도 아니고 반항은 이제 끝내야지 않겠어?"
노크한 손을 손수건에 닦아내며 남자가 말했다. 짐 챙겨서 나와. 덧붙인 말에 아리스가와 다이스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매번 저에게는 쫑알쫑알 성질을 내고 변명을 했으면서, 형이라는 남자 앞에서는 입 다문 조개처럼 굴었다.
"갈게."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아리스가와 다이스는 저에게도 설명하지 않고 짐을 챙겨 나갔다. 제대로 설명을 하고 나가세요. 주먹을 쥐고 물었지만, 그는 연락한다는 지키지도 못할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4년이 그렇게 끝났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떠났으면 나타나질 말아야지."
그래놓고 투자 칸에 왜 아리스가와 제약이 있는 걸까. 황당했다. 대놓고 왜 이 집안에서 자신에게 투자하느냐 따져 묻지 못하고 "왜 제약회사에서 영화에 투자합니까?"라 물었더니 감독은 올 게 왔다는 얼굴로 변명만 늘어놓았다. 하지만 정리하면 그거였다. 투자 조건, 유메노 겐타로의 소설일 것.
"기분이 개 같아."
위자료? 아니면 화대? 차라리 돈이 나았다. 이따위로 2년 만에 들이닥쳐서 저를 동정할 바에는. 돌아오는 길에 화를 다 가라앉혔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하니 열 받았다. 벌떡 일어나 유메노는 냉장고를 열었다. 위잉 위잉 소리가 나는 낡은 냉장고에는 며칠 전에 채워놓은 맥주만 가득했다. 적당히 차게 식은 캔을 꺼내 땄다. 딱, 소리와 함께 노크 소리가 울렸다. 내일 보자던 담당자가 결국 기다리지 못하고 쳐들어온 걸까. 그라면 가능한 이야기였기에 유메노는 벌컥 문을 열었다. 일은 적당히 하자고 한마디 하려 입도 열었다. 그러나 싸늘한 밤공기와 함께 드러난 얼굴은 예상도 못 한 얼굴이라 어떤 소리도 나오지 못했다.
"....잘 지냈어?"
침묵을 깨고 나온 말에 유메노는 웃음을 터트렸다. 2년 만에 나타나서 한다는 이야기가 잘 지냈어라니. 어때 보이는데요? 잘 지낸 거 같나요? 그렇게 비꼬고 싶었다. 하지만 그보다 그를 당장 눈앞에서 치우고 싶었다. 매일 울고, 기다리고 그러다 겨우 잊고 살았다. 그런데 다시 이렇게 나타나 제 안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건 반칙이었다.
"나가요."
그를 밀어내고 문을 닫으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아리스가와가 더 빨랐다. 문틈으로 손을 넣은 그가 억지로 열어 재꼈다. 이야기 좀 해, 웃기지도 않은 말에 들고 있던 맥주캔을 던졌다. 텅 소리가 날 정도로 그의 이마에 떨어진 캔은 내용물을 토해내곤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가요."
"겐타로-"
"보고 싶지 않으니까 나가."
반듯한 이마가 붉게 올라왔으나 유메노는 멈추지 않았다. 보이는 걸 닥치는 대로 잡아 던졌다. 집이 삭막해 보인다며 담당자가 사 왔던 화분이 요란한 소릴 내며 깨졌다. 아메무라가 두고 간 게임기도 벽에 부딪혀 엉망이 되었다. 책이 나풀대며 떨어졌다. 시들어진 꽃이 흩날렸다. 연필, 원고, 시계. 집 안에 있는 온 물건을 다 쓸어버리고 던졌다. 나가라 소리도 질렀다. 태어나서 이렇게 목이 아플 정도로 소릴 내는 건 처음이었다.
"겐타로!!"
하지만 무얼 던져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성큼 다가온 그의 손이 몸에 닿았다. 빼내려고 틀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이길 수가 없었다. 놔! 발버둥 쳐도 소용이 없었다. 무식하게 힘만 센 건 그대로라 그는 너무도 손쉽게 저를 들쳐 올렸다. 놓으라고!!! 손으로 그를 밀었다. 뺨도 때리고 햘퀴었다. 떨어져, 재수 없으니까 떨어지라고! 온 집이 울리도록 외쳤다.
"알았으니까 제발...!!!"
발버둥 치는 저를 더 붙잡지 못하고 그가 내려주었다. 이불 위. 우습게도 저가 방금 서 있던 근처에 깨진 화분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제 와서 이렇게 걱정하는 거 너무도 가증스러웠다.
"도대체 여긴 뭐하러 왔습니까."
그래서 그 감정을 숨기지 않고 눈에 담으며 물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미련이 쏟아졌던 눈에는 증오를 담았다. 그가 한 장의 페이지였으면 했다. 그럼 그대로 찢어 눈앞에서 구겨 던져버릴 수 있을 텐데.
"미안해. 그동안 연락 못 해서. 하지만 나도 그럴 사정이 있었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상황이 변했어. 집에서 널 알아."
"...그래서요?"
"그래서라니... 나도 떠나고 싶어서 떠난 게 아니-"
"연락한다고 했잖아요. 소생에게. 그 말 남기고 갔잖아.."
연락한다고. 차라리 그 말을 남기지라도 말지. 그래서 기다렸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몇 번이고 전화기가 고장 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현관문을 열어 두고 기다렸다. 밖에서 차 소리라도 들리면 창으로 달려갔다. 자릴 비운 사이 왔다 갈까 걱정되어 집에만 있었다. 그렇게 아리스가와 다이스를 기다렸다. 그가 괜찮다고, 곧 돌아가겠다고 해줄 거 같아서. 금방이라도 다시 멍청한 얼굴을 들이밀 거 같아서. 그런데 기다려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벨도 울리지 않았다. 그가 없는 밤을 몇 번이고 지새우고 나서야 유메노 겐타로는 깨달았다. 그와 이별했다는 것을.
"하려고 했어. 하지만 사정이 있었어. 나도... 나도 그러려고 했었단 말이야."
"...하지만 하지 않았잖아요."
"...겐타로, 제발..!"
"그래놓고 나타나서 영화를 만들어 준다고. 투자를 해주겠다고. 하하, 다이스. 제가 그 이야기를 받아드릴 거라 생각했습니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입만 벙긋댔다. 유메노는 저만큼이나 처절해 보이는 얼굴을 가만히 들여보았다. 돈이 좋기는 한 모양인지, 제 기억속에 남아있는 아리스가와 다이스의 흔적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또 슬퍼졌다.
"미안해서 이러는 거라면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면 뭐 동정이라도 했습니까? 집으로 돌아가 보니 남겨진 제가 불쌍하기라도 했나요? 허름하고 가진 거 없는 글쟁이가 안타까워지기라도 했습니까?"
"겐타로-"
"소생이 뭐라고 그런 값비싼 동정을 합니까? 그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전 괜찮았고 괜찮습니다. 괜찮을 예정이고요."
바람에 나부끼던 짙은 머리카락은 잘려 나간 지 오래인지, 그의 짧은 머리가 저는 무척이나 어색한데 그에겐 익숙해 보였다. 늘 찢어진 바지에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다니던 꼴은 어디로 던져버렸는지 답지 않은 정장 차림도 그랬다. 작고 더럽고 어지러운 제 방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의 모습이 서글펐다. 전에는 어디에 두어도 잘 어울렸는데.
"내가 뭐라도 해주고 싶어서 그래."
한참의 침묵 끝에 그가 조용히 말했다.
"...왜요?"
왜? 왜 이제 와서? 유메노 겐타로가 아리스가와 다이스에게 원하는 건 이런 게 아니었다. 돈이나 명예나 성공 따위가 아니었다. 영화나 베스트셀러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그와 있는 시간들이었다. 함께 보낸 4년 처럼, 자신이 행복이라 이름 붙였던 그 시간처럼 계속 함께 있는 것. 같이 눈을 뜨고 같이 눈을 감는 것.
"소생이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닙니다."
아리스가와 다이스가 곁에 있는 것.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라..."
아리스가와 다이스와 함께 하는 것.
쏟아지는 별에 한 번 빌어볼걸.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도, 그가 갖고 싶다고 빌어라도 볼걸. 그동안 넘겼던 수많은 별들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눈물이 났다. 울지 않으려 버텼지만, 잘되지 않았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멍청한 얼굴을 보고 있으니 더 그랬다. 원하는 게 뭔데, 말을 해. 나 이제 다 해줄 수 있어. 그가 어울리지도 않는 셔츠 소매를 끌어다 닦아주며 빌었다. 그 따뜻한 손을 떼어내며 유메노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이뤄줄 수 없는 소원이었다. 어차피 또 홀로 두고 저를 떠날 사람이니까. 그래서 애절하게도 제 이름을 부르는 남자에게 유메노는 입을 열어주지 않았다. 깨진 화분 조각이 심장에 박혔다. 그를 빼앗고 숨기고 감추고 가두고 싶은 제 마음을 찔러대며 유메노는 끝까지 입을 열어주지 않았다.
-
아리스가와 도련님이 보고 싶었는데....... 이게 정말 뭐람ㅋ_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