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스가] 호흡관
2015. 1. 23. 18:43





[나 지금 교양 수업 들으러 왔는데 여기 누가 있는 줄 알아? 카라스노의 상쾌군!!]



아마 처음 시작은 이 메시지였을 것이다. 소꿉친구로 쭉 같은 학교에 다녔던 오이카와에게서 졸업은 했지만 그럼에도 이와이즈미의 핸드폰이 울리지 않는 날은 없었다. 이 새끼 나 말고는 친구 없나? 라는 걱정 반 짜증 반이 섞인 물음을 떠올리면서도 아, 없지. 라고 금방 인정하게 되어서 그 끈질긴 인연을 끊지 못하고 받아주고 있었다. 그 날도 여전히 귀찮도록 울리는 메시지 음에 이와이즈미는 반갑기는커녕 심드렁한 얼굴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카라스노의 상쾌군이 아니라 걔 이름은 스가와라 코우시야. 달릴 거 다 달린 남자애에게 상쾌군이라니 뭐니 부르는 것은 조금 징그럽고 실례일 것 같아 이와이즈미는 서둘러 기억 속에서 그 이름을 찾아 정정해 답변을 보냈다. 그리고 정말 그 메시지가 시작이었다. 오이카와의 스가와라 코우시 보고서가 시작된 것은.





[나 지금 코우시랑 밥 먹어. 얘 매운 거 진짜 잘 먹는다.]
[코우시 배구 그만뒀데. 조금 아깝지 않아?]
[코우시 자취하는 곳하고 우리 집하고 별로 안 멀어. 나 초대받았다? 가도 괜찮겠지?]
[첫 방문 선물로는 뭐가 좋아? 케이크? 아니면 생필품이 낫나? 코우시가 뭘 좋아하지?]
[지금 같이 카페에서 공부하는데 코우시 잔다. 기말 때문에 잠을 얼마 못 잤나봐. 귀여워!]
[주말에? 미안. 나 그 날 코우시랑 약속 있어. 수족관 가기로 했다~]



그놈의 코우시 코우시 코우시.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은 스가와라 코우시의 일거수일투족을 모조리 보고하는 오이카와 덕분에 한동안 이와이즈미는 핸드폰 보기를 멀리했다. 스가와라 코우시가 뭘 잘 먹는지, 배구를 하는지 마는지, 집이 어디인지, 뭘 좋아하는지, 자는 얼굴이 귀여운지 아닌지, 둘이 어딜 놀러 가는지 이와이즈미는 정말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귀찮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오이카와 토오루가 자신 이외에 무언가에 아니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반응하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긴 시간 그를 지켜봐 온 이와이즈미 입장에서는 적어도 오이카와는 진심이라는 게 없는 남자였다. 말버릇도 나쁘고, 성격도 나빴다. 여자친구는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더러 있었지만 그저 곁에 있다라는 정도의 느낌이지 사귄다는 느낌이 드는 관계는 아니었다. 적당하게 맞춰주고, 적당하게 웃어주고. 그렇게 적당하게 굴다가 매번 차이는 것을 이와이즈미는 몇 번이고 곁에서 지켜보았다. 물론 오이카와 토오루가 스가와라 코우시에게 적당하게 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친구 이상의 감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이와이즈미에게는 신선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적당히를 넘어서는 오이카와가 귀찮고 짜증 나면서도 반대로 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가는 소리로 마츠카와에게 이야기했더니 "니가 오이카와의 엄마냐?" 라며 놀렸지만 진심이었다. 누군가에게 진지하게 구는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는 조금 대견했다.







"오이카와 페이스북 봤어?"
"왜?"
"장난 아니야."



오랜만에 만난 하나마키가 포크로 이용해 파스타를 둘둘 꼬더니 대뜸 그리 말했다. 스마트한 기계와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가 페이스북에서 뭘 하는지 조금도 알지 못했다. 덤으로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부랴부랴 자신의 코트 주머니에서 최신 스마트폰을 꺼내 굳이 확인시켜주는 하나마키의 수고를 무시할 수도 없었기에 반짝이는 액정을 받았다. 



[디즈니 랜드!!!]



덜렁 그렇게 적힌 메시지와 함께 누가 보아도 꿈과 희망의 동산 디즈니랜드의 풍경 사진이 업로드되어 있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거기까지는. 그 사진 속에 찍힌 머리통이 익숙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와이즈미는 놀라지 않았을 것이었다. 야무지게 미키 머리띠를 한 스가와라 코우시의 뒷모습이 아니었다면 정말 놀라지 않았을 것이었다. 설마, 남자 둘이 디즈니랜드에 간 건 아니겠지? 아니 그보다 뭐야? 이거 빼도 박도 못하게 데이트 아니야? 오이카와야 생각이 없고 낯짝이 두꺼우니 그렇다 쳐도 스가와라 코우시는? 생김새와 다르게 신경 줄은 아주 두꺼운가? 이와이즈미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한참동안 그 사진을 들여 보았다. 주말의 낮, 남자 둘이서 아기자기한 파스타 가게에서 둘둘 면발을 돌리는 것도 우습고 이상했지만 화면 속의 사진은 더 이질적이었다. 심지어 사진이 예쁘기까지 했다. 신데렐라성을 배경으로 한 사진 속에 수많은 사람이 함께 찍혀 있었음에도 단박에 스가와라 코우시를 찾아낼 수 있을 만큼 그만이 보이는 사진이었다. "더 있어. 더 봐." 쪼로록 탄산음료를 빨며 하나마키가 말했다. 이와이즈미는 당혹스러운 심정으로 쭉쭉 액정을 내렸다. 



[기말 끝내고 오다이바!!!]



이번엔 오다이바야? 이거 누가 봐도 데이트 맞는데? 시험이 끝나면 얌전하게 동기들하고 축하의 술판이나 벌일 것이지 무슨 남자 둘이서 오다이바야? 이와이즈미는 슬슬 땀이 차기 시작하는 손으로 눈가를 문지르며 사진을 들여 보았다. 인공으로 만들어진 해변에 스가와라 코우시가 서 있었다. 카메라를 돌아보며 웃는 얼굴, 그 위로 떨어지는 석양. 이와이즈미는 누가 봐도 애정이 담겨있는 사진을 보며 저도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나마키 역시 황당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대놓고 저 지금 사랑에 빠졌어요 기운을 풀풀 내고 있지 않냐? 쟤?"
"... 그러네. 얘 페이스북 친구 몇이나 있지?"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가 하지 않을 현실적인 고민을 물었다. 



"괜찮아. 그거 걔 비공개 계정이라 몇 명 몰라."



걱정하지 말라는 듯 전하는 하나마키의 이야기에 이와이즈미는 그제야 편한 마음으로 작은 액정을 바라보았다. 그 외에도 오이카와의 개인 공간에는 오로지 스가와라 코우시 밖에 없었다. 공원을 산책하는 뒷모습, 야시장에서 야끼소바를 든 모습, 과제 하는 모습. 심지어 얼굴도 찍히지 않은 컵을 든 손이라든지, 펜을 쥔 손이라든지, 노란 양말을 신은 발 사진까지 올라와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이와이즈미는 이게 누구의 손이며 발인지 알 수 있었다. 왜 이런 사진을 본인 계정에 열심히도 올렸는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눈에 빤히 보이는 오이카와의 감정이었다. 이토록 애정이 담긴 사진이라니. 이와이즈미는 당황스러운 심정으로 계속되는 사진들을 눈에 담았다. 오이카와가 스가와라를 두고 보는 세상은 이렇게도 아름다운 것일까. 이건 이미 오이카와의 적당히였던 수준의 선을 훨씬 넘어선 것이었다. 본인이 자각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와이즈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오이카와 토오루가 사랑에 빠졌다고.








[나 죽고 싶어.]



평화로운 토요일 저녁, 과자칩을 씹어 삼키며 TV에 집중하고 있던 이와이즈미는 대뜸 그렇게 날라 온 오이카와의 메시지에 쇼파에 던져놓은 몸을 튕겨 일으켰다. 죽고 싶다니? 왜? 단 한 번도 오이카와는 자신에게 이런 부정적인 뉘앙스의 말을 품은 적이 없었기에 이와이즈미는 적지 않게 당황하고 말았다.



[무슨 일인데?]



전화를 할까, 당장 집으로 찾아가야 하나 고민했지만 생각보다 시원치 않을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판단에 침착하게 답장을 보냈다. 보통 때라면 뭔데? 라고 시큰둥하게 보냈을 메시지였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정함을 담아서. 



[코우시 몰래 여자 후배에게 지랄하던 거 걸렸어.]
[뭐? 누구? 여자 후배? 걔 여자 친구 있었어?]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여자 후배라니? 여자 친구인가? 둘이 사귀는 거 아니었어? 설마.. 오이카와 토오루의 일방통행이었던 거야?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오이카와가 일방 통행으로 죽고 싶다는 날이 있구나. 이와이즈미는 죽고 싶다는 메시지는 깡그리 잊어버린 채 갑자기 터져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않으며 핸드폰이 울리기를 기다렸다. 



[여자친구 아냐. 그냥 후배. 살살 자꾸 우리 사이로 끼어들잖아. 코우시 앞에서 눈웃음치면서 꼬리 흔들길래 짜증 나서 불러서 한소리 했는데 코우시가 들었어. 나보고 실망이래. 죽고 싶어.]
[야 잠깐, 그럼 그 여자애 혼자 북 치고 장구 친 거 아니야? 니가 왜 끼어들어?]
[꼴 보기 싫으니까. 그리고 코우시가 다 받아주니까 짜증 나잖아.]



이게 무슨 소리람? 스가와라 코우시가 다 받아주다니? 정리하자면 스가와라 코우시를 좋아하는 여자 후배가 생겼는데, 걔가 살살 오이카와의 신경을 건드렸고 그에 화가 난 오이카와가 후배를 불러 왈왈 짖었는데 그걸 스가와라 코우시가 봤다! 라는 이야기인가. 그런데 그 여후배가 거슬렸던 오이카와와 달리 스가와라 코우시는 아무렇지 않게 후배의 행동을 받아 줬고? 그래서 오이카와가 화가 났고? 스스로 머리로 관계도와 화살표를 그려가며 차곡차곡 정리한 이와이즈미는 지금까지 몇 번이고 묻고 싶었으나 묻지 않았던 질문을 물었다. 



[하나만 묻자. 너 지금 스가와라 코우시랑 사귀어?]



당연 [응] 이라고 날라 올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메시지는 뜻밖에도 



[아니]



라는 말을 뱉어냈다. 친구 이상 연인 이하와 같은 웃기지도 않은 관계인가? 지금? 불쌍한 자식. 이와이즈미는 갑자기 드는 측은함을 숨기지 않으며 [지금 갈게] 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어쨌든, 죽고 싶다는 친구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맥주 몇 잔 사주고, 이야기도 들어주고, 달래야 했다. 사랑에 빠진 오이카와가 어디로 튈지 무슨 짓을 할지 아직 이와이즈미의 <오이카와 토오루 데이터>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으니까.





오이카와의 집으로 향하는 길, 이와이즈미는 근처에 사는 마츠카와를 불러냈다. [오이카와가 죽고 싶데]라고 메시지를 보내자 얼마 지나지 않아 [왜? 스가와라 코우시에게 차였데?] 라는 답장이 날라왔다. 단박에 때려 맞추는 마츠카와의 솜씨에 놀랐지만 얼마 전에 하나마키가 보여줬던 페이스북 계정을 떠올리면 모르는 놈이 둔할 정도였으니 생각해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전철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편의점에 들어가 적당하게 맥주와 안주들을 골라 담았다. 한가득 무거운 봉투를 들고 나오자 역 앞에 커다란 야상에 파묻힌 마츠카와가 손을 들어 인사를 대신했다. 



"뭘 이렇게 많이 샀어?"
"오이카와 술 먹여서 조용히 시키려고. 적당하게 취하면 우리 붙잡고 울 것 아니야."



냉정한 말에 마츠카와가 웃었다. 자신이 지내고 있는 동네만큼이나 오이카와가 지내는 곳이 이와이즈미에게는 너무도 익숙했다. 갈라져 다른 대학에 갔음에도 이 길은 몇 번이고 걸었었다. 귀찮을 정도로 심심하다, 보고싶다는 핑계로 자신을 불러대는 오이카와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스가와라 코우시가 등장하고 나서는 뜸해진 일이었는데. 이와이즈미는 익숙한 길을 찾아 걸으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찾았다. 곧 집 앞에 도착한다고 미리 연락을 넣기 위해. 하지만 덥석 자신의 팔을 붙잡아오는 마츠카와 때문에 주머니 안에서 손가락이 미끄러졌다.



"왜?"
"저거 오이카와 아니야?"



마츠카와의 장갑 낀 손가락의 끝에 익숙한 얼굴이 걸렸다. 주택가 사이에 작은 공원-이라기에는 규모가 우스운 작은 놀이터에 오이카와 토오루가 서 있었다. 낡은 가로등 아래로 보이는 얼굴은 확실히 오이카와 토오루였다. 이 날씨에 코트 하나 점퍼 하나 걸치지 않은 꼴로 서 있는 남자가 무척이나 처량해 보였다. 심지어 맨발에 슬리퍼였다. 그리고 그 앞에는 익숙한 머리색의 사내가 서 있었다. 



"인사 해야 하나?"



무신경한 마츠카와의 말에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저었다. 오이카와의 얼굴을 보니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닌 듯 보였다. 거기다 방금전 [죽고 싶다]라는 소리까지 할 정도로 꼬인 상황이라면 그리 쉬이 풀릴 리도 없었다. 그리고 정말로 그 생각을 증명하듯이 



"내가 뭘 잘못했는데?!?!"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바람을 타고 울리는 그 큰 소리에 이와이즈미는 물론 마츠카와도 굳어 입을 열지 못했다. 지금까지 오이카와가 저렇게 큰 소리로 화를 내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아니 사실 요즈음 오이카와 토오루가 보이는 모든 것은 처음이었다. 이와이즈미에게 있어서는.
화가 난 오이카와를 앞에 둔 스가와라 코우시는 살짝 자신의 머리를 쓸어 넘기더니 피곤한 얼굴로 뭐라 말을 걸었으나 목소리가 작아서 전혀 들리지 않았다. 몸을 앞으로 빼는 마츠카와를 붙잡아 이와이즈미는 어둠에 잠긴 전봇대 뒤로 숨었다. 그 가느다란 기둥이 건장한 사내 둘을 가려줄 리 만무했지만 어쨌거나 최대한 몸을 숨겼다. "목소리가 전혀 안 들려." 마츠카와가 툴툴댔다. 이게 영화의 한 장면이라던가, 리얼쇼의 장면은 아니니 흥미적인 접근은 분명 좋지 않았지만 이와이즈미 역시 귀를 쫑긋 세웠다.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곤조곤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스가와라의 노력은 가상했지만 그다지 오이카와에게는 효과가 없을 듯 보였다. 그리고 역시나 그 생각을 증명하듯이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다시 밤을 울렸다. 



"그년이-!!"



세상에, 쟤 지금 욕하는 거야? 하지만 그렇게 놀랄 틈도 없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찰음이 울렸기 때문이었다. 소리와 함께 돌아가는 오이카와의 고개에 마츠카와가 조용히 말했다. "대박." 오이카와 토오루가 누군가에게 맞다니.. 대박은 진짜 대박이었다. 자신에게는 수도 없이 맞았지만 그것과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하지만 이내 머릿속으로 치미는 걱정에 이와이즈미는 서둘러 전봇대 뒤에서 몸을 뺐다. 당장 말려야 했다. 오이카와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나사 하나가 빠진 상태인 그를 자극한 스가와라 코우시를 걱정하는 것이었다. 무슨 짓을 하고 또 죽네 마네 후회하기 전에 말려야 했다. 하지만 이와이즈미가 몸을 다 움직이기도 전에 "미안"이라는 스가와라의 목소리가 퍼졌다.
때려 놓고 사과하면 퍽이나 받아 주겠다 싶었는데 놀랍게도 오이카와의 입을 타고 흐르는 말은 "괜찮아. 내가 심했어." 라는 반성의 말이었다. 오이카와가 지금 맞은 것도 모자라서 자기 잘못을 인정까지 하다니. 다시 몸을 숨긴 이와이즈미는 눈을 비비며 지금 자신이 헛것을 보는가 싶었다. 마츠카와도 마찬가지인지 "우리 지금 꿈꿔?" 라며 헛소리를 해왔다. 볼을 스치는 바람이 찬 것을 보니 꿈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래도 그렇게 말하지 마. 네가 뭘 오해하는지 알겠는데- 설명했잖아. 그냥 후배야. 같은 과, 같은 조별 발표 준비하는 후배."



한동안 말이 없던 스가와라는 침울한 목소리로 사정을 설명했다. 심지어 이 설명이 오늘이 처음도 아닌 듯 보였다. 물론 오이카와에게 조금도 통할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 그래도 싫어."



봐, 맞잖아. 이와이즈미는 퉁퉁 부은 얼굴로 대답하는 오이카와를 지켜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거기서는 그냥 잘못했다고 해야지. 저 등신. 망할 오이카와. 



"싫다고 그렇게 여자 후배를 불러내서 모욕을 주면 안 되는 거잖아."
"내가 틀린 말 했어? 남자에 미쳐서 분수도 모르고 살살 꼬리 치고 웃는 꼴 더럽고 재수없는 거 맞잖아."
"오이카와."
"치마는 왜 그렇게 짧은 거 입고 돌아다니는 건데? 그 꼴로 왜 네 옆자리에 앉으려고 자꾸 끼어드는 건데? 그렇게 다리 자랑하고 몸매 자랑하고 싶으면 다른 데 가서 하라고 해. 역겹고 추잡하고 천박하니까. 아니면 너 그런 거 좋아-"
"오이카와!!!"



아, 이번에도 한 대 맞을 줄 알았다. 아니 이번에는 진짜 맞을만했다. 다행히 스가와라 코우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오이카와 토오루의 입을 손쉽게 막아냈다. 



"여자애를 그런 식으로 모욕하지 마."
"왜 그년.. 아니 걔 편을 드는 건데?"
"네가 심했잖아! 너 가고 걔 울었어!"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
"그럼 너는 무슨 상관인데!!!"



바락 외치는 스가와라 코우시의 목소리에 이와이즈미는 하마터면 감탄사를 뱉을 뻔했다. 



"걔가 나에게 그렇게 다가오든, 날 그렇게 대하든 너는 무슨 상관인데."
"그렇게 말하지 마, 나 상처받아."
"상처받으라고 하는 소리야. 상처받고, 머리 식히고, 정신 좀 차려."
"코우시-"
"너랑 이렇게 빙빙 꼬리잡기같이 지내는 것도 지쳤어. 고백도 안 하는 주제에 질투는 왜 하는데?"



뭐? 그 물음은 오이카와 그리고 이와이즈미, 마츠카와에게서 동시에 나왔다. 뭐야, 쟤 고백도 안 했었어? 그래놓고 지금 꼴사납게 질투를 했단 말이야? 참나. 진짜 무슨 권리로,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벙찐 오이카와를 보며 이와이즈미는 어이가 없어 혀를 찼다. 저 멍청이.



"난 너 좋아해."



냉기가 풀풀 날리던 아슬아슬한 상황은 조용한 스가와라의 목소리와 함께 분위기를 단박에 바꾸었다. 대뜸 던져진 스가와라 코우시의 고백 아닌 고백에 마츠카와가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등 뒤에서 울렸다. 그 담백한 말에 오이카와는 완전히 굳어서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너 이거 명백하게 질투하는 거야."
"..."
"그런데 왜 나에게 고백은 안 해?"
"... 해도 돼?"
"아니."
"..."
"지금은 안돼."



지금은 나 화났으니까. 단호하게 떨어지는 그 말에 오이카와의 얼굴이 지옥에 갔다 금세 천국으로 돌아온 사람처럼 변했다. 실실 웃기 시작하는 그 얼굴에 스가와라가 웃지 마!라며 짜증 섞인 그 목소리를 내었지만 그럼에도 오이카와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와이즈미는 그 멍청한 얼굴을 보며 찬 손바닥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아, 저 등신. 진짜. 헬레레 하는 꼴이라니. 정말 못 봐주겠다.



"고백하면 받아 줄 거야?"
"지금 우리 그 이야기 하려고 만난 거 아니잖아."
"받아 줄 거야? 그럼 나 가서 사과할게. 니가 아무리 스가와라 코우시를 꼬시려고 꼬리를 휘둘러도 소용없었는데 내가 괜히 질투해서 미안하다, 험한 소리 한 것도 미안하다. 하지만 그게 내 진심이다-"
"오이카와.."
"라고 하고 싶지만, 그냥 가서 깔끔하게 미안했다고 사과할게."



사과할게. 당장 할게. 단호하고 강하게 말하는 오이카와의 말에 스가와라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는 한참 후에서야 크게 한숨을 쉬었다. 마치 그 모습이 이와이즈미는 과거의 자신과 같아 보여서 웃음이 나왔다. 오이카와가 가끔 저렇게 어처구니없이 행동하거나 막무가내로 몰아붙이면 저도 저렇게 한숨을 내뱉곤 했다. 



"좋아. 알았어. 일단- 너 추워 보인다. 들어가."
"너 가는 거 보고. 아니 데려다 줄까?"
"싫어. 아직 나 화 풀린 거 아니니까."
"알았어. 네 말 들을께. 잘 들을께."



지가 개야? 마츠카와가 어이 없다는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와이즈미는 그 말이 썩 틀린 것 같지는 않았다. 분명 꼬리가 있다면 지금 오이카와 엉덩이에서 마구마구 흔들리고 있을 게 뻔했으니까. 스가와라는 "잘자."라는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렸다. 아니 돌아서는 듯 보였다. 하지만 완전히 돌아서지 않은 그는 살짝 멈칫하더니 자신이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끌러 오이카와에게 매주었다. 그 순간 오이카와의 얼굴이 얼마나 반짝이던지 이와이즈미는 친우의 바보 같음에 혀를 내두르고 싶었다. 그렇게 스가와라 코우시가 죽고 싶다는 오이카와에게 심폐 소생술을 불어넣고 사라지고 나서도 이와이즈미는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오이카와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목도리에 꽉 얼굴을 묻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도 좋을까. 간질한 그 모습이 썩 보기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 저렇게 둘 거야."



얼마나 그렇게 바보 같은 오이카와를 지켜보고 있었을까, 먼저 그 조용한 흐름을 깬 것은 마츠카와였다. 들고 있었던 사실조차도 잊고 있었던 편의점 봉지에서 그가 맥주캔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인정사정없이 그것을 던졌다. 나름 과거에 열심히 운동 했던 실력이 다 죽지는 않았는지 깔끔하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맥주캔은 보기 좋게 오이카와의 등을 명중하며 떨어졌다. 



"아!! 어떤 미친 또라... 어? 맛층? 이와짱?"



팍 인상을 구기며 돌아선 오이카와의 얼굴이 순식간에 풀렸다. 



"뭐야? 왜 두 사람 다 여기 있어? 잠깐. 언제부터 봤어??!"



당황스러움으로 뭉친 얼굴로 꽥 외치는 목소리에 마츠카와가 싱글거리며 말했다.



"니가 욕하다가 스가와라 코우시에게 맞는 거 부터?"
"...."
"아 아깝다! 하나마키가 이걸 봤어야 하는데."



그러게 하나마키가 이걸 봤으면 분명 핸드폰으로 동영상 촬영까지 완벽하게 해서 한동안 오이카와를 야무지게 괴롭혀 먹었을 텐데. 조금 아쉬웠다. 



"두 사람에 걸린 거로도 충분히 창피하니까 그만해."



잔뜩 볼멘소리로 냉정하게 잘라 말한 오이카와가 떨어진 맥주캔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딱!하고 캔을 깠다. 다행히 거품이 폭발하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마츠카와가 정말 잘 던진 모양이었다. 이와이즈미는 털썩 놀이터 바닥에 앉는 오이카와의 곁으로 다가가 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 옆으로 마츠카와 역시 다가와 새 맥주를 꺼내며 자리를 잡았다. 나란히 앉은 세 사람 사이로 오이카와가 흩날리는 숨과 함께 감탄사를 내었다.



"아 좋다."



좋기는 개뿔. 춥구먼. 이와이즈미는 굳이 분위기를 깰 말을 목 안으로 삼키며 찬 맥주캔을 집었다. 확실히- 조용한 놀이터, 조금 차갑지만 나쁘지 않은 바람, 그리고 하늘의 별. 크게 좋지는 않았지만 나쁘지도 않았다. 



"스가와라 코우시, 남자답더라."



딱, 캔을 까며 오이카와에게 말했다. 첫인상이나 오이카와가 보내는 보고서와 같은 이야기들을 종합해서 생각했을 때에는 조금 유약하고 어린 느낌으로 멋대로 생각해왔는데 오늘 보니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뭐, 이런 오이카와 토오루를 곁에 두고 죽네사네 만들 정도면 말 다 했지만. 



"맞아. 내 코우시 완전 멋있어."



이와이즈미의 말에 동조하며 오이카와가 대답했다. 내 코우시라니, 벌써부터 소유격으로 말하며 씩 웃는 그 얼굴이 평소보다 더 바보 같아 보여 이와이즈미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 얼굴이 나쁘지 않았다. 정말로 나쁘지 않았다. 사랑에 빠진 오이카와 토오루의 얼굴이 나쁘지 않았다. 꽉 잠겨 적당히 아무에게나 던져주던 마음을 오이카와가 스스로 오픈했다는 사실로도 이와이즈미는 충분히 기뻤다. 친구로서. 그리고 그의 인생을 이루는 한 사람으로서도.

오늘따라 맥주의 목 넘김이 좋았다. 완벽하게 오이카와 토오루를 자신에게서 졸업시킨 기분이 들었다. 아쉽거나 섭섭한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이카와가 변한다 하더라도 자신과 그리고 우리들의 관계는 조금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저도 모르게 미소가 입을 타고 흘렀다. 시원한 웃음이었다. 










-


하이큐 일찐카와를 보다가 갑자기 삘받아서 의식의 흐름대로 마구잡이로 썼다.

이와짱은 오이카와의 엄마에요?


호흡관은 내가 항상 이와이즈미를 보면서 느꼈던 물체적인 느낌이랄까.

오이카와가 바다가 아닌 수면 위로 제대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은 이와짱 밖에 없다는 생각이 늘 들었다.

제목 짓는거 항상 느끼지만 참 어렵드앙!! 그리고 배고파!!!!




I just know I know I know I know that you're gonna be OK anywa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