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짙게 내렸다. 그나마 빛을 반짝이는 별들도 비가 오는 밤이라 모두들 숨어 보이지 않았다. 심드렁한 얼굴로 오이카와는 머리에 얹은 갓을 조심스레 고쳐 잡아 썼다. 자신과 같은 이들은 비척비척 하고 습기가 가득 찬 날들을 좋아한다고 떠들었지만 오이카와는 달랐다. 상쾌하고, 밝고, 싱그러운 날들이 좋았다. 하지만 그런 날들은 오이카와에게는 꿈과 같은 존재였다. 대부분 상쾌하고 밝고 싱그러운 날에는 잠에 취해 깊이 꿈속을 헤맸다. 사실 말이 좋아 꿈이지 눈을 감으면 찾아오는 것은 오로지 어둠이었다. 눈을 감아도 어둠, 눈을 떠도 어둠. 어둠만이 가득 찬 세상이었다.
"일하기 싫다."
그래도 어둠에는 여러 가지 색이 있었다. 날이 맑아 쨍하니 어두운 어둠이 있었고 오늘처럼 잔뜩 구름이 껴 찐득찐득한 어둠도 있었다. 해가 뜨기 직전의 푸르스름한 어둠도 있었고 안개가 자욱한 날은 회색빛에 가까운 어둠이기도 했다. 그중에서 오이카와는 이런 찐득찐득한 어둠이 싫었다. 정말로 일하기 싫은 날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딱 한 명이네."
이런 날씨에 취약한 자신을 알았는지 다행히 오늘의 임무는 단 한 명이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명단 목록에는 덜렁 하나의 이름만 적혀 있을 뿐이었다. 오이카와는 기분 좋게 중얼거리며 제 도포 자락을 휘두르며 서둘러 몸을 움직였다. 아슬하게 서 있던 지붕에서 가볍게 내려와 굳게 닫힌 2층의 창문 앞에 섰다. 단단히 잠긴 창 너머로 곤히 자고있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 스가와라 코우시 / 남자 / 7살 / 열병 ]
명단을 확인하지 않아도 오이카와는 직감으로 저 소년이 오늘의 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단단히 잠겨 있는 창문은 자신에게 그리 큰 방해물이 되지 못하였다. 가볍게 손을 뻗어 스스로 잠금장치를 풀게 만든 오이카와는 사락거리는 도포 자락이 걸리지 않게 붙잡으며 소리나지 않게 방 안으로 들어섰다.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아이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간 지 얼마 되지 않은 물수건이 이마 위를 적시고 있었다.
"꼬마야."
오이카와는 아이를 흔들어 깨웠다. 조금의 미동도 없는 아이의 손을 잡았다. 뜨거울 정도로 열이 올랐던 몸이 금세 얼음장처럼 차게 식어갔다.
"꼬마야."
다시 한 번 불렀다.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찰나의 만남에 이름까지 부를 정도로 오이카와는 사교성이 좋은 타입이 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눈을 뜨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이름을 부를 생각이었다. 다행히도 아이는 자신이 힘을 쓰지 않도록 천천히 감긴 눈을 올려 떴다. 동그랗게 떠진 눈은 어둠에 적응하려는지 한참을 깜박이며 움직이더니 이내 제 손을 내려보았다. 검은 장갑을 낀 오이카와의 손을 내려본 아이는 다시 시선을 들어 이번에는 정확하게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안녕?"
미소 하나는 끝내주게 자신이 있었다. 일을 하면서 터득한 미소 중에서 아이용 스마일을 꺼내 들며 오이카와는 인사를 건넸다. 잔뜩 경계의 눈빛을 띤 아이는 마른 입술을 축이며 물었다.
"누구세요?"
"나는 죽음이야."
어차피 사신이라고 말한다 하더라도 아이는 그 단어를 이해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오이카와의 말에 아이는 몇 번을 더 눈을 깜박이더니 이내 웃으며 "안녕하세요." 라고 답해왔다. 참 사교성이 좋은 아이였다.
"몸은 어때? 좀 괜찮아?"
"네. 자기 전까지 너무너무 아팠는데, 지금은 말짱해요."
말갛게 웃으며 대답해왔다. 그건 네가 죽어서 그래. 오이카와는 차마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그저 웃었다. 오이카와는 개인적으로 자신의 명단에 적히는 숫자가 커다란 것을 선호했다. 이렇게 적은 숫자의 인간의 영혼을 거둬야 하는 것은 매우 귀찮은 일이었다. 눈높이를 맞추어 영혼을 옮겨야 하는 데다가 대부분은 부모와 떨어지고 싶지 않다며 울기 일쑤였다. 오이카와는 한참을 말을 골라 스가와라 코우시를 회유하기 위해 운을 떼었다.
"꼬마야-"
"네?"
"우리, 밤 산책 할래?"
"지금요?"
아이는 놀란 얼굴로 제 방의 벽에 달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멈춰진 시계를 가만히 들여보던 아이는 천천히 허리를 세워 일어나더니 물었다.
"산책하러 가면 저는 돌아올 수 있나요?"
솔직한 질문에 오이카와는 고개를 저었다. 7살이라길래 걱정을 했는데 <죽음>이 무엇인지 아이는 나름대로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오래 오래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엄마는 할머니가 영원히 주무시는 거라고 말씀했는데 저도 이제 영원히 자야 해요? 엄마도 아빠도 못 보고?"
"응."
"왜요?"
이번엔 순수한 질문이었다. 오이카와는 명단에서 본 사유를 떠올렸다. 큰 이유는 없었다. 감기와 고열로 인한 사망일 뿐이었다. 병에 면역력이 그다지 없는 어린아이들은 가끔 이렇게 크게 앓고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다지 놀랍지도 않고 크지도 않은 사유였다.
"제가 아파서 그래요?"
"응."
"엄마가 꼭 나을 거라고, 내일 심해지면 다시 병원에 가자고 했는데.. 그럼 전 못 나아요?"
"응."
"엄마도 아빠도 못 보고?"
슬슬 조금 짜증이 났다. 하지만 억지로 아이를 끌고 가는 길 내내 울음바다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기에 예의 스마일 미소를 띄운 채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한참을 고민하는듯하더니 이내 "인사는 해도 괜찮아요?" 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오이카와는 고개를 저었다. 잔뜩 시무룩해진 아이는 고개를 숙였다. 작은 머리통이 저 나름대로 가득 슬픔을 뿜어대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비가 와 해가 늦게 뜨겠지만 그래도 하나뿐인 오늘의 업무를 빨리 끝내고 돌아가 쉬고 싶었다. 어린아이가 잠긴 슬픔을 다 이해하고 기다려주기엔 자신은 그리 좋은 사신은 되지 못하였다. 우는지 어쩌는지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는 아이의 손을 놓지 않으며 오이카와는 공중에 손을 뻗었다. 공기를 밀어내듯 손바닥을 펴 움직이자 검고 커다란 구멍이 퍼져 나왔다.
"가자."
"인형, 인형 가져갈래요."
퍼뜩 고개를 든 아이가 제 침대에 놓인 토끼 인형을 챙겨 들었다. 그래, 챙겨라 챙겨. 뭐라도 하나 챙겨줘야 가는 길에 울지 않겠거니 싶어 오이카와는 흔쾌히 허락했다. 작은 품에 꼭 인형을 끌어안은 소년이 바닥에 작은 발을 내려놓았다. 오이카와는 그 발만큼이나 작은 손을 꼭 쥐고 어두운 구멍 안으로 들어섰다. 훅 끼치는 찬 바람과 함께 촘촘한 어둠으로 들어섰다. 마치 실을 엮어 뜬 것 처럼 공간에는 작은 빛들이 별처럼 들어 차 반짝이고 있었다. 다행히 아이는 놀라진 않았는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여기저기 고개를 돌리며 눈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늘에 뜬 것은 별인가요?"
"아니야, 네 마지막을 축복하는 빛이야."
"마지막인데 축복을 해주는 거에요?"
"응, 보통 착한 아이들에게만 보여."
작은 틈으로 가끔은 무시무시한 바늘이 떨어져 영혼의 등을 찌르는 경우도 있었다. 뜨거운 불꽃이 뿜어져 영혼이 비명을 지르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적막하고 반짝이는 빛은 투명하고 깨끗한 영혼에게 내리는 마지막 작별 인사이자 저승의 환영 인사이기도 했다. 아직 어린 데다 이리 어둠의 축복도 받으니 아마 저승에 가서도 여러 가지 선택지가 주어질 것이었다. 기억도 안 나는 과거의 자신처럼 저승에서의 임무자로 태어날 수도 있었고 작은 씨앗이 되어 자연에 녹을 수도 있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다시 밝은 세상에서의 삶도 선택할 수도 있고. 선택은 아이의 몫이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아이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오이카와는 그 촘촘한 빛의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다리가 아프지도 않은지 아이는 타박타박 따라 걸으며 알 수 없는 노래를 불러댔다. 음치는 아닌지 썩 나쁘지 않은 목소리였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도착한 곳은 저승으로 가는 길목의 긴 숲이었다.
"흙을 밟으면 발이 아플까요?"
숲의 입구 앞에서 아이는 제 맨발을 바라보며 물었다. 죽은 영혼 주제에 도구를 찾는 것이 우스워 오이카와는 저도 모르게 픽 웃고 말았다.
"너는 아프지 않을 거야."
"맨발인데도요? 유리를 밟거나 벌레에 물리면 어쩌죠?"
"괜찮아. 이 숲에는 너를 괴롭히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
오는 길에 축복을 받았으니 숲에서도 아무 일도 없을 것이 분명했다. 보통 사고를 친 악한 영혼은 숲에서 대부분 갈기갈기 찢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가 요란하게 난 짐승이 나타나 물어뜯기도 했으며 흙길에서 솟아난 가시가 발을 찌르기도 했다. 독을 품은 뱀들이 발목을 쥐어 잡으며 물거나 활활 타오르는 숲이 집어 삼킬 듯이 감싸고 들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를 것이었다. 아주 조용하고 적막한 숲일 것이 분명했다.
오이카와가 살짝 팔을 당기자 아이는 머뭇머뭇하더니 이내 용기 있게 발을 뻗었다.
"부드럽고 촉촉해요."
"그렇지?"
씩 저를 올려보며 웃는다. 카스테라 빵에 올라온 기분이에요! 기분이 좋은 듯 목소릴 높여 재잘거린다. 오이카와는 카스테라 빵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리 나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하며 다시 열심히 걸음을 옮겼다. 어둠이 짙게 깔린 숲에 새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곳곳에 핀 무채색의 꽃들이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댔다. 모두가 아이의 영혼을 반기고 있었다. 자신의 기억이 닿았던 과거에 이토록 활기찬 숲을 본 기억이 없었다. 여전히 꼭 품에 인형을 안은 아이는 새의 노래에 맞춰 열심히 허밍을 넣어 흥얼거렸다. 울지도 않고 꽤 씩씩한 모습이었다.
가끔 뜨거운 용암을 뿜어대는 숲의 강도 오늘은 조용히 멈추어 있었다. 가끔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수심도 오늘은 아이의 정강이 정도밖에 차오르지 않았다. 제 잠옷을 야무지게 접어 물에 발을 담그며 아이가 웃었다. 까만 물이 어둠이 가득한 하늘이 무섭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부드럽게 발을 감싸고 빠지는 물길을 헤치며 강을 건너고 나자 저 멀리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맛키!"
커다란 성문의 문지기이자 영혼 회수를 확인하는 하나마키가 흘러내리는 자신의 갓을 고쳐 쓰며 꾸벅 고개를 숙여 예의상의 인사를 건넸다.
"오늘 회수 영혼이 하나뿐이야?"
"응."
오이카와는 도포 자락 안을 뒤적여 챙겨 놓았던 명단을 꺼내 건넸다. 둘둘 가죽으로 된 그것을 조심스레 펼친 하나마키는 살포시 웃으며 "네가 코우시야?" 라며 친근하게 이름을 물어왔다.
"네! 저는 스가와라 코우시! 일곱 살~입니다~"
마치 누군가에게 배운듯이 아이가 리듬을 넣어 제 소개를 해왔다. 열은 괜찮고? 사망 이유를 살피며 묻자 아이가 웃으며 저를 올려보았다.
"죽음 아저씨 때문에 시원해서 괜찮아졌어요."
죽음 아저씨라니. 평범하게 오이카와 토오루라는 제 이름이 있는데. 거기다 제 꼴은 아직 아저씨 소리를 듣기에는 어린 편이었다. 오이카와는 풉, 하고 웃음을 터트리는 하나마키의 비웃음을 모른척 삼켰다. 뭐, 어쩔 수 없지. 이름을 안 알려 준 것은 자신이었다. 그리고 이제 안 볼 영혼에게 제 이름까지 알려 줄 정은 없었다.
"자, 그럼 이제부터 코우시는 이 형이랑 같이 가면 돼."
"어딜요?"
"이 성문을 넘어 이 세계를 관장하는 신에게 갈 거야. 그리고 네가 이제 어떻게 지낼지 결정할 거고."
하나마키는 차근차근 어렵지 않게 아이에게 심판을 설명했다. 아이는 이해를 했는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아 귀에 넣었다.
"죽음 아저씨도 가요?"
그리곤 잡은 손을 쭉쭉 당기며 물어왔다. 오이카와는 그런 스가와라를 내려보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다시 돌아가야 해."
"저 숲이랑 아까 그 빛나는 길로요?"
음, 다른데. 자신의 집은 이 성문 너머에 있었다. 눈앞의 문은 영혼을 위한 심판장으로 이동하는 길이라 자신은 평범한 입구를 찾아 다른 곳을 이용해야 했다. 하지만 그걸 하나하나 설명하기 귀찮은 마음에 오이카와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대신했다. "그럼 우리 헤어지는 거에요?" 잔뜩 풀이 죽은 목소리가 그리 묻자 죄를 지은 것도 없는데 오이카와는 없는 심장이 찌릿하게 아파져 오는 것 같았다.
"응. 이제 헤어져야지. 이 앞은 이제 이 형이 안내할 거야."
"아저씨는 외롭지 않아요?"
대뜸 던져진 그 질문에 오이카와는 하나마키를 바라보았다. 하나마키 역시 조금 당황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외롭다라, 이곳에서 그다지 쓸 일이 많은 단어는 아니었다. 어둠이 내리 깔린 곳에서 주어진 임무를 하고 남은 시간은 저 좋을 대로 보내왔다. 그 안에서 외롭다라는 감정을 느끼기에는 애초에 외롭지 않은 감정을 오이카와는 잘 몰랐다. 늘 그런 하루를 보냈고 자신의 기억으론 늘 그래 왔으니까. 그래서 아이가 던진 질문이 참으로 이상하고 어색해 대답할 수가 없었다. 눈을 깜박이며 한참을 대답을 기다리던 아이는 스스로 오이카와의 손에서 제 손을 빼내었다. 그리곤 품에 안고 있던 토끼인형을 건네왔다.
"돌아가는 길에 쓸쓸하지 않게 제 인형이 말동무가 되어 줄 거에요."
맑게 웃는 그 미소에 차마 거절은 하지 못하고 오이카와는 그것을 받아 들었다. 누군가 직접 만들었는지 엉성한 바느질이 된 인형은 오래 흐른 시간을 품었는지 여기저기 솜이 삐져나온 곳도 있었다. 아마 아이의 엄마가 어릴 때 만들어 주었던 물건인듯했다. 부모에게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하고 산책을 나온 아이는 그대신 이걸 챙긴 모양이었다. 제 부모의 기억과 마음이 담겨있을 인형을. 어색하게 그것을 쥔 오이카와에게 아이는 손을 흔들며 방금까지 자신이 잡고 있었던 손을 하나마키에게 내밀었다.
"나중에 또 만나요."
기약 없는 인사를 하며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는 커다란 문 안으로 걸었다. 안 그래도 작은 몸이 점점 작아져 사라질 때까지 오이카와는 가만히 인형을 쥔 채로 아이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어느새인가 비는 그쳐 있었다. 꽤 오래전에 그쳤음에도 오이카와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찐득찐득 떠다니던 구름도 사라지고 별이 들어차 있었다. 꿉꿉하게 짓누르던 공기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거두어져 있었다. 어느새인가 오이카와의 머리 위에는 상쾌하고 밝고 싱그러움을 담은 어둠이 하늘 위를 둥둥 부유하고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어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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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2일 스가스가스가데이. 삼스가!
자기 전에 갑자기 어린 스가가 보고 싶어서... 오이카와가 저승사자로 나온 이유는
갓 쓰고 도포 자락 휘두르고 다니는 것이 보고 싶은 나의 욕망! 급하게 막 생각나는 대로 쓴거라 저승 설정 완전 개판...
혼자 전력 60부운! 외치면서 썼는데 100분이 되어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