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카나] 심해의 저편
2017. 9. 9. 23:31




"학교 근처에 할아버지가 지내던 집 있잖아? 거긴 어때? 빈 지 좀 오래되긴 했지만."



20살, 대학교 새내기, 입학. 보기만 해도 두근거리는 단어들. 그리고 가장 두근거리게 하는 단어는 바로 독립. 노리거나 계획한 것은 아니었으나 이번에 합격한 대학은 집에서 꽤 거리가 있는 곳이었고, 기숙사가 없기 때문에 자취가 아니면 통학할 방법이 없었다. 본가에서 부모님과 지내는 데 큰 불편함은 없었으나 그래도 오롯한 자신만의 공간이 갖고 싶었기에 슬쩍 긴장하며 꺼낸 이야기, 하지만 돌아온 것은 뜻밖의 제안이었다.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처분 못 해서 계속 가지고 있었거든. 기억나지? 그 집."



뽀득뽀득 소리가 나도록 그릇의 물기를 닦아내며 어머니가 말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벌써 5년, 마지막으로 보았던 아담한 목조 건물을 떠올리며 모리사와는 인상을 찌푸렸다.



"거기 낡았잖아요."



어렸을 때, 방학마다 방문했던 할아버지의 집은 척 보아도 낡아 보였다. 아이의 걸음인데도 움직일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를 냈으며 비가 오는 날이면 습기 가득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뿐만 아니라 바람, 비, 눈 모든 자연의 소리가 천장과 창을 타고 고스란히 전해졌고 겨울이 되면 찬물도 나오지 않아 고생이었다. 거기다 말이 없는 할아버지까지. 고요하면서 동시에 온갖 소음으로 시끄러웠던 그 집이 모리사와에겐 그다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았다. 오히려 무척이나 싫었다. 방학 때마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의 부탁에 못 이겨 한두 달 지냈었지만, 나중에는 차라리 친구들을 따라 여름 캠프를 가거나 스키 캠프를 가는 쪽을 택했다. 그러다 5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다시 방문했던 곳. 제 기억보다 더 낡아 무너지기 직전처럼 보이기까지 했던 그 집. 그런 집에서 첫 독립을 맞이하라니, 모리사와는 죽어도 싫었다.

하지만 죽어도 싫은 것보다 문제가 있었으니



"너 돈 없잖아."



경제적인 문제.



"우리도 없어. 자취하는데 드는 돈이 한 두 푼이니? 네 등록금 내는 거로도 빠듯한데. 네 성격에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 또 저기 쌓여있는 로봇이며 피규어에 쓸 거잖아. 월세 한 번만요~가 곧 두 번이 될 거 이 엄마가 모를 거 같니? 거기서 지내면 공과금만 내면 되니까 그 정도는 엄마랑 아빠가 해줄 수 있어. 관리인 계속 안 들여도 되니까 그만큼 네 용돈으로 줄 수도 있고. 이층집에 햇볕도 잘 들고 아직 멀쩡해. 고즈넉하고 좋잖아?"



그릇에서 눈길 한 번 떼지 않고 말하는 어머니의 말은 훅훅 화살처럼 날아 자신의 붉은 심장에 콕콕 박혀왔다. 확실히 아르바이트해서 돈을 번다고 해도 집세에 공과금에 생활비까지 충당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고 플러스, 자신의 히어로 피규어들이 매달 시리즈로 나오는 판국이라 지갑은 언제나 사정이 좋지 않았다. 틀린 말도 아니고 나쁜 조건도 아닌데 집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아서일까. 쉬이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았다.



"그냥 처분하지..."



그렇게 낡은 집, 팔아버리던가 밀어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괜히 불만스러워 툭 뱉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날카로운 손이 짝 소리가 나도록 등을 때렸다.



"네 할아버지 유언이야! 죽어도 집만은 남겨놓고 싶으시다잖아. 딸로서 크게 효도는 못 했으니 그 정도는 해주고 싶어."
"아무도 안 사는 곳 남기는 게 의미가 있어요?"
"왜, 그 집에 연못 있잖아. 네 할아버지가 제일 아끼던 곳. 그게 사라지는 게 싫으시데."



연못이라. 그런 게 있었나. 살살 등을 문지르며 떠올려 봤지만,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없었던 거 같기도 하고.



"어쨌든, 따로 나가 살고 싶으면 선택지는 한 가지야. 치아키."



선택지가 한 가지라니. 없는 거겠지. 모리사와는 단호한 어머니의 말에 항복의 의미를 담아 웃었다.


그렇게 순순히 항복했으면 적어도 멀리 떠나는 아들을 위해 리모델링이라든지 혹은 새 가구라든지 준비해주시지 않을까 내심의 기대를 품었지만, 잔인하게도 출발 당일까지 "일 나가야 하니까."라는 말로 부모님 두 분은 현관에서 배웅했다. 짐은 나중에 택배로 보내줄게! 그리 말하며 환하게 웃는 두 분의 얼굴을 보니, 첫 독립 라이프를 즐기는 건 어쩐지 자신이 아니라 부모님 같은 기분이 들었다. 떠나는 게 아니라 쫓겨나는 기분을 만끽하며 모리사와는 털레털레 걸음을 옮겼다.
드륵드륵 소리를 내는 케리어에는 간단한 짐, 옷가지와 세면도구 그리고 약간의 인스턴트. 그래서 그런가 무겁지는 않았다. 이제 막 성인이 된 남성 혼자서 충분히 옮길 수 있는 무게의 짐이었다. 그런데도 20년을 꼬박 채워 지내던 동네에서 멀어져서인지 아니면 그 누구도 제 마중을 나와주지 않아서인지 점점 발걸음은 무거워졌고 짐의 무게도 느껴졌다. 생각해보니 혼자 자본 적이 없다는 것도 떠올랐다.



"아, 괜찮아. 모리사와 치아키."



혹시나 있을 좋지 않을 상황에 대비해 케리어에 가장 아끼는 히어로 피규어도 챙겨온 셈이었다. 예수나 성모 마리아상은 아니었으나 그 피규어가 모리사와에게 있어서 신과 같았다. 그러니 괜찮아, 그리 웃기지도 않은 합리화로 마음을 누그러트리는 동안 올라탄 버스는 빠르게 달리고 달려 이윽고 목적지에 가장 가까운 역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걸어서라..."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서 할아버지 댁 가는 길을 잃어버린지 오래, 어머니가 그려준 약도와 주소가 있었지만 이걸로 집을 찾기엔 역부족처럼 보였다. 하는 수 없지, 돈이 아깝긴 했으나 모리사와는 길게 손을 뻗었다. 역 근처라 그런지 택시를 잡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손님, 어디까지 가십니까?"
"아.. 히가시오카 4쵸메요."
"오, 히가시오카!"



인자해 보이는 기사님이 웃으며 반겼다. 그리곤 덧붙였다. "우리 동네네요, 손님." 하고.
그 덕분에 길을 찾아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자신의 동네라 소개한 기사님은 친절하게도 주변에 편의 시설부터 시작해 맛있는 라멘집 그리고 편의점 위치까지 알려주셨다. 친절한 동네 주민을 만난 덕분에 첫 독립, 멋진 스타트를 끊는다 했으나



"아, 그런데 별로인 곳도 있어요. 손님. 대학가 근처라 요즘 여기저기 리모델링하고 좋은 빌라나 맨션도 많이 들어와서 보기 좋아졌는데, 4쵸메에 유명한 목조 건물이 하나 있거든요. 2층짜리인데, 5년 전까지 할아버지 한 분이 혼자 사셨는데 지금은 아무도 안 살아서 정원 관리도 잘 안 되어있고 난리야. 그래서 그런가 겉에서 보면 좀 흉흉해 보이는데,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인가? 거기서 자꾸 소리가 난다는 거야. 우리 안사람도 들었고 이웃들도 인기척 느꼈다고 하고. 집주인에게 연락했더니 관리인이 있어서 달마다 한 번씩 정리한다는데, 새벽이나 이럴 때도 막 소리가 난다니까요? 그래서 거기 귀신 들렸다고 다들 멀리하니까 손님도 그 근처는 조심해요."



이건 또 뭐란 말인가. 술술 쏟아지는 기사님의 친절한 이야기가 너무도 익숙해서 모리사와는 어색하게 웃었다. 귀신이 들렸다는 이야기는 어머니에게 듣지 못했는데. 당장이라도 차를 돌리고 싶은 걸 꾹꾹 참으며 주소가 적힌 쪽지를 꾹 쥐였다.



"여기가 히가시오카 4쵸메인데 번지가 어떻게 되죠? 손님?"



짐도 있고 마음 같아서는 당연 주소를 불러 대문 앞에 내렸겠지만, 귀신 들린 집에 이사 온 이상한 청년으로 동네 주민에게 각인되고 싶진 않았기에 모리사와는 대충 길가에 있는 편의점 앞으로 부탁했다. 뭐 좀 사서 가려고요, 묻지도 않은 어색한 핑계를 덧붙이면서. "동네 주민이면 또 보겠죠."라 인사하는 기사님과 헤어진 뒤, 모리사와는 덜렁 남겨진 짐 앞에서 울고 싶은 기분을 꾹 참아냈다.



"괜찮아, 모리사와 치아키! 너에게는 행운의 메테오레인저 히어로가 있으니까."



케리어를 꾹 쥐고 작게 속삭여 보았지만, 의도대로 기운이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길거리에서 노숙할 수도 없었고 이제와 집으로 돌아가 "그 집에 귀신 나온다잖아! 무리!"라고 외칠 수도 없는 노릇, 일단은 해가 떠 있는 낮에 집을 살펴보는 게 제일 안전하다는 판단하에 걸음을 옮겼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중간한 위치에 하차했음에도 집을 찾는 데는 어렵지 않았다. 기사님의 말 그대로 신식 건물이 가득 찬 골목골목에 유일하게 낡아빠진 목조 건물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으니까. 분명 오기 전까지는 가물가물했던 집의 모습이 마주하고 나니 마치 어제처럼 선명하게 그려졌다. 고장 난 벨이 방치된 대문,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정리되지 않은 정원, 할아버지가 항상 조용히 앉아있던 툇마루, 그리고 그 앞의 연못. 아 그래 연못, 연못이 있었다. 그 안에 커다란 비단잉어 같은 게 살았던 거 같은데. 아니, 붕어였나? 어쨌든.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유일하게 할아버지가 입을 여는 게 그 연못 앞에서였다. 모리사와가 몇 안 되는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눈 것도 대부분 그 물고기에 관한 것뿐이었으니까.



"그 잉어 이름이 뭐더라. 뭔가..."



엄청 시적이고 그런 느낌이었는데. 치치나 토토나 그런 이름이 아닌 거창한 이름이라 꽤 신기했는데 역시 시간은 못 이기는지 아무리 머릴 굴려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의미도 없는 물고기 이름을 생각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문제의 할아버지 집이 눈앞에 펼쳐졌다.



"최악..."



5년 전에는 그래도 장례를 위해 정리를 했던 모습이었나, 어째 마지막 기억보다 상태가 더 심각해  보였다. 높게 쳐진 담을 넘어 자란 온갖 가지들과 풀은 마치 정글에 선 기분이 들 정도였고 관리를 못 한 대문 역시 툭, 누군가 발로 차도 곧 쓰러질 것 같은 꼴이었다.



"메테오 레인저, 온 힘을 다해.."



심호흡과 함께 모리사와는 어릴 적부터 자신이 가장 좋아하던 히어로 영화의 주제곡을 조용히 불렀다. 언제나 자신을 지켜주던 메테오레인저를 떠올리며 천천히 대문을 밀어 열었다. 잠금장치도 제대로 안 되어 있는 문을 열자, 마치 공포 영화에 튀어나올 거 같은 소음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끼익 끼익, 소름 끼치는 소리였다.



"메테오 레인저, 히어로 전대.... 어?"



두근두근 긴장으로 터져나갈 거 같은 심장 부근을 꾹 눌러 쥐고 들어선 집, 겉과 달리 속은 멀쩡했다. 관리인이 와서 돌본다는 게 사실인지 엉망인 겉모습과 다르게 정원은 5년 전 모습보다 훨씬 정리된 상태였다. 여기저기 꽃도 심겨 있었고, 관리인이 연못이라도 정리했는지 온갖 수조와 물청소 기구들까지 놓여있었다. 거기다 툇마루에 걸린 저 온갖 풍경 종들은 또 뭐란 말인가. 여러 개가 마구잡이로 달려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바람에 살살 흔들리는 소리가 묘하게 어울렸다. 가까이 다가가니 풍경에는 어린아이가 그려 놓기라도 했는지, 온갖 물고기 그림들이 하나하나 달려있었다.



"...뭐야, 이게 다."



낡은 집에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인테리어에 픽 웃으며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모리사와는 또 뜻밖의 풍경과 마주했다. 규칙 없이 심어진 꽃들이나, 마구잡이로 걸린 풍경 종보다도 더 뜻밖의 풍경. 모리사와는 자신이 헛것을 보는 건가 싶어 천천히 눈을 비볐다. 감았다 뜨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변하는 건 없었다.

남자, 남자가 있었다. 옷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의 남자는 언제나 할아버지가 장기를 두거나 신문을 읽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있는 그의 몸에 어떠한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아 모리사와는 손을 꾹 쥐였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거기다 온 바닥에 흩어진 사진들. 그 사진 속에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손주였던 모리사와가 모르는 할아버지의 사진들. 웃고 있고 또 웃고 있는 할아버지의 행복한 모습. 그 곁에는 눈앞의 푸른 머리의 사내가 함께하고 있었다. 한참을 사진을 뒤적거리던 모리사와는 조용하게 집을 울리는 숨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돌려 사내를 살폈다. 손가락 하나를 덜덜 떨며 사내의 코에 가져다 대자, 온전한 숨결이 규칙적으로 닿았다 떨어졌다.



".....관리인인가?"



하지만 관리인이 왜 여기에.. 왜 나체로.. 그보다 관리인은 알기로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부모님이 고용한 사람이었다. 생전의 할아버지와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럼 도대체 이 남자는 누굴까. 모리사와는 허옇게 질린 머리를 잔뜩 굴려보았지만 쉬이 답이 나오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지 아니면 어머니에게 연락을 해야 하는지 우선순위도 정할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멍하니 있었을까, 뒤척임이 느껴진다 싶더니 천천히 감겨있던 남자의 눈꺼풀이 파르르 움직였다. 도망칠 틈도 없이 그 사이로 말간 에메랄드빛 눈이 자신을 담았다.



"....안...녕..하세요?"
"...."
"저... 그... 저는 침입자가 아닙니다."
"..."
"전 여기 주인의 손주로... 그... 현재 집 주인? 의 아들인데요."
"아!"



역으로 자신이 신고당하지 않을까 싶어 차근차근 설명하려는 순간, 남자가 소리를 내며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갑자기



"치아키!"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아니 부르는 정도가 아니었다. 덥썩 자신을 끌어안는 남자의 행동에 모리사와는 서둘러 두 손을 들었다. 훅, 물비린내가 코를 습격해 숨을 참았다. 터져 나오려는 비명도 참았다. 속으로 메테오 레인저를 열창했다.



"치아키, 치아키!"
"그래요. 제가 그 모리사와 치아키. 하하하. 그쪽은 누구시죠..?"
"「기억」 안 나요?"
"전혀..."
"치아키가 요만할 때, 우리 자주 만났는데."



그가 눈썹을 내리며 서운한 듯 중얼댔다. 아니, 요만할 때라고 해도 너무 예전이었다. 그를 진짜 만났다고 하더라도 잊어버리고도 남을 시간을 모리사와는 살아온 참이었다. 잘 모르겠어요, 모리사와는 최대한 남자가 기분 나쁘지 않도록 말을 이어가며 천천히 조심스럽게 그에게서 떨어졌다. 바람을 타고 물비린내가 멀어졌다.



"나가레보시니, 네가이오 카케루 오모이오~"
".."
"마모리타이노사, 치카이타이노사~"



잔뜩 굳은 자신을 달랠 생각이었을까. 남자가 갑자기 노래를 시작했다. 방금까지 자신이 속으로 열창한 메테오레인저의 주제곡이었다.



"치아키, 이거 많이 불러줬는데. 「물속」에서 자주 들어서 저도 외웠답니다!"
"...물속이라니."
"장난감 빠트려서 엉엉 울었잖아요! 그거 제가 찾아줬는데!"



장난감? 알 수 없는 소리를 마구 떠드는 남자의 말에 모리사와는 서둘러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떠올랐다. 어릴 적, 할아버지 집에서 놀다 잃어버렸던 메테오레인저의 블루 피규어 장난감을. 그 피규어는 어린이날 선물로 아버지에게 선물 받은 것으로, 레드 블루 그린 블랙 옐로가 한 세트여야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마당에서 놀다 넘어지면서 블루를 연못에 빠트려 잃어버렸었는데-



"옛다, 네 울음소리가 시끄러웠는지 찾아다 가져다주더구나."



다음날, 할아버지가 그런 소리를 하며 제게 찾아다 주었다. 그래서 물었었지, 누가? 라고.



"신카이 카나타."



모리사와는 천천히 떠오르는 이름을 뱉어 불렀다. 들리는 소리로만 추측했을 때 심해와 저편이라는 뜻의 이름. 할아버지가 지어준 연못에 사는 물고기의 이름. 그래, 그런 이름이었다. 물고기에게 붙이기엔 거창한 이름이라 속으로 웃었던 그 이름.



"신카이... 카나타?"



다시 한번, 조심히 부르자 남자가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네! 치아키!"



가끔 이 집의 2층에서 자고 있으면 마당에서 할아버지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자신이나 가족에게는 들려준 적 없는 부드러운 목소리라 모리사와는 그게 꿈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가끔 방학 때마다 이 집에 놀러 오면 할아버지는 늘 툇마루에 앉아 연못만 지켜보고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늘 그러신다며 어머니가 걱정하셨던 게 기억에 남아있었다.
가끔 어머니가 사다 준 과일을 신나게 먹고 마루에서 낮잠을 자다 일어나면 누군가 물수건을 두고 간 듯 축축하게 이마가 젖어 있었다.
가끔 이 툇마루에 앉아 메테오레인저를 부르고 있으면 그 박자에 맞추듯 연못에서 물고기가 통통 튀어 올랐다.


그 외에도 아마 더 있었던 거 같은데. 잊었던 어린 시절의 날들을 떠올리며 모리사와는 제 앞에서 웃고 있는 신카이 카나타를 가만히 들여보았다.


스무 살, 입학, 새 학기, 신입생, 독립. 모든 게 처음이었다. 모리사와 치아키의 새로운 출발이었다. 그런데 그런 출발에 이런 일이 일어나도 되는 걸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하지만 모리사와는 차마 그를 쫓아낼 수 없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유일한 친구였고 모두가 돌보지 않은 이 집을 5년 동안 혼자 지켜낸 사람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사람은 아닌 모양이었지만 어쨌든. 그런 사람을 쫓아내는 건 정의롭지 못한 게 아닐까. 가방 속, 히어로 피규어가 우는 행동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절대로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모리사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신카이 카나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합니다."



뭘 부탁하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지만, 그렇게 새로운 시작에 어울리는 첫인사를 건넸다. 마주 잡은 손은 예상대로 차갑고 축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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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의 저편이라는 이름은... 신카이 카나타라는 이름의 동음어 말장난(?)으로...

카나타(奏汰)를 요 카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