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카나] 지배자의 지배자
2019. 5. 1. 17:57

약품과 소독 냄새가 코를 찔렀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복도를 가득 채운 것은 어두운 전투복을 갖춰 입은 부대원들뿐이었다. 평생 인연이 없을 사람들 틈에 둘러싸여 하카제 카오루는 가만히 자신의 앞치마를 쥐었다. 커피 얼룩 따위가 군데군데 묻어있는 앞치마가 참 장소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그리고 무거운 공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슬쩍 웃었다.

“웃음이 나오나 봐?”

하지만 그 작은 미소를 기가 막히게 발견한 반대편의 남자가 바로 지적해왔다. 아. 하카제는 절대 고의가 아니었다는 뜻을 담아 입만 벙긋했다. 분명 멍청해 보이겠지. 하지만 괜한 변명을 해 상대를 자극하거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상대는 

“뭘 봐?”

그 센티널 부대 중에서도 최고 등급이라는 오기인 중 하나인 사카사키 나츠메였으니까. 치켜뜨는 호박색에 가까운 눈동자에 하카제는 서둘러 시선을 돌렸다. 아니 물어서 쳐다봤더니 뭘 보냐니. 언행이 최악이었다. 하지만 센티넬 그것도 오기인 중 하나인 사카사키 나츠메에게 대놓고 그리 말을 할 수는 없었기에 눈동자를 빙그르르 돌려 다시 커피 얼룩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를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그러니까 모든 일은 일주일 전, 아주 한가로웠던 토요일 오전이었다. 
하카제 카오루가 주 6일, 직장이란 이름으로 몸을 담고 있는 곳은 시나가와역 근처의 브랜드 커피숍으로 평일에는 회사원들로 주말에는 역을 이용하는 여러 사람으로 북적이는 곳이었다. 단체 손님도 많았고 관광객도 많은 곳이라 5분에 커피 10잔씩 빼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나, 그날은 좀 달랐다. 

“... 60잔이요?”

출근하기 무섭게, 오픈 준비에 들어가기도 전에, 그리고 앞치마를 두르기도 전에 들려온 점장의 말에 하카제는 당장 퇴근하고 싶다는 말을 머릿속에 그렸다. 매장 전화기를 가만히 내려놓은 점장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응. 경찰이야. 새벽에 항구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비상인가 봐.”라 중얼대듯 떠들었다. 새벽에 일어난 사건은 하카제도 출근하는 길에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시리얼과 함께 시작한 뉴스에서는 제로가 시나가와 항구를 습격했다고 떠들었다. 그로 인해 컨테이너 창고 수십 개에 불이 붙었고 경비 직원이 3명이 사망,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자면 ‘처형’당했다는 소식이 아침부터 우유에 말려 삼켜졌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도시의 아침은 지난 새벽의 사건으로 매캐한 공기와 함께 불안이 들끓고 있었다. 그걸 뚫고 겨우 출근했더니, 더 무시무시한 커피 60잔의 오더라니.

“심지어... 다 아메리카노도 아니네요?”

중간에 적힌 카라멜 마끼아또와 모카 따위의 리스트를 보며 하카제는 혀를 찼다. 비상사태에 아메리카노를 찾는 것도 신기했지만, 그 틈에 다른 주문을 넣는 신경 줄은 더 신기했다. 하지만 놀랍지도 않았다. 경찰은 제로를 상대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폴리스 라인을 치고 언론을 통제하고 시민들이 사건 현장을 훼손하지 않게 만드는 바리케이드 역 정도려나? 대부분은 센티넬 부대의 몫이었다. 

“어릴 때는 제로 뉴스만 나와도 무서워서 침대에서 안 나왔던 적도 있는데 말이지, 이제 코앞에서 사람이 죽어도 아무렇지 않다니. 내가 미친 거 같아.”

오픈을 미룰 생각인지 매장 정리 대신 커피 바에 선 점장이 조용히 말했다. 하카제 역시 동의하듯 끄덕이며 앞치마를 두르고 머신 앞에 섰다. 

수백 년 전, 일본이라 불렀던 땅은 어둑한 역사와 시간의 흐름에 떠밀려 조각나고 갈라졌다. 이 땅만 아니라 대부분의 육지가 바다에 가라앉거나 혹은 피로 얼룩지거나 여러 이유로 사라지고 태어났다. 많은 사람이 희생당하거나 혹은 죽었다. 멸망에 가까운 날들 속에서 목숨이 질긴 벌레처럼 인간들은 살아남고 버티고 이윽고 진화했다. 그렇게 진화 속에서 태어난 존재가 센티넬. 누가 시작이고 어디서부터 시작인지 모를 돌연변이가 세상에 나타났다. 그들은 몰아치는 바람을 잠재우고 땅을 녹이는 비를 멈추고 무너지는 땅을 일으켜 세웠다. 인간들은 그들을 동경하고 신성시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내보이는 힘과 능력을 필요로 하며 기대 기생해왔다. 하지만 그도 잠시, 지배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인간들은 이윽고 센티넬을 두려워하기 시작했고 그들에게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지배하는 위치에 서려 들었다. 차별과 속박. 괴물이라는 말로 그들을 난도질해 이윽고 목줄을 쥐게 되고 평화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게 되는데, 그 일로 수백만 명에 가까운 센티넬이 희생되었으며 <평화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여전히 불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평화의 길 사건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 제로. 0을 표현하는 과거의 언어로 모든 것을 무, 제로로 돌리겠다는 의지로 모인 센티넬들이었다. 그들은 평화의 길을 무너뜨리고 인간이 없는 땅을 목표로 움직이는 집단이었다. 그들은 센티넬과 함께 세상에 나타났다고 일컬어지는 가이드, 즉 센티넬을 통제할 수 있는 지배자들을 사냥함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찾아 나섰다. 그로 인해 이 일본, 아니 동경에서만 수천 명의 가이드가 사라졌다. 센티넬과 정신적인 교감을 나눈다고 알려진 가이드들이 죽어 나가기 시작하자  그걸 막기 위해 탄생된 것이 동경 정부 소속 센티넬 부대로 겉으로는 인간과 함께 살아가기를 택한 센티넬들이 모인 곳이라 언론에선 떠들어대지만, 실상은 정부에서 가이드의 안전과 차별 없는 대우를 내세우며 그들의 능력을 착취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선이었다. 하지만 하카제를 비롯해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제로와의 전쟁에서 살아남을 능력 따위 없는 게 현실이었고 정부가 볼모를 잡고 인간 병기를 부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제 손이 더러워지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나름의 존경의 눈빛을 보내며 공존하고 있었다. 

그런 세상에서 29년을 살아남았더니 어디가 불에 타고 혹은 물에 잠겨도 출근이 가능했고 커피 60잔 타는 것도 가능했다. 아마 옆집에 숨어 있던 가이드가 살해당해 전시된다고 해도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맞이할 거 같다는 생각을 하며 하카제는 차근차근 완성된 아메리카노 컵을 정리했다. 

“60잔은 언제 픽업하러 와요?”
“30분 뒤에.”
“양심들이 없네.”

스팀을 치며 하카제는 툴툴댔다. 아메리카노 총 55잔을 포장하고 마지막으로 카라멜 마끼아또와 모카에 넣을 밀크를 만드는 중이었다. 피처를 끊임없이 데워 쫀쫀한 거품까지 만들어 뚜껑을 덮자 타이밍 좋게 클로즈 푯말이 걸린 문을 열고 경찰이 들어섰다. 누가 봐도 아직 제복을 걸친 지 얼마 되어 보이지 않는 말간 얼굴이었다. 혼자 60잔을 어떻게 들고 가라고. 케리어들 앞에서 허옇게 질린 얼굴을 보니 한숨이 나왔다.

“곧 오픈조 출근할 타임이니까 카오루군이 같이 다녀와. 정리는 내가 할게.”

누군가 자리를 비워야 한다면 점장보다는 자신이 나가는 게 맞았지만, 그래도 경찰과 커피 60잔을 옮기라니. 최악이었다. 하지만 싫다고 말할 상황은 되지 못했기에 하카제는 애써 표정을 수습한 후, 경찰이 끌고 온 경찰차에 커피가 무너지지 않게 탑을 세웠다. 살다 살다 여러 손님을 만나봤지만, 이런 손님은 또 처음이라 계속 헛웃음이 나왔다. 죄송합니다. 어쩔 줄 몰라하는 신입 경찰에게 미안했지만 웃음은 쉬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렇게 커피와 함께 팔자에도 없던 경찰차에 올라 도착한 항구에는 예상대로 꽤 많은 경찰 인력과는 달리 느긋함이 가득했다. 방송국 카메라들과 기자들을 막는 이들을 지나쳐 폴리스 라인을 넘어서자 대부분은 손을 놓고 서있을 뿐이었다. 

“생각보다 여유 있네요?”

옆에서 열심히 커피를 돌리는 신입에게 슬쩍 묻자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물가를 눈짓했다. 

“할 수 있는 게 없거든요. 놈들이 조각낸 걸 물에서 다 건져낼 때까지는. 그래도 두 구는 찾아냈고 이제..”

정확하게 말하지 않아도 뭘 이야기하는지 짐작이 되어 하카제는 서둘러 귀를 닫았다. 어떤 식으로 처형당했는지 뉴스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죽었구나 했지, 조각이 나 물에 가라앉았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귀는 닫았으나 머릿속으로 쏟아 들어져 오는 온갖 상상에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트는데 무언가가 물 위에서 튀어나왔다.

“어?”

피할 틈도 없이 바로 옆으로 날아든 것이 사람을 이루고 있던 무언가라는 걸 알아본 하카제는 절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둔탁하게 바닥을 울리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뭐에서 나온 건지는 절대로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서둘러 달려오는 경찰들에게서 떨어져 반대로 걷자 헛구역질을 하며 따라나서던 신입이 죽어가는 얼굴로 “괜찮으세요?”라 물어왔다. 괜찮을 리가 있나. 당장이라도 불어 터진 시리얼을 다 게워내고 싶은 기분이었다. 

“모카는 누구에게 드리면 되죠?”

얼른 해치우고 돌아가자. 그런 생각을 하며 손에 남은 하나의 커피의 주인을 부르자 신입이 곤란한 얼굴로 웃었다. 왜요, 왜 그렇게 웃는데요? 하고 묻기 무섭게 다시 한번 물 안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다행히 이번에는 온전한 형태가 있었다. 그리고 숨까지 쉬고 있었다. 

“저기요.”

신입은 정확하게 턱 짓으로 방금 물에서 나온 사람을 가리켰다. 푸른 머리의 사내는 마치 샤워를 끝낸 강아지처럼 머리를 흔들어 물을 털어 내더니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경찰에게 타월을 받아 둘렀다. 멀쩡해 보이는 얼굴에 비해 아스팔트를 밟는 맨발이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 아시죠? 오기인 신카이 카나타요. 단 거 좋아하시거든요.”

그가 여전히 헛구역질할 거 같은 얼굴로 일렀다. 센티넬 부대의 얼굴이자 대표로 알려진 특수 등급인 오기인 중 하나인 신카이 카나타의 얼굴은 하카제 카오루도 잘 알고 있었다. 뉴스에서 몇 번이고 봤으니까. 물을 다루는 센티넬로 알려진 그는 희한하게 수영은 못한다고도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방금 물에서 나오지 않았나? 불필요한 궁금증을 떠올리며 하카제는 천천히 신카이 카나타에게로 다가갔다. 경찰에게 무언가를 보고하는 그는 조금 추운지 두른 타월을 꽉 쥐고 있었다. 저 많은 조각을 건져내려면 꽤 오랜 시간 물에 있었을 텐데, 손은 약간의 물기를 제외하곤 아주 곧고 멀쩡했다. 

“저기, 모카 시키신 분?”

그를 자신이 안다고 해서 그가 자신을 알 리는 없었기에 대뜸 이름을 부를 수는 없었다. 그리고 무슨 연예인을 본 것처럼 와, 신카이 카나타 맞죠?라고 호들갑을 떨고 싶지도 않았고. 그래서 대충 손님을 다루듯 하카제는 조용히 말을 걸었다. 조곤조곤 경찰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얼굴이 천천히 돌아 이쪽을 향했다. 푸른 눈, 바다와는 색이 달랐지만 그럼에도 푸른 눈이 곧장 자신의 눈을 들여보았다. 어째서인지 눈이 따가웠다. 간지러운 거 같기도 했다. 눈이? 아니 전신이. 전류가 휘감기듯 발가락부터 시작해 무언가가 찌르르 몸을 타고 흘렀다. 뭐야, 이거. 하카제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서둘러 컵을 내밀었다. 센티넬이 있는 곳이니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은 나쁜 일일 게 분명했다. 그러니 빨리 모든 걸 끝내고 돌아가고 싶었다. 센티넬하고 오래 엮이고 싶지 않았다.

“어..”

마중 나온 손에 컵을 들려주었다. 아직 모카는 따뜻했다. 하지만 컵은 닿지도 못하고 그대로 추락했다. 갈색 액체가 쏟아져 연기를 뿜어대며 땅을 적셨다. 

“신카이씨!!!”

컵이 떨어지듯 신카이 카나타가 그대로 바닥에 쏟아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하카제는 그를 부축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몸을 뒤로 뺐다. 그 틈으로 근처에 있던 경찰과 부대원들이 놀라 달려왔다. 아침부터 물 안에 있어서 기력이 쇠한 모양입니다. 누군가가 그렇게 외쳤다. 제 탓도 아닌데 심장이 덜덜 떨렸다. 사람 조각보다 눈앞에서 쓰러지는 센티넬이 더 충격적이라니, 인간으로서 끝난 거 같은 기분이 들어 조금 우울하기도 했다. 

“밖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졸지에 휘말린 커피숍 직원이 안쓰러운지 함께 온 신입이 다가와 챙겼다. 하카제는 누군가가 밟아 찌그러진 컵을 바라보았다 서둘러 시선을 돌렸다. 

그게 바로 저번 주 주말, 토요일 오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돌아와서 어땠냐는 점장에게 별일 없었다는 거짓말로 그녀와 자신을 속이고 다시 멀쩡한 하루로 돌아갔다. 아니 그렇다고 착각했다. 정말로 멀쩡한 하루로 돌아갔더라면 일주일 만에 출근한 자신을 센티넬 부대에서 납치하듯 병원으로 끌고 오진 않았을 테니까. 거기다 눈앞에 사카사키 나츠메라니. 그의 능력은 언령이었다. 그가 입을 열어 자신에게 저주를 걸면 당장 여기서 죽을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도대체 왜 자신이 이런 자리에 와 있는 걸까. 하카제는 앞치마를 다시금 꽉 쥐었다. 

“내 언령에는 제한이 있어. 그걸 당신 같은 머저리에게 쓰고 싶진 않으니까 그렇게 죽기 직전 얼굴로 이쪽 보는 거, 그만두지 않을래?”

안 그랬다간 정말 죽일 거 같으니까. 몇 번째인지 모를 그의 으르렁을 들으며 하카제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그렇게 몰아붙이는지 마세요. 그가 필요하니까.”

아까부터 사카사키의 옆에 앉아있던 어두운 머리색의 남자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필요할 수도 있다니, 도대체 뭐가. 불안하게 눈동자를 굴리자 그가 짙은 눈동자로 이쪽을 마주 해왔다. 

“히다카 호쿠토입니다. 센티넬 부대 일반 대원이고요. 하카제 카오루씨의 데이터가 우리 기관에 남아있지 않아서 묻는데.. 혹시 학력이 어떻게 됩니까?”
“... 초등학교까지입니다.”
“아하, 그럼 16세 필수 검진을 받지 않으셨습니까?”

손가락으로 쓱쓱 들고 있던 패드를 밀며 묻는 그의 질문에 하카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 그 대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사카사키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그도 그럴게 중학교에 입학은 했으나 사고로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15세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혼자 막 남겨진 소년에게 건강 검진이 그렇게 중요하겠냐고. 필수적이라는 건 후에 들어서 알았지만 지금껏 크게 아픈 적도 없었고 병에 걸린 적도 없었기 때문에 받은 적이 없었다. 그래도 건강은 챙겨야지,라고 누가 혀를 찰 거 같은 사고방식이었지만 어쨌거나.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그게 지금 이 상황과 무슨-

“저희 생각으론 하카제 카오루씨가 가이드로 생각됩니다.”
“네?”
“필수 검진을 받지 않아 누락된 가이드요.”

히다카의 말에 하카제는 눈만 가만히 깜빡였다. 그러니까 누가, 뭐라고? 자신이 가이드라고? 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부모님은 평범한 소시민이었고 자신도 지금껏 그렇게 커왔다. 가이드라니, 세상에 가이드라니. 하카제는 인상을 구겼다. 머릿속에 온갖 가이드 사냥에 대한 기사들이 떠오른 탓이었다. 

“16세 필수 검진에서는 센티넬 혹은 가이드 여부도 알 수 있거든요. 그걸 놓치셔서 아마 데이터가 정부에 남아있지 않은 모양입니다.”
“... 무슨 착오가 있는 거 아닐까요?”
“아뇨, 없습니다. 신카이 대원이 쓰러진 건 하카제씨와 접촉한 직후였으니까요. 감기에도 걸리지 않는 센티넬이 쓰러지는 이유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
“혹시 신카이 대원과 접촉했을 때,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다. 방금 그날을 떠올렸던 참이었으니까. 

“빨리 돌아가고 싶다고요.”
“...”
“센티넬과 엮이고 싶지 않다고-”

답을 내놓기 무섭게 사카사키 나츠메가 몸을 일으켰다. 역시 죽이자. 그의 말에 하카제도 벌떡 방어하듯 몸을 일으켰다. 

“가이드의 거부반응에 아웃 상태가 된 겁니다. 뭐 건전지 나간 장난감이라고 할까요. 표현이 좋지 않지만, 뭐 예를 들자면 말입니다.”
“.... 아니, 잠깐!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있다가 시간 되시면 피 좀 뽑고 가세요. 검사 진행하면 아마 100% 매칭일 거 같으니. 그리고 사카사키 나츠메 대원. 가이드를 죽인다는 발언은 위험 발언입니다. 삼가세요. 거기다...”

패드를 끄고 일어난 히다카 호쿠토가 조용조용 상황을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지금 신카이 카나타 대원을 깨울 수 있는 사람은 저 남자가 유일하니까요. 소중한 동료를 계속 아웃 상태로 둘 게 아니라면 그를 죽여선 안됩니다.”

생존을 연장시키는 그의 말과 동시에 병실이 열렸다. 안에서 나온 의사가 비켜 서자 히다카 호쿠토가 눈만 접어 웃으며 “그럼 들어가시죠.”라 다시 사형 선고를 내렸다. 아니, 아니. 저기 들어가면 안 돼. 하카제는 꽉 주먹을 쥐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걸 제외하면 제 인생은 큰 문제없이 흘렀다. 혼자 덜렁 남은 것은 고통스럽고 외로웠지만, 할머니 댁에서 평범하게 잘 지냈고 학교는 다니지 못했지만, 그다지 미련도 없었다. 일은 힘들었지만, 소속된 직장이 있다는 건 삶에 중요한 원동력이 되기도 했고 일은 가끔 힘들었지만, 커피를 만드는 일만큼은 솔직하게 즐거웠다. 그러니 이렇게 살다가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그러다 평범하게 죽는 게 자신이 바라는, 원하는 인생이었다. 가이드 혹은 센티넬은 거기에 끼어들 틈이 없었다. 

“뭐 해?”

하지만 출구를 지키고 있던 사카사키 나츠메를 어떻게 이긴단 말인가. 하카제는 차오르는 억울함을 어쩌지도 못하고 끌려 들어가는 사람처럼 비척대며 발을 옮겼다. 약품 냄새 하나 나지 않는 병실에는 신카이 카나타가 죽은 듯 잠들어 있었다. 그의 팔에는 그 흔한 링거도 꼽혀있지 않았다. 

“어떤 장치나 약으로도 깨울 수 없거든요. 아웃 상태의 센티넬은.”

곁에 선 히다가 호쿠토가 설명했다. 일반 대원이면 센티넬이 아니라는 말인데, 그는 마치 센티넬처럼 자신의 생각을 읽은 듯이 말했다. 

“당장 카나타 형을 깨워.”

따라 들어선 사카사키 나츠메가 병실 문을 닫아 완전히 퇴로를 차단하며 명령했다. 그러니까 어떻게? 키스라도 하라는 거야 뭐야! 무슨 잠자는 숲 속의 공주나 백설 공주도 아닌데! 답지 않게 메르헨적인 예시를 떠올리며 입술을 물었다. 불만으로 발을 구르고 싶은 걸 꾹 참고 히다카를 바라보았다. 

“그냥 손만 대주세요. 그리고 깨어나길 바라 주면 됩니다.”
“입으로 말해. 허튼짓을 했다간 여기서 당장 당신을 죽일 거니까.”
“... 그 저... 그 협박은 조금도 도움이 되질 않거든요?!!”

도대체 몇 번의 살인 예고를 날리는 거야. 하카제는 우는 소릴 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신카이 카나타가 깨어나도 자신은 죽는다. 하지만 안 깨우면 진짜 죽는다. 이런 경우는 도대체 뭘 선택해야 하는 걸까. 짧게 다닌 학교에선 왜 이런 걸 안 알려주고 1+1 따위를 알려준 걸까. 물론 그것도 인생에서 필요하지만, 생사의 갈림길에선 조금도 도움이 되질 않는데! 

“아...”

그러고 보니 신카이 카나타와 눈을 마주쳤던 그 순간에도 이렇게 멍청한 소릴 냈던 거 같은데. 그때와는 달리 전류가 감기는 느낌은 전혀 없었지만. 하카제는 울고 싶은 기분을 꾸역꾸역 삼켜내며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 반듯한 이마에 조심스레 가져다 놓았다. 죽은 건 아닌지 차갑지는 않았다. 그리고 두 쌍의 눈동자가 지켜보는 걸 느끼며 아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괜찮으면... 일어나시겠어요?”

정중하고 또 정중한 부탁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참 신기하게도 신카이 카나타의 속눈썹이 팔랑댔다. 안돼, 그런 말은 입에 담지도 못했다. 그가 눈꺼풀을 들어 올려 다시 세상에 푸른 눈을 드러냈을 때 귓가에 자신의 인생이 무너지는 소리가 울렸지만, 하카제는 그 어느 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굳어 돌이 된 거처럼 그의 눈만 바라보았다. 푸른 눈동자에 제 얼굴이 가득 담겼다. 항구에서와 달리 이번에는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자신이 그의 지배자, 가이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