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스가][오이스가] 나만의 너
2015. 3. 15. 22:08




쿠로오는 일어나기 무섭게 길게 팔을 뻗어 기지개를 켰다. 장시간 자고 나면 굳어 찌뿌둥하게 뭉친 몸을 풀어주기 위한 습관과도 같았다. 몇 시쯤 되었을까. 살짝 걷힌 창문 너머로 이제는 따스한 봄 햇살이 반짝이며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완벽하게 정오는 지난 빛이었다. 쥐죽은 듯이 조용한 집안을 슬쩍 살펴본 후 쿠로오는 자연스레 발을 옮겨 스가와라 방으로 향했다. 살짝 열린 방문을 소리나지 않게 신경 써 밀고선 발걸음도 죽이며 그의 침대로 향했다. 늦은 아침에 취해있는 그는 깨어있을 때의 단정함은 어디론가 버리고 잔뜩 흐트러진 꼴로 웅크려 있었다. 쿠로오는 그가 깨지 않게 슬쩍 침대에 앉았다. 다행히도 침대는 자신의 무게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매일매일 쿠로오는 이렇게 그의 아침을 지켜보는 것이 좋았다. 가만히 그를 훔쳐보며 깨기를 기다리는 순간이 즐거웠다. 자연스레 눈을 뜬 그가 저를 발견해 웃는 미소를 보이는 것이 행복했다. 오늘도 꼼지락 움직이다, 잠깐 잠에 취한 목소리를 내다 눈을 뜨곤 "잘 잤어?" 라고 갈라진 인사를 해주겠지. 그 기대감에 쿠로오는 기분이 좋아 일부로 슬쩍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그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얼른 일어나, 일어나서 나 좀 봐줘. 간절하고 장난스러운 바람을 담아. 얼마나 그렇게 그의 손을 괴롭혔을까, 뒤척이던 그는 힘들게 겨우 눈꺼풀을 올려 깨어났다. 한참을 깜박이며 주변을 확인하더니 이내 자신을 발견하곤 쓰게 웃었다. "잘 잤어?" 잠긴 그 목소리에 쿠로오는 응, 하고 대답했다. 평소와 달리 그 기운 없는 미소에 쿠로오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몸을 일으키며 눈가를 비비는 그의 얼굴에 남은 눈물 자국에도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 걱정을 잔뜩 담아 바라보자 "괜찮아, 나는."이라며 웃기지도 않은 거짓말을 해온다. 자신과 함께 동거한 지 이제 6년, 쿠로오는 스가와라의 행동과 습관 같은 것들은 이미 달달 외우고 있었다. 저 쓴 미소와 어색한 입꼬리는 절대로 거짓말이었다. "배고프지? 아침 먹을까?" 애써 밝게 목소리를 내려는 그의 행동에 짜증이나 쿠로오는 대답 없이 몸을 틀어 먼저 침대를 벗어났다. 방을 나가는 길, 그의 방 한구석에 던져진 사탕 꾸러미를 보란 듯이 뻥 발로 차며. 



어제는 화이트데이었다. 아주 우습지도 않은 상술의 날이었다. 간혹 일반인들에게도 해당하는 이벤트이긴 했지만 대부분 이날을 기다리는 것은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었다. 그리고 그 틈에는 스가와라 코우시 역시 있었다. 작년부터 그에게 남자가 생겼다. 이름이 뭐였더라? 오이카와 토오루? 아마 그런 이름이었다. 쿠로오는 그에게 조금도 정말로 조금도 관심이 없었지만 집에 와서 늘 그 이름을 부르는 스가와라 덕에 자연스레 외워버렸다. 그 남자는 겉보기엔 꽤 괜찮았다. 아니 아주 괜찮았지. 키도 크고 몸매도 길쭉하니 좋았다. 얼핏 보면 저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웃는 얼굴도 보기 좋았고 여러 여자 울릴 만한 외모였다. 그런 남자가 아주아주 평범한 스가와라 코우시의 어디에 반했는지 쿠로오는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오래 같은 시간을 보낸 쿠로오에게 스가와라 코우시는 참 괜찮은 사람이었다. 웃는 얼굴이 따뜻하고 성격도 털털하고 밝았다. 그러나 그런 건 보통 어느 인간이나 그렇지 않나? 아마 오이카와 토오루도 그정도는 할 것이었다. 그는 그 이상의 매력이 있는 남자로 보였다. 그래서 쿠로오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주 집에 찾아와 스가와라와 붙어 있는 꼴이 보기 싫었다. 스가와라가 주말에 자신을 두고 그를 택하는 것이 싫었다. 예전엔 항상 자신이 늘 우선순위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오이카와 토오루가 되어버린 것도 싫었다. 그래서 쿠로오는 언젠가 그가 스가와라에게 상처를 줄 거라며 멋대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기쁘게도- 아니 정말 슬프게도 맞아 들어버렸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모든게 완벽해 보이는 남자였지만 몇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하나는 스가와라 보다 먼 곳에서 산다는 것. 두 번째는 주변에 여자가 많다는 것. 세 번째는 연락을 잘 하지 않는다는 것. 기본적으로 쿠오로가 생각하는 문제점은 그 정도였다. 그리고 스가와라 코우시는 그것을 애써 참으며 견디는 듯 보였다. 데이트가 취소되어도 "괜찮아", 연락이 오지 않아도 기다린 주제에 "바쁘니 어쩔 수 없지."와 같은 거짓말이 쿠로오에게는 빤히도 보였다. 하지만 그 인내도 아주 가끔은 뻥뻥 터져 두 사람은 전화라던지 집 앞 현관에서 싸우곤 했다. 자신이 원하지 않았지만 본 것만 해도 10번은 넘었다. 크리스마스에도 회사 일 때문에 바쁘다며 얼굴 한번 보이지 않은 오이카와 때문에 크게 울던 스가와라를 쿠로오는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자잘자잘하게 많았다. 가벼운 연인 간의 투정부터 싸움까지. 쿠로오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오이카와 토오루가 미웠고, 자신의 소중한 스가와라가 상처 입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간은 흘렀고 두 사람은 여전히 연인 사이었다. 그냥 헤어지면 편할 텐데. 그렇게 마음고생을 하고 감정 소비를 할 바에 헤어지면 좋을 텐데. 그리고 좋은 연인, 예를 들면 자신과 같은 사람을 만나면 좋을 텐데. 가만히 지켜봐 주고 기다려주고 달래주는 그런. 쿠로오는 차마 뱉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을 감추며 언제나 가만히 상처받는 스가와라를 위로만 했다. 그리고 찾아온 것이 발렌타인이었다. 사귀고 나서 맞이하는 첫 발렌타인이라며 스가와라는 조금 들떠 있었다. 보통은 여자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이지만 딱히 두 남자 사이에서는 정해지지 않은 모양인지 스가와라는 일주일 전부터 그날을 준비했다. 그리고 참 뻔한 전개로 그날 오이카와 토오루는 빈손으로 집에 나타났다. 잔뜩 당황한 얼굴로 "미안, 코우짱. 오늘 그런 날인지 전혀 몰랐어."라며 스가와라를 달랬다. 모르긴 개뿔. 여자들에게 오늘 어마어마하게 받았을 게 뻔한 남자의 우습지도 않은 거짓말에 쿠로오는 헛웃음을 쳤다. "아니야. 괜찮아. 내가 주고 싶어서 만든 건데 뭘." 대충 얼버무리는 스가와라의 작은 등을 바라보며 쿠로오는 대신 얼굴을 구겼다. 그래도 정말로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오이카와가 "화이트데이에는 꼭 보답할게."라는 그 말에 쿠로오는 조금 기대를 걸었다. 그 말에 금세 웃어버리는 스가와라를 보고 있으려니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돌아온 어제, 즉 화이트 데이. 결론적으로 스가와라는 어제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멍청하게도 자신이 만류했지만 백화점에 가 비싼 사탕 세트를 정성스레 포장해놓고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오이카와는 완벽하게 화이트데이라는 이벤트를 잊어버렸고 스가와라는 결국 참고 참았던 그 섭섭함을 토해내고 말았다. 



"무심해도 정도가 있지. 어떻게 연인 사이에 이벤트를 잊어?"
"그런 이벤트를 챙겨야 연인인 것은 아니잖아."
"조금의 정성과 조금의 관심도잖아!"
"코우짱, 나 회사 여기서 전차로 한 시간은 더 걸려. 그래도 오늘 너 만나려고 보려고 여기 왔잖아. 이건 널 향한 내 정성과 관심에 포함 안 해주는 거야?"
"오늘은 그냥 날이 아니잖아.. 화이트데이잖아!"
"그래, 그건 잊어버린 내가 잘못했어. 발렌타인도 화이트데이도 잊어버려서 미안해. 그건 내가 잘못했어."
"나는 적어도 네가 조금은 나에게 감정을 보여줬으면 좋겠어.."
"보여주고 있어. 나도 나름대로 보여주고 있어. 코우짱."
"부족해. 나는 부족하다고."



스가와라는 결국 눈물을 보였다. 방안에서 가만히 그 울음 섞인 원망을 들으며 쿠로오는 마음이 아팠다. 왜 울리고 그래. 나도 안 울리는데. 그를 울린 남자에게 화가 났다. 그러면서 조금은 부러웠다. 그를 울릴 수 있는 그의 위치가.  



"주말에도 일에 바빠 데이트도 자주 못하고, 그렇다고 연락도 자주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사는 거리만큼 자꾸 우리 사이에 늘어나는 거리가 나는 너무... 힘들어... 토오루."
"..."
"네가 날 사랑하는 건 알아. 그런데 나는 그게 너무 부족해. 네 표현이 부족하고 부족하다고."
"코우짱-"
"서로가 원하는, 바라는 애정의 크기가 우린 너무 달라도 다른가 보다."



울음을 참아내며 찬찬히 던지는 그 말에 오이카와는 뭐라 더 변명을 하고 빌기도 했지만 스가와라는 냉정했다. 조금 많이 지친 모양이었다. 결국, 잔뜩 토라진 스가와라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 오이카와는 사탕을 받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쾅하고 닫히는 문소리를 들으며 쿠로오는 슬쩍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갔다. 현관 앞에서 엉엉 울고 있는 그의 곁에 가만히 자리를 잡고 나란히 앉았다. 그가 진정되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단지 현관문 앞에서 들려오는 "연락할게."라는 남자의 뻔뻔한 인사에 쿠로오는 스가와라 대신 전화선을 끊어버려야지 결심할 뿐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울던 스가와라는 주인을 잃은 사탕 꾸러미를 제 방에 던져놓곤 씻지도 않고 침대에 들어 엉망인 잠을 청했다. 쿠로오는 밤새 쉬이 잠이 들지 못하는 그의 곁을 맴돌다 제 침대를 찾아가 느지막한 새벽에 겨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찾아온 것이 오늘의 아침이었다. 상처받아 엉망인 스가와라 코우시와 그 모습에 짜증이 나는 자신. 조금 우울한 아침이었다. 



"먼저 먹어. 나는 입맛이 없다."



애써 기분 좋게 아침 먹자며 말을 꺼낸 것은 본인이면서 스가와라는 식탁에 앉지 않았다. 쿠로오는 제 그릇에 담긴 밥을 바라보곤 코를 씰룩였다. 자신도 입맛이 없었다. 저렇게 죽을상을 한 그를 보고 있으려니 밥이 넘어갈 리가 없었다. 쿠로오는 스가와라가 소중했다. 그것은 6년이나 함께한 시간 동안 이루어진 친구 혹은 가족과 같은 관계에서 찾아오는 소중함과도 같았고 가끔은 그를 안아주고 품어주고 싶은 연인과 비슷한 소중함과도 같았다. 아마 자신이 품은 이 감정은 포괄적인 사랑에 가까웠다. 그래서 스가와라가 아프면 자신도 아팠다. 그가 슬프면 자신도 슬펐다. 그리고- 그가 입맛이 없다니 자신의 입맛도 뚝 떨어져 나가는 것만 같았다.



"넌 먹으라니까?"



입을 열지 않는 쿠로오를 보며 스가와라가 권유했지만 쿠로오는 그저 고개를 저었다. 그가 그렇게 슬픔에 빠져있는데 혼자만 배를 채우고 편해지고 싶지 않았다. 위로 해주는 거야? 웃으며 다가와 그리 묻는 말에 쿠로오는 무심한 얼굴로 가만히 그를 들여보았다. 내가 위로하는 것 같아? 바보 같은 네가 걱정돼서 그러는 거잖아. 차라리 자신이 인간이었으면 좋을 텐데. 분명 인간이 되면 그 오이카와 토오루보다 훨씬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 텐데. 그럼 저렇게 쓸쓸하게 웃게 하지 않을 텐데. 발렌타인도 화이트데이도 크리스마스도 챙겨주고 항상 표현하고 연락하고 아껴줄 텐데. 하지만 자신은 그저 검은 고양이었다. 그가 주워와 기르는 아주 작고 힘없는. 그리고 할 수 있는 것이 그다지 없는. 안타까운 자신의 위치를 상기하며 쿠로오는 가만히 앞발을 뻗어 스가와라의 손을 두드렸다. 내가 이렇게 널 생각하고 있으니 힘내라는 의미였다.



"네가 사람보다 낫다."



스가와라가 웃으며 아픈 소리를 해온다. 그러니까! 나 사람이 되고 싶다니까? 스가와라? 사람이 되어서 널 웃게 하면 좋을 텐데. 그리곤 소리를 내어 완벽한 단어로 너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저 할 수 있는 건 언제나 지켜보고 곁에 있어주는 게 전부라 참 답답했다. 쿠로오는 눈앞에 놓인 밥그릇을 밀어내곤 자신만이 차지할 수 있는 그의 허벅지로 가볍게 올라타 목을 뻗었다. 그리고 까슬한 혀를 빼내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며 목덜미에 뺨을 비볐다. 간지러운지 목을 울리며 웃는 그의 조금 밝은 목소리가 안심이 되었다. 덥석 제 몸을 잡아 안으며 "나는 너만 있으면 돼."라는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응, 나도 너만 있으면 돼. 스가와라. 쿠로오는 자신을 끌어안고 조용히 숨을 뱉으며 제 쓸쓸한 기분을 삼켜내는 스가와라를 받아주었다. 가만히 안겨 그가 언제나처럼 다시 괜찮아지길 기다렸다. 늦은 아침, 오늘은 그를 달래주고 전화선을 씹어 끊어놓고 혹여 오이카와 토오루가 찾아와 쾅쾅 현관을 두드리면 남들 다 보란 듯이 얼굴에 상처를 내버려야지. 쿠로오는 오늘의 할 일을 떠올리며 기분 좋은 울음을 뱉었다. 말이 되지 못하는 제 울음소리가 얄미웠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의 하루와 끝은 언제나 자신과 함께였다. 웃고 즐거운 그 모습도 온전히 남겨진 그의 나약하고 안타까운 모습도 모두 자신의 것이었다. 자신만이 보고 함께하고 위로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생활도 썩 나쁘지는 않았다. 응, 그래. 나쁘지 않았다. 쿠로오는 제 털을 가만히 쓸어주는 부드러운 손길에 눈을 감았다. 고양이도 나쁘지는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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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른 전력 주제 / 사탕



쿠로오의 하루! 행사 다녀와서 쿠로스가 뽕이 빠지질 않아여... 쿠로스가.. 시름시름

그래서 뭔가 쿠로스가를 쓰자 했는데 이거 쿠로스가 맞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뎨송... 낮잠을 잤는데 눈을 뜨니까 9시가 넘었잖아여... 뭘 생각을 할 시간이 없잖아여...


오이카와는 사실 스가와의 관계가 나쁘지는 않은데 쿠로오의 시선으로 보면 천하의 나쁜놈이겠지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