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스가] 너와 나의 거리(距離)
2015. 1. 29. 00:01

모브x스가 요소 주의. 













부드럽게 입술이 닿았다. 스가는 자연스럽게 시트위로 몸을 뉘이며 사내의 금발을 손으로 휘어 가볍게 쓸어 잡았다. 남자가 웃었다. 입술이 맞물린 채로 쿡쿡 웃는 남자의 웃음소리를 삼키며 스가는 나른하게 숨을 뱉었다. 그마저도 모두 남자의 입안으로 사라졌다. 



"아 잠깐."
"왜?"
"방금 무슨 소리 나지 않았어?"



황급히 입술을 거두며 묻는 리암의 말에 스가는 인상을 찌푸렸다. 왜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할까. 끼익 몸을 일으키는 그의 행동에 스가는 어쩐지 달아올랐던 분위기가 푸스스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흐트러진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리고 그때였다. 쾅쾅쾅, 아파트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린 것은.



"봐, 맞지?"



의기양양하게 묻는 그의 장난스러운 얼굴에 스가는 픽 웃고 말았다. 



"찾아올 사람 없는데. 대신 좀 나가줘."



스가가 서둘러 침대 밑에 떨어진 자신의 티셔츠를 찾아 걸치며 부탁했다. 누군지도 모르면서 리암은 가볍게 침대에서 벗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스탠드만 켜놓은 영롱한 불빛이 그의 널찍한 등과 척추뼈를 비춰냈다. 찰칵, 문고리를 풀어내는 그를 확인하며 스가는 서둘러 바지까지 챙겨 입고 몸을 일으켰다. 창밖에는 캘리포니아의 안개가 어둠과 뒤엉켜 둥둥 떠 있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좋았던 분위기가 산산조각이 나 버린 것이 조금은 불만스러웠다.



"코-시. 널 찾아왔다는데."
"누가?"



이 시간에? 날? 왜? 전혀 짐작 가는 사람이 없어 스가는 흐트러진 머리를 서둘러 귀 뒤로 정리하며 현관으로 나섰다. 그리고 문 앞에 서 있는 뜻밖의 인물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굳고 말았다. 동시에 심장 어딘가가 뚝 떨어진 것도 같았다. 갑자기 턱 막힌 목을 겨우 열어 그의 이름을 불렀다. 



"토오루."



여기 있으면 안 될, 아니 있을 리가 없는 사내가 자신의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커다란 짐가방을 든 그는 어이없다는 듯 작게 웃더니 이내 쓰고 있던 비니를 벗었다. 탈탈 그가 흔드는 대로 그의 갈색 머리가 복도의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누구야, 친구?"
"아.. 응."
"일본에서 온? 그런데 표정이 왜 저래?"



악의없이 그저 궁금해서 묻는 리암의 말에 날이 선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영어로 떠들지 마."



화를 품은 그 목소리에 스가는 서둘러 옷걸이에 걸려있던 자신의 후드 점퍼를 걸쳐 입었다. 불안함이 얽혀 공기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나가, 나가서 이야기하자. 서둘러 오이카와를 내보내려는 스가의 행동에 지켜보던 리암이 손목을 붙잡아 왔다. 무척이나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금방 올게."



전혀 괜찮지 않았지만 이 상황을 리암이 대신 해결 할 수는 없었다. 스가는 쓸쓸하게 웃으며 오이카와의 팔을 당겼다.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 복도에서 소란을 일으켜서 집에서 쫓겨나거나 곤란한 상황에 처하는 것은 사절이었다. 물론, 지금 이 순간보다 곤란한 일은 없을터였지만.

말없이 오이카와를 아파트 건물로 끌고 나오면서 스가는 자신을 찾아온 이 연인에게 어떠한 말을 해야 하는지 떠올렸지만 하얗게 질려버린 뇌는 움직이는 것을 거부했다. 도망쳐버렸다. 철컹-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아파트 문이 닫혔다. 텁텁한 안개가 자욱한 거리로 끌려 나온 오이카와는 스가가 붙잡았던 자신의 팔을 비틀어 뺐다. 부드럽지도 다정하지도 않은 행동이었다. 마치 더러운 것에 닿았다는 듯한 그 표정에 스가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누구야."



거칠게 가방을 내려놓으며 뱉는 명령에 가까운 물음에 스가는 입술을 축였다. 목이 아팠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같은 사무실 쓰는 사람이야. 회사 동료."
"지금 내가 본 것, 내가 생각하는 그대로 이해해도 되는 거지?"
"..."
"왜 부정 안 해?"
"너에게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으니까."



끔찍한 소리였다. 위선자와 같은 소리였다. 스가는 그리 말하면서도 자신의 혀를 깨물어 버리고 싶었다. 오이카와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마른 웃음소리가 하얀 입김을 타고 흘렀다. 자신을 뻔뻔하다고 욕해도 할 말이 없었다. 하하, 그렇게 웃음을 어둠에 흘려보낸 오이카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널 보러 11시간 넘게 비행을 했어."
"..."
"널 놀라게 하려고, 널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11시간을 비행했어."
"..."
"널 볼 생각으로 두근거리며 11시간을 날아 왔는데- 날 기다리는 게 기뻐하는 애인이 아니라 다른 남자를 집에 끌어들인 애인이라니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온다."
"... 미안해."
"미안해? 미안은 하니? 진짜 나에게 미안은 해?"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그럼 내가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하는데? 어떤 식으로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미 오늘 하루를 끝낸 가게들로 침묵만 남아있는 거리에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울렸다. 고요만이 쌓여있는 밤에 오이카와의 슬픔이 울렸다. 곧 울 것만 같은 그의 목소리에 스가는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외로웠어."
".."
"무슨 말을 해도 변명과 핑계밖에 되지 않을 거라는 거 알고 있어. 아는데... 정말 나 외로웠어. 너랑 떨어지고 이곳에서 지내면서 나 진짜 많이 힘들고 외로웠어. 그때마다 나는 널 찾았는데 넌 내 옆에 없었잖아."
"지금, 내 탓으로 돌리는 거야?"



아, 얼마나 치졸한가. 하지만 자신에게도 할 말은 있었다. 황당해 하는 오이카와를 똑바로 바라보며 스가는 그동안 안으로 삼켜왔던 눅눅한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았다. 치졸하고, 이기적이고 혹은 못났다고 욕해도 꼭 그가 알아주었으면 했다. 이 곪은 자신의 외로움을. 



"왜 연락 안 해? 왜 전화 안 해? 왜 메일 안 해? 나는 네가 걸어주는 전화가 새벽이든 아침이든 항상 기쁘게 받았을 거야. 우리 최근에 연락한게 두 달 전인 건 아니? 너 시즌 중이라 바쁘고, 선수 생활하느라 정신없는 거- 그래 그거 알아. 알고 있어. 그래도 너 처음에 나 보내고 나서 내 전화 기쁘게 받아줬잖아. 꼬박꼬박 메일도 보내줬잖아. 그러다 어느 날부터 그게 삼일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이주에 한 번, 그러다 한 달에 한 번. 너 바쁜 거 알아. 근데 너만 바쁜 거 아니야, 나도 바빠. 나는 그 시간 속에서 틈틈이 널 그리워했어. 아무리 바빠도 1분, 아니 10초정도 날 위한 시간은 없는 거야? 너에게 전화해도 받을까 말까, 메일을 보내도 넌 내가 5번 보낼 때 1번 답장할까 말까! 겨우 닿았다고 하면 괜찮아! 잘 있어! 훈련은 힘들지만 버틸만해! 똑같은 이야기. 너는 나에게 할 말이 그거밖에 없었어?!"



화를 낼 생각은 없었는데 스가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분명 누군가가 소란스럽다고 신고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크기로. 흔들리기 시작하는 눈동자와 목소리를 묵묵히 받아내며 오이카와는 기가 찬 얼굴을 그려냈다. 



"....그게 네가 지금 바람 핀 이유라는 거야?"



아니, 그건 이유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하소연이며 참아왔던 무언가에 가까웠다. 그리움? 외로움? 쓸쓸함? 모르겠다. 그것을 무엇이라 표현해야 하는지 스가는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아니야. 어떤 이유도 내가 널 두고 바람 핀 것에 정당화는 시킬 수 없어. 알아! 아는데. 적어도 내 생일에 연락 정도는 해줘야지. 아무리 바빠도 내 생일에 축하한다는 그 한 줄 정도의 메세지라도 메일로 보내줬어야지. 아파서 네 목소리 듣고 싶어 전화하면 너 피곤하다고 자다 일어났다며 나중에 통화하자고 끊었잖아. 너 그리고 다음날 전화했었니? 아니, 안 했어. 두 달 전에 우리 마지막으로 통화한 거? 그거 너랑 통화한 것도 아니야. 전화했더니 너 술 먹고 뻗었다며 너희 팀 여자 매니저가 받더라. 그러고 나서 나는 다음날 네가 나에게 연락이라도 한 통 해줄 거라 생각했어. 그 이후로 너 나에게 어떠한 연락 없었잖아. 두 달동안 이라고 오이카와 토오루씨. 매번 연락하고 기다리고 널 찾는거, 그게 얼마나 사람을 힘들고 외롭고 지치게 만드는 줄 알아? 11시간 비행? 나는 17시간의 시차를 뚫고 밤 낮 관계 없이 널 보고싶고 만나고 싶고 그리워했어. 넌 근데 여기서 날 방치했잖아!"
"그걸 방치라고 생각하지 마. 해외에서 자리 잡는 너, 귀찮게 하고 내 연락으로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어. 그래, 처음에는 보고 싶고 그리워서 귀찮게 전화기 붙잡고 그랬었지. 그래도 나에게 내 하루가 있듯이 너에게도 네 하루가 있다고 생각했어. 언어며 시차며 이 도시며! 니가 적응하고 버티는데 내가 그리움으로 남아 널 괴롭히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


자신이 낸 만큼 똑같이 오이카와가 화를 내왔다. 그가 던지는 말이 스가에게는 모두 변명이며 핑계와도 같이 들려왔다. 물론, 오이카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이렇게 서로 상대가 아닌 자신을 변호하기에 급급했다. 그 어긋남과 같은 목소리를 쥐어짜며 스가가 말했다.



"...난 네가 나의 괴로움이나 향수병이 된다고 생각한 적 없어."
"...어쨌든. 내 배려를 방치라고 생각했다니. 어디서 어긋났는지 알겠네. 그렇다고 내가 널 정말 내버려뒀다고는 생각하지 마. 그랬다면 11시간 비행기에 처박혀서 여기까지 안 왔어."
"그냥... 말하고 싶었어. 내 외로움이 어떠한 변명도 핑계도 될 수 없다는 거 알아. 그러니 너에게 용서받고 싶어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야."



스가는 어느새인가 뺨을 적시는 자신의 눈물을 서둘러 닦아 훔쳐냈다. 오이카와 토오루와 사귄 지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중 1년은 이렇게 떨어져 지냈지만 어쨌든 6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했다. 10대의 마지막에 만나, 20대의 절반을 함께 보냈다. 오롯이 그를 보며 오롯이 그를 마주하며 보낸 시간들이 6년이나 있었다. 그 끝이 이런 식으로 엉망이 된 것이 유감이었고 미안했고 안타까웠다. 그리고 그 끝을 만든, 시작한, 자신이 거기에 대해 변명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 왜 그럼 헤어지자고 말 안 했어? 새 사람 생겼다고 말했어야지."
"하려고 했어.. 한 달 전에 너에게 전화했었어."
"..."
"전화 네가 안 받았잖아."
"..."
"그래서 그냥 끝난 줄 알았어. 우리가. 아마 누구든지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스가는 서러움과 미안함이 뒤섞인 엉망인 목소리로 말했다. 덤덤하고 평온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흐느끼는 목소리는 자꾸만 소리를 엇나가며 터져 나왔다. 오이카와는 한참을 훌쩍이는 스가를 앞에 두고 말이 없었다. 무언가 말을 하려고 입을 벙긋했으나 이내 다물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분노와 배신감과 미안함과 그리고 쓸쓸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 우리는 철이 덜 들었나 보다."



겨우 그의 입을 타고 나온 말은 그것이 전부였다.



"내 배려도 너의 외로움도 결국 서로에게는 변명거리 밖에 안 되잖아. 서로를 위한 감정이 아니라 결국은 둘 다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강요하면서 멋들어지게 포장만 했었네. 연인 사이에 기본적으로 있어야 할 이해도, 배려도, 인내도 심지어 신뢰도 지금의 우리에게는 존재하질 않아."
"..."
"아니면 너무 철이 들어서, 서로만 바라보느라 정신없었던 10대 시절과는 달리 현실에 눈에 뜨인 걸지도 모르지. 나는 내 인생을 더 우선시하면서 널 배려한다 착각했고 너는 내 배려를 방치라 느끼며 외로워하느라 날 배신했고. 그래- 그랬나 보다."
"...미안해."
"사과 하지마. 그리고 울지도 마. 네가 우니까 내가 꼭 진짜 나쁜놈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별로 안 좋아."



그 냉정한 말에 스가는 서둘러 다시 눈물을 닦아냈다.



"그냥, 웃음이 나온다. 어쨌거나 이렇게 끝이 엉망진창이라니. 어쩐지 우리가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려고 해도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 생각하면 할수록 아까 네 집 문을 열어주던 그 남자만 생각나."
"...."
"그런데 지금 제일 화가 나는 건-"
"..."
"저 집에서 네가 끌고 나온 게 그놈이 아니라 나라는 사실이야. 니가 도망치듯 내보낸 사람이 그놈이 아니라 나라는 사실이라고."



그의 괴로움과 마주하며 스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깊게 입술을 무는 그는 눈물을 참으려는지 시선을 돌려 올리며 달 조차 보이지 않은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네가 의도를 했던, 아니던 그 순간에 네가 이 거리로 끌고 나온 사람이- 쫓아낸 사람이 나라는게 화가 난다고."
"토오루-"
"내 이름 부르지 마. 그냥 그렇게 해줘."



쓰게 웃으며 그가 부탁했다. 그리고는 크게 숨을 쉬었다. 갈게, 잘 지내. 이별의 말은 그것이 전부였다. 거칠게 내려놓은 가방을 다시 챙겨 든 오이카와는 조금의 미련도 없다는 얼굴로 눈물이 마르기 시작한 스가를 두고 등을 돌렸다. 반사적으로 스가는 손을 뻗었지만 손 끝이 그의 옷에 닿기도 전에 내려앉고 말았다. 자신은 그를 붙잡을 자격이 없었다. 붙잡는다고 하더라도 그는 더는 자신에게 붙잡혀 줄 리가 없었다.

오이카와 토오루와 자신의 사이에는 17시간이라는 거리가 있었다. 5,500mile의 거리가 있었다. 눈을 뜨면 낮인 세상에서 그는 밤인 거리가 있었다. 가끔은 그가 빨리 달력을 넘기고 자신이 뒤늦게 넘기는 순간의 거리도 있었다. 머리 위에 해가 떠 있는 동안 그의 머리 위론 달이 떠 있는 거리가 있었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지 못하는 거리가 있었다. 그 거리들은 말도 안 되는 외로움과 오해로 뒤섞여 아무렇지 않게 6년이라는 관계를 어긋나게 만들었다. 조금씩 천천히.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음을 주었던 사람, 사귀었던 사람, 손을 잡았던 사람, 입을 맞췄던 사람- 사랑이라 표현할 수 있는 그 감정의 모든 처음을 가져간 상대가 어둠 속에 가려 사라질 때까지 스가는 움직이지 않았다. 어떠한 얼굴을 하고 이 순간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울어야 하는지, 시원섭섭하다 웃어야 하는지. 도무지.

더이상 오이카와 토오루와 자신의 사이에 거리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게 무척이나 이상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다가왔다. 스가는 천천히 몸을 돌려 자신의 낡은 아파트로 몸을 감추었다. 처음으로 맞이한 이별은 그렇게 스가의 안에서 소리 없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이내 곧 사라질 조용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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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후회해서 울고 불고 토하고 쇼하는 나쁜 스가가 보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늘 그러하듯 쓰면서도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고.

내가 스가를 참 이뻐하는지 얘에게 변명거리를 이렇게 만들어주고.

일본과 캘리포니아의 거리가 5,500mile의 거리인지는 나도 모른다. 그저 일본웹에서 검색을 해봤다.
캬캬. 지금 거기는 아직 28일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