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카와 토오루는 그가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그가 무엇을 하든지 모른다.
서걱서걱 노트에 적었던 글귀를 거칠게 긁어 지우며 오이카와는 숨을 뱉었다. 빗방울이 얼기설기 얽혀진 창 너머로는 자욱한 안개와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규칙적으로 울리는 시계 소리가 머릿속을 갉아먹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내가 왜 걔를.."
신경써야 하지? 오이카와는 거칠게 발로 책상을 차며 앉아있던 의자를 밀어냈다. 드르륵 요란한 바퀴 소리를 내며 의자가 시원하게 뻗었다. 그리곤 스스로 뱉은 말과 달리 그 위에서 거칠게 일어나 점퍼를 챙겨 들었다. 벌써 새벽 2시였다. 늦어도 이렇게까지 늦은 적 없던 사람이라 불안함에 심장이 울렁거렸다.
그 사람, 스가와라 코우시를 만나게 된 것은 약 1년 전의 일로 그 날도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 느지막한 겨울이었다. 더는 추위는 비를 얼리지 못했고 얼지 못한 눈들은 물이 되어 흘렀다. 쓰고 있던 신문 칼럼이 도무지 진행되지 않아 머리를 비울 생각으로 오이카와는 늦은 밤거리를 나섰다. 자신이 살고 있는 이 다운 타운의 치안이 얼마나 개떡 같은지를 머릿속으로 그리면서도 당장 고픈 담배를 사기 위해서. 어디선가 컹컹 개가 짖는 소리가 나지막히 울리는 새벽 거리를 걸어 유일하게 24시간 운영하는 담배가게까지 걸었다. 자신이 살고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약 15분 정도가 걸리는 거리였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풍채 좋은 아저씨에게 늘 그렇듯이 같은 담배를 계산하고 잔돈을 점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가랑비와 같이 쓸쓸하게 흘러내리는 비는 우산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라 오이카와는 손바닥으로 이마부터 눈가를 가렸다. 그걸로도 충분한 날씨였다. 얼른 돌아가서 칼럼을 끝내자, 담배 딱 한 개비만 태우고 자자. 스스로를 달래듯 차근차근 아주 작은 계획들을 정리하며 얼마나 걸음을 옮겼을까- 시야로 이상한 것이 걸렸다. 찰박찰박 남아있던 물웅덩이를 밟던 낡은 운동화가 멈추어섰다. 도로, 그 한복판, 위의 사람. 정확하게는 사내. 하나하나 단어를 떠올리며 상황을 인지한 오이카와는 굳어 멈춘 채로 한참을 그 이상한 풍경을 눈에 담았다. 살아있는 건가? 죽은 건가?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이 다운 타운에서 사람이 다치고 죽는 것은 그리 놀라울 일도 아닌지라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아마 이 시간에 경찰에 전화해 "사람이 죽은 것 같은데요" 라고 신고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아 또요?" 라는 싱거운 말일 것이 분명했다.
"어쩌지."
오이카와는 제 손바닥 위에서 담뱃갑을 가볍게 던졌다 받아내고 또 던졌다 받아내며 꼼짝도 하지 않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이대로 두고 가면 내일 아침쯤 저 사내는 껌처럼 이 아스팔트 바닥에 달라붙어 있는게 아닐까 상상하니 절로 발걸음이 움직였다. 차라리 껌은 색이라도 예쁘지, 인간이 바닥에 달라붙으면 그저 붉고 더러운 오물밖에 되지 않을 것이었다. 썩 내키지 않는 걸음을 끌고 다가가자 듬성듬성 놓인 가로등 아래로 사내의 얼굴이 드러났다. 멀끔하게 수트를 갖춰 입은 사내의 복부에서 꿀렁꿀렁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강도? 아니면- 오이카와는 가만히 서서 눈으로 그의 상태를 쫓았다. 강도를 당했다기엔 사내의 주머니에서 흘러나온 지갑은 멀쩡했다. 거기다 차고 있는 시계며 구두도 그리 좋은 물건은 아니었지만 멀쩡했고. 그럼, 살인 사건인가? 신문에 실어 넣는 칼럼은 생활 칼럼인 주제에 오이카와는 자신이 탐정이라도 된 기분으로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그렇게 굴려도 딱히 정답이 떠오르지 않아 슬쩍 허리를 숙여 손을 뻗었다. 사내의 코로 손가락을 대자 미세하게 붙어있는 숨이 느껴졌다.
"오, 살아있네."
병원으로 보낼까 싶었지만 그러면 자신이 더 귀찮아졌다. 그렇다고 껌딱지로 만들자니 제가 그의 상처를 만든 것도 아닌데 죄책감이 들 것 같았다. 그리 대단한 도덕적인 잣대를 가진 사람도 아니었고 모범 시민으로 선정된 적도 없었지만 오이카와는 마치 버려진 고양이나 개를 줍는 혹은 길바닥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는 기분으로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의 복부에서 토해내는 붉은 피를 손바닥으로 눌러 막아주며 집에 들였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칼럼까지 밀어놓고 생각보다 깊지 않았던 그의 상처를 치료하고 동여매고 보살폈는데 놀랍게도 그는 다음날 눈을 뜨기가 무섭게 곁에 둔 유리잔을 내려치더니 금세 무시무시한 무기로 만들어 오이카와에게 들이밀었다. 경찰이야? 그리 묻는 날이 선 눈동자 앞에서 오이카와는 오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과거에 썼던 칼럼들을 줄줄이 읽어주어야만 했다. 베이킹 소다의 끝내주는 사용법 같은 것들을. 그럼에도 여전히 의심을 풀지 않았던 그는 오이카와가 요즘 주부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세탁용 세제들을 비교했던 칼럼을 읽을 때 즈음 유리조각을 내려놓았다.
사내는 꼬박 일주일을 멋대로 집에서 머물렀다. 그리 깊은 상처도 아닌데도 숨을 곳이 필요했는지, 아니면 회복을 위한 선택이었는지 멋대로 그렇게 둥지를 틀었다. 완벽한 타인인 그의 이름은 스가와라 코우시, 나이 불명, 출신지 불명, 직업도 불명. 이름 말고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으니 오이카와는 그 이름이 진짜라고도 믿지는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 자신이 사다 놓은 레토르트 식품을 죄다 거덜 낸 사내는 오이카와가 칼럼에 적으며 <완전 추천>이라 남겼던 세제로 빤 자신의 수트를 다시 갖춰입고 일주일 뒤- 말도 없이 사라졌다. 그렇게 그와 다시는 만날 일은 없겠지 싶었던 인연은 우습게도 한 달 뒤, 방 문을 두드린 그로 인해 지독하게 이어졌다.
"지낼 곳이 필요해."
밤 11시에 나타난 사내의 구두코에는 피가 묻어있었다. 그에게서 강한 피 비릿내가 퍼졌다. 오이카와는 황당한 얼굴로 당연한 서비스를 요구하듯 그리 말하는 스가와라를 보며 어이가 없어 웃었다. 그가 온전하지 못한 일을 하고 돌아다닌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알고 있었다. 그의 상처를 치료하고 수트를 덜덜거리는 세탁기에 던져넣으며 빼낸 소지품으로 어렵지 않게 추리할 수 있었다. 종류를 알 수 없는 총 두 자루, 지갑에는 모두 다른 이름으로 된 신분증이 여러 장. 신용 카드나 캐시 카드도 없고 그저 현금 몇 장이 전부. 마지막으로 암전된 휴대폰. 그걸로도 그가 이 다운타운에서 그리 올바르지 못한 인생을 사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오이카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싫다면."
일단은 자신이 집주인이니 당당하게 물었지만 그가 제 허리춤으로 뻗는 재빠른 동작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파악 가능했기에 오이카와는 서둘러 두 손을 올렸다. 네, 들어오세요. 언제든지요.
그렇게 시작된 기묘한 동거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스가와라 코우시는 아주 늦은 밤에 집으로 돌아와 오후 늦게까지 늘어지게 잤으며 그러다 저녁이 되면 비척비척 걸어나갔다. 그 사이에 자신이 찬장에 채워둔 음식물을 아무렇지 않게 거덜 냈지만 그에 대한 값인지 가끔씩 큼지막한 액수의 돈을 내밀었다. 방세와 생활비를 포함한 금액보다 더 쳐준 돈이라 오이카와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아주 가끔은 나가지 않고 침대에만 처박혀 있을 때도 있었고 멋대로 사놓은 술을 비우거나 오이카와의 칼럼에 태클을 걸기도 했다. 덜렁 티셔츠나 러닝셔츠만을 입고 배회하며 입에 댄 컵을 씻지도 않고 다시 테이블에 올려놓고 잼 바른 토스트를 줄줄 흘려 먹어 벌레들을 불러들이고 아주 가끔 어디서 다쳐 돌아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오이카와는 그와의 이 기묘한 동거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감을 앞두고 급하게 타자를 두드리고 있는 제 옆에 앉아 팔뚝에 입술을 묻고 발정 난 고양이도 아니면서 품으로 파고들어 혀를 얽혀오기도 했지만 정말 나쁘지 않았다. 가족도 친구도 애인도 아니었지만 오이카와는 제 입술을 파고드는 혀를 거부한 적도 없으며 허리에 둘러지는 다리나 하반신으로 붙어오는 엉덩이도 밀어낸 적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꽤 괜찮은 동거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락도 없이 새벽 2시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는 경우는 달랐다. 일정하진 않았지만 이토록 늦은 적도 없었고 거는 전화에 이토록 오래 응답을 하지 않은 적도 없었다. 오이카와는 어쩐지 몸 안에서 피어오르는 불안감에 손톱을 잘근 물었다. 나갈까, 나가지 말까. 찾으러 갈까, 가지 말까. 나갔다 그가 도로 위에 껌딱지가 되어있으면 그건 그것대로 이젠 충격일 것 같았다. 언제 떠나도 언제 돌아와도 이상할 리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렇게 함께 한지 벌써 1년이었다. 개로 치면 7살이었다. 7년을 키웠다고. 아니, 그건 좀 계산이 다른가. 오이카와는 엉망인 제 머리카락을 마구 쑤셔댔다.
"젠장."
껌딱지든 뭐든 일단 생사는 확인하자 싶어 현관으로 발을 뻗었다. 밑창이 덜렁덜렁한 운동화에 막 발을 꿰어 넣는 순간-
"..어디가?"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문이 열렸다. 그리고 복도의 싸늘한 조명 아래 스가와라 코우시가 서 있었다.
"....안가."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얼굴도 옷도 말짱했다. 아마 그가 지금 상처를 달고 돌아왔으면 그 상처를 손으로 후벼 팠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오이카와는 기운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싱겁긴. 그가 중얼거리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왜 이렇게 늦었어?"
"오다가 버스가 끊겼어."
"설마 걸어왔어?"
"그럼 기어와?"
이상한 질문을 한다는 듯 그가 웃으며 제 자켓을 벗어 던지곤 소파에 쓰러지듯 몸을 뉘었다. 아니, 뭐 그런 의미는 아니었지만 딱히 친절한 설명을 해 줄 타입은 아니었기에 오이카와는 점퍼를 벗어 대충 걸어두곤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커서가 깜빡이는 백지의 액정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했다. 됐어. 돌아왔어. 이제 내 일 하면 돼. 손가락을 키보드 위로 내렸다. 그와 동시에 끽, 소파 밀리는 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언제부터인지 당연하다는 듯이 제 의자 옆에 놓인 간이 의자에 스가와라 코우시가 앉았다. 그가 길고 가느다란 동시에 언제나 피 냄새를 풍기는 손을 뻗어 팔뚝을 쓸었다. 마치 건반을 치듯이 슬금슬금 올라와 오이카와는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었다.
"있지, 토오루."
그가 가장 두터운 부분까지 손가락을 올리더니 아직도 차가운 손바닥으로 그것을 감싸오며 달라붙었다. 밖의 공기를 그대로 담은 뺨을 팔 위로 묻으며 눈을 올려 떴다.
"나 칼럼 써야 해, 마감이 모래인데 지금 하나도 못-"
"자자."
"..."
"자고 싶어."
그게 아주 순수하고 평범한 의미가 아니라는 것은 오이카와가 이 1년 동안 그와 함께 지내며 배운 언어 풀이이기도 했다. 그의 입에서 흐르는 <잠>이라는 단어는 아주 본능적이며 또 본능적인 단어였다. 응? 보채듯 묻는 그의 목소리에 오이카와는 팔을 휘저어 스가와라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그리곤 기우뚱 떨어지는 그의 머리카락을 가득 손에 담으며 입술을 품었다. 뒤통수를 책상에 눕힌 그가 몰캉한 것을 입안으로 미끄러트리며 쿡쿡 웃었다. 오이카와는 여전히 커서가 깜빡이는 노트북을 눌러 닫으며 생각했다. 죽어가는 동물, 길바닥의 쓰레기, 아스팔트 위의 껌딱지- 아주, 이상한 것을 주워오고 말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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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거나 주워먹으면 배아픈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