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카나] 문 너머
2018. 5. 20. 15:05



"도련님은 곧 모든 걸 다 이루게 되실 거에요."



유모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꽤 지긋지긋한 말이었지만, 분명한 사실이었기에 하카제 카오루는 그녀의 그 말을 굳이 막지 않았다. 자신을 칭찬하거나 혹은 달래거나 그것도 아니면 꾸짖을 때마다 유모를 비롯해 모든 사용인이 그 소리를 지껄여댔고, 그 말은 마치 주문과도 같아서 하카제는 그 말이 반드시 이루어질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카오루! 거기서 뭐 하니!"



모든 걸 다 이루게 된다는 건 도대체 언제일까. 하카제 집안을 이어갈 유일한 아이로서 하카제 카오루는 저택 안 어디에서나 자유로웠다. 누군가 매일 닦아대는 대리석 바닥에 물감칠해놓아도 되었고 유모를 피해 어머니가 아끼는 감나무에 오르는 것도 허용되었다. 아버지의 서재의 책을 마구잡이로 꺼내놓아도 다들 크게 혼내지 않았고 가끔 누이의 드레스를 잘라놓는 못된 장난을 칠 적에만 어머니에게 훈계를 듣는 정도였다. 그것도 훈계라기보단 타이름에 가까웠지만.
하지만 유일하게 허락되지 않는 행동이 있었다. 저택의 구석, 아버지의 서재 옆에 굳게 닫힌 방을 드나드는 건 금지였다. 어마어마한 가문의 보물이라도 숨겨져 있는지, 청소하는 사용인은 물론 집안을 관리하는 집사도 그리고 어머니도 누이도 자신도 그 방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몰래 문고리를 잡아 돌려보았지만, 단단히 잠긴 문은 철컥대는 소리만 낼뿐 저를 들여보내 주지는 않았다. 유일하게 그 방을 오가는 이는 아버지뿐이었다. 몇 번이고 아버지에게 구경시켜 달라 부탁해 보았지만, 그는 단호하게 "네가 들어갈 곳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언제나 자신에게 약한 유모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안쓰러운 얼굴로 몇 번이나 보들한 뺨을 문질러주며 "도련님, 거기는 포기하세요."라 달래줬다. 그래도 포기가 되지 않아서 몇 번이나 창을 넘어보려 애쓰고 문고리를 당겨보기를 몇 번째, 결국 산책하다 돌아온 어머니의 눈에 걸리고 말았다. 그녀는 복도가 울리도록 비명처럼 저를 불러 세웠다. 거기서 뭐 하냐니, 문을 열려고 했을 뿐인데. 평소처럼 애교 있게 웃으며 넘기고 싶었지만, 스커트 자락을 쥐고 달려온 그녀의 손이 그리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어 하카제는 그저 "죄송해요."라 사과했다. 정확하게 뭘 잘못했는지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금방이라도 그녀가 쓰러질 것만 같아서 우선은 그랬다.
어머니가 처음으로 방문 앞에서 자신을 발견한 날 밤, 그녀는 아버지와 크게 싸웠다.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지르는지 온 저택이 쩌렁쩌렁 울렸다. 언제나 조용하던 어머니라 하카제는 덜컥 겁이 났다. 그 화가 자신에게 돌아올까 무서워 누이의 방으로 숨었다. 함께 이불을 뒤집어쓴 누이는 그곳에 괴물이 살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가 드나들 때, 슬쩍 엿보았는데 어마무시한 이빨을 가진 커다란 괴물이 거기 있다고 했다. 잔뜩 겁에 질려 누가 들을까 소곤대는 그녀의 말에 하카제는 흠칫 떨었지만, 이내 웃으며 "그런 건 다 거짓말이야!"라 우겼다. 아버지의 취미는 승마였다. 그 외에 술을 수집하거나 가치도 모를 커다란 병들을 모으곤 했으나, 그 안에 괴물을 기르는 건 없었다.
 작은 태풍이 지나간 후, 저택은 다시 고용해졌다. 밤마다 아버지의 서재 옆 방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지만, 아버지 외에 그 누구도 여전히 그 방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어린아이의 호기심은 어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자라났다. 하카제는 다시 몇 번이고 문고리를 쥐었고 더는 말리지 못한 집사가 그리고 유모가 두 손을 들고 어머니에게 고해 결국 크게 혼났다. 바지를 들고 그녀 앞에 서서 매섭게 달려드는 회초리에 질질 짜며 잘못했다고 빌어야 했다.



"몇 번을 말해야겠니, 거긴 아버지 외에는 들어가선 안 된다고!"
"하지만.. 궁금하단 말이에요.."



아픈 것보다 속상해서 그리고 억울해서 터진 눈물을 꾸역꾸역 참아내며 말하자 그녀는 더 힘을 주어 회초리를 휘둘렀다.



"네가 궁금해할 필요도 없는 거야!"



그러니까, 그게 도대체 뭔데. 궁금해할 필요도 가치도 없는 거라면 누구라도 나서서 그냥 이야기해주면 되는 거 아닌가? 더 감추고 숨기니까 궁금증만 더 커지는 거잖아. 따져 묻고 싶었지만, 서서 버티는 것도 무리인지라 하카제는 그 역시도 꾸역꾸역 참아냈다.



"거기엔.. 악마가 있어요. 도련님."



그날 밤, 잔뜩 울어서 엉망인 제 얼굴을 토닥여주고 부어오른 종아리에 약을 발라주며 유모가 고했다.



"정말 무시무시한 악마가 있어요. 그러니 도련님은 눈길도 주지 마세요."
"악마가 있다고...?"
"네. 도련님을 한입에 다 삼켜버리고 가진 걸 다 빼앗아 갈 거예요."



추하게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 저를 꽉 안아주며 유모가 몇 번이고 그렇게 말했다.


괴물보다는 어쩐지 악마가 더 꺼림칙하고 무서웠던 터라 하카제는 그 이후로 문고리를 잡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호되게 혼난 것도 한몫했다. 거기다 슬슬 머리가 크고 나니 그 방에 괴물이 있든, 악마가 있든 관심이 사그라졌다. 친구들과 시답지 않게 떠들고 다니는 게 더 즐거웠고 뺨을 붉히며 데이트 신청을 하는 아가씨들과 차를 마시며 별별 허세를 떨어대는 게 더 즐거웠다. 더는 돌봐주지 않아도 되는 도련님을 두고 유모는 저택을 떠났고 그녀와 마찬가지로 여러 이유로 사용인들의 얼굴도 바뀌어 갔다. 그래도 여전히 모두가 "도련님은 곧 이 가문을 이어받을 분이시니 모든 걸 다 이루시게 될 겁니다."라고 떠들어댔다. 그 말을 증명하듯 아버지가 아끼는 술을 몰래 친구들과 나눠 마시고 들어와도, 가문의 표식이 그려진 마차에 아가씨를 끌어들여도 누구 하나 저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어머니도 회초리를 들지 않았다. 그저 누이만이 한심하다는 눈으로 "언제 철 들래?"라고 할뿐이었다.


그리고 스무 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처구니없게도 낙마 사고였다. 승마를 자주 즐기던 아버지가 낙마 사고라니, 그럴듯하면서도 참 이상한 일이었다. 다른 가문과 결혼 준비를 하던 누이는 식을 미루고 슬픔에 잠겨 방에만 틀어박혔다. 집사를 비롯한 사용인들 역시 주인을 잃은 슬픔에 빠져 저택의 분위기는 어둑하기만 했다. 하카제 역시 슬펐다. 아버지는 자상하거나 다정하다는 표현과 먼 사내였으나,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가문을 대표하는 이답게 높은 곳에 서서 모든 걸 통솔할 줄 아는 남자였고 단단한 남자였다. 그런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떠나다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나름 진지하게 교제하고 있던 여성이 풍만한 가슴에 품어 안아주며 울어도 된다 달래주었다. 애도 아니면서 그녀의 드레스를 잔뜩 적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달랐다. 그녀는 아버지의 사고 소식에도 울지 않았고 장례식에서조차 울지 않았다. 그녀를 대신하듯 누이만 질질 짰다. 모두가 정신을 놓은 사이 그녀는 빠르게 아버지의 장례를 끝내고 아버지를 죽게 만든 애마까지 처분했다. 가족처럼 친구처럼 아버지가 아끼던 까만 말은 사고의 이유조차 뱉지 못하고 목이 날아갔다. 보통 남편이 죽으면 1년은 상복을 입고 지내는 게 보편적이었으나, 그녀는 장례가 끝나기 무섭게 다시 화려한 드레스로 복귀했다. 밖에서 이런저런 말이 돌고 있었지만, 어머니가 슬픔을 견뎌내는 방법이라 생각하며 하카제는 그냥 두었다.



"이제 네가 이 집안의 주인이야."



빠르게 모든 일을 처리하고 정리한 어머니는 이내 하카제의 손을 잡으며 그렇게 말했다. 조금 주름이 졌지만, 여전히 하얗고 고운 손에서 아버지의 반지가 나왔다. 하카제 가문의 가주에게만 전달되는 반지였다. 가문의 문양이 들어간 반지는 실제론 그리 무겁지 않았으나, 어머니의 손에 의해 끼워지는 순간은 어쩐지 어마어마한 수갑이라도 차는 기분이었다. 누이가 이어받아도 상관없는데.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절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이야기라 하카제는 입을 다물었다.
가주가 되기 무섭게 주변이 정리되었다. 더는 방탕하게 이 여자 저 여자를 만나서도 안 되었고 아버지의 술 컬렉션을 건드는 것은 문제없었지만, 친구들과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은 안 되었다. 여러 가문에서 새로운 가주를 만나고 싶다며 서신을 보내댔다. 아버지가 꾸리던 무역 상단의 일은 하카제의 정신을 갉아 먹어댔다. 아버지 아래에서 일하던 보좌관들과 집안 변호사들이 아니었으면 벌써 이 가문은 길바닥에 나 앉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모든 걸 다 이루게 될 거라니, 도대체 뭘..."



하카제는 멍하니 천장을 보며 중얼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버지가 가문을 위해 공부나 하라 할 때 말을 듣는 거였는데. 이별이 이렇게 덜컥 찾아올 줄 알았다면 싫어도 그렇게 했을 텐데. 뒤늦은 후회를 하며 몸을 일으켰다.
아버지가 떠난 지 5년, 여전히 하카제 카오루는 가주로서 헤매고 있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누이도 장례가 끝나고 1년 뒤, 무사히 식을 올리고 저택을 떠났다. 어머니는 여전히 건강하고 아름다웠다. 간혹 어느 가문의 아가씨가 어떻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전해오긴 했지만 그녀의 결혼 생활이 그리 행복하지 않아서였는지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았다.



"이런, 술이 떨어졌네."



하카제는 잔을 기울이다 비어있는 와인을 확인하고 몸을 일으켰다. 대충 묶은 나이트가운의 앞자락이 풀어 내려졌다. 이 꼴을 보고 "어휴, 도련님! 차림은 바로 하셔야죠!"라 잔소리할 유모 역시 2년 전,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의 죽음보다 그녀의 죽음이 하카제는 더 힘겨웠다. 와인에 잠긴 발을 질질 끌어 서재를 나오자 저택은 고요했다. 늦은 밤이니 당연했다. 복도 곳곳에 들어찬 불빛을 따라 걸으며 지하로 향했다. 아버지의 창고였다. 귀한 술들은 모두 거기 있었다. 유모는 늘 "도련님은 주인님을 똑 닮으셨어요."라 말하곤 했는데, 그녀가 자신에게 했던 말 중 적어도 그것만은 진실일지도 몰랐다. 아버지의 창고에서 어려서부터 술을 까먹던 버릇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으니까. 지금은 상단일을 하며 들여온 귀한 술을 그를 대신해 채워 놓고 있었다. 어차피 그래 보았자 다 제 것이지만.
대충 병 하나를 골라 창고를 나오는 길, 계단을 오르며 저택에 걸린 초상화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죽은 아버지의 얼굴이 거기 있었다. 눈이나 머리카락 색을 빼면 저와 별로 닮은 점도 없어 보였으나, 아마 닮았다는 거겠지. 인사 대신 술병을 흔들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아버지와 혹은 누이와 함께한 자신의 그림도 걸려있었다. 꽤 세월이 흐른 그림들인데 당시 일들은 여전히 생생했다. 그 안에 어머니만 없었다.
어쩌면, 하카제는 늘 생각했다. 어쩌면 아버지를 죽인 건 어머니가 아닐까 하고. 두 분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좋지도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하카제의 기억 속에서 두 분은 언제나 벽이 있었다. 다정하게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는 법도 없었다. 티타임도 언제나 각자. 아버지와 이야기할 때, 어머니는 늘 먼 곳을 보곤 했다. 아버지 역시 그 시선을 붙잡아 두는 수고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 가끔은 서로를 무시하던 것과 다르게 크게 싸우곤 했는데 대부분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었다. 어머니가 무어라 화를 내면 아버지는 늘 "당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니야."라 답했다. 마지막은 늘 어머니의 울음으로 끝났다. 그 소리를 달래주는 이는 이 저택에서 그 누구도 없었다. 누이도 저도 언제나 숨어있기 바빴으니까.



"주인마님께서 마구간에서 나오는 걸 봤어.."



요리를 담당하던 사용인들이 복도에서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들은 모두 어머니가 아버지의 애마에 약물을 주사했거나 어떠한 조치를 취해 낙마 사고를 벌였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뭐라 지껄이든 하카제는 내버려 뒀다. 장례에 가문까지 일이 너무 많아 하찮은 것들의 대화에 흔들릴 정신이 없었다. 얼마 안 가 집사가 그녀들을 모두 해고했고, 이 저택에서 그 이야기를 아는 건 자신 밖에는 남지 않게 되었다. 대단한 비밀이었지만, 하카제는 굳이 그걸 밝히고 싶지 않았다. 어쨌거나 어머니는 자신의 어머니였으니까. 그래도 가끔은 궁금했다. 정말 그녀가 아버지를 죽인 거라면 왜 그랬어야 했는지. 아들이 성인이 되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그래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절대로 물을 수는 없겠죠. 아버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아버지의 초상화를 들여보며 물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듯이 그림 역시 말이 없었다. 그래도 혹시 대답이 들려올까 하카제는 한참 버티다 다시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복도에서 불빛과 마주쳤다. 문 틈새로 살짝 흘러나온 빛은 이내 조용히 닫히는 문소리와 함께 차단되었다. 하카제는 멍하니 복도 끝을 바라보았다. 정확하게는 더는 사용하지 않는 아버지의 서재 옆, 자신이 몇 번이고 열려 들었던 그 비밀의 문을.



"...도련님..."



그 안에서 나온 집사는 어둠 속에서도 하얗게 질려 있었다. 찰그락, 소리를 내며 그의 손에서 열쇠가 떨어졌다. 하카제는 천천히 걸어 그의 앞에 섰다. 어떻게 이 방을 잊고 지냈을까. 어릴 때 그렇게 들어가고 싶어 했던 방이었는데. 워낙 저택에 방이 많다 보니, 잊혔던 문은 아예 없던 것처럼 제 안에서 사라졌다 방금 다시 나타났다. 곧 뭐라도 지릴 듯이 떠는 집사를 가만히 바라보며 하카제는 허리를 숙였다. 가문의 문장이 그려진 열쇠를 집어 들었다.



"집사님."
"주, 주인님, 그게.. 그게 말입니다.."
"이 열쇠는 아버지 물건이 아닌가요?"



사용인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은 제한되어 있었다. 대부분 문은 열려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열쇠가 필요했다. 사용인들이 사용하는 열쇠에는 가문의 문장이 없었다. 이런 가문의 문장이 들어간 것은 가주의 물건이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왜 이게 집사에게서 튀어나오는 걸까. 아버지가 죽고 5년이나 흐르는 동안, 그는 왜 이걸 자신에게 넘기지 않고 쥐고 있었을까. 그리고 왜 여전히 지금도 이 방엔 들어가선 안 될 것처럼 자신을 막아서는 걸까.



"집사님이 그러셨죠. 제가 모든 걸 다 이루게 될 거라고요."
"...주인님, 제발.."
"말 그대로 저는 하카제 가문의 가주가 되었고 아버지가 일궈놓은 사업도 나름대로 잘 이끌어 나가고 있어요. 술도 넘치게 많고 여자도 차고 돈도 모자람 없죠. 보통은 이런 걸 다 이룬다고 하지 않나요?"
"..."
"그런데 저는 다 이루지 못 한 거 같네요. 왜 여전히 이 방은 들어가선 안 되는 겁니까?"



제가 이제 가주인데도요. 그리 말하며 집사의 어깨를 잡아 밀었다. 어릴 땐 번쩍번쩍 저를 들던 사내는 이제는 힘없이 밀려 나갔다. 그럼에도 정말 악마라도 숨겨놓았는지 그가 필사적으로 자신의 팔을 잡았다. 무례함을 잊고 그랬다.



"안됩니다. 주인님! 이건 선대 가주님의 유언입니다! 절대로 이 방에는 누구도 들이지 않겠다고 했고, 마님이 아시면!!!"
"유언이요? 그 유언은 뭡니까? 제가 모르는 아버지의 유언장이 있습니까?!!"
"그건 저와 마님 앞에 남긴 유언입니다! 주인님께는-"
"주인님, 주인님!! 그렇게 부르면서 날 주인으로 생각도 하지 않잖아, 당신은!!!"



버럭 내지른 소리와 함께 조용하기만 했던 복도가 소란스러워졌다. 자다 일어난 사용인들이 허겁지겁 옷을 걸치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안에는 평소와 달리 머리를 풀어 내린 어머니도 포함되어 있었다.



"뭣들 하는 겁니까...?"



그녀가 두른 숄을 움켜쥐며 물었다. 자신은 이제 어린아이가 아닌데 당장이라도 종아리를 내보이라 할 것 같은 얼굴이었다.



"어머니는 아시죠? 이 안에 뭐가 있는지."
"카오루."
"항상 이 방에 있는 거 때문에 아버지와 싸우셨잖아요."



불을 질러 버릴 거야, 당신하고 그 안에 있는 것도 다 태워 없애 버릴 거야. 처음으로 자신에게 회초리를 휘둘렀던 어머니는 그날 밤, 아버지에게 그렇게 외쳤다. 그래서 하카제는 악마가 있다는 유모의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자신이 악마에게 잡혀갈까 많이 걱정하는 모양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다가가지 않았다.



"그만하고 들어가요. 밤공기가 찹니다. 그 방은 그냥..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어미와 이렇게 말을 나눌 가치고 없는 겁니다."
"그런 것 치고 지금 어머니가 너무 필사적으로 보이는 건 아십니까?"
"카오루!"
"왜 이 열쇠를 집사님이 가지고 있는지, 왜 제가 모르는 아버지의 유언장이 있는지 알아야겠어요."



이야기해보세요, 집사님. 하카제는 어머니에게서 시선을 돌려 여전히 질려있는 집사를 바라보았다. 어서요. 재촉했지만, 그의 닫힌 입은 열릴 줄 몰랐다. 하카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입술을 타고 한숨이 터져 나왔다.



"집사님이 모시는 주인은 접니까, 아니면 죽은 아버지입니까?"



그리 말하며 쥐고 있던 병을 놓았다. 그대로 떨어진 술병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복도에서 깨져나갔다. 그 소리에 누군가가 짧게 비명을 질렀다.



"...당... 당연히 주인님이십니다."
"그런데 왜 제 질문에 대답해주지 않으십니까? 어머니는 아마 절대로 말하지 않을 겁니다. 전 제 어머니를 잘 알아요. 그러니 집사님이 이야기하세요. 아버지의 유언이 뭐였습니까? 그리고 저 안에-"
"네 아버지의 유언은 자신이 죽어도 저 방을 건드리지 말라는 거였어!"



어머니의 비명 같은 목소리가 깨진 병 위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누구도 저 안의 것과 관련되지 않기를 원했지. 대단한 독점욕이더구나!"
"...."
"자기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주제에 언제 써놨는지 그딴 유언을 써놨더라, 네 아버지가!!! 그 빌어먹을 유언이 뭐라고 저 방을 통째로 도려내서 어디론가 처박고 싶은 걸 어쩌지도 못하고 이렇게 안고 살았어!!! 저 방문을 볼 때마다 치워버릴 수 없으니 내 눈이라도 뽑아내고 싶었다!!"
"..."
"나는... 네 아버지가 사라졌으니 저 방부터 치우려고 했어. 난 이 저택의 안주인으로서 널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빌어먹게도 그 남자는... 그 남자는... 그딴 유언을..!!! 차라리 굶겨 죽여버릴까 생각도 했다! 누군가 손을 대지 않아도 죽일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니까!! 하지만 저... 저 소름 끼치는 게..!! 배가 고프면 배가 고프다고 비명을 내지르는데!! 네 귓가에 저 악마 같은 것의 울음소리가 들릴까, 그래서 네가 저 방의 존재를 떠올릴까 걱정해서 살리고 또 살렸다! 내가.. 이 손으로 저걸 살려놓고 또 배부르게 하고...!!"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가 한참을 저택을 채운 뒤 울음으로 바뀌었다. 털썩, 찬 바닥으로 주저앉는 그녀의 몸을 근처에 있던 사용인이 급하게 일으켰다. 



"그냥 잊어버리렴, 나를 생각해서라도 그렇게 해줘."



흐느끼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하카제는 가만히 손에 쥔 열쇠를 바라보았다. 글쎄, 한 번은 잊었지만 두 번을 잊을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어차피 방문은 드러났다. 지금 열지 않아도 아마 언젠가는 열 문이었다. 하카제는 열쇠를 돌렸다.



"카오루!!"



절규에 가까운 어머니의 비명을 들으며 연 방은 놀랍게도 아무것도 없었다. 방 한가운데에 커다란 수조가 놓여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인어."



물만 그득 차 있는 그 안에는 인어가 있었다. 책에서나 보던 그 존재가 유리 벽 너머에서 가만히 자신을 살피고 있었다. 어머니가 여전히 저를 부르고 있었으나, 하카제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그 시끄러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문을 닫았다. 그리고 방해받지 않기 위해 문을 잠갔다.



"너, 인어구나."



물색과 같은 머리카락을 가진 인어는 소년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머리색과 다르지 않은 꼬리가 반갑다는 의미인지 가볍게 살랑대는 걸 바라보며 하카제는 천천히 수조 가까이 걸었다. 언젠가 누이가 그랬다. 인어가 갖고 싶다고. 자신의 생일 선물로 아름다운 인어가 갖고 싶으니 선물해 달라 아버지에게 졸랐다. 아버지는 그때 뭐랬더라. 곤란한 얼굴을 하며 그랬던 거 같은데.



"인어는 아름답지만 대신 사람을 홀린단다. 눈도 멀고 귀도 멀고 마음도 멀게 하는 악마 같은 녀석들이야. 내 딸의 선물로는 어울리지 않는구나."



그랬으면서 딸에 대한 사랑이 넘쳤는지 결국 아버지는 인어를 구한 모양이었다. 가문의 일이 이런 일이니 그리 어렵지는 않았겠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왜 인어가 주인에게 가지 못하고 이 방에 있는 걸까. 하카제는 가만히 손을 들어 유리에 가져갔다. 인어는 제 하는 짓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이내 웃으며 똑같이 손을 가져다 댔다. 유리의 온도가 그의 온도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가만히 손바닥을 맞대고 있던 인어는 톡톡 두드리듯이 손가락을 튕겼다. 마치 노크를 하는 모양새였다.



"꺼내줄까?"



성년이 지난 인어는 지상으로 올라올 때 다리가 생긴다는 소릴 들었다. 아마 자신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니 물 밖으로 나오면 다리가 생길지도 몰랐다. 꺼내 준다는 말이 기뻤는지 인어는 물속에서 몇 바퀴를 빙글빙글 돌았다. 하카제는 서둘러 근처에 놓여있는 사다리를 수조에 댔다. 아마 집사가 먹이를 주기 위해 사용했을 그것을 천천히 밟고 올라가 수조의 뚜껑을 열었다. 자물쇠가 걸려있긴 했지만 채워져 있지는 않았다.
뚜껑을 열어주기 무섭게 인어가 수면에서 고개를 들이밀었다. 아가미가 있던 곳이 빠르게 인간의 귀처럼 변했다. 하카제는 천천히 그 귀를 만졌다. 간지러운지 인어가 키득댔다. 그러다 기분이 좋은지 가만히 손에 뺨을 비벼왔다. 축축하고 부드러운 그 피부를 느끼다 조심스럽게 두 팔을 물에 담가 인어의 팔을 붙잡았다. 그는 익숙한지 자연스럽게 하카제의 목을 끌어안았다. 촤르륵, 물방울이 쏟아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비늘이 가라앉고 피부가 드러났다. 저와 다르지 않은 몸을 안아 올리자 길고 늘씬한 다리가 떨어지지 않기 위해 허리를 감아왔다.



"심심했어요..."



인어가 어눌하게 말했다. 하카제는 젖은 몸을 바싹 끌어안고 내려와 서둘러 자신의 나이트가운을 벗어 둘러주었다. 어차피 젖어서 의미는 없었지만, 그래도 뭐라도 입혀주고 싶었다.



"내 이름은 하카제 카오루, 네..."



주인이야. 이걸로 인사가 될 수 있을까. 자신을 빤히 담는 초록 눈을 들여보며 조용히 말했다.



"카오루-"



인어는 웃으며 이름을 불러왔다.



"카오루-"



약간은 아이 같은 말투였다.



"내가... 내가 지켜줄게. 누구도 널 데려가지 못하게 할 거야."



누구도 널 내게서 데려가지 못하게 할 거야.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리고 이 선물을 받아야 할 누이도. 그 누구도. 하카제는 천천히 인어의 입술에 제 입술을 부딪쳤다. 맹세와 같은 짧은 입맞춤이었다. 모두의 말이 맞았다. 하카제 카오루는 모든 걸 다 이루게 되었다. 봐, 이렇게 아름다운 인어가 내게 왔잖아. 그를 위해 더 커다란 수조를 사야겠어. 화가를 불러 초상화를 그리자. 가장 빛이 잘 드는 곳에 걸어두고 자랑을 해야지. 아버지의 서재를 정리해야 겠어. 이 방을 침실로 쓰자. 뭐가 먹고 싶어? 말만 해, 인간의 심장이든 뭐든 다 구해다 줄게. 자신이 무슨 소릴 하는지도 모르면서 하카제는 중얼댔다. 누군가가 끊임없이 방문을 두드리고 있었지만, 그것도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하카제 카오루의 눈에는 푸른색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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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바다의 저 편에서 왔으니 이름은 신카이 카나타라고 하자. 이제는 돌아갈 수 없을 곳을 네 이름으로 줄 테니 그거로 위로가 되길.
이라 카오루가 이름을 지어주는 데는 하루도 걸리지 않을 것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