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장난
모리사와 치아키 x 신카이 카타나
(과거 날조 주의)
며칠째, 기분 나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요근래부터 비 오는 날을 좋아하긴 했지만, 끊임없이 내리는 비는 신카이 카나타 역시도 지치게 만들었다. 만약을 대비한다고 분수대의 물은 잠겼고, 공기는 꿉꿉했다. 점심 방송에서는 "오늘 오후부터 태풍 소식이 있다고 해! 방과 후 레슨은 오늘 하루 금지이니 모두들 집으로 가는 거야?"라 방송부장인 니토가 이야기했다. 그래서 그런가, 대부분 수업이 끝나도 여기저기 놓여있던 가방들이 오늘은 각자 주인의 손에 들려 하교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들 틈에 섞여 신카이 역시 집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오늘 같은 날은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평소에도 그랬지만, 태풍이 몰려오는 이런 날에는 더더욱.
"오야오야, 카나타군! 기운이 없네요?"
부모님 그리고 집안사람들을 떠올리려는 순간, 불쑥 익숙한 얼굴이 시야를 가렸다. 끈적한 책상 위에 뺨을 대고 있던 신카이는 눈만 도르륵 굴려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히비키 와타루였다. 언제나 깜짝 상자처럼 등장하는 그의 행동엔 익숙했기에 어수룩하게 놀라진 않았다.
"태풍이 온다는 이야기 들었나요~? 커다란 게 오는 모양이라고요~ 카나타!"
"들었어요."
"덮쳐지기 전에 먼저 가자고요! 비바람이 몰아치는 학교는 으스스하지 않나요? 밤이 되면 더 무서울 거랍니다!"
어메이징하게요! 그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유령이니 악령이니 어느 학교에나 꼭 있는 괴담이 이 학교에도 존재했지만, 신카이는 그런 모호한 것을 믿는 편이 아니었다. 세상엔 정말 많은 존재들이 살고 있지만, 저 자신의 존재만으로도 벅차서 다른 무언가를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끝나고 갈 곳이 없으면 저! 히비키 와타루의! 러브러브 하우스에 와도 된다고요? 카나타~"
"괜찮아요. 저 「밤의 학교」도 익숙하고 「비」도 익숙한걸요."
"익숙한 건 익숙한 거!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거! 싫어하는 건 싫어하는 거!"
그런 거랍니다. 쓰지도 않는 안경을 고쳐 쓰는 흉내를 내며 히비키가 외쳤다. 그의 말이 맞았다. 익숙한 건 익숙한 것, 하지만 밤의 학교를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비를 좋아했지만 태풍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어쩔 수 없네요, 신카이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책상에 걸려있던 가방을 챙겨 들었다.
가방은 가벼웠다. 교과서는 대부분 책상 서랍에 있었다. 중학교 때는 낙서 되는 게 싫어 꼬박꼬박 챙겨 들었지만, 이제는 누구도 자신의 책에 낙서하지 않았다. 손가락 사이로 들썩이는 가방끈을 꾹 쥐며 신카이는 히비카와 함께 복도를 걸었다. 대부분 학생이 빠져나간 복도엔 빗소리만 가득 찼다. 운치있네요~ 히비키가 큰 소리로 외쳤다. 분위기는 훅 깨졌지만, 기운찬 그의 목소리에 신카이는 작게 웃었다.
"돌아가는 길에 상점가에서 맛있는걸 사죠. 오랜 친우를 위해 저, 히비키 와타루! 오늘 하루 요리사가 되어-"
보이겠습니다, 이려나. 히비키가 맺지 못한 문장의 끝은. 신카이는 뚝 끊어져버린 히비키의 말을 상상하며 가만히 자신의 신발장을 바라보았다. 실내화를 갈아 신기 위해 연 작은 상자에서 후두둑 하얀 꽃들이 쏟아져 내렸다. 나풀나풀, 늘 히비키 와타루가 뿌려대는 장미꽃 잎들처럼 하얀 국화들이.
"신은 언제라도 인간을 위해 희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어렸을 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소리. 어느 날은 너무 억울해서 그리고 궁금해서 물었다. 그건 누가 정하는 건가요? 라고. 고운 얼굴을 한 어머니는 웃지도 그렇다고 울지도 않으며 말했다. "신이 정한답니다."라고. 참 이상한 이야기였다. 신카이가의 모든 사람은 자신을 「신」이라 불렀는데 그런 자신의 운명을 신이 정했다니. 신카이는 단 한 번도 자신에게 이런 벌을, 그리고 운명을 주거나 정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누가 정한 걸까. 세상의 다른 신이? 아니면 자신보다 높은 신이? 그런 존재가 있다면 신카이는 빌고 싶었다. 신님. 부디 절 자유롭게 해주세요, 라고.
신카이 가문에 태어나는 아이들은 말을 배우고 걸음을 배우며 동시에 헤엄을 배웠다. 둥둥 물에 뜨는 아이들의 부모는 안도의 숨과 함께 누군가에게 뺏길세라 자신의 아이를 끌어안았다. 자신은 경우는 기억나지 않지만, 뻔했다. 지금 꼴을 보면 보지 않아도 뻔했다. 물에 조금도 뜨지 못했을 게 뻔했다.
물에 뜨지 못하는 아이들은 「신」이라 불렸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모두 열 아홉 살이 되는 해에 바다로 사라졌다. 말리는 이도 부정하는 이도 없었다. 「신」은 인간을 위해 희생해야 하고, 인간의 터전과 평화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아야 했으니까.
신카이는 어릴 적 몇 번이나 바다로 던져지는 소년을 보았다. 그들은 모두 자신처럼 「신」이라 불렸다. 그들은 많은 사람 앞에서 살아갈 이의, 그리고 날의 축복을 빌었다. 울거나 웃지도 않았다. 언젠가 자신도 저렇게 되는 걸까? 저렇게 태연하게 몸을 바다에 던질 수 있을까? 죽음을 앞에 두고 다른 이들의 행복을 빌 수 있을까? 공포와 불안감을 나눌 사람도 없이 몇 번이고 스스로 물었다. 그리고 모든 대답은 아니오, 였다.
그래도 운명은 변하지 않았다. 자신이 어떤 답을 내린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아무리 헤엄을 치려 해도 물에만 들어가면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파도가 없는 잔잔한 물속에서야 움직이지 않아도 몇 분 정도 버티는 건 가능했지만, 바다는 사정이 달랐다. 깊고 어둡고 짜고 거센 곳. 그 안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기분 나쁜 장난이네요."
멍하니 옛 생각에 잠겨든 자신을 빼낸 것은 히비키 와타루였다. 그는 친히 무릎을 굽혀 바닥에 떨어진 꽃들을 주웠다. 그리곤 웃으며 마법의 주문을 걸었다. 국화는 금세 붉은 장미로 변했다.
중학교 때까지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는 없었다. 곧 죽을 사람과 친해지고 싶은 아이들은 그다지 없으니까. 그들을 신카이는 이해했다. 누구라도 자신 같은 「신」과 어울리고 싶지 않을 테니까. 아침마다 책상 위에는 꽃이 가득했다. 교과서에는 마구잡이로 아이들의 소원이 적혀졌다. "신이니까 뭐든지 할 수 있는 거지?" 악의를 품은 기대감만 들러붙었다. 그 날들 속에서 신카이는 안도했다. 적어도 자신이 떠나는 날은 미련도 뭣도 없이 웃으면서 갈 수 있겠구나 싶어서.
"신은 원래 「장난」을 좋아한답니다."
그랬는데, 이게 뭐람. 신카이는 눈앞에서 흔들리는 장미를 보며 웃었다. 지금은 달랐다. 죽음을 지워내고 장미를 선물하는 친구가 있었다. 신도 악도 삼켜 먹겠다는 친구가 있었다. 스무 살이 되는 생일에 가장 멋진 옷을 지어주겠다는 친구가 있었다. 마법사에게 불가능은 없다고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리고 또, 또 있었다. 이보다 더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신카이 카나타는 이제 미련이 생겼다. 국화보다는 장미가 좋았다. 태양처럼 붉고 정의처럼 강한 장미가 좋았다. 이제 자신은 열아홉이었다. 정말로 신이 있다면 자신에게 이래서는 안 되는데.
"신카이공!!!!"
쏟아지는 빗방울을 뚫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운동장을 너머 뛰어오는 센고쿠 시노부가 눈에 들어왔다. 태풍이 다다랐는지 비는 더 거세져 있었다. 캄캄해진 하늘 아래로 작은 소년이 몇 번이고 넘어지며 달려오고 있었다.
"시노부?"
신카이는 갈아신으려던 구두를 밀어내고 서둘러 달려나갔다. 강해진 빗방울이 온몸을 두들겨댔다.
"무슨 일이죠? 시노부? 우산은 어디 있나요? 감기에 걸린다고요?"
"그...그게 문제가 아니오! help me라오!"
"울지 말고 천천히 말해줄래요?"
비와 눈물을 구별 못 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불안하게 뛰는 심장을 모르는 척하며 신카이는 침착하게 물었다.
"치우고 있었는데... 테토라공과 같이 대장공하고... 돌아와 보니 대장공이 없어져서!"
"시노부."
"신발이.. 대장공 신발이 거기 있었는데-"
"시노부!"
아이가 하는 소리의 무엇도 잘 와닿지 않았다. 신카이는 작은 어깨를 꽉 쥐며 다그치듯 이름을 불렀다.
"우리의 아지트 말이오! 아지트! 그걸 선생님에게 걸려서...!! 태풍이 오니까 위험하지 않게 치우라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미루고 미루다보니 벌써 태풍이 여기까지... 대장공이랑 같이 치우고 있었는데..!! 물건을 옮기는 사이 대장공이 사라졌소이다!! 물건도 몽땅 사라졌고 대장공 신발만...!!"
더듬더듬 겨우 뱉어낸 시노부의 말에 신카이는 고개를 들었다. 학교의 기다란 담 너머에는 언제나 푸른 바다가 있었다. 그 풍경이 좋아 이 학교를 골랐다. 언제나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 제가 신경 쓰였던 건지 얼마 전, 모리사와 치아키가 말했다. "아지트를 짓자!"라고. 텐트를 치고 그가 어디서 구해온 낡은 노트북을 가져다 놓았다. 그의 히어로 컬렉션을 밤늦게까지 모여 보다 모래 위에서 연습을 했다. 덥고 끈적하고 땀으로 엉망이었지만, 즐거운 여름날들. 신카이 카나타의 새로운 소중한 장소.
"와타루, 시노부를 부탁할게요."
"카나타, 잠깐. 레이에게 연락을, 아니 교사를!"
"늦어요."
몇 번이고 바다가 입을 벌리는 것을 보았다. 바다에 삼켜진 이가 돌아온 적은 없었다.
신카이는 달렸다. 태어나서 이렇게 빠르게 달려본 적은 처음인 거 같았다. 지각해도 넘어본 적 없는 담을 넘었다. 며칠 가득 내린 비로 그리고 몰려오는 바람과 태풍으로 바다는 넘실넘실 넘쳐 도로까지 침범해 있었다. 그 근처에서 나구모 테토라와 타카미네 미도리를 발견했다.
"신카이 선배!!"
동시에 자신을 발견한 두 사람이 달려왔다. 신카이는 타카미네 손에 들린 익숙한 신발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시노부가 울고 있어요. 곧 치아키를 보내줄 테니, 시노부를 부탁해도 될까요?"
"우선 경찰이나 구급차에 연락하는 게 먼저 아닐까여? 미리미리 했었어야 했는데 다 제가 늦장을 부린 탓임다!!"
"테토라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어요."
이건 다 신이 장난을 좋아하는 탓이거든요. 그리 덧붙이며 신카이는 웃었다. 딱, 자신의 열 아홉 번째 생일이 지난 참이었다. 정말로 자신이 신이라면, 제물이 아니라 정말 신이라면 하나 정도는 선택하고 싶었다.
자신이 떠나는 순간 정도는. 태어나는 것도 살아야 하는 것도 그리고 운명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면, 적어도 자신이 떠나는 그 순간 정도는 선택하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이 그 순간이었다.
"잠깐, 잠깐!!! 신카이 선배. 뭐하시려는 거에요?"
넘어오는 바닷물을 피해 돌아서던 타카미네가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바다에 드리는 기도는 이미 달달 외웠다. 어렵지도 그리고 무섭지도 않았다. 항상 아니오라 대답을 해왔던 만큼 미련이 생겨 울거나 절규하거나 슬플 줄 알았는데 별로 그렇지도 않았다.
"유성대에 들어오지 않을래?"
모리사와 치아키는 인간이었다. 신카이 카나타가 인간으로 이 지상에서 숨 쉴 수 있도록 장소를 주고 방법을 알려준 인간이었다. 그를 위해서 희생하고 싶었다. 언젠가 죽는다면 이 사람을 위해서, 이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이 사람의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고 싶었다.
"그러니 그 사람을 돌려주세요."
신카이 카나타가 죽는 건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모시라와 치아키가 사라지는 건 두려웠다.
신카이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두 손을 모았다. 과거에 떠난 「신」들이 그랬듯 작게 기도를 올렸다. 발을 떼는 건 헤엄치기보다 쉬웠다. 쏟아지는 비는 사람들의 시선보다 따뜻했다. 그러니 분명 저 캄캄한 바다 속은 지상보다 편안하겠지.
"잠까아아안!!!"
그런 생각으로 몸에서 힘을 푸는 순간, 훅 팔이 당겨졌다. 마주 닿아있던 손이 떨어져 나갔다. 놀라 눈을 뜨자 커다란 파도가 산처럼 튀어 올라있었다. 뭉쳐진 수십만 개의 물방울들이 커다란 그림자가 되어 떨어지지는 것을 확인하며 신카이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잡아준 이를 확인했다. 모리사와 치아키, 치아키였다. 왜 여기 있느냐 물을 시간은 저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신카이는 꾹 눈을 감았다. 쏟아지는 비를 머금은 파도가 몸 위로 가득 쏟아졌다. 서 있기도 힘들었다. 버틸 수 있었던 건 제 팔을 그리고 몸을 온 힘으로 붙잡고 있는 모리사와 덕분이었다.
"모리사와 선배!!"
"대장!!"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물 틈에서 힘이 빠졌는지 몸이 고꾸라졌다. 쿵, 무릎을 박았지만 너무 놀라 아프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언제나의 자신처럼 쫄딱 젖은 모리사와 치아키가 웃으며 달려오는 후배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치아키... 「바다」에 삼켜진 게..."
"응? 바다? 아니아니! 자잘한 물건들뿐이라 잽싸게 처리하고 돌아오는 길인데? 그보다 놀랐다고! 뭐 하는 거야? 카나타! 진짜 놀랐다고!"
봤어? 파도가 이만했다고? 모리사와가 호들갑을 떨며 팔을 위로 뻗으며 외쳤다. 아니, 그것보다 컸슴다. 많이 놀랐는지 나구모가 넋이 나간 얼굴로 다가와 정정했다.
"...다행이다."
이런 말을 뱉어본 게 얼마 만일까. 지금까진 모든 게 자신의 운명이라 생각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순응했다. 다행이라던지 잘되었다는 소리를 뱉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정말 다행이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온몸이 떨렸다. 시야도 마구 번졌다. 우는 제 얼굴이 엉망인지 모리사와가 놀란 얼굴로 서둘러 눈물을 닦아주었다. 이미 젖어버린 옷으론 무엇도 닦이지 않는데.
"무모한 짓은 그만둬요, 치아키."
"엑? 그건 이쪽의 대사이다만? 갑자기 바다로 뛰어들지 말라고? 아무리 바다가 좋아도 오늘 같은 날씨에 물놀이는 금지란 말이다! 간 떨어지는 줄 알았어!"
"전 언젠가 치아키 때문에 죽을지도 몰라요."
약간의 농담을 섞어 진심을 투정했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비에 섞여 녹아 사라졌다.
"그럼 내가 몇 번이고 구하러 갈게."
저도 구하러 가겠슴다! 나구모가 덧붙였다. 모리사와 선배 때문에 죽는 건 낭비라고요. 타카미네가 핀잔했다. 저 멀리 자신을 부르며 달려오는 센고쿠와 히비키의 목소리가 들렸다. 비가 오면 바다는 술렁거린다. 언제나 자신을 부르는 듯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술렁거림을 무시해도 된다 말해주는 이들이 곁에 있었다. 제대로 숨 쉬고 살아도 된다고 이야기해주는 이들이 곁에 있었다. 신카이 카나타는 더이상 「신」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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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의 마이붐이어떤 신카이 카나타 바다 제물.....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