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타가 쓰러졌다.]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 사이에 떠 있는 메시지에 하카제 카오루는 턱 숨이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발신자는 모리사와 치아키. 미끄러지는 손에 겨우 힘을 넣어 이름을 누르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긴 통화음은 끊기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무슨 일이야? 초조함이 얼굴에 드러났는지 매니저에게 수건을 받아들며 오오가미 코가가 물어왔다. 그 질문에 대기실에 머물던 모두의 눈이 자신에게 향했다. 하카제는 어렵게 입술을 물었다 놓았다.
"카나타군이... 쓰러졌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쿠마 레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전화를 안 받아, 모리사와가 메시지를 남겼는데 받질 않아. 기사 뜬 거 없어? 몇 곡 남았지? 내가 무대에 있어야 하나? 말도 안 되는 질문인 걸 알면서도 하카제는 매니저에게 물었다.
"콘서트 중이잖아. 앙코르까지 4곡 남았어. 조금만 버텨. 그사이에 내가 그쪽 회사에 연락해 볼 테니까."
달래는 매니저의 말에 끄덕이지 못하고 하카제는 다시 꾹 휴대폰을 쥐었다. 카나타가 쓰러졌다. 화면은 꺼지지도 않고 계속 반짝였다.
***
가을 돔 투어, 다행히 마지막 공연이 도쿄여서 다행이었다. 어떻게 노랠 하고 춤을 추고 인사를 했는지 모를 정도로 하얗게 빈 상태로 하카제 카오루는 콘서트가 끝나기 무섭게 택시를 잡아탔다.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은 없는데 자꾸만 입가에 손가락이 갔다. 잘근잘근. 여전히 모리사와 치아키를 비롯해 유성대 모두하고도 연락이 되질 않았다. 매니저가 회사로 연락해 알아봐 준다는 것도 헛수고였다. 뭐로 쓰러졌는지, 얼마나 아픈 것인지 아직 외부에 알릴 수 없다는 꾀꼬리 같은 답변만 돌아왔다. 미안, 알려줄 수가 없다네. 앙코르를 끝내고 달려 내려오니 매니저가 하지 않아도 될 사과를 해왔다. 당당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연인 관계라는 건 참 걸림돌이 많았다.
"도착했습니다."
밤거리를 달려 택시는 익숙한 맨션 앞에 멈춰 섰다. 잔돈은 괜찮습니다. 서둘러 계산을 끝내고 서늘한 공기로 몸을 던졌다. 보안이 철저한 맨션의 비밀번호를 빠르게 누르고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부웅, 위로 뜨는 감각에 짓눌려 땅으로 꺼질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수백 번, 아니 수천 번도 더 오갔던 신카이 카나타의 집이 오늘따라 멀게만 느껴졌다. 반질하게 잘 닦인 복도에 평소와 달리 죽지 않은 소리들을 내뱉으며 하카제는 자신의 코트에서 키를 찾아 꺼냈다. 돌고래 키링에 달린 3개의 키 중에서 하나를 집어 문구멍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힘을 넣기 무섭게 먼저 문고리가 돌아가며 문이 열렸다. "어, 하카제." 모리사와 치아키였다. 병원 정보를 알 수 없으니 우선 집으로 왔는데 정답인 모양이었다.
"왜 전활 안 받아?"
저도 모르게 말이 사납게 나갔다. 어딜 나가려고 했던 참인지 외투를 걸친 그를 거칠게 밀어내곤 집안으로 들어섰다. 엉거주춤 소파에 앉아있던 익숙한 얼굴들이 저를 보고 몸을 일으켰다. 나구모 테토라, 센고쿠 시노부, 타카미네 미도리. 모두 신카이와 함께 활동 중인 유성대의 맴버이자 자신의 고교 후배들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매니저 둘. 쭈욱 훑은 얼굴의 끝에도 찾는 얼굴이 없어 하카제는 인사보다 먼저 방문부터 열었다. 침실은 기대와 달리 텅 비어있었다.
"카나타군은?"
"욕실에 있다."
"어떻게 된 일이야? 쓰러졌다며? 병원이 아니라 왜 욕실에.. 아니 됐어. 일단 얼굴부터 볼래."
"하카제, 우선 이야기를-"
"나중에 해."
괜찮은지, 어디가 아픈지. 그게 더 중요했다. 붙잡는 모리사와를 뿌리치고 하카제는 욕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어, 카오루!"
생각보다 멀쩡한, 언제나와 같은 신카이 카나타가 웃으며 자신을 반겼다.
"....도대체 무슨..."
쓰러졌다며. 내뱉고 싶은 말이 흩어 사라졌다. 젖어버린 욕실 가운차림으로 욕조에 들어가 있는 신카이 카나타를 보고 있으니 말이 나오질 않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하카제는 안도감에 풀려가는 다리를 질질 끌며 욕실 바닥에 무릎을 대었다. 축축하게 젖어갔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쓰러졌다며..."
물과 함께 뺨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어주며 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놀랐는 줄 알아?"
"미안해요."
"왜 쓰러진 거야?"
의심 가는 건 많았다. 유성대의 컴백 이후 제대로 잠을 못 잘 정도로 바빴고, 아마 그러다 보니 수면이나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겠지. 같은 직종에 일하고 있으니 뻔하게 아는 사실들. 자신이라도 휴식기라면 곁에 붙어 챙겨줄 텐데, 하필 이번에는 활동 시기도 겹쳤다. 과로, 그 단어를 떠올리며 걱정스레 묻자 신카이가 고개를 저었다.
"카오루."
"응."
"제가 다음 생에 태어나면 물고기가 되고 싶었다고 했던 말, 기억하나요?"
응. 물론이지. 예전부터 참 버릇처럼 말했다. 바다로 돌아가고 싶어요, 라고. 세상의 모든 물고기가 제 가족이나 친구가 되는 것처럼 굴기도 했다. 처음엔 이해하기 힘든 그 말에 당황도 했지만, 그의 기행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지금은 웃으며 맞장구칠 정도까지 되었다.
"그런 소릴 해서... 소원을 들어주려나 봐요."
"뭐?"
무슨 소리냐 반문하기도 전에 신카이 카나타가 조심스레 젖은 손을 들어 자신의 귀를 접어 보였다. 둥그렇게 접힌 귀, 그리고 흘러내린 머리 사이로 작은 틈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작은 날개처럼 돋아난, 아니 살이 갈라진 거 같이 틈이 벌어진 그것은 천천히 신카이가 숨을 들이켜고 내쉴 때마다 뻐금대며 움직였다. 그 틈으로 얇은 막과 같은 붉은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이건 마치
"아가미가 생겼어요."
아가미처럼 보였다. 생선의 아가미. 엄지손가락 크기의 것이 신카이 카나타의 귀 뒤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갑자기 호흡이 어려워지고 어지럽더니 쓰러졌어요. 그리고 눈을 뜨니 이게 생겼어요."
"말을 듣지 않아 신이 노하신 걸까요?"
"저에게 화를 낸 걸까요?"
"저는 이대로 물고기가 되어버리는 걸까요?"
불안한 목소리로 묻는 그의 말에 하카제는 어느 하나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그의 귀 뒤에서 뻐끔대는 아가미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쭈뼛 머리가 섰다. 손가락이 차가워지는 거 같았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카오루-"
젖은 손이 불쑥 제 손을 잡아 왔다. 움찔, 튄 몸을 추스르며 하카제는 신카이 카나타를 바라보았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 질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
꿈과 같아서, 자고 일어나면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했던 신카이 카나타의 아가미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그의 귀 뒤에 존재했다. 모자나 머리로 가리면 가릴 수도 있었지만, 문제는 신카이의 호흡이었다. 지금까지 늘 그랬듯 두 다리로 걷고 대화도 하고 생활도 했지만, 그러다 갑자기 호흡이 거칠어지거나 막혔다. 그 상태로는 아이돌 활동은 무리였다. 결국 회사에선 건강상 문제를 앞세워 장기간 휴식을 갖는다 언론에 발표했다. 그 선택을 원한 이는 누구도 없었지만, 누구도 반박하지도 못했다.
원인이 무엇인지, 나을 수는 있는지, 수술로 떼어낼 수는 있는지, 어디에도 물을 수도 없는 그의 증상은 꼭꼭 숨겨야 할 비밀이 되었다. 발병 당시 같이 있었던 매니저, 유성대, 회사 상부, 사쿠마 레이 그리고 하카제 카오루. 동화도 마법도 아닌 이 일에 대해 모두 입을 다물기로 했다. "듣도 보도 못한 병이잖슴까. 누가 알게 되면 끌고 갈지도 모름다. 실험체가 될지도 모른다고요?" 처음 의사를 불러야 한다는 의견에 나구모 테토라가 단호하게 말했다. 실험체라니, 이게 무슨 SF영화도 아니고. 하지만 혹시, 만약, 설마와 같은 단어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하카제는 웃을 수가 없었다.
신카이 카나타는 시간 대부분을 욕조에서 보냈다. 처음에는 퉁퉁 불던 몸도 언제부터인가 마치 물속이 그의 세상이라 말하듯 변하지 않았다. 장시간 물에 담가도 멀쩡한 손을 보며 신카이는 울었다. 정말로 제가 이상해졌어요. 그렇게 말하는 그를 안아주며 하카제가 할 수 있는 위로라곤 "아니야, 그렇지 않아."가 전부였다.
그가 솔직하게 울기를 바라던 날도 있었는데 이제는 울지 않기를 바라게 되었다. 불안감 때문인지 신카이는 자꾸 울었다. 그가 걱정되어 하카제는 곁에 있어 주고 싶었지만, 상황이 좋지 못했다. 갑자기 사라져버린 유성대의 신카이 카나타에 대해 대중들은 관심이 많았고 그가 건강한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언제 복귀하는지와 같은 걸 알고 싶어 했다. 질문이 끊임없이 날아들었다. 가장 친한 연예인 친구요? 유성대의 신카이 카나타요. 자주 밥도 먹으러 가고 자주 서로의 집에 놀러 가고 그래요. 그렇게 말했던 과거의 제 탓이었다. 자주 오갈수록 신카이 카나타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하카제는 조금씩 걸음을 줄였다. 달려가고 싶은 발을 꾹 멈추고 또 멈췄다.
"카오루, 보고 싶어요."
스피커 너머에서 들리는 쓸쓸한 목소리에 몇 번이고 입술을 물었다. 나도, 그 대답을 꺼내는 게 점점 어려워졌다.
***
나도, 그 대답을 해주지 못했던 건 마음이 식어서와 같은 허튼 이유는 아니었다. 나도, 그 말을 뱉다가 엉엉 울 거 같았다. 그게 하카제 카오루의 이유였다. 스케줄은 끊임없이 늘어 있었고 잊을만하면 사람들은 자신에게 와 "카나타군은 괜찮아?"를 물어댔다. 조금만 실수하면 온 세상이 그의 비밀을 알아버릴 것만 같았다. 그건 하카제 카오루의 가장 큰 공포였다. 신카이 카나타를 만나지 못하는 것보다 더. 그래서 하카제 카오루는 버텼다. 하루하루를 버텼다.
"바쁜 건 알지만, 카나타가 조금 힘든 거 같다. 계속 울어."
하지만 그런 연락을 받았을 때는 버틸 수가 없었다. 침울한 모리사와 치아키의 전화에 하카제는 집으로 몰던 차를 돌렸다. 시간은 새벽 2시. 오늘만 스케줄이 6개나 있었다. 곧 쓰러질 거 같은 몸에 곧 감길 거 같은 눈이었지만, 그건 하카제 카오루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그의 집으로 들어섰을 땐 모든 게 어둠이었다.
"불도 안 켜고 뭐하 고 있어."
캄캄한 욕실의 불을 켜자 욕조에 걸터앉은 신카이 카나타가 저를 돌아보았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조금 더 길어진 머리가 귀를 덮고 아가미를 덮어내고 있었다. 찰랑, 움직이는 그의 발에 맞춰 물이 흔들렸다.
"카오루는 제가 싫어졌나요?"
퍼지는 물의 움직임을 노려보며 신카이 카나타가 물었다.
"아니야."
왜 그런 소릴 해. 하카제는 빠르게 부정했다.
"하지만 절 만나러 오지 않았잖아요. 제가 괴물이 되어서 싫어진 거죠?"
"그럴 리가 없잖아."
"전화도 안 받고 와주지도 않고."
"언데드 활동 중이잖아. 바빴어."
참 멋없는 변명이었다. 제 생각에 동의하는지 신카이가 옆에 놓여있던 수건을 던졌다. 철퍽, 젖어있던 게 어깨를 묵직하게 때리며 떨어졌다.
"바빠도 잠깐 만나러 와 줄 수도 있잖아요. 저는... 저는... 여기 계속 갇혀있는데.."
"..."
"제가 싫어졌다고 솔직하게 말해줘요."
"카나타-"
"징그럽다고 보기 싫다고 말해줘요. 그럼 더는 기다리지 않을 거니까!"
울리고 싶지 않아서 참았는데 결국 울리고 말았다. 후두둑 떨어지는 눈물을 받을 수도 없으면서 하카제는 급히 손을 뻗었다. 놔요. 뒤로 몸을 빼는 그의 손목을 잡았다. 첨벙, 두 다리가 물에 잠겼다. 아니야, 그런 소리 하지 마. 빌듯 부탁했다. 나도, 대답하지 못했던 그 말이 눈물이 되어 울컥 쏟아져 나왔다.
"보고 싶었어. 만나고 싶었어.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카나타군에 대해서 물어봐. 내가 잘못 행동했다가 카나타군이 잘못되면-"
"이보다 더 잘못될 수는 없어요. 이거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고요! 카오루가 날 보러오지 않는 거보다 더 나쁜 건 없어요!"
"카나타!"
"카오루가, 카오루가 절 만나러 오지 않는 걸 기다릴 바에야... 어디 끌려가서 해부되는 게 더 좋아요."
신카이 카나타가 뱉어내는 말들은 상처도 되지 못했다. 홀로 기다렸을 그가 입은 상처에 비하면 이건 상처도 되지 못했다. 조금 말라버린 팔을 꾹 잡으며 하카제는 신카이를 품에 안았다. 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하는 그를 꽉 끌어안았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혼자 두지 않을게. 사과하고 빌고 약속하고 나서야 신카이 카나타는 겨우 울음을 그쳤다.
하지만 울음을 그쳤다뿐이지 자신의 부재에 겁을 많이 먹었는지, 그는 툭하면 저를 시험하려 들었다. 카오루는 제가 싫어졌죠? 제가 귀찮아졌죠? 제가 징그럽죠? 제가 밉죠? 제가 사라졌으면 좋겠죠? 제가 물고기가 되어버리면 좋겠죠? 앉아서 누워서 서서 혹은 마주 보며 손을 잡으며 입을 맞추며 물었다.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그때마다 하카제 카오루는 대답했다. 고작 아가미 하나로 신카이 카나타가 싫어질 리가 없었다. 함께 책을 읽다가, 빨래를 정리하다가, 요리하다가 컥컥거리며 쓰러져도 진득한 침을 토해내도 붉게 물드는 눈동자와 마주해도 싫어지지 않았다. 이 마음을 꺼내 보여줄 수 있다면 참 편할 텐데, 그게 되지 않으니 신카이 카나타는 계속 물었다.
그리고 어느 날, 스케줄을 마치고 돌아온 집에서 푸른 물고기를 마주했다. 거실의 한 가운데 죽어있는 푸른 물고기. 낮에 신카이가 먹고 싶다고 노랠 부르던 랍스터 샌드위치의 쇼핑백이 바닥을 굴렀다. 하카제는 꼼작도 할 수 없었다. 피가 식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누가 툭 치면 쓰러질 거 같은 몸에 억지로 힘을 넣어 버텼다. 카나타군, 엉망인 목소리가 입술을 타고 흘렀다. 제발, 제발. 이게 다 거짓이라 말해줘. 장난이라고 말해줘. 누군지도 모를 누군가에게 필사적으로 빌었다.
"카오루."
공포가 물들고 슬픔이 뒤엉켰다. 발밑이 꺼지고 몽땅 어둠이었다. 그렇게 무너지는 제 앞에 신카이 카나타가 나타났다. 너무도 평온한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놀랐나요?"
그 질문은 가위였다. 하카제 카오루가 꽉 쥐고 있던 무언가를 뚝 잘라내는 가위. 차게 식은 얼굴로 뜨거운 물이 쏟아져 내렸다. 신카이 카나타와 함께 하면서 모르고 살았던 괴로움이 갈기갈기 몸을 찢어내는 거 같았다.
"날 시험해서 어쩌자는 거야. 카나타군.... 아니라고 했잖아. 아니라고, 아니라고!!!"
비명을 내지르듯 화를 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듣고 싶은 거야? 사실은 그렇다고 말해주길 바라는 거야? 질렸다고 징그럽다고 헤어지자고? 아니! 아니야!! 지금 이 꼴을 보고도 아니라고!!!"
"..."
"만족해? 날 이렇게 시험하고 괴롭게 만들어서 만족하느냐고! 카나타군!"
"..."
"잘 들어. 카나타군이 무슨 짓을 해도 내 대답은 같아. 빌어먹을 물고기가 되어도 헤어질 생각 없어. 수조에 가둬놓고 나만 볼 거야. 그러니까... 이제... 그만해. 나 좀... 나 좀... 용서해 줘."
다리에 힘이 풀렸다. 억지로 넣었던 힘을 풀자 무릎이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아직 온기를 찾지 못한 손에 얼굴을 묻었다. 꺽꺽 터져 나오는 울음도 숨기지 않았다. 미안해요, 카오루. 머리 위로 사과가 내려앉았다. 잘못했어요. 물기 어린 목소리가 울렸다. 하카제는 고개를 들었다. 뿌옇게 물이 낀 시야로 푸른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키스해줘. 네가 살아있다는 걸 느낄 수 있게 해줘. 속삭임 끝에 닿은 입술은 다행히도 따스했다.
***
아슬아슬하게 안고 있던 폭탄이 터진 후, 신카이 카나타는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다행히도 언데드의 활동도 휴식기에 들어갔다. 하카제는 아예 모든 짐을 옮겼다. 휴식기가 겹치면 오키나와든 하와이든 함께 길게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었는데 이번에는 무리인지라 대신 커다란 욕조를 샀다. 두 사람이 들어가 누워도 충분한 커다란 욕조는 거실의 소파를 대신해 자리 잡았다. 욕조를 고르던 저에게 "저런 걸 거실에 설치하면 물난리는 어쩔 건데?"라 오오가미가 따져 물었으나 그래도 함께하는 공간에 늘 신카이가 머물렀으면 했다. 굳이 욕실에 가지 않아도 언제든 그가 물에 닿을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다행히 신카이 카나타는 욕조를 마음에 들어 했다.
"좋아요."
"다행이네. 하지만 매번 물도 채워놓아야 하고 뺄 때도 거둬내야 해. 이거 완전 막노동이라고."
"제가 할거에요."
믿음직스럽지 못한 소리를 자신 있게 말하며 신카이가 베란다에서 호스를 끌어왔다. 졸졸 호스를 타고 새 욕조에 물이 차는 걸 나란히 붙어 구경했다. 물은 진득한 시간 끝에 적당한 높이까지 차올랐다. 이거 나중에 빼려면.. 다시 뒷정리를 지적하기 무섭게 신카이 카나타가 잠옷 차림 그대로 욕조에 들어섰다.
"마음에 들어?"
"들어요."
"다행이네."
"카오루도 들어올래요?"
슬쩍 비켜주는 그의 친절에 하카제는 사양하지 않고 끄덕였다. 입고 있던 옷이 젖겠지만, 젖으면 다시 말리면 그만. 어차피 매일 빨래 바구니에는 젖은 옷가지들이 한가득이었다. 거기다 수시로 물에 들어갔다 나오는 신카이덕에 집은 항상 물바다였다. 미끄러질까, 가구가 상할까, 말라 자국이 될까 매일같이 청소해야 했는데 그 역시 하면 그만이었다. 신카이 카나타와 함께 하기 위해 자신이 해야 하는 게 고작 빨래와 청소라면 싸게 먹히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며 하카제는 푸스스 웃었다.
"왜 웃어요?"
"그냥. 좋아서."
"혼자만 즐겁고, 치사해요. 카오루."
"그럼 카나타군이 즐거운 걸 하자. 뭘 할까?"
"잠수 대결할래요?"
이긴 사람 소원 들어주기. 누가 보아도 약아빠진 제안이었지만 하카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할게요. 그 말을 끝으로 신카이 카나타가 푹 얼굴을 담갔다. 하카제 역시 바로 물속에 얼굴을 박았다. 창을 통해 들어온 빛이 수면을 만나 일렁거렸다. 물방울을 타고 마구 흔들리는 푸른 머리카락 사이로 아가미가 뻐끔댔다. 신카이 카나타는 어떤 소원을 빌까. 어렵지 않게 호흡하는 신카이 카나타를 바라보며 하카제는 고민했다. 그게 무엇이든 다 이루어주고 싶었다. 헤어지자는 말만 아니라면, 정말로 뭐든지 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담아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얕게 흔들리는 물길을 밀어내고 그의 머리카락을 안았다. 다가온 얼굴, 그리고 눈을 마주치며 마지막으로 입을 맞췄다. 입술 사이로 함께 호흡하고 함께 숨을 쉬었다. 이 물속에 얼마나 더 있어야 할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이 차가운 세계가 신카이 카나타가 숨 쉬는 곳이라면 하카제 카오루 역시 이곳에서 숨 쉴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가 자신의 아가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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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보고 싶다고 썰 풀었던 거.................
뭔지 나도 모르게따...ㅎㅎ 넘 졸려서 그만..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