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카나] 나락의 카나타
2018. 1. 24. 21:13




카오카나 _ 나락의 카나타

2018.02.03 배덕과 정의 사이 sample

미래 AU / 과거 날조 / 아쿠아리움 이벤트 스포 주의







"따뜻한 남쪽 나라에 가고 싶어. 바다에 잠기는 석양이 보고 싶어. 그곳엔 우리 둘밖에 없을 거야. 우리 둘, 우리 둘."


스포트라이트는 단 하나.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조명을 받으며 하카제 카오루는 마이크에서 입을 떨어트렸다. 데뷔 4년 차, 슬슬 솔로로 싱글을 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이미 함께 언데드를 하고 있는 오오가미 코가가 개인적으로 밴드를 구성해 냈던 프로젝트 앨범이 꽤 반응이 좋았던 터라 아마 그다음을 계획했던 모양이었다. 언데드의 하카제 카오루란 이름은 고등학교 때부터 써오던 것이라 어색하지 않았지만, 솔로 하카제 카오루는 몇 번을 불려도 어색했다. 그래도 지난 기간 무대에 서 왔던 것이 허튼짓은 아니었는지 혼자 서도 긴장이 되거나 무섭지는 않았다. 관객들의 박수를 들으며 기타를 고쳐 들었다. 감사합니다, 그 의미를 담아 고개를 숙였다. 자리로 돌아가라는 스태프의 신호에 어두워진 조명 아래로 걸었다. 비어있던 MC의 뒤 자리에 앉자 바로 다시 스튜디오로 조명이 들어왔다.


"하카제군, 솔로도 꽤 좋잖아?"

"아, 감사합니다."


매주 금요일에 진행되는 음악 프로그램. 꽤 유명 방송으로 이미 몇 년째 이어가고 있는 장수 프로그램이었다. 학생 시절엔 웃으며 "다들 나중에 저 방송에서 만나자."라고 떠들곤 했었는데, 이제는 이 자리가 익숙할 지경이 되었다.


"그럼 다음은 역시나 이번 주에 새 싱글을 들고 컴백한 유성대! 그러고 보니 하카제군하고 동창이지? 너희들?"

"아, 네! 하카제와는 3학년 때 같은 반이었습니다."


다음 순서는 유성대였다. 지금까지 활동 기간이 겹친 적이 없었는데, 운이 좋다고 해야 하는지 나쁘다고 해야 하는지, 이번에는 겹치고 말았다. 언제나 이렇게 함께 방송에 나오면 유메노사키 출신으로 묶여 인터뷰하는 것은 다반사였기에 질문을 받은 모리사와는 막힘없이 웃으며 MC의 말을 받아냈다. 예전과 다름없이 나름의 색으로 의상을 갖춰 입은 유성대를 바라보며 하카제는 씁쓸하게 웃었다.


"모리사와는 고등학교 시절에 어땠어? 하카제군?"

"에, 뭐 지금이랑 똑같았어요. 시끄럽고 히어로 이야기 좋아하고."

"하하, 변함없이 그랬구나?"

"그리고 신카이-"

"하카제도 마찬가지였다고요. 요령이 좋았죠."


자신의 말을 끊어먹으며 모리사와가 외쳤다. 덕분에 자신의 토크 타임은 끝이 나버렸다. 무어라 끼어들고 싶었지만, 서둘러 무대를 준비해달라는 스태프들의 신호가 돌았다. 그럼 그 기운찬 기세를 몰아 신곡 무대를 볼까요? 여자 아나운서가 무대를 위해 멘트를 전환했다. 무대에 오를 준비하며 모리사와가 자신을 바라보았다. 가볍게 고개를 젓는 그의 행동에 하카제는 혀를 차고 싶었다.


하나, 둘, 셋, 넷. 유성대는 다섯이서 하나라고 그렇게 외치지 않았던가. 모리사와 치아키?


무대로 향하는 뒷모습을 세며 하카제는 그렇게 비꼬고 싶어졌다. 전이나 지금이나 요란하고 시끄러운 음악에 맞춰 누구보다 즐거운 얼굴로 마이크를 쥐는 모리사와 치아키를 붙잡고 그렇게 묻고 화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정말 큰 방송 사고였다. 턱턱 목을 치고 나오는 숨을 겨우 견디며 하카제는 가만히 자신이 마저 뱉지 못한 이름을 떠올렸다.

신카이 카나타, 유메노사키 출신이자 전 유성대의 유성블루. 자신과는 해양생물부라는 동아리에서 만났고, 여러 날을 함께 보냈다. 교실, 무대, 복도, 운동장, 부실, 바다. 교복을 입고 누비던 장소들을 떠올리면 언제나 그가 있었다. 아이 같은 말투를 썼지만, 누구보다 어른스러웠고 가끔 억지를 부렸지만, 누구보다 다정했던 소년. 눈을 감으면 바로 어제의 기억처럼 그는 자신의 안에서 웃고 노래하고 숨 쉬고 있는데, 이제 이 세상에 신카이 카나타는 없었다. 하루아침에 증발한거 처럼 사라졌다. 작별 인사도 뭣도 없었다. 그냥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덕분에 세상은 그를 몰랐다. 과거부터 팬이었던 이들의 증언으로 "원래는 다섯이었데."라고 아는 척을 해오는 이들도 있었지만, 졸업 후 4년이나 지난 지금 유성대를 아는 모두는 신카이 카나타를 몰랐다. 그게 너무 싫어서 하카제는 가끔 툭툭 방송에서 그의 이름을 뱉었다. 유메노사키 학원의 주제가 나오는 토크엔 빠짐없이 그의 이름을 뱉었다. 하지만 녹화분에서는 언제나 편집이었고 생방송의 경우는 방금처럼 툭툭 막히기 일쑤였다. 허튼짓은 그만두어라 리더인 사쿠마 레이에게도 여러 소리를 들었다. 솔로 활동으로 좀 자유로워지나 싶더니 이번엔 모리사와 치아키가 치고 들어왔다.

신카이 카나타가 사라진 지 이제 4년,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게 하카제는 늘 견딜 수가 없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엔딩 인사가 끝나고 카메라의 붉은 빛이 꺼졌다. 머리 위에서 무수히 빛나고 있던 조명도 꺼졌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틈으로 하카제 역시 몸을 숨겼다.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모리사와 치아키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지금 그와 마주하면 주먹이라도 휘두를 거 같아 굳이 멈추거나 뒤돌아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과거에 그랬듯 포기를 모르는 모리사와는 기어코 앞을 막아섰다.


"하카제! 이름 불렀는데."

"아. 그래? 못 들었어."

"활동 기간이 겹치지 않으면, 만나기도 어렵구나. 전에는 매일 같이 봤는데. 하하."

"...."


모리사와 치아키는 유메노사키 시절 과거의 영광만 지고 살던 유성대를 부활시키고 이렇게 데뷔까지 시켰다. 꽤 쫄보였던 거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입버릇처럼 떠들던 그럴듯한 영웅처럼 보일 정도가 되었다. 옛날 일이라 정확하겐 떠오르지 않지만,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언제나 나아가고 포기를 몰랐다. 하카제 카오루의 기억 속의 모리사와 치아키는 그랬다. 그런데 왜, 신카이 카나타는 포기했을까. 제 속도 모르고 웃는 그를 가만히 들여보며 슬쩍 주먹을 쥐었다.


"갈게."


예전엔 좀 더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었던 거 같은데. 바보 같은 이야기도 엄청 떠들어 댔던 거 같은데. 지금의 모리사와 치아키하고는 할 이야기가 그다지 없었다. 아는 사람보다도 못한 관계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무어라 더 입을 열려고 드는 그를 두고 하카제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수고했어! 하카제군."


대기실로 돌아오자 광고로 넘어간 TV 앞에 서 있던 매니저가 돌아 환영했다. 어땠어요? 굳어있던 얼굴을 애써 풀어내고 묻자 그가 엄지손가락 두 개를 치켜세웠다.


"반응도 좋아. 포털 사이트도 SNS에서도 네 이야기밖에 없어. 유성대랑 같이 겹쳐서 조금 걱정했는데 나쁘지 않네."

"그래요?"

"고생한 보람이 있네."


그가 툭툭 어깨를 치며 축하했다. 고생, 많이 했지. 다들. 처음이라 해도 언데드의 하카제 카오루라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완성도는 필요했다. 그걸 만들어 내기 위해 사무소 직원 모두가 열심히 뛰어다녔다. 적당하게 프로에게 곡을 받아 사용했으면 조금은 편해졌을 텐데, 거기서 곡을 써보겠다 나서 더 비상이 걸렸다. 사무소 대표까지 찾아와 잘 생각해보라 설득했지만, 고집을 꺾지는 않았다. 스스로 결과를 내어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또 어딘가에서 분명 자신의 노래를 듣고 있을 누군가에게 이렇게라도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 가고 싶어. 바다에 잠기는 석양이 보고 싶어."


땀이 얼고 손이 식는 겨울, 그 공기로 나갈 채비를 서두르며 하카제는 자신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계절감 전혀 없다며 모두가 고개를 저었던 가사는 자신이 붙였지만, 주인은 따로 있었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 가고 싶어요."


벌겋게 물든 코를 목도리에서 내밀고 신카이 카나타가 말했다. 졸업식, 모두가 품에 가득 꽃다발을 안고 있었지만 그의 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카제는 그의 빈 품이 보기 싫어 억지로 제 꽃다발을 안겨 주었다. 평소라면 "이건 카오루 거잖아요?"라 거절했을 그도 그날은 이상하게 가만히 제 배려를 받아 주었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는 바다도 따뜻하겠죠? 석양도 잠겨서 엄청 예쁠 거 같아요."


꿈을 꾸듯 그가 떠들었다. 공기에 녹아든 그의 손을 붙잡으며 물었다. 갈까? 라고.


"지금 바로 갈까? 섬이든 나라든 어디든."


가고 싶으면 어디든 데려다줄게. 웃으며 제안했다. 졸업식 전, 그에게 함께 살지 않겠느냐 물었다. 자세히는 알지 못하지만, 집안 문제로 그가 방황하고 있던 걸 알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멋대로 뱉은 말이었다. 실은 그것보다 더 좋은 말이 많았을 텐데, 간질간질한 마음을 전하기엔 당시 하카제 카오루는 부끄러움이 많은 19살 소년이었다. 어쨌거나 바다에 가자는 것은 그 말의 연장선이었다. 오늘이야말로 긍정적인 대답을 듣고 싶어 기대했지만 신카이 카나타는 늘 그렇듯 웃는 얼굴로 빠져나갔다.


"아, 집안의 사람이 온 거 같아요."


그리고 얽혀있던 손을 풀어냈다. 저 멀리 교문 앞에 검은 차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가봐야 할 거 같아요. 그리 말하며 품에 안았던 꽃다발을 돌려주는 신카이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 할 이야기 있어. 나."


부끄러움은 아직 자신 어딘가에 있었지만, 어쩐지 이대로 그를 보내면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얼렁뚱땅 제 마음을 전하는 건 영 무드 없는 일이라 싫었지만, 그래도 신카이 카나타의 시선을 그리고 마음을 아니면 동정이라도 붙잡고 싶어 그리 굴었다.


"금방 다시 올게요."


제 간절함을 알아봐 주었는지 아이를 달래듯 신카이는 그렇게 말하곤 자신과 똑같은 교복을 입은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더라. 자신은 계속 기다렸다. 같이 사진 찍자고 다가온 사람들의 부탁을 들어주고 관심 없는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공기가 더 차가워지고 머리끝에 솟아 있던 태양이 잠들 때까지 계속.


"...다시 온다고 했으면서."


그날의 겨울밤은 오늘처럼 짙었고 빨랐다. 하카제는 방송국 로비를 벗어나며 슬쩍 혀를 찼다. 신카이 카나타는 금방 온다는 거짓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게 마지막인 줄 알았더라면 아마 더 거기서 기다렸을 텐데. 아니, 다시 돌아온다는 말을 무시하고 잡았던 팔을 놓지 않았을 텐데. 가볍게 빠져나간 팔처럼 신카이 카나타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의 집에 찾아도 가봤지만, 으리으리한 전통 가옥의 문은 굳게 닫혀 열리지 않았다. 분명 신카이라는 이름이 버젓하게 달려 있음에도 신카이 카나타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관했다. 사쿠마 레이에게 부탁했지만 그 역시 고개를 저었다. 유일한 연락처인 그의 전화번호는 가볍게도 없어졌다. 모리사와 치아키 역시 예상 못 했는지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와 친했던 모두를 찾아가 행방을 묻고 또 물었으나 누구 하나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흘러가는 시간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차 가져올게, 기다려!"


로비 앞에 저를 두고 떠나는 매니저의 뒷모습을 보며 하카제는 코트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이런 걸 아무렇지 않게 입에 무는 절 보면 신카이 카나타가 웃으며 "카오루, 멋없는 어른이 되었네요?"라 놀릴 거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날 돌아오지 않은 네 탓이잖아. 하카제는 속으로 사라진 이에게 모든 걸 떠넘기고 필터에 불을 붙였다.


"포기를 모르는 건 모릿치가 아니라 나 아닌가...?"


전하지 못한 마음, 잡지 못했던 그 날, 떠나버린 사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묻지도 못하고 포기도 못 하고 이렇게 질척이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하카제는 슬쩍 필터를 낀 손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텁텁한 숨이 입을 타고 흘렀다.


"좋아해."


어디로도 닿지 못할 마음에는 이제 부끄러움 따위 없었다. 4년 내내 연습처럼 주문처럼 떠들어 댔더니 그 두근거림은 이미 흩어져 사라졌다. 건조하게 고백의 말을 뱉어보며 하카제는 눈을 감았다. 분명 입에서 흐른 말은 건조했는데 속은 그렇지 못한지 무언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너무 아파서 꾹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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