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스가] 신데렐라 3
2015. 4. 6. 01:53





스가와라는 다시 요정이 저를 가엽게 여겨 나타나 주지 않을까 기다렸지만 마치 그날이 모두 환상인 것처럼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고이 옷장에 숨겨놓은 유리구두만이 그 밤이 꿈이 아니라는 증거가 되어 있었다. 무도회가 끝나고 돌아온 새어머니와 누님들은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전보다 더 고약해져 있었다. 닦아놓은 계단도 그리고 먼지를 턴 초상화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흠집을 잡았다. 쿠니미와 긴다이치가 자신이 없는 사이에 깔끔하게 정리해 놓은 그릇과 이불도 엉망이라며 화를 냈다. 지독하게도 듣고 싶지 않은 "다시!"라는 말을 들으며 스가와라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일은 고달프고 여전히 밤 마다 아버지를 떠올리며 울었지만 그래도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왕자를 만나 전했던 것처럼 서서히 빛바래져 가는 기억만을 안고 괜찮다고 자신을 위로하는 것뿐이었다. 아주 쓸쓸한 자기 위로였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달래듯 마을로 엄청난 소식이 날아들었다. 왕자가 무도회에서 주운 유리구두의 주인을 찾는다는 이야기였다. 


우연히 신문 배달을 온 소년에게 그 이야기를 들은 스가와라는 심장이 쿵쿵 뛰었다. 왕자가 자신을 찾고 있었다. 주워오지 못했던 그 유리구두를 들고 마을을 뒤지고 있다고 했다. 곧 이 저택에도 도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머리가 하얗게 질리는 것만 같았다. 그리곤 천천히 자신을 내려보았다. 티셔츠에는 아침에 요리하다 튄 수프자국이 그대로였다. 바지는 무릎이 해져 곧 나갈 것만 같았다. 신고 있는 신발은 어떻고? 여전히 구멍이 난 가죽신이었다. 이 꼴로 왕자를 만날 수 없었다. 여자인 모습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적어도 예전의 자신과 같은 모습, 멀쩡한 모습으로 만나고 싶었다. 그가 기억해주는 그 모습으로 당당하게 만나고 싶었다. 스가와라는 쥐고 있던 빗자루와 방금 받았던 신문을 던지듯 내려놓고 서둘러 저택으로 뛰어들어갔다. 쿵쿵쿵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제 다락방으로 향했다. 뒤져보면 어디 멀쩡한 옷이 남아있을지도 몰랐다. 얼굴을 닦고 씻어내면 조금은 말끔해질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면-



"왜 그렇게 급히 뛰어들어오니?"



그렇게 하면 될 거라고, 그렇게 왕자를 만나면 모두 다 털어놓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방으로 들어왔지만 문을 열기가 무섭게 날아드는 목소리에 스가와라는 그만 생각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자신의 방이 엉망이 되어 있었다. 마치 도둑이 든 것처럼 서랍장도 옷장도 열린 채로 물건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서 있는 새어머니의 손에는 자신이 꽁꽁 숨겨놓았던 그 날의 유리구두가 쥐어져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 같다고 생각했어. 무도회에서."
"..."
"아무리 아름답게 치장하고 꾸며도 너에게서 나는 걸레 냄새는 사라지질 않거든."
"..."
"드레스까지 훔쳐 입고 나타나 왕자라도 홀려 신분 상승이라도 할 생각이었어?"
"아...아니.. 그게 아니라-"



짝, 소리와 함께 고개가 매섭게 돌아갔다. 어디서 말대답을 해? 그녀의 날카로운 말과 함께 이번엔 반대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이건 어디서 훔쳤어?"
"훔..훔친거 아니에요..!"
"누구 방에서 훔쳤어. 내 딸 물건이잖아. 그렇지?"
"아니...아니에요! 그 구두는 제..!"



자신의 것이라고 말하려 했지만 어차피 그녀는 믿지 않을 것이었다. 이 저택에서는 그녀의 말이 법과 같았다. 그렇게 5년을 살았다. 그러니 그녀가 말하면 저 구두는 자신의 것이 아니었고 그녀가 말하면 그 구두는 자신이 훔친 것이 되었다. 아무리 부정하고 부정해도 어차피 그렇게 될 것이었다.



"뭐, 아무래도 좋아. 그래, 왕자가 이 구두 주인을 찾고 있다지? 곧 이 저택에도 도착할 거야."
"..."
"너도 가서 만나도록 해."
"정말요?"



뜻밖의 제안이었다. 설마 그녀가 허락해 줄 거라곤 생각치도 못 한 말에 스가와라는 욱신거리던 제 뺨이 아픈지도 모르고 새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럼, 너도 만나야지. 가서 그 날 왕자님과 춤을 췄던 년이 너라고 꼭 이야기하도록 해."



그녀는 웃으며 아주 너그럽게 말했다. 그리곤, 손에 쥐고 있던 유리구두를 높이 들었다.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그녀가 서랍장 위로 구두를 내리쳤다. 쨍그랑, 요란한 소리와 함께 구두가 그 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산산조각이 났다. 그 밤의 추억도, 꿈같은 시간도 그렇게 유리 조각이 되어 스가와라 앞에서 사라졌다. 



"이리와, 네 치장을 도와줄 테니. 그날처럼 왕자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 꾸며야 할 것 아니야?"



잘려나간 유리 구두를 든 채로 그녀가 웃었다. 성큼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어마어마한 그림자에 스가와라는 도망치기는커녕 숨도 쉬지 못한 채로 그저 눈을 감았다.



서걱서걱, 잘려나가는 소리와 함께 후두둑 제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바닥에 나부꼈다. 깨진 유리조각으로 잘라내려니 잘 잘리지 않아 멋대로 그녀가 쥐어 당기고 뜯어낸 머리가 욱신거렸다. 멋대로 움직이는 유리조각이 머리를 긁고 목 뒤를 긁어댔다. 그 상처에서 흘러나온 붉고 뜨거운 것이 얼굴선을 타고 내려와 조심스레 바닥에 자국을 만들어냈다. 



"자 다 되었다."



그녀가 만족한 듯 웃으며 스가와라의 어깨를 쥐었다. 그리곤 억지로 일으켜 벽에 붙은 거울 앞에 세웠다. 그 안에는 엉망인 소년이 서 있었다. 부어오른 뺨과 울어 충혈된 눈이 무척이나 보기 흉한 소년이. 목 뒤에서 선을 타고 흐르는 붉은 피가 안 그래도 더러운 티셔츠를 더 더럽게 만들었다. 마구잡이로 잘려나간 머리는 정말이지 꼴 보기 싫을 정도였다.



"어때? 그날보다 더 아름답지 않아?"
"..."
"아, 드레스. 그래. 드레스. 그때는 답답하게 목까지 다 채웠으니까-"



슬쩍 어깨너머로 팔을 뻗어온 그녀가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양쪽으로 잡아 강하게 쥐었다. 찌직-찌직- 소리를 내며 더럽고 낡은 티셔츠가 너덜너덜 반 정도 찢어져 앙상하고 보기 흉한 살을 드러내게 만들었다. 그 안에는 그동안 그녀에게 맞아 난 상처나 아직 덜 빠진 멍 자국이 당연하다는 듯이 남아있었다.



"이번에는 이렇게 다 파인 옷으로 보여드리자. 어때? 난 잘 어울리는 거 같은데. 너에겐 이런 모습이 제일 어울려."



툭툭 긴 손톱으로 뺨을 두드리며 그냐가 환하게 거울 속 자신을 향해 웃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창 너머로 왕실의 마차가 선 것은. 어머, 왕자님이 드디어 오셨네? 귓가로 속삭이는 소름 끼치는 목소리에 스가와라는 꽉 제 주먹을 쥐었다. 



"얼른 내려가 왕자님을 맞이해야 겠군. 아, 그 전에."



그녀가 가볍게 손뼉을 치더니 이내 방 구석에 있던 양동이 하나를 들고 왔다. 그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머리위로 악취가 나는 물이 쏟아져 내렸다. 



"너에게 어울리는 향수도 뿌리고 나가야지."



걸레 냄새. 새어머니가 웃으며 그리 덧붙였다. 그럼 얼른 내려와. 왕자님을 이 방까지 초대하고 싶지 않으면. 강한 그 명령을 남기고 그녀가 방을 나섰다. 그제야 스가와라는 겨우 버티고 서 있던 다리에서 힘을 풀고 주저앉았다. 축축한 바닥으로 무너져 내리는 몸을 지탱할 수 없었다. 그래도 나가야 했다. 일어서야 했다. 멋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세우기 위해 주먹을 꽉 쥐고 무작정 강하게 내려쳤다. 일어나, 얼른. 일어나야 해. 강하게 내려치는 힘으로도 말을 듣지 않았다. 사실은- 나가고 싶지 않았다. 이 꼴로 그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자신이 내려가지 않으면 그녀는 자신을 어떻게 해서라도 끌고 내려가 망신을 줄 것이었다. 그 꼴을 왕자에게 보이느니 스스로, 스스로 나가 그를 모르는 척 하는 것이 현명해 보였다.



"제발..."



그러니까 제발 움직여 다리야. 스가와라는 이를 악물고 바닥을 디뎌 몸을 일으켰다. 축 젖어버린 몸에서 구역질이 올라올 정도의 악취가 느껴졌다. 이번에야말로 자신을 두고 먼저 떠난 아버지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얘, 스가와라!!! 아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서둘러 걸음을 떼었다. 울음이 터졌지만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악물어 참아냈다. 후들거리는 손으로 겨우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터벅터벅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신에게서 흘러내리는 물이 자국을 남겼다. 아주 더럽고 더러운 자국이었다. 반질반질한 대리석 계단을 밟고 내려오자 새어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자신을 돌아보았다. 



"저기 내려오네요, 저희집에 사는 하인입니다. 딱 이렇게 네 사람이 사는 저택이에요. 그 구두의 주인은 없답니다."



그러면서 가까이 다가선 스가와라에게 그녀가 덧붙였다. 얘, 걸레를 빨다 물이라도 뒤집어썼니? 그 꼴이 뭐야? 예의 없이?! 라고. 그 말에 웃음도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겨우 연 입으로 할 수 있는 말은 죄송하다는 사과뿐이었다. 이유도 원인도 알 수 없는 사과. 그 말을 뱉으며 스가와라는 멍하니 조그마한 상자 안에 소중히 보관된 유리구두에 시선을 던졌다. 손을 떠난 유리구두는 산산조각으로 사라진 자신의 것과 달리 반짝반짝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제 딸 아이들은 구두가 맞지 않고 이 아이의 것일 리는 없으니 그만 돌아가 주시지 않겠습니까?" 



어느 때보다 정중한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스가와라는 푹 고개를 숙였다. 왕자가 어디쯤 서 있을까 무서워 고개를 들 수도 없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면 정말 혀를 깨물고 죽고 싶은 충동이 들 것만 같았다. 당장에라도 목을 매고 발아래의 의자를 차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게-



"아뇨, 그 친구도 신어 봅시다."



익숙한 그리고 절대 잊을 수 없는 목소리가 잔인하게 자신을 붙잡았다. 스가와라는 그가 말하는 대상이 자신이라는 걸 알고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죽어도 싫었다. 이 더러운 발에 그 아름다운 구두를 신고 싶지 않았다. 



"아뇨, 왕자님. 이 아이는-"
"내가 보고 싶다는데 무슨 문제 있습니까?"



강경한 말투에 더는 달라붙는 말이 없었다. 뚜벅뚜벅 울리는 구두소리와 함께 반질한 신이 스가와라의 시야에 들어왔다. 선이 살아있는 짙은 남색의 고급스러운 옷자락도 들어왔다. 그 풍경이 살며시 구겨진다 싶더니 이내 사내가 무릎을 굽혔다. 그리곤 조심스레 손을 뻗어 스가와라의 발목을 쥐었다. 그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을 주었다. 빼내려 했지만 강하게 잡힌 발목은 벗어날 줄을 몰랐다. 싫어요, 싫어요. 울음이 터진 목소리가 그리 빌었다. 제 것이 아니에요. 거짓을 고하며 부정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 발에서 낡아 구멍이 난 젖은 가죽신을 가볍게 벗겨내곤 반짝반짝 빛나는 유리 구두를 신겨주었다. 그날, 그 밤의 정원에서와 같이. 꼭 맞아 들어가는 구두를 들여보던 사내는 고개를 들어 스가와라를 올려보았다.



"맞는데? 아주- 딱."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눈치 없이 추락해 그의 굽힌 무릎 위로 떨어져 엉망으로 자국을 냈다.



"그래서- 성이 스가와라인건 방금 알았고 이름은 뭔데?"



왕자가 저를 올려보며 물었다. 오이카와 토오루가 조금도 찌푸리지 않은 얼굴로 엉망인 자신을 눈에 담으며 이름을 물었다. 스가와라는 눈물로 시야가 번지는 것을 막지 못한 채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코...코우시- 스가와라, 스가와라 코우시."
"드디어 이름을 알려주네."



그가 무릎을 폈다. 몸을 세워 두르고 있던 망토를 어깨에서 때어냈다. 그리곤 성큼 한 발 더 다가왔다. 스가와라는 조금도 그에게 닿고 싶지 않은 마음에 뒤로 물러났지만 젖은 손을 붙잡은 그의 행동이 빨랐다. 아주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망토가 어울리지 않게 머리 위로 내려앉아 지우고 싶은 자신을 감춰주었다. 



"뭐해, 이와이즈미. 구두 주인을 찾았으니 성으로 돌아갈 거야."



다시 구두를 벗겨낸 오이카와가 그것을 가볍게 던지며 외치며 익숙한 이름을 뱉었다. 이와이즈미? 놀라 고개를 들자 구두를 받아 상자에 넣어 챙기던 사내가 자신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어째서 그가 여기 있는 거지? 그리 묻기도 전에 자신만큼이나 당황한 목소리가 왕자와 자신의 사이를 가르고 날아들었다.



"그 아이는 이 집 하인입니다! 저희 가문의 소유물이니 아무리 왕자님이라 하셔도 함부로-!!"
"이 땅에 있는 모든 것은 왕실의 소유물이지."



새어머니의 다급한 외침에 오이카와가 다가와 꽉 망토 위로 스가와라의 어깨를 쥐며 서늘히 말했다.



"고로- 주인이 사라진 이 집도, 이 집을 차지한 너희도, 너희가 괴롭힌 이 아이도 내 소유물이야."
"그런!!"
"이와이즈미, 더는 듣기 싫으니까 혀를 잘라내든지 목을 잘라내든지 저년의 입을 다물게 해."



냉정한 말과 함께 오이카와는 더 들을 말이 없다는 듯 스가와라를 당겨 걸으며 말했다. 챙, 이와이지미의 허리 부근에서 나는 칼과 집의 마찰소리에 스가와라는 놀라 발을 움직이며 왕자를 올려보았다. 왜? 살려 둘까? 그리 묻는 말에 조금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 잘 선택했어. 그가 망토 아래의 머리를 쓸어주며 저택의 문을 열었다. 반짝이는 햇살이 쏟아지는 밖으로 나오자 마차 앞에 서 있는 마츠카와가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네왔다. 놀란 스가와라를 향해 윙크를 날리는 것도 잊지 않고. 덕분에 저택 안에서 울리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와 비명을 스가와라는 듣지 못했다. 그저 왕자가 이끄는 대로 꿈꾸듯 마차에 올랐을 뿐이었다. 탁, 가볍게 문을 닫은 마차는 스가와라가 앉기가 무섭게 출발했다. 잘, 버텼어. 조용히 내려앉는 다정한 칭찬에 그저 울었다.

성으로 향하는 그 마차 안에서 스가와라는 조금도 자신의 저택으로 시선을 주지 않았다. 이제 더는 그 지옥과 같은 집을 눈에 담고 싶지 않았다.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자신의 꿈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




끝....

세상에 이게 뭐라고 3편까지. 

이렇게 엔딩은 <아 시바 꿈>으로 끝...난 것은 아니고 해피엔딩으로...^^

질질 끌고 말고 할 이유가 없어 급하게 엔딩을 냈더니 스가가 뭔가 덜 고생한거 같은 느낌이 든다...


어쨌든

기회가 되면 오이카와 버전으로도 쓰고 싶어져따.

병맛과 메르헨을 지향한 신ㄷ ㅔ렐라는 그냥 병맛으로 디 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