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쥰히요] 당신의 해피엔딩
2017. 10. 15. 23:17


당신의 해피엔딩


사자나미 쥰 X 토모에 히요리

(이것저것 모두 날조주의)








토모에 히요리를 처음 본 순간부터 끝을 알고 있었다. 자신과 다른 환경, 다른 위치, 다른 사람.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밖에 없었다. 그의 곁에 선다고 해도 그와 함께할 수 없을 거라는 것 정도는.



"걱정하지마. 내가 그만둔다고 해도 쥰군의 일에는 어떠한 영향 없을 거고, 나기사군에게도 사정은 이야기해놨어. 오히려 내가 없는 편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네? 이브로서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거잖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쥰군!"



그래도 그 끝이 이렇게 빨리 올 거라곤 사자나미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함께 학교를 졸업하고 2년, 이제 막 이브로서 에덴으로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시기. 그런데 돌연 은퇴라니. 그는 아직 스물 하나였다. 아이돌을 그만두기에는 너무도 어렸고, 싫증을 느꼈다기엔 그는 언제나 무대에서 반짝였다. 염세적인 성격도 아니었다. 그런 거로 자신의 무대를 포기할 사람도 아니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온갖 이유를 떠올렸지만, 어느 것 하나 토모에 히요리와 어울리는 게 없었다. "이유가 뭡니까?"라고 물을 수도 없었다. 그는 곱게 이유를 말해줄 성격의 사람이 아니었다. 거기다 사자나미는 그가 거짓말을 하게 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요."



그래서 해줄 수 있는 말이 고작 그뿐이었다. 그 가뿐한 대답에 그는 하하하, 소리 내어 늘 그렇듯 새처럼 웃었다. 뭐가 그렇게 웃긴지 눈물까지 흘려대며 웃었다. 한참을 들썩이고 손등으로 눈물을 훔친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평온한 표정을 찾았다. 그리고 고했다.



"안녕, 쥰군!"



작별을.


다음날, 신문 가득 토모에 히요리의 탈퇴 기사가 신문과 인터넷에 실려 나갔다. 그룹을 대표한 인터뷰는 란 나기사가 담당했다. 말이야 담당이지 하는 거라곤 기자들 앞에서 누군가 적어준 것을 또박또박 읽어내리는 것뿐이었다. 갑작스러운 탈퇴로 약간의 소란이 일기는 했으나, 언제 그랬냐는 듯 3인 체제의 에덴 활동은 금세 자리를 잡았다. 울며 토모에 히요리를 찾던 팬들도 어느새인가 "이렇게 될 줄 알았어."라 떠들었다. 이브라는 이름을 걸고 홀로 설 준비를 했다. 토모에 히요리의 말대로 그가 사라진 곳은 흔적도 없이 지워져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자신에게 향했다. 쏟아지는 섭외, 대본, 카메라, 관심 속에서 사자나미는 언제나 습관처럼 자신의 옆을 살폈다. 손을 내밀 필요도 없는데 가끔은 멋대로 손이 마중을 나갔다.



"오케이! 수고했어!"



종료 사인에 사자나미는 쓰고 있던 헤드셋을 벗었다. 곧 발매를 앞둔 이브의 네 번째 싱글이자 홀로 부르는 첫 곡의 녹음이 드디어 끝났다. 걱정했는데 완벽했어! 스태프의 칭찬에 웃어야 하는지 울어야 하는지 몰라 어색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창 하나 없는 실내에만 갇혀 있었더니 날의 흐름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녹음을 위해 꺼두었던 휴대폰을 켜니 그제야 시간이 흘렀다. 저녁 8시 45분. 식사 때를 놓쳤으나 배가 고프진 않았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종일 함께 고생한 스태프들에게 무어라 더 다정한 말을 건네야 한다곤 생각했지만, 성격이 이 모양이다 보니 수고했다는 인사도 잘 튀어나오지 않았다. 언제나 이런 건 토모에의 몫이었는데. 사자나미는 슬쩍 입술 끝에 힘을 주었다 녹음실을 나왔다. 그리고 습관처럼 휴대폰을 열어 의미 없이 손가락만 움직였다. "차 빼 올게!" 매니저의 말에 대충 끄덕이며 검색창에 '토모에 히요리'라는 이름을 쳤다. 전에는 사무소에서 찍었던 프로필 사진이 떠 있던 곳에 지금은 정장을 입은 증명사진 같은 게 떠 있었다. 웃기지도 않은 사진이었다.


세상엔 수십 개의 인사가 존재하고 언어가 존재하는데 어째서 그는 작별의 말을 담아야 했을까. 처음엔 짐작도 가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니 이젠 알 거 같았다. 어차피 그의 입으로 듣기 전까지 어떤 이유든 추측이 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대충 예상은 되었다. 토모에가(家). 그가 에덴의 그리고 이브의 히요리이기 전에 몸을 담고 있는 곳. 그곳은 그의 커다란 왕국이었고 성이었으며 사자나미에겐 닿을 수도 없는 곳이었다. 그 안에서 곱게 자란 토모에 히요리는 첫 만남부터 콧대가 높았고 세상에서 저가 제일 잘난 줄 아는 소년이었다. 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비꼬듯 아가씨라 불러제꼈지만, 별 타격도 없는지 비웃으며 언제나 저를 부려먹고 노예라 칭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함께 레이메이에 재학하던 때에 그의 집안 사정이 조금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해서 도도한 아가씨의 콧대가 꺾이진 않았지만, 어쨌거나 재정 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다. 그 때문인지 보통이라면 뛰지 않을 온갖 라이브며 행사까지 뛰었다. 웃고 노래하고 버텼다. 쉽게 누군가에게 손 한 번 내밀어주지 않던 그가 온갖 사람들과 악수했다. 집안 부름으로 학교를 며칠이고 나갔다 온 날에는 종일 침대에만 누워 있었다. 우울하게 웃었고 좋아하는 디저트도 거부했다. 그는 무너지는 집안의 간판이 되었다. 그 희생 덕인지 다행히도 토모에라는 이름은 다시 자리를 찾았다.



"그거면 됐지.."



그렇게 부려먹을 때는 언제고, 이제 아들이라고 집안으로 끌고 들어가다니.
재정 상태가 좋아진 이후 몇 번이고 그가 집안 사람들과 만나고 통화하고 싸우는 것을 보았다. 위에 형들이 있으니 문제없을 거라는 그의 말과 달리 집안에서는 아들이 사람들 앞에서 웃고 노래하는 게 용납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값싸게 굴고 싸구려처럼 군다 모욕하는 것도 몇 번 들었다. 그를 가장 싸구려처럼 굴렸던 사람들이 그런 소릴 늘어놓으니 기가 찼다. 몇 번이고 주먹이 쥐어졌지만, 자신은 토모에 히요리의 왕자님이 아니었다. 노예는 노예의 자리를 지켜야만 했다.



"오래 기다렸지?"



얼마나 멍하니 과거의 토모에 히요리를 떠올렸을까, 고개를 드니 어느새 매니저가 차를 대기시키고 있었다. 사자나미는 슬쩍 휴대폰 속 사진을 엄지로 쓸었다, 이내 주머니에 넣은 후 차에 올랐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조용했다. 예전 같았으면 과도한 스케쥴에 온갖 불평을 쏟아 놓으며 자신의 기분을 맞춰주길 바라는 누군가의 징징거림이 함께 했겠지만, 이제 그 사람은 곁에 없었다. 어색한 침묵이 불편한지 매니저가 몇 가지 새로 들어온 대본이나 일에 대해 떠들었다. 어차피 선택은 위의 몫이라 사자나미는 적당하게 대꾸했다.




"그럼 수고했고, 내일 시간 맞춰서 데리러 올게."
"네, 수고하셨습니다."




무뚝뚝한 인사를 던지고 차에서 내렸다. 얼마 전까지 토모에와 함께 시부야의 꽤 좋은 맨션에서 살았지만, 그가 나간 후 분수에 맞지 않는다 판단해 적당한 아파트를 계약해 나왔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첫 집으로 들어서며 사자나미는 가방에서 열쇠를 찾았다. 손끝에 걸리는 익숙한 것을 빼내며 고개를 들자, 익숙한 현관 앞에 익숙한 사람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



아가씨, 예전처럼 그런 우스운 별명으로 그를 부르려다 멈칫했다. 그 잘려나간 부름이 닿은 모양인지 푹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던 토모에 히요리가 고개를 들었다. 조금 살이 빠진 얼굴보다 훅 차진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그의 셔츠차림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여기서 뭐 하는 겁니까?"
"쥰군!"



얼마나 기다린 걸까. 그보다 여기 주소는 어떻게 알았을까. 그에게 알려준 기억은 없었다. 그런걸 주고받을 사이도 아니었으니까. 사자나미는 서둘러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그에게 둘러주었다. 딱딱 이를 부딪치는 그를 두고 서둘러 열쇠로 문을 열었다. 토모에 히요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 자신의 집으로 들어섰다.



"헤에, 여기 쥰군의 새로운 하우스? 이야, 좁네! 전에 우리 같이 지내던 데 그대로 써도 되는데!"



꼭 외투를 쥔 주제에 그가 쓸데 없는 소릴 지껄였다. 사자나미는 서둘러 방의 불을 켜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에요. 이 시간에."



아니, 이게 아닌데. 좀 더 다정하게 말할 수 있잖아. 퉁명스럽게 나간 말투에 아차 싶었지만, 굳이 정정하지는 않았다.



"아...그냥... 오늘 집안 행사가 있어서 근처에 왔다가... 나기사군에게 네 이사한 곳 들었거든. 그래서 그냥 나 없이도 쥰군 잘 지내나 싶어서 보고만 가려고 했는데, 그랬는데-"



그가 늘 그렇듯 목소리를 키우며 떠들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들으며 사자나미는 그의 모습을 살폈다. 살이 슬쩍 빠진 얼굴은 누구에게 맞았는지 한쪽이 부어 있었다. 덜렁 입고 있는 셔츠의 윗단추 두어 개는 어디론가 사라진 상태였다. 자신이 둘러준 외투를 쥔 손톱에는 약간의 혈흔이 굳어 있었고 발목에서 단정하게 잘려나간 바지 아래엔 남아있는 양말은 하나. 분명 비쌀 구두는 얼마나 급하게 신었는지 뒤를 밟고 있었다.



"도움을 청하려면, 상대를 잘못 골랐어요."



무슨 일이 일어났다. 이 결론은 토모에 히요리와 함께하면서 사자나미가 수도 없이 눈치챈 결론들이었다. 그가 이불에 틀어박힐 때, 울 것처럼 웃을 때, 몰래 한숨을 쉴 때, 갑작스러운 다이어트를 핑계로 디저트를 밀어낼 때, 새벽에 자신의 침대로 파고들 때, 자신보다 일찍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몰래 먹을 것들을 토해낼 때. 그 외에도 다수. 그때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걸 사자나미는 알았다. 알면서도 그를 구해줄 수 없으니까, 도와줄 수 없으니까 깊이 알려 하지 않았다. 그 무슨 일이 뭔지, 뭐가 그를 이렇게 좀먹고 있는지 알려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여기 오면 안 돼요."



그는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해서는 안 되었다. 사자나미 쥰은 가진 게 없었다. 그의 노예는 그를 지켜줄 힘이 없었고 함께 도망칠 돈도 없었고 그의 진실에 마주할 용기도 없었다. 작별하는 그에게 고작 "그래요."라는 말을 하는 게 전부였다.



"텐쇼인씨나 나기사씨에게 가요. 전화해 놓을게요."
"쥰군-"
"나를 찾아오면 안 돼요."



또 주먹만 쥐었다. 토모에 히요리는 여전히 웃고 있었으나, 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평소처럼 싫다고 떼를 쓰거나 징징대지도 않은 채, 그는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신발도 벗지 못하고 선 현관의 불이 나갔다. 어둠에 선 그를 바라보며 사자나미는 17살의 그 시절처럼 애꿎은 손바닥에 손톱만 박아 넣었다.



"여기가 제일 좋아."



한참의 침묵 끝에 토모에 히요리가 입을 열었다.



"여기가 제일 좋아. 쥰군. 내가 유일하게 선택한 건 너뿐이니까, 네가 좋아."
"나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요. 알잖아요?"
"왜? 왜 못 해주는데? 그냥 해주면 되잖아? 내가 시키는 건 다 하잖아! 짐도 들어주고 쇼핑도 해주고 요리도 해주고 디저트도 사 오고 다 해주면서 왜, 왜 날 도와주진 않는 거야?!"



마치 생명의 끈처럼 붙들고 있던 외투를 그가 신경질적으로 집어 던졌다. 덕분에 그의 머리 위로 빛이 다시 들었다. 답지 않게 감정적으로 소리 지르고 우는 토모에 히요리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너는 내가 선택한 유일한 것이야."



그가 울먹이며 말했다.



"그런데 왜, 너는 내가 아니라 토모에 히요리를 선택하는 거야?"



나는 그냥 히요리인데. 그가 아이처럼 울며 외쳤다. 엉망인 손바닥 아래 얼굴을 감추는 그를 보며 사자나미는 손을 뻗었다. 들썩이는 등을 안아주고 싶었다. 울어도 아름다운 얼굴에 입을 맞추고 싶었다. 그의 망가진 손을 잡고 멀리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끝끝내 사자나미는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현관으로 어둠이 찼다. 아이가 시위하듯 우는 그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아가씨의 손을 잡아야 하는 것은 언제나 왕자, 동화는 그래야 해피엔딩이었다. 노예는 언제나 아가씨의 행복을 바랐다. 그래서 이번에도 자신의 손만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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쥰이 생각하는 히요리를 위한 해피엔딩과 히요리가 생각하는 해피엔딩은 언제나 다를 거 같다는

그런 생각을 하고 산다...... ㅎㅎㅎ

행복해라 얘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