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카와는 때때로 스가와라 코우시가 미웠다.
그 어둡고 습한 감정은 가끔씩 고개를 들이밀고 오이카와의 안을 뱀처럼 기어 돌아다녔다. 그를 미워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오이카와는 그 감정을 애써 억누르거나 지우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금세 지워질 감정이라 무시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불쑥불쑥 감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를 들어 이럴 때.
"어? 왔어?"
퇴근길, 익숙한 아파트 복도를 걷던 오이카와는 걸음을 멈추었다. 자신을 돌아보며 반기는 스가와라 코우시의 웃는 얼굴보다 오이카와는 그 건너편에 있는 남자가 더 신경 쓰였다. 꾸벅 인사를 해오는 그의 친절을 무시하며 오이카와는 오로지 자신을 보고 있는 스가와라만 바라보며 가까이 다가섰다.
"추운데 뭐해?"
"아, 이웃집에 이사 오셨데. 케이크 주셨어. 맛있겠지?"
환하게 웃으며 스가와라가 손에 들린 상자를 살짝 흔들어 보였다. 이사선물로 여자들이 좋아할 법한 케이크 선물이라. 오이카와는 그다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안녕하세요-라며 조심스레 말을 건네는 사내를 무시하며 스가와라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놀라 올려보는 그 밤갈색 눈을 모른체 하며 오이카와는 집안으로 그를 밀어 넣었다. 쾅, 문이 닫히자 현관 아래로 불이 켜지지 않은 방안의 어둑함이 두 사람을 덮었다.
"뭐하는 거야?"
"뭐가?"
당황해서 묻는 그 물음에 오이카와는 시치미를 뗐다.
"방금. 저분이 인사 하는데 무시했잖아. 너."
"못 들었어."
"뭐?"
"그보다-"
스가와라 코우시가 던지는 잔소리야 얼마든지 들어 줄 수 있는 문제였지만 그 남자가 주체가 되는 잔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알지도 못하고 알 생각도 없었지만 어쨌거나 싫었다. 오이카와는 서둘러 그의 말을 잘라내며 손에 들린 케이크 상자를 부드럽게 빼앗았다. 그리고 놀란 그를 달래기 위해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약간 화가 났는지 입술을 열지 않는 얄미운 그를 조심스럽게 당겨 안았다. 딱딱한 사내의 몸이 가볍게 품 안으로 부딪혀왔다. 진득하게 혀를 내어 열어주길 종용했지만 그럼에도 단호하게 다물린 입술은 열릴 생각이 없는듯 보였다. 뒷걸음치는 그가 넘어지지 않게 한팔로 안아 품으로 당기며 오이카와는 들고 있던 케이크 상자를 거칠게 식탁 위로 던지듯 내려놓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버리고 싶은데 그랬다가는 크게 화를 내서 얼굴도 보여주지 않을 것 같으니 이번에는 자신이 참아야 했다.
"이런 걸로 넘어갈 생각 하지 마. 토오루."
결국, 끝까지 입술을 열어주지 않은 스가와라는 조심스레 벌어진 거리 사이로 숨을 토해내며 짐짓 엄하게 말했다. 딱히 크게 화가 담기지 않은 목소리에 안심하며 오이카와는 작게 미안하다 속삭였다. 전혀 미안하지 않았지만 잔뜩 미안한 얼굴로 미안한 척을 했다. 스가와라 코우시와 지내면서 이런 거짓말을 수도 없이 했더니 어렵지도 않았다. 조금 누그러진 그의 얼굴을 살피며 천천히 손을 뻗어 아까 그 케이크 상자를 들고 있던 손가락에 입을 맞추었다. 붉어지는 얼굴에 시선을 고정하며 혀를 내어 핥고 손바닥에 키스했다. 그리고는 살짝 이를 세워 손가락을 물었다. 아팠는지 살짝 인상을 찌푸린다. 이 정도로 아파하지 마. 나는 네가 타인에게 호의를 받고 친절을 받을 때마다 아프니까. 그리 생각하며 오이카와는 꽉 스가와라 코우시의 손목을 쥐었다. 힘을 주면 뚝 부러질 것 같은 그것을 쥐며 눈을 감았다. 정말로, 그가 미웠다. 오이카와는 정말로 스가와라 코우시가 미웠다.
물론, 단지 그 날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외에도 또 있었다.
"뭐?"
오이카와는 가디건에 손을 꼽은 채로 햇볕을 받아내는 스가와라 코우시의 등을 내려보았다. 길거리에 살짝 무릎을 굽히고 앉아 어디서 뭘 하며 사는지도 모르는 길고양이를 쓰다듬는 꼴이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해 되물었지만 스가와라 코우시는 다시 질문했다.
"데려가서 키우면 안 돼?"
"...안돼."
"왜?"
왜냐니. 시무룩한 얼굴로 물어오는 그 안타까운 얼굴에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가와라 코우시는 일부로 더 그런 얼굴을 지어 보였다. 약았다. 오이카와는 살살 자신의 머리를 쓸어 넘기며 "그런 얼굴 해도 싫어."라고 강하게 말했다. 스가와라 코우시와 자신의 보금자리에 다른 무언가가 끼어드는 것은 절대로 싫었다. 그게 말도 못하는 동물일지라도. 어쩐지 더 작아진 등으로 고양이만 지켜보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아 억지로 팔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조금 거칠게 굴었는데도 둔한 것인지 작은 고양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오이카와는 치미는 짜증을 눌러 삼키며 최대한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병 있을지도 몰라."
"병원 데려가서 검사하고 잘 씻기면 되잖아."
"배변은 어쩌고, 날리는 털은 어쩌고."
"내가 다 가르치고 청소할게. 응? 데려가자."
싫다. 진짜 싫다. 그렇게 가르치고 돌보는 동안 자신이 뒷전으로 밀려날 것이 뻔하니 절대로 싫었다. 그럼에도 살짝 자신의 팔을 잡아오며 묻는 얼굴이, 기대감 가득한 그 눈동자가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오이카와는 차마 다시 한 번 안 된다는 소리를 뱉지 못했다. 결국, 그 작은 고양이는 스가와라 코우시의 팔에 안기고 말았다. 기분 좋은 듯 우는 그 목소리에 당장에라도 목덜미를 잡아 치워버리고 싶었으나 버텼다. 병원에 데려가 상태를 체크하는 의사 앞에서 눈을 반짝이는 꼴이 너무도 미웠지만 간신히 견뎌냈다. 마트에 가 고양이를 기를 용품을 쇼핑하는 등을 보며 당장이라도 품에 안은 그것을 어디론가 던지고 싶었지만 참아냈다. 스가와라 코우시가 저리 좋아하니 참아야 했다. 그를 울리고 싶지는 않으니 견뎌야 했다.
타닥타닥 발소리를 내며 자신의 집 거실을 배회하는 검은 그것을 오이카와는 가라앉은 눈으로 내려보았다. 스가와라 코우시의 손길에 얌전하게 자리를 잡는 고양이를 지켜보며 오이카와는 천천히 팔을 뻗었다. 스가와라의 허리를 뒤에서부터 안아 목덜미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저런 것에게 스가와라를 조금도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걔 그만 봐."
"하하, 뭐야. 토오루 지금 질투하는 거야?"
그래 질투하는 거야. 그걸 알면서도 끝까지 날 돌아보지 않는 네가 너무 미워. 오이카와는 크게 숨을 들이켜며 그의 뒷목에 코를 박았다. 자신과 같은 로션 향이 가득 치미는 이 지독한 감정을 달래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내 품에 있어. 아직 내 거야. 꽉 강하게 허리를 끌어안으며 오이카와는 견뎌냈다. 스가와라 코우시가 또 미웠지만, 또 참아냈다.
이 외에도 수도 없이 많았다. 길을 물어보는 외국인에게 웃으며 지도를 그려줄 때라든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와중에 지인을 만났다고 웃으며 자신에게서 거두는 시선이라든가, 여름이니 수고하다며 찾아온 택배 기사에게 음료를 건넨다든가, 자신과 함께 쓰는 침대에 그 빌어먹을 고양이를 안고 잠들어 있는 모습이라든가,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들어온다는 연락을 한다든가, 그걸로도 모자라 빌어먹을 친구가 "스가가 많이 취했는데-"라며 대신 전화를 한다든가, 그게 꼭 사와무라 다이치라든가, 마트 시식 코너에서 "총각 참 예쁘네."하는 칭찬에 웃어 보인다든가, 회식 자리에서 주는 대로 받아 마시고 정신도 못 차리는 꼴로 배달된다든가- 말하자면 더 많았고 이야기 하자면 끝도 없었다. 오이카와는 그렇게 끝도 없이 스가와라 코우시가 미웠다.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그를 미워하고 미워하며 상처 냈다.
지금도-
"응? 아니 괜찮을 것 같은데. 다음 주 화요일?"
주말이었다. TV에는 어제 나란히 렌탈했던 DVD가 의미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스가와라의 허벅지를 벤 채로 멍하니 집중도 되지 않은 화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작게나마 들려오는 핸드폰 스피커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그다지 낯설지 않은 이의 것이었다. 주말은 온전히 우리 둘 만의 것인데, 이 시간은 우리 둘만의 것이었는데 방해받았다.
"아니야. 연락해줘서 고마워. 카게야마."
자신의 후배이기도 했던 그 이름을 부르는 스가와라의 목소리륻 들으며 오이카와는 천천히 손톱을 세워 자신의 눈앞에 드러난 새하얀 허벅지를 긁어 내렸다. 강하게는 아니었지만 피부가 약한 탓에 금세 붉게 올라오는 자국을 보며 이번에는 아플 정도로 힘을 주었다.
"아!"
작은 비명과 함께 스가와라가 손을 뻗어 오이카와의 손가락을 쥐었다.
"아니, 잠깐 우리 집 고양이가 장난을 쳐서."
저 멀리 잠들어 있는 검은 고양이의 핑계를 대는 스가와라의 목소리를 들으며 오이카와는 천천히 손바닥을 돌려 자신을 붙잡은 그 손을 꽉 깍지 쥐어 잡았다. 붉게 올라온 손톱자국을 보며 고개를 숙여 입술을 묻었다. 바르작 거리는 다리의 움직임을 강하게 붙잡고 그 거부를 무시하며 깊게.
"알았어. 그래, 다음 주에 만나."
자극이 간지러웠는지 발버둥 치며 스가와라가 드디어 전화를 끊었다. 왜 사람을 괴롭혀? 억지로 손을 빼내려고 힘을 주며 묻는 그 말에 오이카와는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동그랗게 뜬 눈을 손바닥으로 눌러 감추며 천천히 벌어진 입술을 찾아 물었다. 거칠게 파고드는 혀의 움직임에 스가와라가 놀라 어깨를 밀어내며 쳐댔지만 오이카와는 물러서지 않으며 이를 세워 입술을 물었다. 그리고 자신이 아닌 언제나 다른 것을 담는 그 눈을 가득 힘을 줘 더 눌러 내렸다. 막힌 숨소리가 목을 타고 울렸다. 자신의 아래에서 바둥거리는 몸을 가볍게 눌러 잡으며 오이카와는 천천히 잡고 있던 스가와라의 손을 놓아주었다. 공중에서 어쩔 줄을 모르던 손은 이윽고 가볍게 오이카와의 티셔츠를 붙잡아왔다. 가벼워진 손을 올려 오이카와는 자신의 타액을 받아내는 스가와라의 목을 쥐었다. 엄지손가락으로 가운데의 목젖을 살살 누르자 살짝 몸이 경직되는 것이 느껴졌다. 이대로 꽉 잡아 눌러서, 목을 졸라서 다른 사람의 이름 따위 말하지도 못하게 만들면 좋을 텐데. 하지만 오이카와는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부드럽게 엄지손가락을 밀어 쓸어주며 아프게 휘저었던 입술에서 떨어졌다. 소파에 잔뜩 밀려 갇힌 스가와라 코우시가 불안한 눈동자로 올려보고 있었다.
"코우짱."
"...왜?"
"나중에 내가 정말 위험하다 싶으면."
"..."
"티 내지 마. 티 내지 말고 내가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짐을 싸서 이 집을 나가."
"뭐?"
"내가 아는 놈에게 찾아가지는 말고. 내가 널 찾아가지 못하게 멀리멀리 도망가버려. 꼭 그래야 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진짜 모르겠다."
픽 웃으며 그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 웃음 소리와 함께 흔들리던 눈동자의 빛은 어디론가 멀리 사라졌다. 그리 강하게 쥔 것도 아닌데 목에 약하게 손자국이 남아있었다. 어쩐지 심장 어딘가가 지끈하고 아파왔다. 따뜻한 손바닥이 천천히 오이카와의 뺨을 감싸왔다. 부드러운 온기를 느끼며 오이카와는 살짝 고개를 틀어 손바닥에 입을 맞추며 눈을 감았다.
가끔은 스가와라 코우시의 이 손을 부러뜨리고 싶다. 자신 이외에 누구도 붙잡지 못하도록. 입을 틀어막고도 싶다. 자신 이외에 누구의 이름도 부르지 못하도록. 눈도 가리고 싶다. 자신 이외에 누구도 보지 못하도록. 이왕이면 발목도 망가트리고 싶다. 이런 자신을 알아도 도망가지 못하도록. 자신을 이토록 나쁘게 만드는 스가와라 코우시가 미웠다. 그럼에도 그 이상으로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때때로 그를 한없이 상처 내고 싶을 정도로 미웠지만, 그 이상으로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오이카와는 견딜 수 있었다. 차오르는 미움과 증오는 언제나 그 사랑스러움에 항복했다.
오늘도 오이카와 토오루는 스가와라 코우시가 미웠다. 그리고 오늘도 오이카와 토오루는 스가와라 코우시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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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고딩때 만나서 사귀고 지금은 사회인 되서 동거하는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식는게 아니라 더 불붙어서 아슬한 경계를 넘나드는 오이카와가 보고시펐다.
하지만 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