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카나] 일시적 현상
2017. 10. 5. 21:47






"사가미 선생님?"



왜 양호실 문을 두드리는 일은 항상 긴장되는 걸까, 하카제는 똑똑 주먹의 뼈를 세워 문을 두드리며 생각했다. 이상하게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나쁜 짓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수업을 빠지려 딴 맘을 먹은 것도 아닌데 늘 그랬다. 교과 선생이나 담임과 달리 자주 보는 얼굴이 아니라 낯을 가린 걸까? 하지만 그렇게 치면 사가미 진은 질리도록 본 얼굴인데도 그랬다. 아, 혹시 너무 유명인이어서 그런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대답 없는 양호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비어 있을 줄 알았던 공간에 뻔뻔하게도 사가미가 진이 의자에 늘어져 있었다.



"반창고 빌리러 왔는데."
"아, 하카제 카오루군. 반창고? 왜? 뭐 다쳤어?"
"저 말고 카나타군이 좀."
"카나타군? 무슨 일 있었어?"



그의 질문에 하카제는 어디까지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할지를 고민했다. 나쁜 짓을 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바다에 가서 조개를 주워왔다가 그 조개에 손가락이 베었는데요~ 라 털어놓기엔 아직 학교의 시간은 끝나지 않은 채였으니까. 음 어쩐다. 적당하게 둘러댈까 아니면 솔직하게 말할까. 짧은 시간 머릿속을 마구 굴리다 결국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마음을 먹었다.



"카나타군이 바다에서 희귀한 조개를 발견했다고 해서요, 그걸 부실로 옮기다가 껍질이 날카로웠는지 손을 베었거든요."
"희귀한 조개?"
"네, 뭐라더라. 어린 조개? 아이 조개?"



뭐, 그런 이름이었는데. 오묘한 푸른색을 띠고 있는 아주 작은 조개를 보며 신카이는 그렇게 말했다. 그와 절친한 후배 사카사키 나츠메가 가지고 있는 해양 생물 도감에서 본 조개라며 눈을 반짝였다. 조개에 닿는 물고기들을 일시적으로 작게 만드는 조개라고 설명했는데, 사실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라 하카제는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버린 참이었다. 저처럼 사가미 역시 크게 신경 쓰지 않는지 "그거 이상한 이름이네."라는 감상을 뱉었다. 그리곤 대충 약 선반을 뒤적여 상처 연고와 함께 반창고 몇 개를 챙겨주었다.



"깊게 다친 상처면 데리고 와. 수업은 빼먹지 말고 들어가고."
"넵!"



씩씩하게 외치고 양호실을 나섰다. 가볍게 손에서 구르는 연고와 반창고를 주머니에 넣어 단단히 챙긴 후, 걸음을 바삐 했다. 눈썹을 찌푸리고 "아파요."라 칭얼대던 신카이를 혼자 두고 온 게 슬쩍 마음에 걸렸다. 그 손으로 괜히 또 조개를 건드리거나 이것저것 만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하지만 신카이 카나타는 제 마음대로 흐르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 서퍼 보드 아래 깔리는 파도처럼 늘 제멋대로, 예측불허.



"설마 물고기 수조는 건드리지 않겠지?"



자신보다야 그가 더 물고기나 수조에 대해 박식했지만, 그래도 모르는 일. 같은 부 후배인 칸자키라도 불러 곁에 둘 것을 후회하며 하카제는 빠르게 걷던 걸음을 이내 달리기로 바꿨다. 수업이 진행되는 중이라 다행히 복도는 텅텅 비어 길을 막는 방해물은 없었다. 육상부도 아니면서 마치 그런 기분을 내며 시원히 달려 도착한 해양생물부의 부실, 제집만큼이나 익숙한 공간이기에 하카제는 가볍게 문을 열었다.



"카오루!"



가볍게 문을 연다는 것, 어떠한 의심도 없이 연다는 뜻. 어떠한 의심도 없이라는 것, 자신에게 무언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과 믿음이라는 뜻. 그런데 이건 뭘까. 하카제는 갑자기 자신의 눈앞에 들이닥친 무언가에 눈만 깜빡였다.



"카오루! 카오루! 「큰일」 났어요!"



신카이가 호들갑을 떨었다. 언제나 그와 이야기를 주고받던 높이에서 조금 아니, 조금 더 낮은 위치에서. 거기다 카오루라기 보다 방금 까오루에 더 가깝지 않았어? 발음이? 하카제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자신의 교복 셔츠를 꾹꾹 당기는 무언가를 내려보았다. 익숙한 푸른 머리, 말간 피부, 동그란 눈, 분명 신카이 카나타였다. 신카이 카나타였는데



"....카나타군?"



뭔가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카오루! 저 작아졌어요!"



그래, 그건 보면 알 거 같아. 카오루는 신카이의 발 등을 아슬아슬하게 가리는 셔츠 끝을 바라보며 서둘러 손으로 눈을 덮었다. 오랜만에 몸을 써서 그런가? 복도를 달리는 거로 정신이 나갈 만큼 체력이 떨어졌었나? 아니 이유가 뭐든 좋아, 다시 이렇게 눈을 뜨면-



"카오루?"



다시 신카이 카나타가 돌아와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여전히 자신의 눈앞에는 자신이 모르는 신카이 카나타가 있을 뿐이었다.



"카나타군, 충분해. 많이 놀랐어. 하하, 장난이라면 이제 그만둬줄래...?"
"장난이 아닌데요.. 정말 작아졌어요."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런 만화 같은 일이 일어날 리가 없잖아? 일어날 거라면 좀 더, 뭐랄까 좀 더 좋은 게 많을 텐데, 왜 이거야? 하카제는 천천히 눈을 내렸다. 장난이라 떠든 제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신카이의 눈썹이 찌푸려져 있었다.



"아이 조개 때문인가 봐요."



그래, 원인을 따지자면 그거밖에 없겠지만, 말이 되지 않았다. 분명 신카이 말로는 해양 생물을 일시적으로 작게 만든다고 했던 거 같은데, 신카이 카나타는 인간이었다. 뭐, 따져보면 인간보다야 해양 생물에 가깝긴 했지만 그래도 일단은 인간이었다.



"낫짱의 책에선 「일시적 현상」이라고 했으니까 금방 돌아오지 않을까요?"
"그래. 그러면 다행이지만.."



아아, 항상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 같다 생각은 했지만 진짜로 아이가 되어버릴 줄이야. 안 돌아오면 어쩌지. 하카제는 가만히 작아진 손을 들여보는 신카이의 머리통을 내려보았다. 이런 일은 좀처럼 현실에 없겠지. 알려지면 여기저기 난리가 날 게 뻔했다. 방송국에서 찾아올지도 몰랐다. 의학계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신카이를 조사하고 살피고 끝끝내 해부하려 들지도 몰랐다. 본인은 「일시적 현상」이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하카제는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만 자꾸 피어올랐다.



"수업은 못 듣겠네?"
"으음.. 와타루라면 어떻게 해주지 않을까요?"
"아니, 안될 거 같은데."



와타루는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자신의 친구를 내려본 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신카이가 슬쩍 볼을 부풀리며 말했다. 그 얼굴이 조금 귀여워서 하카제는 불안감을 애써 밀어 두고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일단 같이 있자. 누군가에게 들키면 큰일이 될 거 같고."
"카오루가 「지켜주는」 건가요?"
"뭐, 그런 거창한 건 아니지만."



무릎을 굽혀 팔을 뻗었다. 신카이 카나타를 안아보는 건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렇게 작은 신카이 카나타는 처음이었다. 그가 유리구슬도 아니고 비눗방울도 아닌데 잘못 건드리면 꼭 펑 터질 것만 같아 최대한 힘을 빼고 조심스럽게 안아 올렸다. 아이는 어떻게 안아주더라, 머릿속에서 대충 그림을 상상하며 엉거주춤하게 품으로 품었다. 다행히 불편하지 않은지 작은 팔이 쏙 목을 감아왔다. 언제나 나던 바다 냄새보다 살 냄새가 짙었다.



"카오루군, 거기 세우지 마세요."



살짝 코를 세워 묻은 게 좀 그랬는지 신카이가 경고했다.



"나를 뭐로 보는 거야?"



지금 상황에서 이상한 생각할 정도로 쓰레기는 아니거든, 그런 불만을 담아 툴툴거리자 귓가에서 아이의 목소리로 신카이 카나타가 키득댔다. 어쩐지 작은 악마를 안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나저나 이제 어쩐담. 계속 이 상태로 부실에 둘 수도 없고. 일시적인 게 어느 정도인지도 알 수가 없으니 가만히 돌아오는 걸 기다리는 것도 막연했다.



"우선 옷부터 정리하자."



이 상태로 감기라도 들면 큰일이었다. 병원에 데려갈 수도 없었다. 안 그래도 이 상황이 고민인데 더 고민거리를 늘릴 필요는 없었다. 하카제는 조심스럽게 신카이를 바닥에 내려놓은 후, 그가 입고 있던 셔츠 밑단을 잡아 둘둘 말아 꼭 허리춤에 묶어주었다. 소매도 둘둘 접어 주었다. 제대로 된 옷으로 보기엔 역부족이었지만, 어쨌거나 질질 끌고 다니는 것보다야 괜찮은 꼴이었다.



"비치 패션."



어때? 분위기를 녹일 겸 장난스레 이름을 붙이자 신카이가 아이처럼 웃었다. 신카이 카나타는 늘 언제나 아이처럼 곧잘 웃었지만, 정말 아이가 되어 웃는 얼굴은 뭐랄까. 충격적이었다. 요즘 자주 쓰는 충격적인 귀여움이라는 표현을 어딘가 붙여야 한다면 방금 그의 미소에 붙이고 싶었다. 하카제는 쿵쿵 뛰는 제 심장을 애써 침 넘기듯 삼키며 헛기침을 했다.



"그나저나 보통 그 「일시적 현상」은 어느 정도래?"



붉어진 얼굴에 집중하면 그가 눈을 흘길 것 같아 하카제는 화제를 돌렸다. 사카사키 나츠메가 가진 도감에서 읽었다고 했으니, 거기에 약간의 팁이 있을 게 분명했다.



"으음,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기억이 난다고 해도 물고기와 저는 다르니까."
"계속 이 상태면 어쩌지?"



바닥에 털썩 앉아 무릎을 툭툭 두드리며 물었다. 자신을 따라 신카이가 무릎을 굽혀 쪼그려 앉았다. 불안한 건 저뿐인지 신카이의 표정은 평온했다.



"글쎄요."
"뭐, 오늘 방과 후까지 보고 돌아오지 않으면 일단 우리 집으로 가자. 그 상태로 집에 돌아갈 수도 없잖아. 그러다 내일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감기라고 대충 거짓말하지 뭐. 아 둘 다 감기라고 하면 속아 주려나? 혹시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이왕 아이가 되었으니까 기회 삼아서."



나름대로 긍정적으로 굴기 위해 되는대로 떠들었다. 그런 제 꼴이 웃겼는지 신카이가 작게 웃었다. 그리곤 말했다.



"카오루군, 필사적이네요."



라고.
그거야 그렇지, 당연하지. 아이보다 조금 어른인 자신마저 불안해하면 안 될 거 같았다. 머릿속에선 그가 우주선 같은 곳에 납치되어 어마어마한 스케일 조사를 받는 데까지 뻗어 나갔지만, 그 공포를 굳이 신카이에게 전염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자신과 달리 정작 아이가 되어버린 당사자는 별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동그랗게 눈을 뜬 그의 머리를 넘겨주며 하카제는 물었다.



"카나타군은 별로 불안해 보이지 않네?"
"으음. 그러게요? 이상하네요. 카오루가 오기 전까지는 엄청 무서웠는데..."



수조가 이렇게 커지고, 물고기도 이렇게 다 커지고. 나만 작아져서 무서웠어요. 신카이가 조용히 말했다.



"그런데 카오루가 와줘서 지금은 괜찮아요."



지켜준다고 했잖아요?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 꼭 그렇게 이야기하진 않았던 거 같지만, 정확한 대답은 딱히 자신과 신카이 사이에 중요한 건 아니었다. 항상 대화는 물 흐르듯이, 그 부족함을 채우는 건 감정들이었다. 언제나 자신이 굳이 입으로 내뱉지 않아도 신카이는 기분을 읽었고 마음을 알아주었다. 그러니 지그 그를 걱정하는 이 마음도 그를 지키겠다는 결심도 아마 신카이 카나타에게는 모두 잘 도착했을 것이었다. 말이 필요 없는 사이라니, 어쩐지 낯간지럽네. 약간은 부끄러운 생각을 하며 하카제는 생각에서 도피하듯 신카이를 끌어안았다.



"카오루군, 「심장 소리」가 엄청나요."



거부감 없이 답싹 안겨 온 아이의 뺨이 그리고 귀가 가슴에 닿았다. 그거, 널 생각해서 그래. 그런 소릴 하려다 아이인 그를 상대로 분위기를 잡아 보았자 괴로운 건 저만일 거 같아 하카제는 꾹 참았다.



"아이일 때, 별로 이렇게 누군가의 심장 소리를 들어볼 일이 없어서 그런가 신기해요. 아이가 사랑받는 기분은 이런 거였을까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네."



하카제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어린 시절이 어땠는지는 잘 기억도 나지 않았다. 기억하고 있는 게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구별이 안 될 정도였다. 그때 받았던 감정들이 어땠는지도 물론 떠오르지 않았다. 어째서 이야기가 이리로 흘렀을까. 하카제는 슬쩍 입술을 물었다 놓으며 잊고 있던 반창고와 연고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읏차, 가볍게 신카이를 허벅지에 앉힌 후 손을 살폈다. 몸이 변해도 상처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나중에 카오루가 「아이」가 되면, 그땐 제가 사랑해줄게요."



둘둘 밴드를 감는 손을 함께 바라보며 신카이가 말했다. 말뿐이라도 꽤 위로되어 하카제는 조용히 웃었다. 지금도 그에겐 충분히 사랑받는 아이로 지내고 있는 거 같은데, 이 이상 더 뭘 해주겠다는 거지. 신카이 카나타는 항상 하카제에게 넘치는 사람이었다. 수조 가득 채워진 물처럼 넘실넘실.



"고마워. 그럼 나도 아이가 된 카나타군을 사랑해줘야겠네."
"왜 카오루가 그런 소릴 하면 이상하게 느껴지는 걸까요?"



솔직하게도 뱉은 그의 말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평소라면 이런 분위기에 분명 입을 맞췄겠지만, 이번엔 꾹 참고 이마를 맞췄다.



"그래서, 돌아오지 않으면 뭘 할까?"



아무거나는 싫어. 나에게도 아이가 된 신카이 카나타를 사랑할 기회를 줘.



"그럼 내일도 이 상태면 같이 소풍을 갈까요? 바다로!"
"지금이나 아이일 때나 카나타군은 변하는 게 없네."



좋아하는 것도, 취향도, 날들도 그리고 다정하고 사랑스럽고 따뜻한 것도.



"좋아, 그럼 내일도 카나타군이 돌아오지 않으면 바다에 가자. 물론 카나타군이 돌아와도 바다에 가자!"



결정! 떨어지지 않게 그의 상처 위에 밴드를 야무지게 마무리하며 밝게 외쳤다. 어느새 신카이 카나타의 평온함이 저에게도 넘어왔는지, 머릿속의 불안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차분해졌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영영 돌아오지 않으면 큰일이지만, 일시적 현상이라면 조금은 즐겨도 되겠지 싶었다. 도시락은 꽁치구이가 좋아요, 아이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메뉴를 뱉는 신카이의 머리를 넘겨주며 하카제는 웃었다. 그렇게 서로가 보살펴주지 못했던 시간이 찾아왔다. 그 모든걸 품을 수 있는 일시적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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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서로가 닿지못하는 과거를 보듬어 주는 그런.... 걸 ...보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넘나...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리고 30분 뒤, 신카이 카나타는 무사히 돌아온거스로... 센치해졌던 분위기 훌훌 털고 마주 보고 웃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