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스가] 비, 그리고 너.
2015. 4. 5. 22:19


비가 내려서 일까, 아니면 경기장 내를 가득 채운 사람들의 열기와 숨 때문일까. 스가와라는 가만히 제 무릎 위에 코트라인을 표시한 파일을 내려둔 채로 걷고 있던 소매를 풀었다. 시선은 전광판을 주시했다. 가볍게 풀어낸 소매를 당겨 커프스단추로 완벽하게 잠갔다. 동시에 삐익- 휘슬 소리가 경기장을 울렸다. 경기가 끝남과 동시에 벤치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엉덩이를 떼어내며 걸음을 옮겼다. 그 틈에 스가와라 역시 유려하게 의자에 걸쳐놓았던 자신의 자켓을 찾아 걸치며 몸을 일으켰다. 무릎 위에 올려둔 파일을 대신 의자에 앉혀놓고 아이스박스를 여는 스태프들 틈에 섞여 가득 물이 채워진 병들을 들어 들어오는 선수들에게 건넸다. 땀과 짜증으로 뒤섞인 사내들의 얼굴은 우중충하기 그지없었다. 가장 마지막에 들어오던 스파이커가 "죄송해요."라며 사과를 우물우물 뱉었다.



"뭐가요?"
"이제 매니저님이 피곤해질 차례잖아요."



그가 정말로 미안했는지 눈도 마주치지 못 한채로 떠들었다. 스가와라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의 땀에 젖은 가슴팍에 물병을 거칠게 밀어주었다. 



"그게 제 일이에요. 코트에서 뛰어 점수 내는 것은 니들 일이고."
"..."
"그러니 좀 졌다고 미안하다, 죄송하다 할 필요 없어요. 나 돈 받고 일하는 거에요."



월급쟁이라고요. 스가와라는 딱 잘라 말하며 씩 웃어 보였다. 그제야 그가 웃으며 물병을 따 목을 축였다. 그를 두고 다른 선수에게로 몸을 돌리며 스가와라는 점수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3세트 중 단 한 세트도 가져오지 못한 처참한 점수판이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점수가 크게 속상하거나 뼈아프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올 시즌 성적이 나쁘지 않다고 하더라도 리그의 지배자로 불리는 상대 팀을 이길 거라곤 애초에 조금의 기대감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그랬다. 그런 경기였다. 감독도 열심이었고 선수들도 집중했지만 그래도 현실적으로는 기대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 게임이었다. 상대는 올 시즌에도 압도적인 승점으로 1위를 달리고 있는 지난 시즌의 챔피언이었고 자신이 팀 매니저로 뛰고 있는 이 팀은 창단 2주년을 막 맞이한 신생팀에 가까웠다. 날고 기는 선수들이 모여있는 팀과 이제 막 대학을 졸업했거나 팀을 찾지 못한 선수들이 아등바등 버티는 팀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간혹, 아주 간혹 스포츠판에서 절대라는 말을 쓰기 우습게 1위 팀이 꼴찌 팀에 발목이 잡힌다든지, 유독 이 팀에게만 약하다든지하는 징크스는 있었지만 아쉽게도 자신의 팀 이야기는 아니었다. 스가와라는 웃으며 자신의 수수한 팀을 돌아보았다. 이 팀으로 리그 5위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자신은 그렇게 만족하고 있었다. 


마지막 선수까지 물병을 쥐여주고 수분 보충을 확인한 뒤에 스가와라는 제 자리로 돌아와 파일을 챙겼다. 코트 라인표가 붙은 깔끔한 뒤판과 달리 앞판에는 오늘 경기를 보며 메모했던 것들과 감독의 전술들이 어지럽게 적혀 너덜거리고 있었다. 기자들을 상대하기 위해 미디어 라인으로 향하며 스가와라는 코트 내 스폰서 광고판 앞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상대 팀 선수를 바라보았다. 붉은 유니폼을 입은 오이카와 토오루가 목에 걸린 페이스 타올로 땀을 훔치며 오늘의 여전한 승리를 맛보고 있었다. 그 앞에는 저 팀의 매니저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는 또 다른 일등공신 우시지마 와카토시가 있었다. 괴물이 하나도 아니고 둘이었다. 천재가 하나도 아니고 둘이었다. 과거의 두 사람을 생각하면 절대로 생각할 수 없는 조합이지만 일본 배구계, 최고의 감독이라 불리는 남자는 두 남자를 한 팀에 넣고 자유자재로 손바닥 위에서 굴렸다. 그리고 그 감독이 어마한 연봉을 받으며 헌신하는 저 팀은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만큼의 능력이 있는 구단이었다. 한마디로 돈도 많다는 의미였다. 스가와라는 가만히 자신과는 먼 그 풍경을 바라보다 이내 서둘러 밖으로 빠져나왔다. 끝나버린 게임을 정리하는 많은 사람을 스쳐 기자들이 기다리는 미디어 라인으로 향했다. 모든 선수와 구단 관계자들이 지나다니는 복도에 놓인 바리케이드 너머로 기자들이 저마다 카메라와 노트북을 품고 있었다. 그 도구가 어떨 때는 무기와 같이 느껴졌다. 그들 앞에 서야하는 스가와라의 눈에는. 



경기를 진 후에 감독이나 선수들은 언제나 침울했고 예민했다. 그리고 기자들은 언제나 첫 인터뷰 상대에게 가장 짓궂고 못된 질문들을 던졌다. 스가와라는 그 화살을 가장 처음 받아내는 총알받이가 된 심정으로 단정하게 걸어 그 앞에 섰다.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이 저마다 서둘러 무기를 들었다. 카메라를 들고 조명을 켜고 마이크를 건네고 녹음기를 밀어 들었다. 보통은 이 정도까지 취재 경쟁이 뛰어나지 않지만 상대가 상대인지라 패자에게 쏠리는 관심도 어마어마했다. 



"오늘 경기에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질문은 민감하지 않은 사항으로만 제가 드릴 수 있는 한에서 대답하겠습니다. 감독님은 오늘 인터뷰가 따로 잡혀있으셔서 미디어 라인에 서지 않으실 예정이며 선수들은 약 30분 뒤 마무리 운동과 정리 후 버스에 오를 예정입니다. 부디 선수들에게 날 선 질문 삼가주시길 바라며- 질문받겠습니다."



막힘없이 그리고 유려하게 쏟아지는 말과 미소에 스가와라는 자신이 조금 우스웠다. 처음 기자들 앞에 섰을 때에는 긴장과 두려움으로 눈앞이 깜깜했는데 이제는 그들의 시선이 두렵지 않았다. 물론 그들이 뱉는 화살과 들이미는 무기는 여전히 무서웠지만.



"오늘 큰 점수 차로 패배하셨어요. 시즌 후반이라 조금이라도 1위팀의 독주를 막아주길 바라는 다른 팀 팬들의 기대가 있었을 텐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첫 질문부터 참 우스웠다. 지금 진 상황에 다른 팀 팬들이 무슨 생각을 하든 스가와라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마음속에 '참을 인'자를 강하게 적어 내리며 입을 열었다. 



"오늘 누구도 우리가 그들을 큰 점수로 이길 거라고 돈을 걸진 않았을 거에요. 도박이라는 단어는 이럴 때 쓰겠죠. 예상된 결과였다고 모두 말할 겁니다."
"그 대답은 오늘 질 것을 예상하셨다는 말인가요?"



이번엔 꼬투리.



"아뇨,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매번 모든 경기에 최선을 다합니다. 선수단 감독 코칭 스태프 모두 승리만을 위해서 헌신합니다. 우린 오늘을 위해 완벽한 준비를 했고 최선을 다했지만, 상대가 강했을 뿐입니다."



 자극적인 무언가를 뽑아내기 위해서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질문을 쉽게 피해가며 대답했다.



"단 한 세트도 가져오지 못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저 최선을 다했다고만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쏟아지는 질문 속에서 스가와라는 덜 쓰레기 같은 질문에만 반응했다. 특히 경기 내용에 관한 진중한 질문에는 조금의 거리감도 없이 착실하게 답했다. 이번 시즌 새로 영입한 용병 선수의 부상에 관한 질문을 건강하다, 한마디로 끊으며 스가와라는 그만하겠다는 신호로 파일을 든 손과 들지 않은 손 모두를 들어 엑스를 그려보았다. 슬슬 팀이 모두 라커룸으로 돌아갔을 시간이었다. 마무리 회의에 참가해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요! 오이카와 선수가 6경기째 연속 최고의 선수로 뽑혔고 오늘도 이 경기 MVP로 선정되었어요. 이번 주에도 그가 최고의 선수가 될 거라 생각하시나요?"



안경을 쓰고 야무지게 머리를 틀어 묶은 여기자의 질문에 스가와라는 저도 모르게 픽 웃고 말았다. 상대를 착각한 거 아니야? 그건 저쪽 팀에게 물어야지. 오이카와 토오루는 자신의 선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스가와라는 그 잘못 던져진 질문에 여유 있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이카와 선수는 현재 일본에서 가장 대단한 세터이니 아마 무리 없이 또, 그리고 지겹게도 최고의 선수가 되겠죠. 팬들이 사랑하고 협회가 사랑하는 선수이니까요. 하지만 오늘처럼 그렇게 서브로 만 많은 점수를 따겠다고 무리하게 무릎을 굴리면 다음은 모르겠네요."



패배한 팀에게 상대 팀의 MVP를 칭찬하라는 도발과 같은 질문에 스가와라는 가감 없이 걱정을 포장한 날 선 대답으로 완벽하게 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요란하게 카메라가 터지고 있었지만 사실 이걸 기사로 내고 보도할 기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자신이 선수였다면 1면에 실릴 정도로 큰 발언이겠지만 일개 팀 매니저의 평가는 그저 웃음거리 혹은 농담이 되어 퍼지다 사라질 것이었다. 미디어 라인을 익숙하게 벗어나 스가와라는 아침에 완벽하게 넘겼던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앞머리를 다시 잡아 넘기며 걸음을 옮겼다. 라커룸으로 들어서자 경기 끝나고 흐르던 그 침울함은 어디 갔는지 다들 돌아갈 채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마무리 회의 끝났어요?"
"네 간단하게요."



팀닥터에게 묻자 그가 약품 상자를 정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가와라는 그 대답에 서둘러 시계를 확인한 뒤 복도도 확인했다. 다행히 상대 팀은 아직 승리에 취해 경기장을 벗어날 기미가 없어보였다. 그걸 확신한 후 스가와라는 그나마 오늘 가장 활약이 괜찮았던 팀의 세터를 찍었다. 기자들을 상대하라는 말에 그가 "저요? 가서 또 우울한 소리 뱉어야 해요?" 라며 칭얼거렸다. "네, 그래야 해요. 우울하지 않은 소리 뱉으려면 다음 경기에는 이기시던가." 차게 말하며 스가와라는 서둘러 두 손을 마찰시켜 소리 내었다. 괜히 상대 팀과 빠져나가다 나란히 서서 인터뷰라도 하면 꼴이 더 우스웠다. 버스 입구에 대기 완료라는 스태프의 말에 모두가 자신의 스포츠 백을 챙겨 들었다. 빠져나가는 사람들 틈에서 스가와라는 마지막으로 뭐라도 두고 가는 것이 없는지 확인한 후 빠르게 일행 뒤로 붙었다. "진짜로 저에요?" 출구가 아닌 미디어 라인 쪽으로 세터를 당기자 몰래 피해가려던 그가 우중충한 얼굴로 물어왔다.



"진짜로. 거지 같은 질문은 내가 다 받아치고 왔으니 그냥 가서 팬들에게 실망하게 해서 죄송하다, 다음 경기는 준비를 더 많이 해오겠다- 해요."
"매번 하는 레퍼토린데."
"그거 말고 할 이야기 있으면 더 하던가."



없으면서. 단칼과 같은 말에 세터가 하하 웃으며 미디어 라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라인 앞으로 다가가자 아까 자신보다 더 많은 조명과 카메라들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방금 전 꼭 어디 끌려가는 사람처럼 우중충했던 얼굴을 지운 그가 정말로 미안한 감정들을 담은 표정으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거기까지 지켜본 스가와라는 서둘러 버스에 오르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타박타박 비로 인해 습해진 공기로 조금 더워 걸으며 목까지 잠긴 셔츠 단추를 풀었다. 이 비가 그치면 드디어 봄이 오려나. 그럼 곧 시즌도 끝나겠군. 의식처럼 흘러가는 생각들을 붙잡지 않으며 막 밖으로 나서려는 찰나- 덥썩 무언가가 제 팔을 잡아당겼다. 놀라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스가와라는 그 억센 힘에 끌려 복도의 어둠으로 끌려들어 갔다. 



"무슨-!"



짓이냐고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도톰한 무언가가 부드럽게 입술에 닿았다. 열린 입을 가르고 뜨뜻한 혀가 침투했다. 제 뺨을 붙잡은 길고 곧고 단단한 손가락에 스가와라는 몸 가득 끌어올렸던 긴장감을 풀며 혀에 힘을 실어 맞닿은 것을 얽혔다. 각도를 틀며 더 가까이 다가온 상대에게 익숙한 땀내가 훅 끼쳐왔다. 기분 나쁘지 않은 상쾌함이었다. 자신의 입에 남아있는 모든 타액을 집어삼킬 것처럼 달려든 상대는 뺨을 쥔 손을 내려 손가락을 뻗어 목을 쓸었다. 오도도 끼치는 소름에 스가와라는 저도 모르게 들린 발끝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급히 셔츠 안으로 침투하는 손을 막기 위해 손목을 잡았다. 촉, 젖은 소리와 함께 입술이 아주 살짝 미묘한 거리로 떨어졌다.



"너무했어.."



숨결이 바로 느껴지는 거리에서 상대가 투정을 부려왔다. 



"뭐가?"
"들었어. 기자들이 하는 이야기."
"뭘?"
"그렇게 서브로만 점수 넣으려고 까불면 무릎이 작살 난다고 저주를 퍼부었다며."



그가 간질간질 목 뒤를 손가락으로 쓸며 이마를 붙여왔다. 어둠 속에서도 분명하게 보이는 오이카와의 얼굴을 바라보며 스가와라는 달래듯 쥔 그의 손목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그럼 오늘 내 팀을 박살 낸 선수에게 축하한다고 웃으며 말할 정도로 내가 호락호락해 보여?"
"그래도 어떻게 애인의 무릎에게 그런 매정한 소리를 해?"
"작살이라는 단어는 쓴 적 없어. 그리고 누가 네 애인이야?"
"너무하네."



원하면 왜 내 애인인지 이대로 침대 위에서 설명해주고. 그가 작게 웃으며 귓가에 소곤거렸다. 그 간지러운 소리에 스가와라는 기분 나쁘지 않은 찌푸림을 얼굴에 담으며 그의 손목을 쥔 손을 풀어 찰싹 팔뚝을 때렸다. "아파." 애도 아니면서 금방 칭얼거린다. 



"이런 짓 저런 짓 다 했는데 애인이 아니라고 말하면 스가와라 코우시 매니저님은 오이카와 토오루 선수를 홀랑 벗겨 먹고 모르는 척 하시는 건가요?"



어느 기자와 같은 말투를 흉내 내며 그가 물었다. 그렇게 슬픈 소리를 뱉으면서 우습게도 행동은 그렇지 못했다. 자신의 목을 쓸던 손에 힘을 넣어 당기더니 이내 품으로 안았다. 보송보송하고 익숙한 섬유제 향이 코안으로 들이찼다. 슬금슬금 목을 쓸고 내려온 손은 꽉 허리를 안아왔다. 



"나 가야 해."
"질문에 대답은?"
"모든 질문에 응할 이유는 없죠. 오이카와 토오루 기자님. 놔, 진짜 가야 해. 버스 기다려."



꾹꾹 그의 저지를 당기며 스가와라가 항의했다. 그럼에도 떨어질 줄 모르는 사내의 강한 품에서 스가와라는 크게 숨을 쉬었다. 



"애인 맞아. 맞으니까 이거 좀 놔."
"우리 언제까지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만나야 하는지 알려주시겠습니까?"



그 질문에는 차마 할 말이 없어 스가와라는 가만히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보았다. 슬프게도 답이 없는 질문이었다. 자신이 지금의 팀의 매니저로 있고 오이카와 토오루가 다른 팀의 선수로 있는 동안은 아마 쭉 이어질 일들이었다. 



"나는 우리 관계가 이 봄비처럼 아주 잠깐 내렸다가 훅 그쳐 사라질까 무서워."
"..."
"스가와라 코우시는 언제나 처세를 잘하니까. 아무렇지 않게 날 두고 그렇게 그칠 것만 같단 말이지."



얄미운 소리. 마치 자신이 저를 홀로 두고 떠날 거라는 이야기를 담담하게도 하는 애인의 작태에 스가와라는 내려놓았던 발꿈치를 들어 올리며 이를 세워 강하게 그의 턱을 꽉 물었다. 아! 단말마의 비명이 어둠속으로 퍼졌다. 



"오이카와 토오루 선수는 금방 그칠 생각으로 아무 남자랑 뒹구나 봐요. 그쵸? 이렇게 키스도 하고?"
"뭐? 아냐?"
"나도 아니야."



나도 아니라고. 스가와라는 그리 강하게 말한 뒤에 억지로 저를 안고 있던 허리의 팔을 풀어냈다. 자신을 의심하는 것인지 불안해하는 것인지 모를 저런 소리를 뱉으면 화가 났지만 여기서 싸우기에는 장소가 너무 좋지 않았다. 마음같아서는 퍽퍽 때려주고 싶었지만 스가와라는 인내심 있게 자신의 주먹에서 힘을 빼며 입을 열었다. 주먹 대신 손바닥으로 살살 그의 뺨을 쓸어주었다.



"오늘 경기 잘했어."
"가려고?"
"MVP 수상도 축하하고, 이번 주 최고의 선수도 미리 축하하고."
"연락할 거지?"
"그리고 네 무릎은 내 목숨만큼 소중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리 말하며 스가와라는 오이카와의 젖은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그걸 이렇게 말로 하지 않으면 모르는 사내가 귀찮으면서도 싫지는 않았다. 하나하나 확인받으려 하는 행동이 귀찮으면서도 그리 싫지는 않았다. 그러니 여기까지 왔겠지만. 살살 부드럽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그 옅은 머리카락을 살짝 강하게 잡아 쥔 뒤 다시금 발꿈치를 들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비로 인해 지면으로 떨어지는 꽃잎처럼 아주 가볍게 그리고 살짝만. 그 후 떨어지기 싫은 마음을 겨우 감춰내며 그의 어깨에 이마를 한번 푹 묻어 본 뒤 스가와라는 한 발 뒤로 빠졌다. 



"그럼 오이카와 토오루 선수,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상투적인 인사와 함께 목을 숙여 인사를 건넸다. 일부로 좀 크게. 지나가던 이가 있다면 이 어둠에 누가 있는지 알 정도로. 완벽한 끝인사를 던지는 연인을 더는 붙잡지 못하는 오이카와의 손이 공중에서 멈추었다. 스가와라는 그 손에 닿기 전에 돌아서 어둠을 빠져나왔다. 막 밝은 복도로 나오자 인터뷰를 끝낸 팀의 세터가 "어? 매니저님 아직 버스 안 탔어요?" 라며 다가왔다.



"기다렸어요."



새빨간 거짓말을 하며 스가와라는 걸음을 옮겼다. 경기장 밖으로 나오며 등으로 달라붙는 누군가의 시선에 등 뒤로 손을 숨기며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가볍게 손가락 세 개를 접어 흔들었다. 전화할게, 소리 없는 움직임에 드디어 시선이 사라졌다. 떨어져 나간 그것에 아쉬움을 삼키며 스가와라는 버스에 올랐다. 어느샌가 주룩주룩 내리던 비는 그쳐 있었다. 봄비는 완연히 그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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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주제 : 봄비 !!!

봄 비 처럼 찰나의 순간 끝날 것만 같이 아슬아슬하게 연애하는 오이스가가 보고 싶었는데..

스가는 비가 아닐 뿌니고~~~ 

오이카와에게 스가가 봄비처럼 훅 내렸다 그칠 사람이라면 스가에게 오이카와는 태풍같겠지.. 우르르쾅쾅 몰아쳐서^^? 헤헿..그리고 둘은 아주 가랑비같이 연애하세여... 날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