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겐] 생일
2018. 7. 7. 15:10




"아, 젠장!"



쾅, 휴지통을 걷어찼다. 평소에는 묵직해서 차도 넘어가지 않던 게 오늘따라 텅텅 비었는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굴렀다. 뭐야? 지나가던 사람들이 흘끔 이쪽을 쳐다보았다. 더러운 벌레나 오물을 보는듯한 시선에 아리스가와 다이스는 칫, 작게 혀를 찼다. 기세 좋게 뻥 차버린 건 좋았는데 "주정뱅이? 신고하는 게 좋지 않아?"라는 말에는 버틸 수가 없어서 서둘러 다시 휴지통을 주워 자판기 옆에 세웠다. 그리고 쏟아져 나온 캔들을 주섬주섬 주워 던졌다. 아 쪽팔려라. 버석한 손으로 마구 머리를 문지르며 자판기에 쿵 이마를 박았다. 원인을 따지자면 다 이 자판기 때문이었다. 전 재산인 150엔을 홀랑 받아먹은 이 자판기.
7월 7일. 오늘은 아리스가와 다이스가 세상에 태어난 날이었다. 축복을 받았는지 어땠는지는 당연히 기억에 없다. 저를 꺼내준 의사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니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오, 멋진 날에 태어났네!" 라거나 "행운의 날에 태어났다니, 좋겠다!"라 떠들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고 짧은 제 인생을 돌아보면 멋진 날이라든가 행운의 날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날은 그다지 많이 없었지만, 그래도 생일이니까 7월 7일이니까 묘하게 들뜨고 매달리고 기대하게 되었다.
하지만 게자리의 오늘 운세는 8위. 하위권이었다.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게자리는 7월에 무조건 순위가 높아야 하는 거 아닌가? 친절하지 못한 별자리 같으니라고. 주워 읽은 신문지를 구기며 아리스가와는 생각했다. 하지만 별자리의 운세 따위에 매달려 행운을 바라는 건 제 인생과 맞지 않았다. 모토는 스릴과 모험. 별자리가 알려주는 행운의 아이템을 쥐고 안정적인 하루를 바라는 건 너무 멍청해 보였다.



"그래도... 그래도 말이지."



이건 너무 하지 않은가. 쿵쿵, 자판기에 이마를 더 몇 번 부딪히며 아리스가와는 이를 악물었다.
얼마 전에 드디어 보금자리를 구했다. 보증금도 감사비도 없이 딱 월세 만 오천 엔짜리의 방이었다. 낡아빠진 다다미에 좁아터진 싱크에 화장실에도 덜렁 변기만 있었으나 길거리보다는 나았다. 돈을 빌려준 아메무라 라무다는 방을 둘러보고 "이럴 거면 그냥 만 오천 엔을 나에게 주고 내 창고에서 자는 게 낫지 않아~?"라든가 "혹시 사람 죽었을지도 몰라. 이런 쓰레기장이라도 시부야에서 만 오천 엔이 말이 되냐고."라 했으나 그래도 자신의 이름을 문에 붙일 수 있는 첫 공간이었다. 사람이 죽어 나갔든 혹은 쥐나 벌레 사체가 나오든 그건 아리스가와 다이스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멋진 새 출발을 끊었는데 오늘, 생일인 오늘! 천장이 무너졌다. 우당탕 소리에 놀라 깼더니 누워있던 바로 옆에 무너진 천장과 함께 그 안에서 살았는지 쥐 사체 몇 개가 쏟아졌다. 너무 놀라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집주인에게 당장 천장 공사를 하라 바락바락 항의 전화를 하며 생일 아침을 맞이, 휴가 중이라 당장은 어렵다는 말에 답지 않게 집 청소까지 싹 하고 나왔더니 이번엔 아끼는 워커 밑바닥에 껌이 붙었다. 소새끼 말새끼를 입에 붙여가며 껌을 떼어나고 파칭코에 들렸더니 구슬은 구경도 하지 못했다. 마작을 두러 갔다 모아둔 담배값만 잃고 컵라면 좀 시켰다가 "벌써 외상이 얼만 줄 알아?"라고 주인에게 욕만 먹었다. 빈속을 끙끙 안고 그래도 저녁값은, 아니 오늘 잘 곳 정도는 마련할 돈을 위해 뒷골목 포커판에 끼었다가 손가락 하나 날릴뻔했다. 생일이니 나름 운이 좋지 않을까, 비기너스 럭키는 믿지 않지만 버스데이 럭키는 믿고 까불다 잃기만 하루였다. 그거로도 서러워서 엉엉 울 거 같은데 걷다 발견한 케이크 숍에서 케이크 좀 구경했다고 욕을 먹었다.



"저기요, 판매에 방해되니까 사지 않으실 거면 가주세요."



그냥 케이크를 봤을 뿐이었다. 주머니에 고작 150엔이 전부였지만, 누구나 꿈은 꿀 수 있는 거 아닌가. 돈은 없어도 꿈은 있으니까. 딸기 케이크, 초코 케이크, 시폰 케이크, 버터 케이크, 치즈 케이크를 둘러보며 그저 생일 케이크론 뭐가 적당할까, 멘트는 뭐라 적어달라고 할까 따위를 고민했을 뿐인데 그런 말과 그런 눈빛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매정한 직원의 싸늘한 말에 아리스가와는 무어라 따지지도 못하고 진열장을 떠났다. 눈앞에서 케이크와 촛불이 아른거렸지만, 마음도 아팠고 포커장에서 맞은 얼굴도 아팠고 텅 빈 지갑도 아파서 별수 없었다. 
이 정도면 충분한 거 아닌가. 생일에 만난 불운으로 이 정도면 충분한 거 아니냐고.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나가던 차가 웅덩이를 밟았고 그 덕에 고여있던 물에 입고 있던 점퍼를 버렸다. 열 받아서 입고 있던 점퍼를 던지며 또 소새끼 말새끼를 소환했더니 순찰돌던 순경에게 붙잡혔다. 파출소에 들어가 이유 없는 조사를 받았다. 신분을 입증할 신분증을 내놓으라는데 꼭 저를 어디 밀입국자처럼 대하는데 아주 기분이 나빴다. 시대가 시대이고 남자들만 지내는 구역에서 온갖 일이 벌어지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오늘은 생일이었다. 이 아리스가와 다이스의 생일. 눈물이 비집고 나올 거 같은 걸 꾹꾹 참으며 순경과 함께 신분증을 찾으러 집으로 향했다. 천장이 무너져 엉망이 된 집구석에서 동정의 눈빛을 받으며 신분증을 찾는 건 정말 기분이 개 같았다. "열심히 살아." 확인 후 돌아가는 순경의 말에 "나 존나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 꺼져!!"라고 외쳐주고 싶었으나, 오늘 하루를 돌아보면 그랬다간 당장 수갑을 차게 될 거 같아서 간신히 참았다. 그렇게 사건 사고를 마무리하고 집에 누워있다 보니 배가 고팠다. 꼬륵거려서 안 그래도 없는 자존심을 버리고 아메무라에게 연락했으나 "에? 나 오늘 일있어서 지금 외부에 있는데?"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다음으로 연락할 곳은 뻔했으나 휴대폰에 뜬 이름을 한참 보다 아리스가와는 그만두었다. 따지고 보면 이게 다 그 유메노 겐타로때문에 시작된 일이었으니까.



"...내가.. 어? 원고지에... 좀... 메모를 했다고!"



유메노 겐타로는 아리스가와가 가진 것 중에서 유일하게 내기에 걸 수도 없고 팔 수도 없는 존재였다. 그는 언제나 아름다운 얼굴로 제게 매정한 말만 쏟아 냈지만, 그래도 아리스가와는 그를 좋아했다. 그의 말이 어차피 다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오히려 매정한 말도 귀엽게 보였다. 아메무라는 병이라며 혀를 끌끌 찼지만, 이런 병이라면 불치병이라도 좋을 정도로 아리스가와는 유메노 겐타로에게 빠져있었다. 하지만 역시 매정함도 하루 이틀이어야 웃지. 대부분의 매정함을 아리스가와는 애정이라 포장하며 즐기고 있었지만, 그게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바로 이번의 경우. 놀고 먹고 자는 꼴을 더는 봐주지 못하겠으니 자신과 헤어지거나 제대로 일을 하라는 유메노 겐타로의 매정함에 아리스가와는 공사 보조 일을 시작했다. 하는 거라곤 공사 중에 앞쪽에 서서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돌아가세요."라고 알려주는 게 전부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종일 꼬박 햇빛 아래에 서는 게 지옥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저를 걱정하며 미래를 생각하라 일러준 유메노 겐타로의 마음에 보답하고 싶었다. 말은 "먹고 자고 놀 거면 그냥 가축으로 사세요. 저는 동물과 섹스하는 취미는 없으니 헤어져야겠군요."라 했지만. 여하간 그렇게 노동하고 번 첫 돈으로 복권을 샀다. 이 복권에 당첨되면 그동안 저를 위해 이것저것 신경써준 아메무라에게 한 턱 크게 쏘고 유메노 겐타로에게 멋진 집도 지어주겠다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복권 번호 발표가 있는 날. 낡은 라디오에서 불러주는 번호를 까먹지 않으려고 보이는 종이에 서둘러 숫자를 적었다. 그리고 그 종이가 하필 유메노 겐타로 선생님의 신작 원고였다. 출판사에 넘기기 직전의. 당연히 복권 번호는 맞지 않았고 돌아온 유메노 겐타로는 원고를 서류 봉투에 넣으려다가 휘갈겨진 숫자들에 그만 폭발하고 말았다.



"소생은 더는 못 참겠군요."



싸늘한 얼굴로 그런 못된 소릴 뱉었다. 제가 펜을 꾹꾹 눌러 썼는지 몇 장이나 원고지가 엉망이 되어 있었다. 아니 왜 디지털 시대에 파일로 안 남기고 이런 원고지에 쓰는 건데! 미안해서 그렇게 툴툴댔더니 유메노는 손바닥에 묻고 있던 얼굴을 들더니 조용히 말했다.



"헤어질래요. 소생은 다이스를 품을 그릇이 못 되는 거 같습니다."



평소라면 그 말에 미안하다고 빌었을 텐데, 그날은 저도 서러웠다. 이 복권을 내가 왜 긁었는데! 다 너 호강시켜주고 싶어서! 그런 말이 목까지 차올랐으나 그런 말을 꺼내봤자 비웃음만 살 거 같았다. 거기다



"툭하면 헤어지자고 말하는 너랑은 나도 더 못 사귀어."



조금 지긋지긋했다. 제가 부족하고 또 부족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거 다 알고 만나기로 한 거 아닌가? 그런데 툭하면 저렇게 헤어지자니 못 사귀겠다느니. 제 마음 가지고 협박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없는 짐을 싹 정리해 그의 집을 나왔다. 잘 지내라! 말리지도 않는 얄미운 등에 그렇게 외쳤지만, 유메노 겐타로는 끝끝내 저를 붙잡지 않았다.
그래도 생일이니까, 잊을 법한 날짜도 아니니까 연락이 오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런 것도 없었다. 없는 자존심을 긁어모아 아메무라에겐 연락해도 저를 버린 전 애인에게까진 무리였다.



"아! 울고 싶다!"



그런 허튼소리를 뱉으며 얼마나 엉망인 방에서 미련스럽게 굴었을까. 더는 버티지 못해 근처 자판기에서 음료수라도 뽑아 배를 채울 생각으로 나왔는데, 이 망할 자판기가 돈을 먹어 치웠다.



"차라리 7월 8일에 태어나지."



조금만 더 버티다가 하루만 더 늦게 태어났으면 럭키 세븐이라는 말에 설레하는 일도 없었을 테고, 이렇게 서럽지도 않을 텐데. 아리스가와는 애꿎은 땅만 몇 번 비벼 차다 결국 이마를 들었다. 자판기의 빛은 여전히 밝았다. 야속하게도 그랬다.



"가자.. 가."



담배가 고팠다. 하지만 담배값으로 모아둔 돈은 낮에 마작판에서 다 잃은 후였다. 저녁으로 때울 음료수 값도 자판기에게 뺏겼다. 서러워도 이렇게 서러울 수가 없는데 버틴다고 해서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일을 그만두지 않았으면 좀 나았을 텐데. 유메노 겐타로와 헤어지면서 홧김에 일도 그만두었더니 정말 돈이 땡전 한 푼도 없었다.



"이런 꼴을 보면 겐타로 또 혀를 차겠지."



아니 이젠 아예 관심이 없을지도. 매정한 말도 안 해주겠지. 우울한 일이 겹치니 마음은 더 우울해졌다. 아리스가와는 비척비척 끌기 싫은 다리를 억지로 끌어 집으로 향했다. 얼른 자고 싶었다. 내일이 되면 이 불운도 모두 리셋이 될 거 같았다. 그렇게 쿵쿵, 우중충한 얼굴로 낡은 철제 계단을 올랐다. 안 잠그고 나온 문은 당연하게도 쉽게 열렸다. 훔쳐 갈 게 없는 삶은 이렇게 편해. 그리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웃음이 나오나요?"



킥킥대며 안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매서운 동시에 익숙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퍼뜩 고개를 들자 유메노 겐타로가 있었다. 천장이 무너지고 온갖 물건이 뒤섞인 방에 어울리지 않는 고고한 얼굴이 저를 보고 있었다.



"...겐타로?"



헛것을 보는 건가? 너무 배고파서 머리가 돌았나? 아리스가와라는 눈을 껌뻑였다.



"도대체.. 이게... 무슨... 하!"



하지만 그런 저를 유메노 겐타로가 현실로 잡아당겼다. 터지는 목소리는 아주 차가웠다.



"겐타로, 왜 여기에 있어?"
"지금 소생에게 시위하는 겁니까?"
"뭐?"
"그것도 아니면 반항? 반항기나 사춘기를 겪기엔 다이스, 너무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단단히 화가 난 목소리가 화살처럼 날아와 가슴에 콕콕 박혔다. 그를 처음 봤을 땐, 그의 저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아팠는데 지금은 웃음이 나왔다.



"나 걱정해?"



오로지 상처를 내기 위한 화살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아리스가와는 실실 웃으며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제 웃는 얼굴이 기가 막힌지 어이없다는 얼굴로 저를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소생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이렇게 살고 싶으면 이렇게 사는 거죠."
"에에, 뭐야. 나 포기하지 마. 잔소리하고 얼른 혼내줘."



그게 유메노 겐타로의 방식이잖아? 애정과 매정.



"다이스 변탭니까?"
"어. 좀 그런 거 같아. 왜 너에게 혼나는 건 이렇게 좋지? 이왕이면 벗고 해줄래?"



농담처럼 지껄였더니 그가 눈썹을 찌푸렸다. 그리곤 무언가를 쑥 내밀었다. 자그마한 상자가 그의 손 아래에서 흔들렸다.



"설마..."



상자에 찍힌 로고는 너무도 익숙한 모양이었다. 오늘 낮에 제가 쫓겨난 그 케이크 가게의 로고였으니까.



"설마.. 케이크야?"



그럼 뭐겠습니까. 그가 지친 목소리로 중얼댔다. 아리스가와는 덥석 상자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서둘러 깠다. 안에는 딸기가 잔뜩 올라간 생크림 케이크가 들어있었다. 그래, 아까 진열대에서 네가 젤 예쁘더라. 영롱한 자태를 보며 아리스가와는 코를 훌쩍였다.



"...설마 다이스, 웁니까?"
"겐타로!!!"



케이크는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를 끌어안았다. 유메노 겐타로는 역시 제가 가진 것 중에서 유일하게 내기에 걸 수도 없고 팔 수도 없는 존재가 맞았다. 이렇게 귀하고 비싼 선물을 어디에 걸고 어디에 팔까. 절대로 못 하지.



"...하 소생이 졌습니다."



터져버린 눈물이 그의 어깨를 적시는데도 그는 화 대신 따듯한 손으로 등을 문질러주었다. 익숙한 그 손에서 익숙한 온기를 찾으며 아리스가와는 꾹 눈을 감았다. 7월 7일에 태어나서 다행이었다. 이런 행운을 가질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스무 번의 생일을 맞이했지만, 별다른 기억이 남아 있지 않은 지난 7월 7일과 달리 오늘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거 같다고 생각하며 아리스가와는 한동안 품에서 선물을 놓지 않았다.












아리스가와 다이스 생일 추카해... 77....

나가야 해서 급하게 혼자 전력 60분 했네.. 퇴고는 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