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스가] tight
2015. 3. 4. 13:39



촤락-촤락- 손끝으로 옷걸이들을 거칠게 밀어 살피며 의상을 골랐다. 잔뜩 불만과 짜증이 엿보이는 행동과는 달리 의상을 고르는 스가와라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표정을 감추고 감정을 감추는 것은 스가와라에게는 너무도 쉽고 쉬운 일이었다. 자신의 이 분노와 슬픔은 언제나 제 안에 도사리고 있었지만 절대로 그를 밖으로 표출하지는 않았다. 몇 번의 손짓 끝에 골라낸 의상을 빼내어 먼지 한 톨 묻지 않은 테이블 위로 주름이 가지 않게 조심스레 펼쳐 놓았다. 수트 앤 타이 그리고 시계와 슈즈까지. 포멀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너무 예복스럽지 않은 느낌으로 골라놓은 의상을 보며 스가와라는 만족한 듯 돌아섰다. 화이트 앤 블랙의 조화와 포인트가 될 타쿠아즈 블루색의 넥타이는 조금의 부족함도 그리고 과함도 없는 선택이었다. 조금의 흐트러짐 없는 자신의 선택에 만족하며 이 의상을 입을 사내를 찾기 위해 막 드레스룸을 벗어나려는 찰나 아주 거칠고 요란스럽게 문이 열렸다. 심기가 좋지 않은 얼굴을 띄운 쿠로오 테츠로였다. 대리석 바닥으로 울리는 그의 구두 소리를 들으며 스가와라는 옆으로 비켜섰다. 자연스럽게 테이블로 향한 그는 비스듬하게 고개를 숙이곤 오늘의 의상을 살폈다. 



"그냥 이대로 입고 갈래."
"지금 복장은 케쥬얼해서 안됩니다."



스가와라는 그가 입은 세퍼레이트 수트를 훑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저 의상도 오늘 아침 자신이 일어나 가장 먼저 고른 것이었지만 저녁에 있을 중요한 약속을 떠올리면 저 복장은 절대로 안되었다. 너무도 가벼워 보였다. 



"너는 항상 나에게 안된다고만 하지."



드레스룸 가운데에 높게 뻗어있는 창을 바라보며 쿠로오 테츠로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넌 절대로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테고. 그리 중얼거리며 사내는 아무렇지 않게 하나하나 제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가 내미는 짙은 네이비 재킷과 연한 차이나 카라의 셔츠를 받기 위해 스가와라는 서둘러 팔을 뻗어 붙어 섰다. 하나하나 벗어 던진 그는 양말까지 시작해 자신이 골라놓은 새로운 의상을 다시 입기 시작했다. 곁눈으로 그 모습을 확인하며 스가와라는 품에 안은 옷가지들이 조금이라도 구겨지지 않게 조심스럽고 빠른 손길로 옷걸이에 걸어 한쪽으로 빼놓았다. 바로 세탁할 물건이라는 의미였다. 그렇게 제 일을 끝내고 돌아서자 테이블에 엉덩이를 붙이고 기댄 사내가 목에 두르고 있던 넥타이를 잡아 내리며 스가와라에게 건네왔다.



"이거까지 두르면 너무 딱딱해 보이잖아. 치워."
"하지만-"
"원하지도 않는 선자리 가서 여성을 에스코트하고 다정하게 말을 붙이는 것도 숨이 막히는데 진짜 목을 조를 필요는 없잖아. 스가와라."



빈정거리는 말투였다. 웃으며 던지는 그의 날카로운 말에 스가와라는 한숨을 삼켜내며 그 넥타이를 받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제 손에 넥타이가 닿기도 전에 그의 손이 빨랐다. 훅 손목을 잡아채며 당기는 강압적인 힘에 스가와라는 제대로 방어할 틈도 없이 그의 코앞으로 끌려갔다. 무릎이 부딪혔다. 손목을 잡지 않은 쿠로오 테츠로의 팔이 허리를 잡아왔다. 살짝 눈높이가 달라진 시야를 맞추기 위해 그가 고개를 틀며 목을 빼 왔다. 더운 숨이 자연스럽게 입가로 닿았으나 스가와라는 피하지도 그렇다고 눈을 감지도 않은 채로 그를 내려보았다. 곧 덮을 것만 같았던 그의 입술에서 비릿한 미소가 피어 나왔다.



"이젠 눈도 안 감네."



그가 맥이 빠진 목소리로 입술을 거두며 떨어졌다. 스가와라는 조심스럽게 그의 손에서 제 손목을 빼내려 틀었지만 강하게 붙잡힌 몸은 쉬이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곧 차 도착합니다."
"알아. 아니까, 조금만 이렇게 있자."



명령이 아닌 부탁의 말에 담긴 다정함에 스가와라는 슬쩍 티가 나지 않게 제 입술을 물었다 놓았다. 그의 페이스에 휩쓸리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또 자신은 그를 봐주고 그를 받아주고 만다. 그에게는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이게 자신의 최선이며 엄청난 노력이었다. 엄지손가락을 이용해 살살 스가의 손목 위를 문지르던 쿠로오는 조용히 물었다.



"지금 행복해?"
"..."
"네가 원하는 대로 내가 선을 보러 가잖아. 아마 크게 문제가 없는 이상 나는 오늘 만나는 여자와 약혼도 하고 결혼도 하겠지."
"..."
"네가 해야 한다고 했고 하라고 했으니까 나는 할 거야."



그가 고개를 들어 스가와라를 올려보며 낮게 말했다. 



"네가 원하는 게 이런 거라면 나는 할 거야. 마음도 없는 여자에게 웃어주고 손도 잡아줄거야. 네가 원한다면 그 여자와 난 결혼도 할 거야. 네가 하라면 그 여자에게 내 애도 줄 거야."
"..."
"나는 지금까지 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왔고 앞으로도 그건 변함 없을 테니까-"



그의 목소리가 아주 살짝, 스가와라 코우시만이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흐트러졌다. 



"너도 그래야만 해."



부드럽게 문지르던 손가락을 떼어내곤 그가 꽉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손목을 잡아왔다. 허리에 두르고 있던 팔을 당겨 제 품으로 자신을 가두었다. 



"불행한 내 곁에서 조금도 다른 곳으로 눈 돌리지 말고 내 곁에 있어야 해."



아주 슬픈 목소리였다. 스가와라는 그의 어깨에 뺨을 댈 수 없는 자신을 원망하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겁게 올라오던 무언가는 그렇게 어둠과 함께 가라앉아 사라졌다. 다시금 눈을 뜨니 평온하고 냉정하기 그지없는 눈동자가 드러났다. 스가와라는 자유로운 손을 품에서 빼내며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 



"시간 되셨습니다."



잔인도 해라. 쿠로오 테츠로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곤 스가와라의 손목과 함께 쥐고 있던 제 넥타이를 들어 둘둘 손에 감겨주며 몸을 일으켰다.



"드레스룸, 정리해."



차갑고 냉정한 말과 함께 그가 테이블에서 떨어졌다. 훅 높아진 그의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스가와라는 서둘러 고개와 허리를 숙였다. 자신이 고른 구두를 신고 바닥을 밟는 그의 울림이 어쩐지 무겁고 애처로워 보였으나 잡을 수는 없었다. 다녀올게. 그의 지친 인사와 함께 드레스 룸의 문이 조용히 닫혔다. 하지만 스가와라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아득하게 멀어지는 구두의 울림을 들리며 그가 멀어져 제 안에서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자신의 반질반질하게 닦인 신발의 앞 코를 바라보며 그렇게 버텼다. 피곤한 눈을 감았다 뜨니 아까 참아냈던 뜨뜻한 무언가가 차올라 시야가 뿌옇게 번져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손바닥에 감겨진 푸른 넥타이를 쥔 손이 떨려왔다.


그를 불행하게 만들더라도 자신은 그의 곁에 있고 싶었다. 자신이 쿠로오 테츠로를 선택하게 되면 이 아름다운 집도, 그의 반짝이는 미래도, 그의 행복도 모두 무너져 내릴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그가 불행하더라도 자신은 그의 곁에 언제까지고 서 있고 싶었다. 그의 품이 아닌 그의 빛에 가린 그림자가 되더라도 그의 곁에 남아있고 싶었다. 그가 불행하더라도 혹은 자신이 죽어가더라도. 이렇게라도 당신의 곁에 남고 싶어하는 나를 조금이라도 이해해준다면 좋을 텐데. 스가와라는 닿지 못하는 그 마음을 언제나처럼 제 안에서 품어 녹이며 천천히 손에 감긴 넥타이에 입을 맞추었다. 하지만 그 넥타이도 그것의 주인도 언제나처럼 스가와라 코우시의 것은 될 수 없었다. 변하지 않는 그 명백한 사실을 안으로 삼키며 눈을 감았다 떴다. 잘려나가는 눈물을 무시하며 고개를 들었다. 살짝 젖은 얼굴은 모든 감정을 감춘 채로 평온하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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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오가의 외동아들 쿠로오 테츠로와 어릴 때부터 쿠로오의 곁에 있었던 스가와라 코우시로

도련님과 집사....!!??!?

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