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카나] 뜨거운 기분
2017. 12. 17. 02:44





"신카이공, 이러다 정말 죽을지도 모르오! 얼른 거기서 나오시오!"
"도대체 왜 이러는검까?"
"...아, 진짜 내가 죽고 싶다구요?"



발을 동동 구르며 아이들이 저마다 꽥꽥 소리를 질러댔다. 신카이 카나타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분수대 안에서 가만히 그들을 지켜보았다. 확실히, 이 상태면 진짜 이번에는 죽을지도 몰랐다. 물속에서 꽉 몸을 끌어안고 있었지만 덜덜 떨리는 입술은 그리고 이는 멈추지 않았고 언제나처럼 둥실둥실 물에 뜨는 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피와 뼈가 딱딱하게 굳어버린 기분이었다. 아침에 본 일기 예보에서 오늘은 한파로 꽤 추울 거라 경고했다. 물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런 날씨까지 밖에서 몸을 담글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신카이 카나타에게는 이 방법밖에 없었다.



"왜 대장공은 전화를 안 받는 것이오?!"



그래, 모리사와 치아키를 불러내는 방법은 이거밖에 없었다. 더는 참을 수 없었는지 작정하고 분수대로 들어오려는 나구모 테토라의 손을 피해 몸을 뒤로 빼며 신카이는 인상을 찌푸렸다. 치아키가 아니면 싫어요, 얼어붙은 입을 떼고 겨우 툴툴대자 나구모가 크게 입을 열었다. 그의 입술로 어마어마한 입김이 터져 흘렀다.



"그러니까! 대장은 지금 CM 촬영으로 오늘 쉬잖아요? 왜 이렇게 억지를 부리는검까? 신카이 선배! 이러다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고요! 익사체라고요?!"



그건 알고 있었다. 모리사와가 직접 이야기했으니까. 갑작스럽게 들어온 CM 촬영으로 며칠 학교에 나오지 못하니 그동안 유성대 레슨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겨울을 맞이해 눈 내리는 스튜디오에서 찍는 코코아 광고라 했다. 개인적인 일로 자릴 비우게 되어 미안하다고 그가 사과했지만, 카나타는 웃으며 "다녀오세요~"라고 그를 응원했다. 그래 그때는 그랬다. 하지만 그 뒤에 붙어나온 말에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꾹 다물고 말았다.



"상대는 요네 사쿠라래."
"에엑? 그 클로버의 요네 사쿠라 말임까? 전에 방송에서 대장을 이상형으로 뽑았던 그 맴버아님까?!"



호들갑을 떨며 난리를 치는 나구모의 말에 모리사와는 쑥스럽게 웃었다. 요즘 잘나가는 여자 아이돌로 얼마 전, 심야 방송에 나와 이상형 질문에 "유성대의 모리사와 치아키군의 오랜 팬이에요!"라고 했던 여자였다. 그 덕에 다음날 학교가 얼마나 소란스럽던지. 신카이는 알고 싶지 않아도 그녀가 얼마나 노래를 잘하는지, 웃을 때 덧니가 얼마나 귀여운지에 대해서 알고 말았다. 이야, 모리사와 부럽다! 그렇게 놀리는 사람들 틈에서 어색하게 웃던 모리사와의 손을 꽉 잡았지만, 그래도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그랬는데 동반 CM이라니. 분명 화제성을 노린 어른들의 계략이고 사정일 터였다. 내 남자의 비지니스에는 쿨해야 한다 생각은 들었지만, 그래도 쿨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신카이는 좋은 기회라는 걸 알면서도 "가면 안 돼요? 치아키~?"라고 몇 번이나 끈질기게 부탁했다. 그 여자애랑 붙어 있는 거 싫은데. 그 여자애랑 말 나누는 것도 싫은데. 인사라도 싫은데. 웃어주는 것도 눈을 마주치는 것도 싫은데. 너무너무 싫은데. 그러니까 안 가면 안되나. 그런 마음을 가득 담아 몇 번이고 툴툴대며 모리사와의 팔을 붙잡고 늘어졌다.



"안돼, 카나타. 일이잖아. 프로답게 굴어야지."



프로답게 구는 건 스무살이 넘어서도 괜찮잖아. 매정하게 딱 잘라내는 애인의 말에 신카이는 결국 더는 말리지 못했다. 엉엉 울고 떼를 부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모리사와가 자신에게 질려 할까 꾹 참았다.


하지만 참는다고 해서 참아지는 건 아니었다. 다녀올게, 그 인사를 남기고 매정하게 모리사와 치아키가 떠나자 불안은 더 커졌다. 벚꽃(사쿠라)인지 민들레인지가 같이 눈 아래에서 모리사와랑 뛰어다니고 뒹굴고 장갑을 나눠 끼고 함께 뜨거운 코코아를 마실 생각을 하면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뜨거운 음료는 싫었지만, 지금이라면 100잔이라도 꿀꺽꿀꺽 원샷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기분을 어쩌지 못해서, 분풀이로 그리고 항의로 신카이는 부쩍 추워진 겨울에 그만두었던 분수대 입수를 강행했다. 자신이 이렇게 분수대에 뛰어들면 언제 어디서든 모리사와는 저를 건져내기 위해 달려왔다. 그러니 이번에도 반드시 달려올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곧 해도 질 거라고요? 신카이 선배. 그만하고 나와요."
"신카이공 입술이 퍼렇게 질렸소이다!"
"안되겠슴다! 제가 교내에 도와줄 사람을..."
"치아키가 오지 않으면 안 나갈 거예요!"



왜 아이도 아니고 이런 억지를 부리는 겁니까? 타카미네가 결국 화가 났는지 짜증을 냈다. 하지만 그가 짜증을 내든 말든 그건 신카이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아직 모리사와 치아키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게 가장 중요했다.



"메일도 여러 통 넣어놨고, 부재중 전화도 엄청 남겨놨슴다. 확인하면 바로 올 거라고요? 지금 한창 촬영 중이니 확인 못 하는 걸지도 모름다. 그러니까 제발 거기서 나와주십쇼."
"...아, 집에 가고 싶다."
"안되겠소! 이런 상황 하나 정리 못 하다니, 닌자 자격 실격이오! 제가 해결해 보이겠소!"



발만 동동 구르던 센고쿠 시노부가 운동화를 벗어 던졌다. 양말까지 벗어 분수대로 올라서는 그를 보며 신카이는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모리사와 치아키를 향한 협박과 항의 그리고 시위를 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얼음장 같은 물에 다른 사람을 끌어들일 생각은 없었다. 안돼요! 서둘러 자신에게 오려는 센고쿠를 막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그와 동시에 머리가 핑글 돌았다. 푹 젖어버린 몸이 그대로 얼음처럼 꽝꽝 굳어버린 거 같았다. 아, 위험하다. 그런 생각과 동시에 눈도 두어 바퀴 돌았다. 분수, 하늘, 그리고 경악하는 아이들의 얼굴이 마구 펼쳐지더니 이내 어둠과 추위가 쏟아졌다.


오래전, 무대 아래에서 자신을 응원하던 이들은 신카이 카나타를 버렸다. 애정과 열정을 담아 부르던 이름을 불러주지 않게 되었다. 무시와 경멸만이 무대에 남았다. 태연하게 버티고 싶어서, 괜찮은 척 흉내내고 싶어서 신카이 카나타는 무대를 벗어났다. 노래하지 않으면, 그 고독에서 떨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사, 그렇게 쉽게 풀리지는 않는 모양인지 대신 귀찮은 것이 달라붙었다. 모리사와 치아키. 얼빠진 얼굴에 안경을 쓴 소년. 그는 귀찮을 정도로 자신을 졸졸 따라다녔다. 같이 유닛을 하자고 제안했다. 멍청한 말이라 신카이는 무시했다. 버려진 자신 따위를 주워서 쓸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모리사와 치아키는 끈질기고 또 끈질겼다. 그런 그가 귀찮아서 피하려 다가오지 못할 곳을 찾았다. 그러다 눈에 든 곳이 분수대. 천하의 모리사와 치아키라도 여기까지는 못 들어오겠지 싶었다. 하지만 그는 몇 번이고 기꺼이 바지를 적셔주었고 자신을 잡아 꺼내주었다. 모두가 자신에게 등을 돌렸지만,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모리사와 치아키만이 손을 잡아 주었다. 신카이 카나타는 더는 방법이 없었다. 타오르는 불꽃에 녹아드는 수밖에 없었다. 곁을 허락해버리니 언제부터인가 듣기 싫었던 잔소리가 즐거워졌다. 귀찮게도 권하던 유성대에 대한 것도 고민하게 되었다. 그가 자신의 머리를 말려주는 손길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눈을 마주치고 이름을 불러줄 때면 웃음이 나왔다. 그가 떠들어대는 꿈을 이루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신카이 카나타는 모리사와 치아키를 사랑했다. 그리고 모리사와는 그 사랑을 거부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자신을 택해주었다.
그리고 관계가 역전되었다. 이제 모리사와 치아키를 따라다니는 것은 자신이 되었다. 그가 곁에 없으면 불안했다.



"카나타군, 사랑은 밀고 당기기라고요. 그렇게 적극적으로 달려들면 언젠가 도망가버릴지도 모릅니다~?"



그게 걱정이었는지, 언젠가 히비키 와타루가 충고했다. 완급 조절이 중요하답니다. 그가 꽤 어른스러운 얼굴을 하며 말했지만, 신카이는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좋아하는데 왜 밀고 당겨야 하고 완급을 조절해야 하지? 좋아하면 그냥 좋아하는 거잖아. 다 보여주고 싶고 다 해주고 싶고 다 이뤄주고 싶은 거잖아. 하지만 뒤에 달라붙은 모리사와가 도망갈지도 모른다는 말은 무서워서, 겁이 나서 한동안은 슬쩍 거리를 두려 노력했다. 많이 사랑하지 않으려 많이 사랑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슬쩍 뒤로 물러나면 성큼 다가와 "무슨 일인가? 카나타?"라고 묻는 모리사와를 볼 때마다 결심은 물거품이 돼버렸다. 뒤로 물러나려 하면 퇴로가 턱턱 막혔다. 결국 다시 모리사와 치아키의 껌딱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다행히 히비키 와타루의 걱정과는 달리 모리사와 치아키는 그런 자신을 밀어내거나 쳐내지 않았다.

하지만, 하지만 말아야. 만약에 덧니가 귀여운 여자아이가 얼굴을 붉히며 자신처럼 모리사와에게 사랑을 고백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귀찮은 자신 같은 예쁘지도 귀엽지도 않은 남자아이는 버리고 돌아서는 게 아닐까. 쓸모도 없는 자신보다는 명예도 반짝임도 손에 넣은 그녀를 선택하는 게 아닐까. 그게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모리사와 치아키가 이번에야말로 질려서 정말로 도망가버릴지도 몰랐지만, 그래도 무서워서 신카이 카나타는 억지를 부렸다. 언제나처럼 분수대에 몸을 담그고 그가 자신을 꺼내주러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모리사와 치아키는 오지 않았다. 역시 그 벚꽃인지 민들레인지를 택해버린 걸까. 신카이는 겨우 올려 뜬 눈꺼풀 사이로 익숙하게 들어오는 양호실의 천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누군가 히터를 틀어 놓았는지 공기는 건조하긴 했으나 따뜻했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분수대에 푹 담겨 있는 거 같았다. 흐릿하게 번지는 시야 사이로 카나타는 코를 찡그렸다. 그리고 흐를 거 같은 눈물을 감추기 위해 팔을 들려 했다. 그래, 들려고 했다.



"..."



자신의 손은 단단한 무언가에 붙잡혀 있었다. 그건 보드랍고 따뜻했다. 신카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제 손을 내려보았다. 누군가의 손에 가지런히 붙잡혀 있는 손가락을 꼼실댔다. 제 것이 맞았다. 그리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뿌연 시야 사이로 익숙한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제 손을 꼭 쥐고 잠든 모리사와 치아키였다.



"치아.."



그의 이름을 부르고 싶은데, 목소리가 갈라졌다. 서러운 게 터져서 그런 건지 아니면 기뻐서 그런 건지 아니면 감기라도 걸려버린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엉망인 목소리였다. 하지만 다 맺지도 못한 엉망인 이름도 들어준 건지, 약간의 뒤척임과 동시에 모리사와가 고개를 들었다. 피곤한 얼굴의 그와 시선으로 공중에서 얽혔다.



"카나타!"



제가 깬 것을 알아차렸는지 그가 큰 소리를 냈다. 쉿! 경고하자 그가 아차 싶은 얼굴로 커튼 밖을 살폈다. 다행히 양호실에는 아무도 없는지 "괜찮은 거 같다."라며 웃었다.



"촬영은요? 잘 했나요?"
"응. 끝나자마자 연락하려고 휴대폰 확인했더니, 나구모랑 센고쿠에게서 어마어마한 연락이 들어와서 말이지.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카나타."
"...심장이 떨어졌나요?"



그렇다면 좀 기쁠 거 같은데. 그 심장을 주워서 나만 가지게.



"그래, 떨어졌어.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무서웠는지 넌 모르지. 타카미네가 건져다 바로 양호실로 옮겨준 모양이다. 사쿠마씨도 방금까지 있다가 갔어. 열 기운이 있으니 무리하지 말라던데."
"그래서 뜨거운 모양이네요."



어쩐지, 손도 얼굴도 다 뜨겁다 했다. 웃으며 그리 말했더니 천천히 모리사와가 몸을 일으켰다. 그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온다 싶더니, 슬쩍 이마를 마주했다. 음, 진짜 뜨겁네. 그렇게 속삭이는 입술을 찾아 신카이 카나타는 제 것을 부딪쳤다. 작게 몇 번이고 부딪혀 본 후에야, 피하지 않는 그를 확인하고 입술을 슬쩍 열었다. 제 안으로 들어서는 모리사와 치아키의 혀는 자신만큼이나 뜨거웠다. 처음엔 어찌할 줄 몰랐던 입맞춤도 지금은 자연스러웠다. 제 안을 휘젓는 그를 받아들이는 것도 익숙했다.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던 팔도 아무렇지 않게 그의 목에 두를 수 있게 되었다. 떨어지는 아쉬운 입술 사이로 그를 더 붙잡기 위해 혀로 쫓았지만, 단호하게도 모리사와는 고개를 들었다.



"미안, 몸도 안 좋은데."
"치아키가 뜨거우니까 괜찮아요!"



억지를 부려보았지만, 안된다! 라는 말로 모리사와 치아키가 떠났다. 더 키스해달라고 안아달라 떼를 쓰고 싶었지만 신카이 카나타는 참았다. 그래도 그가 이렇게 제 눈앞에 와 있어 준 것만으로도 다 괜찮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뜨거운 건 싫지만, 치아키는 좋아요."



그래서 슬쩍 이불을 끌어당기며 다시 고백했다. 아마 많은 사람이 그에게 같은 소릴 했겠지만, 자신의 것이 가장 특별하길 바라며 고백했다. 모리사와는 당황한 얼굴로 다시 커튼 밖을 확인하더니 이내 다가와



"나도 차가운 건 싫지만, 카나타는 좋아한다."



라 속삭였다. 감기 기운 때문인지, 아님 모리사와 치아키 탓인지 머리에 열이 차올랐다. 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은 뜨거움이었다. 이거로 일주일은 버틸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마 불쑥 또 벚꽃 바람에 휘둘려 불안해질지도 몰랐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일주일은 괜찮을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모리사와 치아키의 뜨거움이라면 아직 분수대에 담겨있는 제 마음도 서서히 녹아내릴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런 좋은 기분들이 신카이 카나타를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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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가 많은 신카이 카나타, 치아키의 고백으로는 겨우 일주일밖에 못 버틴다구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