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카나] 레시피
2017. 10. 15. 00:00




세상에 쉬운 레시피라는 것은 없다. 보통 일반적으로 '레시피'의 기준에 넣을 수 있는 범위의 요리 방법들을 찾는 사람들은 요리를 못하는 사람, 요리에 관심이 없는 사람, 요리에 흥미가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들에게 빵에 딸기 잼을 바릅니다, 완성! 정도가 아니라면 쉽다는 말은 통하지 않았다. 그러니 <간단! 간편! 모두에게 쉬운 레시피>라는 이 책의 이름도 순 거짓이라고 신카이 카나타는 생각했다.



"큰 t스푼은 뭔가요? 티스푼? t는 계량인가요?"



이것저것 잘한다고 할 수 없었지만, 요리는 더더욱 그랬다. 그나마 할 줄 아는 거라곤 생선 요리뿐. 하지만 그것도 어린 시절에 낚시하던 아저씨들 틈에서 슬쩍 보고 배운 거라 완벽하다고 표현하기엔 부족했다. 거기다 신카이는 무언가 먹고 싶다는 욕구는 생선을 제외하곤 지금까지 크게 없었다. 간단한 인스턴트나 마트에서 파는 완제품 정도로도 먹고 사는 데는 충분했다. 그렇다 보니 살면서 요리에 대한 필요성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랬는데



"이상형이요? 음, 글쎄요. 그냥 함께 밥을 먹을 때 즐거운 사람? 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사람?"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음악 방송에서 스쳐 가듯 떠든 인터뷰, 모두가 "그게 뭐야?"하고 웃었지만 하카제 카오루의 이상형 이야기에 신카이는 웃을 수가 없었다.
스케줄이 많이 들쑥날쑥한 귀가 시간을 가진 하카제와 제대로 된 식사는 보통 주에 2번 정도. 나름대로 함께 하는 식사라고 평소에 먹던 인스턴트 대신 요리를 하긴 하지만, 대부분 주메뉴는 생선이었다. 생선찜 생선구이 생선국 생선탕 생선회 생선조림, 모두 생선. 배우고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건 그뿐이라 나름대로 신경 써서 만드는 식사였지만, 역시나 물리는지 하카제는 가끔 다른 반찬만 쏙쏙 골라 먹을 때가 있었다. 그래도 늘 싹싹 그릇을 비우니 크게 문제나 불만이 없다 생각해 신카이는 신경 쓴 적이 없었다. 하지만 불만을 표현하지 않는다고 해서 정말로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닐 터. 그가 먹다 남기는 생선들을 떠올리니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자신의 요리는, 자신과의 식사는 하카제 카오루의 '이상형' 범주에 절대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걸 이제야 알아차리다니, 신카이는 이미 라이브 화면으로 바뀐 TV를 멍하니 바라보며 꾹 머리를 쥐었다.



"너무 어리광을 부렸네요, 저."



함께 식사하는 이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자신에게만 맞추다니. 사람의 삶에서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식사인데, 그게 즐겁지 않으면 다른 게 즐거워도 의미가 없었다. 함께 마주하며 식사하는 시간이 즐겁지 않으면 함께 산책하는 것도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도 함께 잠자리에 드는 것도 모두 즐겁지 않아질 게 뻔했다. 신카이 카나타는 여러 가지를 몰랐지만, 그 정도는 알았다. 굳이 하카제 카오루가 방송에서 떠든 '이상형'이라는 범주에 자신이 들어갈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계속 그가 좋아하는 신카이 카나타가 되고 싶었다. 그가 계속 계속 자신의 곁에 있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한 첫 단계, 요리. 결심은 빠르게 행동도 빠르게. 신카이는 바로 옷을 챙겨입고 근처 서점으로 향했다. 의지 가득해 온 것은 좋았으나 늘어진 레시피 책 중에 자신이 도전할만한 요리는 보이지 않았다. 근사한 저녁 식사로 연어를 구워내면 완벽할 거 같았지만, 다시 생선으로 돌아가서야 이 도전에 의미가 없었다.



"여보세요?"



도움이 필요할 때는 반드시 도움을 요청할 것. 하카제 카오루와 함께 살면서 약속한 것 중 하나. 요리도 제대로 못 하는 저가 창피해 썩 내키지 않았지만 신카이는 몇 없는 휴대폰 연락처에서 익숙한 이름을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몇 없는 친구 중에서 그나마 이번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무슨 일이야? 카나타형?"
"낫짱~ 오랜만에요! 잘 지냈나요?"
-"나는 잘 지냈지. 카나타형은? 형은 방송국이나 TV에서 볼 수 없어서 늘 걱정이야."
"하하, 동생을 걱정시키다니 형 실격이네요! 저는."
-"목소리 들으니까 잘 지내는 거 같아서 다행이네. 그래서? 무슨 일이야?"
"으음, 큰 문제는 아니고요 조그만 문제가 생겼는데요."



유메노사키에 다닐 시절, 한 학년 후배였던 사카사키 나츠메는 언제나 고민을 들어주고 좋은 해결책을 내어주는 고맙고 소중한 동생이었다. 신카이는 한가득 뽑아놓은 요리책을 내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요리를 하려고 해요. 생선 요리가 아닌 다르고 새로운 것이요. 그런데 책은 너무 어려워요. 뭘 해야 할 지 잘 모르겠어요."
-"요리? 간단한 거라면 스크램블 에그 같은 건 어때? 달걀을 섞어서 풀어준 후 휘휘 저어 요리하면 금방인데. 함께 베이컨이나 감자, 양파를 구워 먹으면 맛있거든."
"으음. 그것도 좋은 생각이지만, 근사한 걸 해주고 싶어요."
-"아아, 카나타형의 소중한 사람에게 해줄 생각이구나?"



역시나 언제나처럼 정확하게 정답을 맞힌 사카사키의 말에 신카이는 휴대폰을 꼭 쥔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뭐가 좋을까. 아! 파스타는 어때? 소스는 시중에 잘 나와 있고 거기에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 볶고 면은 삶기만 하면 되잖아? 보통 간단한 레시피는 소스 패키지에 적혀져 있으니까."
"에에.. 파스타라."

-"간단하고 어렵지 않고. 플레이트를 멋지게 하면 꽤 레스토랑의 것과 차이도 없고. 괜찮을 거 같은데?"



사카사키의 제안에 신카이는 서둘러 파스타 레시피 책들을 살폈다. 여러 가지 종류가 있었지만, 사카사키가 알려준 대로 소스만 해결하면 나머지는 자신의 선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법한 종류들이었다. 거기다 필요한 기본 재료들도 모두 집에 있었다.



"고마워요, 낫짱!"



감사 인사까지 한 후 전화를 끊었다. 뽑아둔 책들은 다시 자리를 찾아 넣고 대신 파스타 레시피 책을 한 권 샀다.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려 파스타 면과 크림소스를 신중하게 고민하고 또 고민한 후 샀다. 아직 요리는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누군가를 위해 특별한 요리한다는 것은 마법처럼 기분을 들뜨게 했다. 벌써 머릿속에는 근사한 디너 테이블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럼 면부터 삶을까요?"



생방송 라이브가 끝나면 하카제에겐 저녁 라디오 녹음이 남아 있었다. 약 한 시간 정도 진행되는 그 녹음이 끝나면 꼬박 12시가 다 되어야 귀가하곤 했는데, 늘 늦어서 불만이었던 귀가가 오늘만큼은 조금 반가웠다. 집으로 돌아오기 무섭게 신카이는 시계를 확인한 후, 서둘러 사 온 것들을 늘어놨다. 냉장고에서 야채도 꺼냈다. 비장의 무기로 안초비 통조림까지 오픈했다. 마지막으로 처음 사 본 레시피 책까지 쫘악 눌러 펼쳤다.



"냄비에 200cc의 물과 소금을 넣고 끓입니다."



책에는 친절하게도 면을 삼는 순서부터 적혀져 있었다. 200cc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대충 냄비에 손목이 잠길 정도로 물을 넣었다. 밥을 할 때 항상 이렇게 계산하니 면 역시도 괜찮을 거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으음, 다음은 소금!"



불을 켠 후 써진 대로 소금을 넣었다. 짜지 않게 조금만.



"다음은 소스를 만들어 봅시다? 팬에 올리브 오일과 마늘을 넣고 볶아 주세요? 마늘... 마늘이 어딨죠?"



얼마 전에 생선을 조린다고 다진 마늘을 사놨던 거 같은데. 레시피에는 커다란 마늘을 얇게 썰라고 써 있었지만, 어차피 다 같은 마늘이니 별 상관이 없을 거 같았다. 신카이는 냉장고를 뒤져 구석에 박혀 있던 다진 마늘 병을 찾아내 꺼냈다. 그리고 팬에 크게 두 스푼을 넣었다. 큰 마늘이 아니라 다진 마늘이니 이 정도는 넣어야 할 거 같았다.



"올리브 오일이 없으니 카놀라유도 괜찮겠죠?"



어차피 같은 기름이니까! 신카이는 사진에 실린 대로 약간의 오일을 팬에 둘렀다. 그리고 불을 켰다. 동시에 냄비의 물이 팔팔 끓기 시작했다.



"물이 끓으면 면을 넣으라고 했으니까... 으음."



1인분의 양은 어느 정도일까. 80g이라 적혀져 있었지만 그게 어느 정도 양인지 신카이는 알 수 없었다. 힌트를 얻기 위해 봉투를 살폈다. 다행히 봉투에는 4인분이라 적혀 있었다.



"그럼 절반!"



4인분의 반은 2인분. 호기롭게 면을 반 정도 잡아 들었다. 하지만 다시 문제에 봉착했다. 사진처럼 면을 촤르륵 펼쳐 넣은 것은 좋았으나 냄비가 작은 탓인지 면이 잘 잠기지 않았다. 냄비의 끝에 붙은 면이 휘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서둘러 젓가락을 들어 꾹꾹 눌렀다. 힘을 준 탓인지 면이 뚝뚝 부러졌다. 하지만 그 덕에 다행히도 면이 모두 물로 잠수했다.



"마늘이 익으면 손질한 다른 재료들을 넣고 볶아줍니다."



다른 재료라. 신카이는 서둘러 냉장고에서 꺼내놓은 재료들을 살폈다. 버섯과 양파였다. 칼로 써는 것은 자신 있었기에 문제 없이 착착 도마에 올려 조각냈다. 벌써 다 익었는지 갈색으로 변한 다진 마늘 위로 재료를 탈탈 털어 부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재료들이 섞였다.



"소스는 생크림... 이건 소스를 사 왔으니까 괜찮아요!"



마트에서 가장 비싼 것을 골라온 참이었다. 분명 비싼 것이니 맛도 좋겠지. 하지만 여기서 다시 문제 발생. 비싸서 그런가? 뚜껑이 너무도 완벽하게 잠겨있었다.



"므므..."



아무리 힘을 주어도 뚜껑이 열리지 않았다. 쾅쾅 싱크에 두드려 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이로도 물어보았지만 아프기만 할 뿐 뚜껑은 열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걸 깰 수도 없고 어쩐담. 이를 악물고 몇 번을 더 시도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더 안간힘을 썼을까. 뽁 소리와 절대로 열리지 않을 거 같았던 뚜껑이 드디어 돌아갔다.



"아..."



뚜껑이 열리니 이번엔 다른 문제 발생. 버섯과 마늘이 진한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양파 역시 카라멜색에 가까워 흐물흐물해 보였다. 척 보아도 레시피 책의 사진과는 달랐다.



"...소스를 넣으면 하얗게 되겠죠?"



크림소스니까, 소스를 넣으면 같아지겠지. 그런 마음으로 서둘러 소스를 탈탈 털어 넣었다. 팬 가득 하얀 소스가 들어차자 다행히 사진과 비슷해 보였다.



"다음 레시피는... 면을 넣읍시다!"



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 냄비를 확인하니 벌써 다 익었는지 물을 싹 흡수한 면이 기다리고 있었다. 신카이는 커다란 주걱을 들었다. 그리고 호기롭게 통통해 보이는 면을 냄비에 붙은 것까지 싹싹 긁어 팬에 부었다. 덕분에 살짝 소스가 넘치긴 했지만, 그래도 그럴듯해 보였다.



"소스가 끓으면 보기 좋게 접시에 담습니다."



접시는 이미 진즉에 마음으로 정해둔 게 있었다. 발끝을 세워 신카이는 아끼고 또 아꼈던 접시를 찬장에서 꺼냈다. 하카제가 화보 촬영으로 하와이에 다녀왔을 때 사다 준 귀여운 조개 모양의 그릇이었다. 특별한 날에 쓰려고 꼭꼭 숨겨둔 것인데 오늘에서야 빛을 볼 수 있을 거 같았다.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는 소스를 확인한 후, 불을 껐다. 그리고 휘휘 저어 조심스럽게 그릇에 담았다. 조심스럽게 담는다고 담았는데 양이 많았는지 또 여기저기 튀고 넘쳤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플레이팅. 신카이는 까놓은 안초비를 가득 퍼 파스타 위에 올렸다. 맛있는 안초비는 카오루에게 더 많이.



"완성!"



확실히 사카사키의 말대로였다. 간단하고 어렵지 않고. 플레이트를 멋지게 하면 레스토랑의 것과..



"다른데요? 낫짱?"



달라도 너무 달랐다. 소스의 색도 이상했고 면도 이상했다. 올려둔 맛있는 안초비가 칙칙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니야, 모양은 중요하지 않지. 중요한 것은 맛! 카나타는 슬쩍 팬에 남은 것을 입에 넣어 보았다. 하지만 얼마 씹지도 못하고 퉤, 싱크에 뱉어내고 말았다. 크림 파스타를 먹어본 적은 없었으나 이런 맛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탄 맛."



역시 마늘이랑 버섯이 탄 거였을까? 아니면 면? 소스? 도대체 뭐가 문제였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짜고 이상한 맛이 났다. 면도 너무 물컹했다. 어쩌지? 지금 몇 시지? 다시 만들 시간이 있을까? 신카이는 당황스러웠다. 우선 벽에 걸린 시간부터 확인했다. 12시 5분, 곧 하카제가 올 시간이었다. 다시 만들고 정리할 시간이 모자랐다. 그럼, 버릴까? 그래 그게 낫겠다. 빨리 버리고 처리하고 씻고 정리하면-



"카나타군? 안 잤어?"



될 줄 알았는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모든 게 끝나고 말았다. 신카이는 주방으로 들어서는 하카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게 다 뭐야?"



외투를 벗으며 다가온 그가 당황한 얼굴로 주방을 돌아보았다. 엉망이 된 현장 검거에 신카이는 입을 열었지만, 무어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 꼴로 "카오루를 위해 만들었어요!"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요리하고 있었어?"
"...아..."
"오, 뭐야? 파스타?"



무슨 일이야? 카나타군이 파스타라니. 그가 웃으며 포크를 들었다. 그저 포크를 들었을 뿐인데, 마치 사형 선고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안돼요!"



하카제 카오루의 이상형은 그냥 함께 밥을 먹을 때 즐거운 사람. 그리고 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 주고 싶었지만, 무리였다. 신카이는 빠르게 하카제를 밀어냈다. 이걸 먹고 나면 생선만 먹었을 때보다 더 자신을 싫어하게 될 게 분명했다.



"...이건... 이건... 안돼요. 카오루."
"나 먹으라고 만든 거 아니야?"
"아..아닌데요? 이건... 이건... 그냥..."



무어라 핑계를 대고 싶었으나 떠오르는 게 없었다. 입술만 물고기처럼 뻐끔댔다.



"나 먹으라고 한 거 맞잖아. 아니라고 하면 서운할 거 같은데."
"아니라니까요? 카오루~"



말릴 틈도 없이 쑥 하카제의 팔이 뻗어졌다. 으아아, 저도 모르게 멍청한 비명이 입을 타고 흘렀다. 입으로 들어가는 파스타의 꼴을 볼 수가 없어 눈을 감았다.



"맛있네."
"....그렇죠? 역시 그러니까 빨리 뱉... 네?"
"맛있네. 안초비도 잔뜩 들어가고."



그럴 리가 없었다. 분명 엄청 맛이 없었는데? 놀라 눈을 뜨자 하카제가 덥석 그릇까지 들고 둘둘 말아 파스타를 먹고 있었다. 자신이 먹은 것과 다른 걸까? 아니면 안초비의 힘? 신카이는 서둘러 남은 그릇을 집었다.



"아, 잠깐. 카나타군. 안돼. 그것도 내 거니까."
"네?"
"카나타군이 해준 파스타니까 내가 다 먹을-"



거긴 무슨. 신카이는 서둘러 들고 있던 젓가락으로 파스타를 집었다. 잘라 넣은 탓인지 면은 뚝뚝 끊어졌다. 겨우 입에 넣자 아까 먹은 것과 별다르지 않았다. 아니, 더했다. 왕창 넣은 안초비 탓인지 더 짜고 비렸다. 속에서 올라올 것 같은 맛에 신카이는 참지 않고 서둘러 다시 싱크에 씹은 것을 뱉어냈다.



"카오루도 빨리 줘요."
"왜? 난 괜찮은데."
"빨리. 거짓말쟁이는 싫어요."



서로에게 거짓말하지 않기로 약속했잖아요. 역시 하카제 카오루와 함께하면서 정했던 약속을 들먹였다. 그래도 그는 포크를 내려놓지 않고 꾸역꾸역 서서 파스타를 입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나 화나요! 카오루!"



억지로 그릇을 뺏으려 했지만, 훅 손을 뻗으면 그가 훅 뒤로 빠졌다. 놀리는 것도 아니면서 싱글싱글 웃으며 그가 포크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 잠깐의 술래잡기 끝에 꾸역꾸역 그가 그릇을 싹 비웠다. 텅 빈 접시를 보니 속상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어라? 카나타군 울어?"
"안 울어요!"
"우는데? 뭐야? 왜? 뭐가 문젠데?"
"...카오루가 맛없는 걸 먹은 게 문제에요."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맛있다니까?"



거짓말쟁이. 끝까지 뻔뻔하게 우겼다. 아니 배려했다. 그래서 더 아팠다. 하카제 카오루는 항상 이렇게 챙겨주고 생각해주는데 자신은 고작 파스타 하나도 제대로 만들어줄 수 없다는 게 너무 속상하고 아팠다. 울기 싫은데 자꾸 시야가 물들었다. 뿌옜다.



"...요리 해주고 싶었는데..."



맛있는 요리, 함께 먹으면 행복한 요리, 그가 남기지 않을 정도로 맛있는 요리를 해주고 싶었다. 자신만 좋아하는 게 아닌 함께 좋아할 수 있는 그런 요리를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게 뭐람. 짜고 타고 불고 끊어지고. 세상에 이런 파스타는 없었다. 그냥 연어구이를 했으면, 달라지는 건 없어도 이것보단 나았을 텐데. 너무너무 속이 상했다.



"카나타군."
"..."
"나 카나타군이 해주는 건 다 맛있어."
"거짓말."
"진짜야. 생선구이도 찜도 국도 탕도 조림도 다 맛있어. 파스타도 맛있고 다 맛있어."
"...거짓말!"



남겼으면서. 다른 반찬만 쏙쏙 골라 먹었으면서.
방법이 달라진다고 해도 생선만 먹으면 맛이 있을 리가 없었다. 자신이야 좋아하는 거라 상관없지만, 하카제는 딱히 생선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나 처음 요리할 땐, 냄비도 다 태워 먹어서 엄청 혼났어. 계란 후라이도 하나 못하고 라면도 하나 못 끓였어."



자신을 달래주려는지 하카제가 슬쩍 다가와 입을 열었다. 아직 찬 밤공기를 머금은 손이 가볍게 눈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런데 카나타군은 생선 요리는 다 잘하잖아? 가끔.. 그래 솔직히 가끔은 너무 먹어서 내가 생선인지 사람인지 모를 거 같은 날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생선 요리는 카나타군 따라올 사람이 없다고? 얼마 전에 PD님이 스시집 데려가 주셨는데 거기보다 카나타군이 만들어준 스시가 더 맛있을 정도라고?"
"...."
"그래! 솔직히! 파스타는 좀 아니었다. 아닌데, 그래도 카나타군이 이 시간에 날 위해서 해준 거잖아? 잠도 안 자고. 그거로도 나는 맛있고 다 좋아. 진짜 진짜."
"카오루..."
"고마워. 날 위해 노력해줘서."



겨우 견뎠는데 또 왈칵 눈물이 나왔다. 그와 함께 지내면서 어쩐지 눈물이 많아진 거 같았다. 자신은 울보가 아닌데도 그랬다. 매번 그가 이렇게 안아주니까, 받아주니까 어린아이처럼 늘 엉엉 울게 되어버렸다.



"함께... 함께 먹으면, 맛있는 거... 맛있는 요리.. 하고 싶었는데-"
"그랬어?"
"카오루의.. 카오루의 이상형 되고 싶은데...!"
"어? 무슨 소린데? 그건 또?"
"오늘 생방소-옹!"



아이처럼 징징대자 그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기억났는지 "아!"하고 작게 소릴 질렀다. 그리곤 이내 웃었다.



"뭐야? 그거 신경 써서 그랬어?"
"네에."
"그냥 함께 밥을 먹을 때 즐거운 사람, 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사람이면 카나타군 밖에 없잖아. 설마, 카나타군은 나 말고 다른 사람 있는 건 아니지?!"



능청스러운 그의 말에 신카이는 결국 크게 입을 열었다. 입에서 마구 엉망인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예전엔 내가 아이지 않았어? 하카제가 저를 안아 토닥이며 물었다. 나름 어른스럽게 대처한다고 생각했는데, 하카제의 이상형 발언이 적지 않게 제 안에서 큰 충격이었던 모양이었다. 무서웠던 모양이었다.



"나는... 카오루밖에 없어요."



신카이 카나타에겐 이상형이라는 게 없었다. 그도 그럴게 좋아했던 사람은 하카제 카오루밖에 없으니까. 하카제 카오루가 아니면 싫었으니까. 그런 저를 두고 하카제가 이상형을 찾아 훌쩍 떠난다고 생각하면 너무 무섭고 슬펐다. 그럴까 웃기지도 않은 심야의 요리쇼까지 열었다. 외면하고 무시하고 있던 불안감이 툭 사라지자 그 안을 눈물이 가득 채웠다. 콧물이며 눈물이며 엉망이라 못났을 제 얼굴을 아무렇지 않게 손바닥을 닦아주며 하카제가 웃었다.



"다음번에는 같이 만들자, 파스타."



그리고 다음을 입에 담아주었다. 일그러진 얼굴로 신카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맛은 엉망이었으나 결과적으론 성공적인 레시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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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는 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