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메노 겐타로의 과거, 집안 날조주의 / 세계관 날조 주의 / 그냥 다 날조 주의;;
"라무다, 저 결혼해요."
입 밖으로 절대 내지 못할 거 같았던 소리가 가볍게도 튀어 나갔다. 갑작스러운 선언에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던 아메무라 라무다가 고개를 들었다. 우와, 겐타로가 한 거짓말 중에서 가장 재미없어. 그가 팔을 쓸며 웃었다. 그런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유메노 겐타로는 다시 입을 열었다.
"거짓말 아니라, 진짜로요."
확인사살, 웃지도 울지도 않고 정확하게 사실을 전달하자 그제야 그가 손가락에 끼우고 있던 타블렛 팬을 내려놓았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도와달라는 거야?"
묻기보다 따져오는 법이 아메무라 라무다답다고 생각하며 유메노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그동안 고마웠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아.. 그래. 그래서 언제?"
"다음 주요."
하, 그가 황당한 웃음을 터트렸다.
"갑자기 남의 작업실에 쳐들어와서 한다는 소리가 갑자기 다음 주에 결혼하게 되었으니까 플링포세를 나가겠다, 이건데... 뭐 그래. 그러던가. 그보다.. 다이스는 알아?"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가 물어왔다. 아리스가와 다이스. 천진난만한 그의 얼굴을 떠올리다 유메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뭐, 그런 걸 보고할 사이는 아니라서요."
"...그래. 뭐, 겐타로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 이야기가 전부라면 다 끝난 거 같으니 나가줄래? 사납게 눈을 올려뜨며 그가 덧붙였다. 서운함보단 미안함이 넘쳐서 유메노는 차마 더 버티지 못하고 무겁게 몸을 일으켰다. 정말 고마웠어요. 그 인사말을 입술 끝에 걸었다가 뱉진 않고 돌아섰다.
한 달 전, 본가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홀로 집을 나온 지, 6년 만의 일이었다. 다신 얼굴을 비추지 말라고 어머니가 외치던 모습이 여전히 선명한데 갑작스러운 부름이라니. 유메노는 의아했다. 하지만 거절할 수도 없는 입장인지라 얌전히 부름에 따랐다. 오랜만에 방문한 저택은 변한 게 없었다. 어머니가 아끼는 정원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온갖 꽃들이 만개해 해를 품고 있었다.
"왔니?"
안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어머니가 얼굴을 내밀었다. 중앙구에서 가장 유명한 양장점을 운영하던 집안 출신답게 그녀는 집안임에도 어디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 아름다운 차림이었다. 잘 지냈니, 어디 아픈 곳은 없었니. 그런 살가운 질문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너무나 짧은 인사에 유메노는 미련 넘치게도 서운함을 느꼈다.
"잘 지내셨나요?"
"그럼."
6년 만의 모자 상봉은 여전히 차가웠다. 용기 내어 던진 인사에 그녀는 미소 하나 걸치지 않고 대꾸했다. 아버지는요? 조심스레 안부를 물었으나 그 질문에는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늙은 집사가 나타나 응접실로 안내할 뿐이었다.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
어차피 그녀도 혹이나 다름없는 아들과 오랜 대화를 할 생각이 없어 보였기에 유메노는 소파에 앉기 무섭게 본론부터 물었다.
"네가 해줄 일이 있어."
역시나 그녀도 질질 끌지 않고 입을 열었다.
"네 아버지가 또 일을 망쳤어. 이번에는 조금 크게."
지긋지긋하고 반복되는 이야기.
"아들인 네가 이제 도리를 했으면 해."
그녀는 꽤 평온한 얼굴로 그리 말했다.
아버지는 어머니 표현을 빌리자면 한심한 사내였다. 그녀는 운이 나쁘게도 그런 한심한 사내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중앙구까지 나와 살림을 차릴 정도로 그를 사랑했던 거 같지만,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그 사랑도 조각났다. 어머니는 누구나 그렇듯 딸을 원했다. 예쁘고 그녀를 닮아 아름다운 딸. 하지만 그녀의 바람과 달리 세상에 나온 것은 별 볼 일 없는 저, 유메노 겐타로였다. 꿈에 부풀어 아이의 시작부터 끝까지 멋진 계획을 세워둔 어머니는 쭈글쭈글한 사내아이를 보자마자 외면했다. 아버지 역시 태어난 아이에 대한 책임과 비난을 안게 되자 도망쳤다. 부모 대신해 저를 길러준 것은 늙은 유모였다. 부모의 관심이나 사랑에 고파하는 어린 저가 불쌍했는지 유모는 "도련님이 태어나셨을 때, 사모님이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라요."라 달래고 위로했지만, 유메노는 그 거짓말을 믿지는 않았다.
관심과 사랑은 없어도 아이는 살아 숨 쉬고 자랐다. 걷고 달리고 말하고 노래하기 시작하면서 유메노는 유모의 사랑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품이 고팠다. 그녀에게 예쁨받기 위해, 그리고 조금이라도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유메노는 노력했다. 백 점 짜리 시험지를 들고 어머니의 품에 안기는 상상을 몇 번이고 했다. 제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웃어주는 어머니의 얼굴도 몇 번이고 그렸다.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이야기를 끊임없이 바라고 그렸다.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에 의지하며 유메노 겐타로는 자랐다.
그리고 17살이 되는 해, 집을 떠났다. 대단한 사건이나 계기가 있던 건 아니었다. 그저 타는 갈증에 지쳐 떨어져 나간 것뿐. 집을 나서는 저를 말리는 이는 누구도 없었다. 그저 어머니의 독설만 따라붙었을 뿐이었다.
집을 나와 이듬해, 자신이 꿈꿔왔던 환상을 글로 써 소설가로 데뷔했다. 소설가로 데뷔한 후, 꽤 많은 칭찬을 받았다. 가족의 위대함을 그린 따스한 소설이라며 모두 후한 평가를 했다. 어린 나이의 데뷔였던지라 주목 역시 많이 받았다. 갈구했던 관심 속에서 유메노 겐타로는 처음으로 진심을 담아 웃었다.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이 현실이 된 거 같아 기뻤다. 이 정도면 어머니에게도 자랑스러운 아들이지 않을까. 비록 그녀가 바라던 딸로는 태어나지 못했지만, 한 사람의 몫은 제대로 해내고 있으니 인정해주지 않을까.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세상에 나온 책을 그녀에게 우편으로 보냈을 때, 본가에서 날아온 연락은 기대와는 달랐다. 집사를 통해 걸려온 전화 내용은 집안 이야기를 함구해달라는 딱딱한 요구뿐이었다. 그래서 유메노 겐타로는 거짓말을 했다. 노부부와 살았고 가난했고 가진 게 없었고 아픈 친구가 있고 그 친구를 위해 이야기를 시작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온갖 드라마틱한 사연을 스스로 붙였다. 차라리 그 삶이 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덕지덕지. 그렇게 6년을 살고, 아마 10년도 20년도 혹은 평생 그 유메노 겐타로로 살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제 와 자신이 필요하다니. 유메노는 우습게도 제 심장이 뛰는 게 느껴졌다. 드디어 어머니에게 필요한 아들이 된 거 같아서 기뻤다.
"결혼을 해줬으면 해."
하지만 어머니는 끝까지 냉담했다. 6년 만에 만나 한다는 이야기가 결혼이라니. 유메노는 사용인이 내려놓는 찻잔을 바라보았다. 찻잔이 내려앉기도 전이었다. 입술이 바싹 말랐다.
"중앙구 출신 아가씨야. 집안도 좋아. 중앙구에서 여러 부티크를 가지고 있어. 우리 집안에 좋은 이야기야."
"..."
"당장 오늘 저녁에 자릴 잡아놨으니까, 그 칙칙하고 시대 떨어진 옷 버리고 단장하도록 해."
"어머니-"
"솔직히 네게 너무 과분하고 아까운 자리야. 고작 글이나 쓰는 소설가 남자를 데려가 준다니, 이쪽에서는 고마울 일이니까 거절할 생각은 하지 말도록 해."
그녀는 고작 한 모금, 차를 딱 한 모금 마셨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거로 충분하다는 듯 소파에서 일어섰다. 유메노는 멍하니 줄지 못한 찻잔을 바라보았다. 저에게 그녀가 내주는 시간은, 가치는 고작 이 한 모금이라는 사실에 웃음이 나왔다. 나가야 하는데, 얼른 이 집에서. 얼른 움직여야 하는데, 내가 만든 환상으로. 머릿속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어차피 집을 나선다고 한들, 이 이야기가 사라질 거 같지는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덜덜 떨리는 손을 꾹 쥐어보았지만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유메노 겐타로는 옷을 갈아입었다. 어머니가 준비해준 차에도 올랐다. 누군가가 운전해주는 차, 그 뒷좌석은 오랜만이라 어떻게 앉아야 하는지 영 어색했다. 멀어지는 온갖 풍경을 눈에 담지 않으려 꾸욱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보고 싶은 얼굴이 떠올랐지만, 부러 선명하게 그리지는 않았다.
약속 장소에 상대는 미리 와 있었다. 완벽한 투피스 차림에 긴 생머리를 깔끔하게 넘긴 그녀는 아름다웠다. 자리를 안내하고 메뉴를 권하는 손짓 하나하나에 여유와 세련됨이 묻어있었다. 확실히 어머니의 말대로 자신에게는 아까운 여자라고 유메노는 생각했다.
"식은 빠른 게 좋아요."
가장 먼저 식탁을 차지한 것은 애피타이저로 어린 잎과 함께 다진 게살이 나왔다. 레몬 향이 나는 소스가 플레이팅 되어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미리 말해두는데, 저 만나는 사람이 따로 있어요."
그 잎을 꼭꼭 포크로 집으며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헤어질 생각은 없어요."
게살까지 함께 듬뿍 입안으로 감추며 그녀가 산뜻하게도 덧붙였다.
왜 이 과분하고 아까운 자리가 왜 자신에게 왔는지 유메노는 알 거 같았다. 그녀는 인형이 필요했다. 자신의 사랑에 방해되지 않고 걸림돌이 되지 않을. 그리고 또 분수를 아는. 그 조건에 유메노 겐타로는 딱 이었다. 그럭저럭 괜찮은 집안의 하나뿐인 아들이었고 동시에 외면받는 존재였다. 발언권도 없었고 거부권도 없었다. 능력 역시 높지 않았고 자존심 역시, 뭐 그리 있는 편은 아니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조건이었다. 자신이 이렇게 좋은 신랑감인 줄은 몰랐는데. 유메노는 쓰게 웃으며 가만히 손도 대지 않은 제 그릇을 바라보았다.
"언제가 좋을 거 같아요? 우리 결혼?"
깔끔하게 그릇을 비우며 그녀는 '우리'라 말했다. 어차피 이 이야기는 자신이 써 내려간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러니 자신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 기사는 집까지 태우겠다 했지만 유메노는 거절했다. 어울리지 않는 타이를 손가락으로 끌어 내리며 저도 모르게 슬쩍 코를 훌쩍였다. 한참을 걷다가 멈춰 섰다. 눈물이 나올 거 같아서 꾹 눈을 감았다. 다시 보고 싶은 얼굴이 떠올랐다. 천진난만한 웃음을 흘리며 4살이나 어린 주제에 멋대로 툭툭 말을 놓고 저를 부르던 사내를 떠올렸다. 그가 집에 있을까. 들어와 사는 걸 허락하지 않았지만, 그는 멋대로 제집처럼 들이닥쳤다가 사라지곤 했다. 언제부터인가 잠그지 않았던 문처럼 유메노는 제 마음의 문도 열어두었다. 아리스가와 다이스는 시끄럽게 들어와 온 마음을 다 두드려놓았다. 그가 보고 싶었다. 이 울림도 자신이 처한 상황도 어느 것 하나 설명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의 얼굴을 보면 괜찮을 거 같았다. 그의 멍청한 도박 이야기나, 스릴에 대한 예찬론을 들으면 기분이 좀 나아질 거 같았다. 오늘 일어난 모든 일이 다 거짓이 될 거 같았다. 하지만 그날 밤, 아리스가와 다이스는 나타나지 않았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결혼 준비 역시 마찬가지었다. 날이 흐를수록 유메노 겐타로의 손톱은 엉망이 되었다. 잘근잘근 잇자국이 하얗게 났다. 아리스가와 다이스는 다른 둥지라도 찾았는지 나타나지 않았다. 잠그지 못한 현관 앞에서 서성거리며 유메노는 그를 기다렸다. 좋아한다거나 혹은 사랑한다거나. 그런 거대하고 낯간지러운 말은 절대 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냥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싶었다. 한마디 말을 전하기보다 그의 온기를 느끼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유메노는 문을 잠갔다. 아메무라 라무다가 그에게는 설명했느냐 물었고 유메노는 그런 걸 보고할 사이가 아니라 대답하며 마음도 닫았다.
식장은 신주쿠에 위치한 호텔이었다. 어머니는 중앙구에 위치한 교회에서 식을 올리길 원했지만, 새신부가 될 이의 뜻에 그리 정해졌다.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손과 목에는 빛을 받아 온갖 보석이 반짝였다.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그 빛을 모조리 둘렀으면서도 조금은 긴장한 얼굴에 이 식장 어딘가에 그녀의 진짜 사랑이 있구나, 유메노는 멍하니 생각했다.
신랑의 복장은 보통 신부에게 맞췄기에 유메노는 흰 턱시도를 입었다. 신부의 드레스에 비하면 수수하고 단조로운 디자인으로, 어디까지나 들러리 역인 저에겐 딱 어울리는 디자인이었다. 부드러운 장갑은 작아서인지 아니면 제 손의 땀 때문인지 기분 나쁘게 손가락을 휘감았다. 공간에 흐르는 부드러운 클래식 선율에 머리도 핑핑 돌았다. 여기저기서 아는 척을 해오며 말을 걸었지만, 입꼬리를 올리는 것도 버거웠다. 거짓말은 늘 자신 있었는데, 이번만은 조금 어려웠다.
"꼭 토할 거 같은 얼굴이네요."
허옇게 질린 게 안쓰러웠는지 그녀가 혀를 차며 지적했다. 그런가요? 유메노는 애써 웃었지만, 그녀의 말대로 긴장을 놓으면 그대로 다 쏟아낼 거 같았다. 체한 거 아니에요? 그녀가 걱정스레 물어왔다. 먹은 거라곤 누군가에게 전하지 못한 마음밖에 없는데, 체 할 리가 없었다. 아, 그냥 억지로라도 다 쏟아낼까. 마음이든 위액이든 뭐든. 그러면 조금 편해질 거 같은데. 하지만 그런 제 생각을 막아서듯 입장을 알리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멍하니 열리는 식장의 문을 바라보며 유메노는 입술을 물었다. 얼굴 위로 쏟아지는 빛에 질끈 눈을 감았다 떴다. 수많은 눈이 모두 저에게 향해 있었다.
"뭐해요?"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하얗고 작은 손. 유메노는 멍하니 그걸 내려보며 가끔 저를 잡아 이끌던 커다란 손을 떠올렸다. 같이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물고 집에 가던 길이나 혹은 비가 와 급하게 피한다고 달리면서 잡아끌던 손. 그 손과 함께 바보처럼 웃으면서 "우와, 이거 완전 청춘 영화 같지 않아?!"라 떠들던 멍청한 얼굴도 떠올렸다.
"못...못하-"
못 하겠어요. 공부하고 시험을 잘 보고 입을 다물고 죽은 듯이 살고. 그런 것들은 다 할 수 있었는데 그녀의 손을 잡고 이 안을 들어서는 것만큼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못 하겠어요. 정말 못 하겠어요. 지금까지 계속 하고 싶었던 말을 어렵게 입에 담았다. 유메노는 장갑 위에 끼워진 반지를 잡았다. 손가락에 들러 붙은 건 장갑이 아니라 이 반지였다. 이걸 빼내고 그녀에게 사과하고 돌아서자. 무너지는 어머니나 외면하는 아버지는 지워버리자. 할 수 있어. 한 번 했잖아. 모두가 저를 봐주지 않던 그 집에서도 용기를 내 나오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이번에도-
"겐타로!!!"
혼자서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어째서 아리스가와 다이스의 목소리가 들리는 걸까. 지금 이 순간, 여기서 절대 들릴 리가 없는. 유메노는 불린 제 이름에 고개를 돌렸다. 호텔 연회 홀의 계단을 누군가가 쿵쿵 밟아대며 내려오고 있었다. 시끄러운 워커소리. 가장 듣고 싶었던 소리를 내며.
"...다이스..."
꿈이라고 꾸고 있는 걸까. 답지 않게 번듯한 차림을 하고 나타난 사내를 보며 유메노는 가만히 그를 불렀다. 잠깐 시간이 멈추기라도 했는지 저를 향해 쏟아지던 시선도 이 공간을 어지러이 감싸던 소리도 모두 사라지고 오직 아리스가와 다이스만이 눈에 들어왔다.
"결혼을 하면... 결혼한다고 이야기를 해야지!!"
성큼성큼 다가온 그가 어깨를 쥐곤 소릴 높였다. 대기하고 있던 가드들이 다가오는 게 느껴져 유메노는 서둘러 아리스가와의 손목을 떼어냈다.
"도대체 어떻게...?"
"라무다가 이야기해줬어! 세상에... 내가 잠깐 슬롯 좀 돌리는 사이에 결혼을 해?"
"잠깐...? 잠깐이라고요? 한 달이 잠깐이에요?"
"그럼 뭐 평생인가?! 잠깐이면 잠깐이지!"
"소생은... 결혼까지 진행될 시간이었다고요..."
그런 시간을 잠깐이라고 부르지 않지. 모든 게 멈춘 지금과 같은 순간이라면 몰라도. 그런 생각을 하며 유메노는 쥔 아리스가와의 손목을 문질렀다. 장갑 너머로 그토록 기다렸던 온기가 닿는게 느껴졌다. 보고 싶었어요. 만나고 싶었어요. 좋아해요. 안고 싶어요.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말들을 손끝에 담으며 유메노는 간신히 웃었다.
"와줘서 고마워요. 이렇게 보게 되서-"
"뭐? 무슨 소리야? 아 다 집어치우고 시간 없으니까 잘 들어."
짜증과 함께 아리스가와가 손목을 빼냈다. 순식간에 손이 텅 비어 버렸다.
"난 항상 늦어."
그 텅 비어버린 손을 잡아주며 아리스가와 다이스가 말했다.
"그리고 항상 일을 망치지."
겜블이나 뭐 여러 가지를 포함해서. 그가 아이처럼 웃으며 덧붙였다.
"내가 언제나 많은 걸 망쳐왔다는 걸 알아. 하지만 이게 마지막이야. 네 결혼식이."
"..."
"싫으면 뺨이라도 때려. 그게 네가 스스로 변호할 유일한 방법일 테니까."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걸까.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유메노는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붙잡힌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동시에 눈으로 어둠이 쏟아졌다. 눈가를 덮어 내리는 따뜻한 온기가 이번에는 입술에 닿았다. 부드럽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아리스가와가 닿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붙잡히지 않은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뺨을 때리라고 했다. 그것만이 유메노 겐타로가 이 상황을 변호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하면서. 하지만 유메노는 그 손에 매서움 대신 다정함을 담았다. 부드럽게 그의 뺨을 쥐며 입술을 벌렸다. 뜨겁게 저를 감아오는 사내를 뿌리치지 않고 받아드렸다.
"이게 다 내가 만들어낸 환상이고 거짓말이면 어쩌지."
짧고 아쉽게 끝나버린 입맞춤, 그 아슬하게 떨어진 입술 사이로 유메노는 조용히 물었다. 네가 그리워서 내가 또 그려낸 이야기면 어쩌지. 눈을 뜨면 이 온기도 키스도 모두 사라지고 현실과 꿈의 교차점에 덩그러니 홀로 서 있는 거라면 어쩌지.
"어쩌긴 어째. 그런 생각할 틈도 없이 이제 달려야지."
쪽, 다시 가볍게 입술이 닿았다 떨어지며 눈을 뜨게 했다. 짓눌려 있던 모든 것이 사라지고 눈앞에는 아리스가와 다이스만이 있었다. 갈까? 그가 눈으로 물었고 유메노 겐타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었을 때처럼, 빗속을 달렸던 때처럼 그가 커다란 손을 당겨주었다. 비명처럼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유메노는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손에 감겨있던 반짝이는 것을 벗어 던졌다. 그의 손을 잡고 유메노 겐타로는 다시 환상으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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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가는 겐타로 식장에서 난장판 만드는 다이스가 보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으음.... 세계관 설정이 풀린게 많지 않아서 죄다 날조 날조 날조...
결혼식은 엉망이 되었지만, 중앙구 누님은 깽판 덕분에 애인과 웨딩 마치를 올리게 되어 모두 해피엔딩이라는 거스로...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