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경계
千奏(치아카나)
모리사와 치아키 x 신카이 카나타
과거 날조, 이벤트 아쿠아리움 약간의 스포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곧 돌아갑니다! 사진은 카나타군의 부탁.]
안즈에게서 온 메시지. 그 안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신카이 카나타가 있었다. 어쩌다 입었는지 모를 라이브 복장에 돌고래 쇼라도 했는지 저 멀리 돌고래 그림도 눈에 들어왔다. 고작 며칠 보지 못했던 얼굴인데 마치 1년을 보지 못했던 것처럼 그의 얼굴이 생소했다. 코가 시큰했다. 몸 안에서 무언가 울컥한 것도 같았다. 모리사와 치아키는 그런 제 모습을 누군가 볼까 서둘러 고개를 들었다. 천장을 한 번 봤다가, 다시 휴대폰 가득 떠 있는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레 답장을 적었다. 뭐 했어? 카나타, 라이브 한 거야? 무슨 라이브? 누구랑? 괜찮아 보여? 아무 일도 없었어? 그런 메시지를 몇 번이고 메시지를 적고 또 적었다 마지막에는 지웠다.
-[수고했어. 그리고 고마워.]
묻고 싶은 건 굴뚝만큼. 알고 싶은 것도 하늘만큼. 하지만 모리사와 치아키에게 허락된 것은 여기까지. 쓰고 지우고 고민한 게 아깝게도 어느 하나 솔직하게 묻지 못하고 감사 인사만 전했다.
며칠 전 신카이 카나타가 행방을 감췄다. 그의 이런저런 기행은 한두 번이 아니었으나 자신에게 말도 없이 모습을 감춘 것은 처음이었다. 대충 예상이 가는 곳은 있었다. 얼마 전부터 여기저기 내밀고 다니던 아쿠아리움 티켓. 그의 오랜 친구인 이츠키 슈에게 듣자 하니 그 수족관은 신카이의 집안에서 운영하는 곳이라고 했다. 처음 듣는 이야기에 놀랐지만 모리사와는 굳이 티를 내지 않았다. "너도 이미 받았잖아."라고 묻는 그의 말에도 굳이 '아니'라고 대답하지도 않았다. 혹시나 해 같은 유성대인 나구모, 센고쿠, 타카미네에게도 슬쩍 티켓에 관해 물었지만, 세 사람 모두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아, 그런데 우리 반 하지메군은 받았더라고요. 티켓. 뭘까요? 왜 신카이선배 우리만 차별하는검까? 우리도 아쿠아리움 갈 수 있는데 말임다!"
거기다 나구모 테토라가 덧붙인 이야기. 철저하게 유성대를 배제한 신카이 카나타. 모리사와는 어렵지 않게 그의 행동에 집안 문제가 얽혀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문제는 모리사와 치아키가 넘지 말아야 할 선, 신카이 카나타의 선이었다.
"내가 제안하면 아마 싫다고 하겠지만, 네가 하면 다를지도 몰라. 나쁜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오기인이.... 무너지긴 했지만, 어쨌거나 그 신카이 카나타라면 유성대의 새로운 시작에 꽤 도움이 될 테고. 반대로 그 녀석에게는 다시 누군가가 곁에 있어 준다는 거로도 크게 위로가 될 테니까."
새로운 유성대를 위해 이리저리 사람을 구하던 때, 과거 유성대였던 미케지마 마다라가 제안했다. 신카이 카나타. 모리사와도 아는 이름이었다. 무너지긴 했지만, 과거 오기인이라 불리던 이 학교의 특별한 존재 중 하나. 제대로 된 동료도 없이 적당하게 몸만 담그며 돌아다니는 자신과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이름이었다. 그런 사람이 유성대라니. 뜻밖의 제안에 모리사와는 멍청하게 눈만 깜빡였다. 무너지고 죽었다 해도 오기인이었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동료가 돼줄 리가 없었다. 제 플랜에 넣어본 적도 없는 이름이었다. 제안해볼 생각조차도 못했다. 아니 했다 하더라도 건넬 용기조차 없었다.
"...으음..."
미케지마가 건넨 제안은 꽤 괜찮은 아니 최고의 제안이었지만, 모리사와는 덜컥 그러고 싶다 대답할 수 없었다. 이미 많은 사람에게 거절당한 참이었다. 희망도 뭣도 남지 않았다. 그런데 또 거절당하기 위해 제안해야 하다니, 굳이 스스로 상처받을 필요가 있을까 싶어 어물쩍 대답을 흐렸다. 시원치 못한 제 반응에 모든 걸 눈치챘는지, 언제나처럼 호탕하게 웃으며 미케지마가 말했다. 그럼 내가 대신 제안해 볼게, 라고.
다음날, 그 호탕한 웃음은 진심이었는지 미케지마는 신카이 카나타를 데리고 자신의 앞에 나타났다. 끌려온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닦지 못한 몸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인지 신카이 카나타는 잔뜩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저런 오기인을 상대로 "유성대에 들어오지 않을래?" 혹은 "나와 같이 히어로가 되지 않을래?"라고 물을 용기는 여전히 나지 않았다. 모리사와는 애꿎은 안경만 셔츠로 문질러 닦아댔다. 손에 땀이 차는 거 같았다. "저, 돌아가도 되나요?" 자신의 행동이 답답했는지 신카이 카나타가 조용히 물었다. 네, 아니오. 어느 것도 입에서 흘러나오지 못했다. 유성대엔 이제 자신 말고 남은 사람은 없었다. 과거의 영광까지 찾을 생각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아이돌 활동을 이어나가기 위해선 사람이 필요했다. 이미 물러서고 또 물러섰다. 벼랑 끝에 선 주제에 더 무서울 것도 없었다. 그래 남자가 칼을 빼 들었으면 뭐라도 베어야지. 모리사와는 결심했다. 히어로라면 나서야 할 때 나서야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가... 같이! 나와 세계를 구하지 않을래?!"
웃기지도 않은 제안을 했다. 마구 터져나간 자신의 목소리에 신카이 카나타는 놀랐는지 어느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뭐가 그리 웃긴지 미케지마는 배를 붙잡고 끅끅 웃어댔다. 창피해서 얼굴이 화르륵 타들어 갔다. 쥐구멍이 있다면 어디든지 숨고 싶었다. 고맙게도 신카이가 미케지마를 쫓아내 주었다. 그의 배려에 더 부끄러워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도망칠 구석만 찾고 있을 때, 신카이 카나타가 조용히 물었다. "그게 당신의 꿈인가요?" 하고.
그건 꽤 생소한 질문이었다. 이 학교에 들어와서 꿈이 무엇이냐 묻는 이들은 없었다. 어린 시절에야 자주 답했지만, 이 나이가 되면 대부분 진로는 결정되어 퇴로도 막히고 후진도 못 하는 상황이니까. 그래서 모리사와는 오랜만에 듣는 단어에 눈만 깜빡였다. 꿈, 꿈이란 뭘까. 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이루어야 할 것? 그런 거라면 모리사와에겐 정말 많은 것이 있었다. 우선 유성대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 멋진 리더가 되는 것. 멋진 히어로가 되는 것. 좋은 동료를 찾는 것. 함께 무대에 서는 것. 끝내주는 라이브를 하는 것. 아이들에게 히어로의 멋짐을 알려주는 것.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다면, 이런 것도 꿈이라 불러도 괜찮다면 모리사와에게 무척이나 많았다. 그래서 하나도 빼지 않고 신카이 카나타에게 털어놓았다. 그는 여느 누군가처럼 비웃거나 대충 듣지 않았다. 한참을 끄덕이며 듣던 그가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저는 그 꿈을 이루어줄게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마법사도 아니면서, 신도 아니면서 신카이 카나타는 쉽게도 자신의 꿈을 이루어주겠다 말했다. 그럼에도 그 말이 진짜 마법 같아서 뒤에 붙은 조건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저를 신카이 카나타가 아닌 카나타로만 대할 것."
홧김에 끄덕인 대답에 비해 조건은 꽤 싱거웠다. 커다란 게 오면 어쩌지 싶은 마음에 덜컥 겁먹었던 게 우스울 정도로.
"그럼 제가 치아키의 꿈을 이루어줄게요."
신카이 카나타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모리사와는 웃으며 그 젖은 손을 잡았다. 이렇게 후회할 줄도 모르고 덥썩도 잡았다.
신카이 카나타가 유성대 들어오고 나서 많은 게 변했다. 우선 어영부영하던 유닛의 위치가 정식 유닛으로 바뀌었고 본격적으로 라이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비웃던 히어로 쇼나, 그와 비슷한 기획에도 신카이는 언제나 웃으며 응원해주었다. 둘이서 함께하는 무대는 신났다. 행복했다. 더는 안경을 쓰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다니지도 않았다. 3학년이 되었을 때는 귀여운 1학년 후배들을 모아 완벽한 유닛의 형태를 갖추었다. 신카이는 조금 귀찮아 하는듯 했지만, 언제나 그랬듯 금세 적응하며 아이들을 소중하게 여겨주었다. 꿈에 그리던 레드가 되었다. 영웅이 되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였을까, 그 틈에서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걸 느끼기 시작한 것은.
모든 건 순조로웠고 자신의 꿈은 이루어졌다. 외롭지 않았고 슬프지도 않았다. 원하는 만큼 노래를 했고 응원해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가슴이 아팠다. 때때로 찾아오는 그 감각은 싸하게 모리사와의 안을 훑고 지나갔다. 차가운 바다의 파도 같았다. 대부분은 신카이 카나타가 먼 곳을 보고 있을 때 그랬다.
신카이는 기본적으로 언제나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가끔 홀로 남겨지면 누구도 본 적 없는 얼굴을 했다. 그의 말간 얼굴 위로 그늘이 드리워지고 어둠이 짙게 깔렸다. 모리사와는 몇 번이고 그의 어둠을 걷어내고 싶었다. 그가 울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잠을 자지 못하거나 먼 곳을 보는 게 싫었다. 간섭하고 싶었고 참견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느 날, 성큼 다가갔다. 무슨 일 있느냐는 자신의 질문에 신카이는 무척 곤란한 얼굴을 하곤 말했다.
"치아키의 꿈을 이루어주겠다고 했잖아요."
라고.
딱딱한 그 말은 명백하고 강하게 거부를 담고 있었다. 가볍게 생각했던 조건은 어느샌가 그렇게 커다랗게 변해 있었다. 그건 선이었다. 신카이 카나타와 모리사와 치아키 사이에 존재하는 선. 그 선은 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아무리 자신이 발로 문지르고 손으로 닦아내도 지워지지 않았다. 그의 곁에 있고 싶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어도 그 선이 있는 한 무엇하나 할 수가 없었다. 모리사와는 애가 탔다. 그가 사랑스러워질수록 더 그랬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자신의 꿈 따위는 이야기 하지 않는 건데, 그때 그렇게 가볍게 그와 약속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속으로 몇 번이고 후회했지만, 보이지 않는 선은 보이지 않는 만큼 강했다. 신카이 카나타는 쉬이 자신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로 쓱 선을 밀어 지워주기만 해도 되는데 그래 주지 않았다. 오히려 넘어서려 하면 선 너머로 숨었다. 도망쳤다. 깜깜한 어둠밖에 없는 곳으로 자꾸만 사라지려 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모리사와 치아키는 신카이 카나타를 찾을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눈을 감고 뜨는 그 순간순간 그를 떠올리고 그를 생각하는 것, 자신이 넘을 수 없는 그 너머에 허락된 이들에게 부탁하는 것, 훌쩍 사라진 그가 돌아오길 바라는 것. 선의 경계에서 그가 나타나길 기다리는 것.
"대장공!"
메시지가 전송되었습니다, 얼마나 그 글자만 들여보고 있었을까.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모리사와는 서둘러 고개를 들었다. 연습복으로 갈아입은 1학년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쪽을 살피고 있었다.
"왜 불러도 대답이 없소? 걱정했소이다!"
"신카이선배도 몸이 안 좋다고 하고, 대장도 어디 아픈검까? 아프면 쉬는 게 최고라구요?"
"...그럼 다 같이 집에 갈까요?"
도르륵 도르륵 자신을 살피는 눈동자 6개. 모리사와는 서둘러 웃었다. 1학년들은 아직 신카이의 행방불명 이야기를 모르는 상태였다. 알게 되면 아마 큰 소동이 일어날 거 같아 최대한 열심히 숨기는 중이었다. 어설프게 굴었다간 눈치가 재빠른 녀석들에게 언제 들킬지 모를 일, 급히 휴대폰을 넣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다시 맞춰볼까? 카나타의 부분은 두고!"
곧 외부 라이브가 있었다. 큰 라이브이기 때문에 연습이 중요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번 외부 라이브 외에도 공연 의뢰가 몇 건 더 있었다. 대기로 걸어둔 것도 있었다. 학교 내에서는 강호 유닛이라 불렸다. 가끔 개최하는 히어로 쇼는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유성대를 불렀다. 과거와 지금은 모든 게 달라졌다. 모두 자신이 원하던 것, 이루고 싶었던 것이었다. 자신의 꿈은 정말로 이루어졌다.
"어라? 잠깐! 대장공, 지금 우는 것이오?!"
신카이 카나타의 꿈은 뭘까. 모리사와는 처음에 자신이 물었어야 할 질문을 떠올리며 서둘러 손등으로 눈가를 닦았다.
"아니! 땀이다!"
어설프게 거짓말을 하며 서둘러 음악을 재생했다. 연습실 가득 유성대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가장 먼저 들려오는 신카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모리사와는 서둘러 제 자리를 찾아 발을 움직였다. 그리고 빈 제 옆자리를 보았다. 경계에선 여전히 신카이 카나타가 보이지 않았다. 모리사와는 억지로 웃으며 선 밖에서 그가 어서 모습을 드러내길 기다렸다. 그리고 언젠가 신카이 카나타가 조심스럽게 그 선을 지워주면 가장 먼저 묻고 싶은 말을 떠올렸다. 너의 꿈은 뭐냐고. 그리고 그가 그랬던 것처럼, 이번엔 자신이 그 꿈을 이루어 줄 생각이었다. 그 날을 위해 모리사와는 이번에도 선 밖을 지켰다. 그리고 다른 말을 떠올렸다. 우선은 어서 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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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리움에서 등장은 못했지만 내 안에서 가장 임팩트 있었던 모리사와 치아키의 벤츠력...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