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카나] 어느 여름날, 휴일.
2017. 9. 6. 21:15




"카오루."



매일 아침의 시작을 알리는 목소리. 딱히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그 목소리가 항상 시계처럼 울려댔다.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불리는 제 이름에 하카제는 슬며시 눈을 떴다. 피곤함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어 잔뜩 찌푸린 얼굴이 풀어질 줄 몰랐다.



"몇 시야?"
"벌써 12시라고요."
"아, 미안 미안. 모처럼 휴일이잖아."



정식 그룹으로 아이돌 활동을 하기 시작한 지 이제 막 2년 차, 작년까지는 고등학교 때 신세를 졌던 사쿠마 레이와 둘이서 활동하다 '언데드'라는 이름으로 이제 막 완전체가 된 셈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즉, 바쁘다는 이야기. 하카제는 눈을 감고 뜰 시간조차 없음을 느꼈다. 밀려드는 스케줄과 라이브, 고교 3년 내내 해왔던 건데도 프로의 세계는 확실히 달랐다. 체력도 정신력도 금방 떨어져 나갔다. 스스로를 돌볼 시간도 없이 겨우 악으로 깡으로 버티고 버티던 게 바로 어제까지, 제 상태를 알았는지 아니면 모두가 같은 상태였는지 리더인 사쿠마로부터 "하루 정도 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구먼."이라는 허락이 떨어졌다. 그렇게 얻어낸 꿀 같은 휴식, 제일 부족한 잠부터 채우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모처럼의 「휴일」인데 잠만 자다니, 너무해요. 카오루."



하지만 그런 저를 이해해줄 생각이 없는지, 신카이 카나타는 포기하지 않고 이번엔 이불을 들쳤다. 쨍쨍한 여름 날씨라 얇은 이불은 없으나 있으나 그만이지만, 그래도 덮고 있던 게 사라지니 썩 기분이 좋지 못했다.



"딱 2시간만. 딱 2시간 뒤에 일어날게."
"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요."
"으음..."



자신의 동거인이자 연인인 신카이 카나타는 그다지 욕구가 없는 인물이었다. 그저 삼시 세끼 해산물이 들어간 반찬이 있고 욕조에 물이 받아져 있고 비가 오면 행복한 타입. 그런 그가 무언가 하고 싶다거나, 먹고 싶다거나 답지 않은 요구를 해올 때에는 보통 사람에 비해 약 1000% 정도로 더 강하게 원한다는 이야기로 들어주지 않으면 그 뒤는 꽤 피곤했다.



"2시간 뒤에 먹자."



그와 약 3년 째, 함께 눈을 감고 눈을 뜨며 알게 된 사실. 그가 삐칠 거라는 걸 알면서도 하카제는 잠을 택했다. 2시간 정도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아도 인간은 충분히 숨 쉴 수 있지만, 모자란 수면을 채우지 못하면 인간은 살 수가 없다는 객관적인 판단에서였다.



"소다 맛 아이스크림."
"딱.. 딱 2시간만."
"..."
"나 어제도 화보 촬영으로 늦게 들어왔잖아. 2시간만 더 자고 아이스크림 사러 같이 나가자. 약속할게. 진짜 진짜."



마음대로 하세요. 단단하게 가시 돋친 말이 카운트다운처럼 날아왔지만, 하카제는 눈을 뜨지 않았다. 자신의 완강함에 신카이가 져줄 생각이 들었는지 달칵, 조용한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눈꺼풀 위로 들이차는 빛을 손으로 막아내며 하카제는 편하게 몸에서 힘을 빼었다. 다행히 토라지거나 화가 난 건 아니었는지 문 너머에서 신카이의 흥얼거림이 들려왔다.
사실 요 며칠 강행군에 가까운 스파르타식 스케줄만 아니었다면 오랜만의 휴일, 당연히 아침부터 일어나서 신카이와 보낼 생각이었다. 바쁜 자신과 달리 신카이는 늘 집에만 있었다. 그의 외출 반경이라곤 맨션 1층에서 우편물 찾아오기, 3분 거리의 편의점, 5분 거리의 상점가의 수족관 가게 정도. 원하는 대로 시간을 보내어도 무어라 하는 사람은 이제 어디에도 없는데 자신과 함께가 아니면 신카이는 그렇게 좋아하는 바다도 커다란 수족관도 가려고 들지 않았다. 물론 신카이 카나타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모든 건 졸업한 이후부터.


10대의 신카이 카나타는 늘 혼자였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묘하게 선을 그었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 가득했다. 나름대로 그와 있으면 편해 하카제는 훌쩍훌쩍 거리를 좁혀 들어갔지만 그럴 때마다 신카이는 하하하 아이처럼 웃으며 좁힌 거리만큼 뒷걸음질 치는 스타일이었다. 같이 이끌어, 아니 정확하겐 신카이 혼자 이끌어 가던 해양생물부에 후배 칸자키 소마가 들어올 때까지 수조를 관리하고 생물을 돌보고 수족관에 가는 거 모두 홀로 해냈고 바다에 산책 가거나 상점가에 비품을 사러 갈 때도 그랬다. 같은 부원인 자신에게 권할 법도 한데 그러지 않았다. 라이브 역시 마찬가지. 유성대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신카이 카나타는 늘 혼자 무대에 섰다. 횟수로 그렇게 많은 라이브는 아니었지만, 외로울 법도 한데 다른 누군가와 팀을 꾸리거나 합동 라이브를 하는 경우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또 정이 없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신카이는 언제나 자신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었고 함께 고민해주고 툭 답지 않게 답을 주기도 했다. 자신을 질타하거나 못된 아이라고 손가락질하는 법이 없었고 언제나 「좋은 아이」라고 불러주었다. 정이 없기는커녕 오히려 하카제에게 신카이 카나타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대부분의 하루를 물에서만 보내는 주제에 그랬다. 그래서 그가 뒷걸음질 칠 때마다 성큼성큼 다시 거리를 좁혔다. 그가 홀로 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살금살금 쫓은 그 끝에 신카이 카나타의 집안에 닿았다.


그날은 오늘과 같은 날씨였다. 더웠고 습했으며 해가 높았다. 교실에서 늘어지게 누워 언제 즈음 가을이 오려나 같은 태평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칸자키 소마가 들이닥쳤다. 칸자키가 보통 이 교실을 방문할 때의 목적은 같은 유닛의 선배인 하스미 케이토를 만나기 위해서였지만, 그날은 달랐다. 그는 급히 그리고 곧 울 거 같은 얼굴로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부장공이 해파리에 쏘여 병원에 입원했다고 하오!!"



해파리, 황당한 이유였지만, 짚이는 구석이 있어 하카제는 가만히 머리를 긁었다. 얼마 전, 둘이서 수조 정리를 하다 나누었던 주제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신카이가 들여보던 「위험한 해양생물 도감」에서 발견한 고깔해파리. 위험한 주제에 보랏빛에 투명한 게 꼭 유리 같아 보여 지나가듯 "예쁘네, 수조에 넣으면 어울리겠다."라 떠들었는데, 설마 싶었다. 그리고 신카이 카나타 역시 일단은 사람이었다. 설마는 항상 사람을 잡았다.
크게 다친 건 아니라 굳이 병문안을 갈 필요는 없었으나 자신의 잘못이 약 80% 정도는 되어 보여 가만히 있기가 뭐했다. 그가 좋아하는 것들 대신 병문안으로 적당한 것을 골라 혼자 병원을 방문했다. 혼자 병실을 지키며 지루해 있을 그를 위해 부실에서 책 몇 권까지 챙겨서. 하지만 예상과 달리 병실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대부분 나이 있는 어른으로 일방적인 대화들이 오갔다. 신카이를 걱정하는 말투였지만, 속 알맹이는 질책에 가까웠다. 거기다 모두가 신카이에게 말을 높이고 있었다. 한참 동안 자신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계속되었다. 몇몇은 마치 신카이 카나타가 엄청난 동아줄이라도 되는 양 손을 몇 번이고 붙잡고 문질러댔다.
그들이 떠난 후, 하카제는 바로 병실로 들어설 수 없었다. 신카이는 지쳐 보였고 침대에 앉아 몇 번이고 자신의 손을 닦아냈다. 울지는 않았지만, 제 눈에는 우는 것처럼 보이는 거 같았다. 그에게 꽤 오랜 혼자만의 시간을 준 뒤에서야 아무렇지 않게 "나 왔어~"라며 언제나처럼 가볍게 들어섰다. 신카이 역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언제나처럼 귀찮은 얼굴로 자신을 마주했다.


그의 집안이 평범하지 못하다는 걸 의식한 이후로는 신카이 카나타의 모든 것이 위태로워 보였다. 자꾸만 병실에서 보았던 풍경들이 떠올랐다. 그를 혼자 둬서는 안 될 거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어떠한 확신도 확증도 없는 주제에 그랬다. 누군가가 "주제넘네."라고 평가할지 모르지만, 그냥 그랬다. 그렇게 혼자 전전긍긍하는 걸 눈치챘는지 어느 날 그와 오래 알고 지냈던 사쿠마 레이가 이야기를 꺼냈다.



"신카이군은 자신이 그 집에서 떨어져 나오면 거품이 되어 사라질 거로 생각한다네. 이 몸이 몇 번이고 아니라 부정했지만, 그런 이야기만 듣고 자랐으니 신카이군에게 벗어나기는 쉽지 않은 모양이지."
"그런 이야기?"
"신카이 카나타는 신카이라는 이름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야기. 그의 집안은 오래전부터 바다에 관련된 무슨 종교 집안인데, 다음 가주가 될 인물이 신카이군 하나라고 하더구먼. 아마 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집안으로 끌려 들어갈 테지. 그가 모두에게 마음을 주지 못하는 이유도 같다네. 혼자가 어떤 기분인지 아니까 그 누구도 혼자 만들고 싶지 않은 게야."



다정하지 않니? 그리 좋은 이야기도 아닌데 그가 웃으며 떠들었다.

사쿠마의 대화로 신카이의 진심이 어떤지, 그의 집안이 어떤 곳인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하나는 확실해졌다. 하카제 카오루의 진심. 누군가를 혼자 만들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가 혼자가 되는 기분은 어떨까. 하카제는 항상 웃고 있는 신카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는 반짝이는 바다처럼 웃을 줄 아는 소년이었고, 함께 모래성을 쌓거나 소라의 노래를 듣는 것을 즐거워하는 소년이었다. 서로 웃고 지내던 순간을 더 솔직하게 웃고 지낼 수 있다면 그는 그보다 더 반짝거릴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를 그렇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게 자신의 진심이었다.



"나는 카나타군이 거품이 되는 걸 원하지 않아. 네가 날 지키지 않아도 괜찮을 정도로 강해질게. 너 하나는 책임질 수 있어. 그러니까 같이 지상에서 살자."



참 멋없는 고백, 손이 오그라들었다. 졸업식, 이대로 보내면 영영 신카이 카나타를 만날 수 없을 거 같은 생각에 무작정 붙잡았다. 아아, 여자아이들에게 데이트를 신청할 때는 이거보다 더 멋졌던 거 같은데. 말은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은 채로 마구 튀어나갔다. 신카이는 당황한 얼굴이었다. 한참을 자신과 교문을 번갈아 보았다. 그가 쥔 졸업장 지관통이 덜덜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의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있다면 바로 지금 이 순간이라고 하카제는 느낄 수 있었다. 그걸 던진 게 그리고 책임져야 하는 게 자신이라 영 미덥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가 자신을 믿어주었으면 했다.



"저는 「인어 공주」가 아니랍니다? 인어 공주가 되기엔 키도 크고 화장실도-"
"그런 이야기까진 안 해도 되거든?!"
"하지만... 방금 카오루가 「왕자님」 같았으니까, 괜찮을지도 모르겠네요."



인어공주가 되는 것도요. 그는 더는 교문 너머를 바라보지 않았다. 손도 떨지 않았다. 그저 웃었다. 하카제 카오루가 보고 싶었던 그런 미소로.



"그런데 왕자님이 이렇게 누워 있으면 안 되겠지."



하카제는 뻑뻑한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먹고 싶다던 아이스크림도 같이 먹고 모처럼의 휴일이니 그를 외출 시켜줄 생각이었다. 오늘이 지나면 또 한동안 신카이는 세상을 보지 못 할 테니까. 시간이 흘렀고, 이제 그는 자신과 함께 쌓아 올린 이 집에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딘가에서 혼자가 되면 불쑥불쑥 그가 도망쳐온 바다가 그의 발을 적시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휩쓸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할까 두려운 듯했다. 혼자 바다에 잠기려던 그가 다리를 가지고 걷고 이야기하고 숨 쉬는 건 좋지만, 그래도 언제까지고 이렇게 모래성 안에만 있어서는 안 될 텐데. 그런 걱정을 하며 침대에서 나왔다.



"카나타군."



문을 열고 나오자 막 거실의 수조 속 물고기들에게 밥을 주고 있던 그가 저를 돌아보았다. 뻐끔뻐끔 기세 좋게 먹이들을 먹어 치우는 작은 물고기들을 바라보며 하카제는 쭈욱 위로 팔을 뻗었다.



"아이스크림 사러 갈까?"
"아직 2시간 안 지났는데요?"
"아이스크림 사고 드라이브가자. 해변 공원? 바다? 어디든 좋아. 모처럼 휴일이니까, 카나타군이 가고 싶은 곳으로 데려다줄게."



왜 인어공주도 처음에 지상에 나와서 포크로 머리를 빗지 않았던가.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아마 잘 걷지도 못했겠지. 신카이 카나타에게도 지상에서의 적응 시간이 필요한 것뿐이었다. 그때까진 자신이 함께 해줘야지. 남자로 태어나 한 입으로 두 말하는 건 너무도 치졸했다. 그를 책임지겠다고 했으니 그가 온전히 이 땅에서 숨 쉴 때까지 자신이 지켜봐 주어야 했다.



"그럼 「바다」"
"나 너무 카나타군의 응석을 받아주는 거 아닌가 싶어."
"그래서 싫은가요?"



나간다는 말이 기뻤는지 후다닥 물고기 먹이통을 정리하며 그가 물어왔다. "아니!" 씻기 위해 욕실로 향하며 카오루는 크게 외쳤다. 그 대답이 맘에 들었는지 집안 가득 웃음소리가 가득 찼다. 빛에 조각나는 아름다운 파도를 떠올리며 하카제 카오루도 웃었다.







-



두 사람의 동거가 보고싶었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토라지는 카나타도 보고싶당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