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카제 카오루에게선 언제나 좋은 냄새가 났다. 굳이 꼭 코를 세워 킁킁거리지 않아도 그의 곁에 둘린 냄새들은 언제나 짙어서 간단히 신카이의 코를 파고들었다. 가장 보통의 냄새는 바다, 모래, 파도의 조각. 그건 신카이가 가장 좋아하는 냄새였다. 그가 자연에서 묻혀온 그 냄새들은 따뜻하고 보드랍고 반짝였지만, 약한 탓에 금세 다른 것들에 뒤덮이기 일수였다. 예를 들면 그가 아침에 바른 로션향, 머리카락에서 뚝뚝 떨어지는 샴푸향, 교복 셔츠에 뿌린 탈취제, 손목에 은은하게 맴도는 시원한 무언가. 바다나 모래나 파도와 비교하면 별로였지만, 신카이는 그 냄새들도 좋아했다. 딱 그 정도였다면 좋았을 텐데.
"낫짱, 그거 아나요? 물고기는 인간보다 100배나 후각이 좋다고 해요."
"헤에, 처음 듣는 이야기네."
사카사키가 조용히 책을 넘기며 대꾸했다. 무언가 재밌는 이야기라도 잔뜩 실려있는지 아이의 눈은 종이에서 떨어질 줄 모르고 소리 없이 움직였다. 외부의 소음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비밀의 방이라 그런가, 신카이는 유일한 소음인 사카사키의 손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는 물고기인지도 몰라요."
뜬금없는 자신의 커밍아웃에 드디어 사카사키의 손이 멈췄다. 그리고 눈이 종이에서 떨어졌다.
"방에서 냄새나? 역시 사람들이 드나들게 하지 않는 편이 좋았을까? 환기라도 시키는 편이-"
"괜찮아요. 여기선 포근한 냄새만 나는 걸요. 낫짱의 방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랍니다~"
서둘러 방문을 열려는 저지하기 위해 고개를 저었다. 비밀의 방이라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이제 이 방을 드나드는 사람이 늘어난 건 사실이지만, 냄새가 나는 건 아니었다. 굳이 찾는다고 하면 활기차고 따뜻한 냄새랄까. 솔직하게 이야기해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사카사키가 짜증을 낼 거 같았기에 신카이는 웃으며 입을 다물었다.
"그럼 무슨 이야기?"
"좋아하는 냄새가 있는데요, 많이."
"응."
"그 안에서 미세하게 「싫은」 게 자꾸 코끝에 걸려요."
하카제 카오루에게서 나는 바다, 모래, 파도, 로션, 샴푸, 향수 냄새를 좋아하는데 그 가득한 냄새들 속에서 꼭 무언가가 코에 걸렸다. 그건 언제나 다른 향이었다. 꽃에 가까울 때도 있었고 과일에 가까울 때도 있었다. 누군가가 만들어낸 가짜 향들도 섞이곤 했다.
"아주 아주 작은데도 코에 걸려요."
바람을 타고 흔들리는 풍성한 머리카락 끝, 무릎 위에서 흔들리는 스커트 자락, 색색으로 물든 손톱, 셔츠 안에 감춰진 목걸이의 펜던트. 하카제 카오루를 둘러싼 많은 것들.
"알고도 「좋아해」라고 말했는데, 역시 싫네요."
"아, 그 선배에 관한 이야기구나."
그를 둘러싼 여자들에 대해서는 이미 진즉 알고 있었다. 각오도 하고 있었다. 백합, 데이지, 장미, 민들레, 라벤더 등등. 꽃 같은 그녀들에 비하면 자신은 바닷속에 감춰진 풀이었다. 끈적끈적하고 이상한 냄새가 나는 그런 물풀. 그래도 사람의 마음은 엎질러진 물이라고 파도에 오르는 그의 모습을 보고 아름답다 여긴 순간부터 멈출 수 없었다. 황급히 물을 닦아보아도 마음은 젖어버린 수건처럼 축축했다. 그걸 어디다 치우지도 버리지도 못하고 끙끙 앓다가 고백한 것이 바로 저번 달.
"고백해서 사귀기로 했다고 하지 않았어? 레이형에게 그렇게 들었는데."
사카사키의 말대로 좋아한다 말하고 좋아한다 듣고 사귀게 되었다. 사귄다는 게 정확하게 어떤 건지 알 수 없었지만, 함께 부실에 누워 천장을 오랫동안 바라보기도 하고 함께 하교를 하고 함께 맛있는 걸 먹으러 가기도 했다. 사실 이렇게만 보면 딱히 전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중간중간 겹쳐오는 손이 달랐고 "아, 미안. 오늘은 카나타군이랑 둘이서만 어딜 가기로 해서."라며 잘라내는 게 달랐다. 그래서 꽃이 아니더라도 괜찮다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머리와 마음은 한 사람 몸에 들어있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따로 행동했다.
"카오루에게서 바다 냄새만 난다면 좋을 텐데."
"지금까지 카오루가 살아온 방식이 있는데, 타인인 제가 그런 소리를 한다는 건 이기적인 거겠죠?"
"구체적으로 「이렇다」한 변화는 없어도, 확실히 관계가 변했으니까 불안해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또 끊임없이 불안해요."
"「욕심쟁이」"
마치 수도꼭지를 돌려 튼 것처럼 말이 술술 쏟아져 나왔다. 연하인 사카사키에게 연애 문제에 대해 떠들어도 크게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딘가에 털어놓지 않으면 답답해 죽을 거 같았다. 깊은 바다에 잠긴 것 같은 이 기분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으음, 그 이야기 그 사람에게는 해봤어? 카나타형이 그렇게 생각하는 걸 털어놓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
"솔직하게는 어려워요. 카오루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으니까."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카나타형. 내 생각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아."
"그럴까요? 낫짱?"
"그럼, 마법사의 말을 믿어봐."
나는 형들에게 거짓말은 하지 않아. 사카사키가 믿음직스럽게도 덧붙였다. 위로의 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위로는 되었다. 하지만 위로는 되었어도 마음이 풀린 건 아니었다. 사카사키의 충고대로 카오루에게 솔직히 이 감정을 이야기하고 표현하면 편할 거 같았지만, 그랬다가 질린다거나 싫다는 소리를 들을까 무서웠다. 질척거리는 남자는 매력이 없다고~라고 말하면 창피하게 엉엉 울지도 몰랐다.
"「연애」는 어렵네요."
비밀의 방을 나와 돌아가는 길, 신카이는 솔직한 감상을 입에 올려보았다. 처음 해보는 연애,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너무 어려웠다. 하카제는 좀 다르려나. 그는 주변에 언제나 사람도 많고 자주 데이트도 하니까 익숙할지도 몰랐다. 아니, 애초에 다르고 말고 할 게 없었다. 그는 이런 고민 따위 하지 않을 테니까.
"어쩐지 서럽네요."
방과 후, 텅 빈 복도를 걸으며 신카이는 입술을 삐죽댔다. 처음엔 고백만으로도 좋았고, 고백 후에는 받아주는 것으로도 좋았는데 이제는 그의 애정을 갈구한다. 사카사키에게 말한 대로 자신은 정말 욕심쟁이였다. 습기를 먹은 듯이 처지는 기분을 애써 끌어 올리기 위해 코로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그마저도 하교를 서두르는 누군가의 발소리에 파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결국 노래도 그만두었다.
그렇게 질질 실내화를 끌며 향한 곳은 자신의 교실도 분수대도 그리고 부실도 아닌 A반 교실, 하카제 카오루의 교실이었다. 언제나 그가 앉는 창가의 자리에는 덜렁 가방과 교복 자켓만 남겨져 있었다. 습관처럼 그의 모습을 찾아 움직이는 자신의 발걸음이 가여웠다. 어디로 간 걸까요. 보고 싶었는데. 신카이는 남의 교실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멋대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곤 그가 두고 떠난 자켓에 얼굴을 묻었다. 익숙한 냄새에 역시나 미미하게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당장이라도 떼어내고 싶었으나 오기가 생겨 꾹 버텼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지잉지잉 진동음이 울렸다. 자켓 주머니에 있던 카오루의 휴대폰이었다.
[카오루군, 지금 어디야? 오늘 만나자고 한 거 잊지 않았지?]
화면에 떠 있는 건 모르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여자 이름이라는 건 알았다. 귀여운 이모티콘에 온갖 모양 문자가 들어가 보기 어려웠지만, 해석까지 어렵진 않았다. 카나타는 볼에 힘을 주며 손가락으로 메시지를 눌렀다. 그리고 조금의 고민도 없이 삭제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메시지함에는 신카이가 모르는 이름들이 가득했다. 백합, 데이지, 장미, 민들레, 라벤더, 프라지아, 코스모스, 개나리, 진달래. 신카이는 온갖 꽃을 머릿속에 그리며 버튼을 눌렀다. 삭제하시겠습니까? 네. 삭제하시겠습니까? 네. 삭제하시겠습니까? 네. 삭제하시겠습니까? 네. 네. 네. 지워도 지워도 끝이 없고 사라지지 않았다. 신카이는 입술을 물었다. 그리고 쥔 휴대폰을 높게 들었다.
"잠깐, 잠깐! 카나타군!!"
그리고 그걸 내려치기 직전, 다급하게 누군가가 손목을 붙잡았다. 돌아보자 놀란 얼굴의 하카제 카오루가 저를 내려보고 있었다.
"뭐 하고 있었어? 내 휴대폰은 왜?"
"...."
"얼굴은 왜 그렇고. 무슨 일 있었어?"
바다는 깊다. 하늘은 파랗다. 여름은 푸르다. 그렇게 정의 내린 사람은 누구일까. 누구인지 알 수 있다면 찾아가서 하카제 카오루도 정의해 달라 하고 싶었다. 그에 대한 답을 알면 이렇게 끙끙 앓지 않아도 될 테니까.
"사오리가 누군가요?"
신카이는 마구 흐트러지는 목소리를 꾹꾹 눌러 담으며 침착하게 물었다. 하지만 잘못을 걸린 어린아이처럼 변한 하카제의 얼굴에 그마저도 소용이 없었다.
"에미는요? 나츠키는요? 사라는요? 아리스는요? 나오미는? 미유는? 리카는?!"
"워워, 잠깐만! 카나타군 진정-"
"「동정」인가요?"
하카제와 사귀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오늘까지 항상 했던 생각이었다. 비참해지기 싫어서 애써 잊어버리려 사카사키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말이었다. 그런데 결국 하카제가 끄집어냈다. 그가 너무 미웠다. 자신을 받아준 그의 다정함이 미웠다.
"아아, 카나타군. 무슨 오해를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카나타군이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거든?"
"..."
"진짜 아니야."
"..."
"동정으로 남자랑 사귈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것도 내가."
믿어줘, 응? 그가 옆자리 의자를 끌어 앉으며 부탁했다. 분명 거짓말인 거 같은데 저 말을 믿고 싶은 자신의 모습에 신카이는 꾹 입술을 물었다.
"과거에 대해선 변명할 게 없습니다. 네, 카나타군이 보시는 대로 연락처에 여자 이름 가득하고요. 하지만 카나타군이랑 사귀기로 한 후로 정리했어. 보면 날짜 찍혀 있잖아, 다 싹 끊었다니까?"
"..."
"진짜, 진짜! 메시지함 따로 확인 안 하니까, 지우고 말고 할 것도 없어서 그 상태였던 거야."
"방금 사오리에게 메시지 왔는데요?"
"사오리..? 아, 사오리에겐 내가 부탁한 게 있어서 그래."
"부탁..."
부탁이라니, 무슨 부탁? 신카이는 쥔 휴대폰을 더 꾹 쥐었다. 제 기분을 읽었는지 하카제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왜 카나타군 심야 수족관 보고 싶다고 했잖아. 그래서 내가 그... 티켓팅을 했는데... 성공을 못 해서."
심야 수족관, 확실히 얼마 전에 그런 이야기를 하기는 했었다. 방학 때 가고 싶은 곳 있냐는 하카제의 질문에 TV에서 보았던 심야 수족관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가고 싶다기보다 기회가 되면 가보고 싶다, 정도로. 슬쩍 지나가며 던진 이야기였는데 그걸 신경 쓰고 있던 모양이었다.
"사오리는 그래, 내가 전에 잠깐 만난 애이긴 한데! 지금은 결코 그런 사이가 아니고! 그 수족관에서 일하거든. 그래서 티켓을 부탁했어."
정확하게 말하면 카나타군을 위해서. 자신의 화를 풀려는 모양인지 그가 슬쩍 붉어진 얼굴로 덧붙였다.
"그래도 못믿겠으면... 좋아, 카나타군 마음대로 해. 휴대폰 부숴도 좋고 그거로도 안 풀리면 날 때려도 좋고."
"..."
"이참에 레이상처럼 실 전화기라도 사용해볼까? 한쪽은 카나타군이 받아주는 거지?"
"카오루군은 「여유」 있어서 좋겠어요."
어물쩍 넘기려는 그의 농담에 서러워서 결국 울음 섞인 말이 튀어 나갔다. 아이처럼 징징거리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제 목소리이면서도 컨트롤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아, 그가 소리 내어 한숨을 쉬었다. 봐, 질렸잖아. 고작 숨 한 번 깊게 내쉬었을 뿐인데 신카이는 자신이 발판이 우르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갈래요. 더 있다가는 추태를 부릴 거 같아 일어섰다. 쥐고 있던 휴대폰도 다시 내려놨다. 하지만 돌아서지는 못했다.
"왜 이렇게 급하지, 카나타군은?"
미련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붙잡은 하카제의 팔 때문에. 빈 책상에 뺨을 묻은 그가 눈만 굴려 저를 올려보았다.
"뭐랄까 카나타군, 카나타군이 날 너무 좋아해서 대단히 높게 평가해주는 거 같은데.. 나 그다지 여유있는 편 아니야."
"..."
"나도 질투해. 따지자면 나도 끝이 없어."
그가 목소리를 높이며 슬쩍 장난스레 눈썹을 찌푸렸다. 그리곤 스리슬쩍 붙잡고 있던 팔에서 손을 내려 비어있던 손에 깍지를 껴왔다.
"모리사와 치아키, 사쿠마 레이. 완전 적이지. 유성대 1학년? 카나타군이 낳은 자식도 아닌데 그렇게 챙길 필요는 없지 않나 싶어. 소마군, 세상에서 제일 강력한 라이벌. 그뿐만이게? 난 심지어 물고기에게도 질투한다고."
"거짓말."
"진짜 진짜."
붙잡힌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마주 닿은 손바닥에 열기가 가득했다. 하카제 카오루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카나타군 속박하는 거 별로 안좋아하잖아? 그래서 그런 티 내면 「카오루군, 귀찮아요」라고 매정하게 밀어낼 것만 같고."
"안 그래요..."
"좋아하는 건 카나타군뿐만이 아니야. 조심스럽고 두려운 것도 카나타군 뿐만이 아니야. 나도 그래."
"..."
"하지만 그런 티 다 내면 너무 연애 초보 같고 창피하잖아! 멋진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데!"
툴툴 약간은 신경질적으로 뱉은 하카제의 말에 신카이는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붉어진 그의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방금까지 자신이 했던 행동 그리고 생각들이 모두 바보 같이 느껴졌다. 낫짱의 충고를 듣길 잘 했어. 그리 생각하며 슬쩍 몸을 기울였다. 금세 자신의 이마가 하카제의 어깨에 닿았다.
"우리 똑같네요."
좋아하니까 겁이 나고 좋아하니까 조바심이 나고 좋아하니까 질투가 나고.
좋아하니까 멋져 보이고 싶고 좋아하니까 쿨해 보이고 싶고 좋아하니까 여유 있어 보이고 싶고.
좋아하니까 말하지 못하고 좋아하니까 털어놓지 못하고 좋아하니까 솔직하지 못하고.
좋아하니까 비로소 가질 수 있는 수많은 감정들, 그건 괴로운 게 아니구나. 신카이는 웃으며 생각했다. 코끝을 타고 가장 좋아하는 바다 냄새가 흘렀다. 얕게 모래도 섞여 있었다. 파도의 부스러짐도 있었다. 그 안에서 살아 버티는 것은 아름다운 꽃이 아니라 물풀이었다. "참고로 카나타군, 나는 속박해주는 거 완전 좋아해."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그의 말을 들으며 신카이는 웃었다. 거대한 파도가 몸을 감싸 안았다. 불안이 순식간에 씻겨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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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네데이 너무 시르다 엉엉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