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카나] 키스의 행방
2017. 8. 30. 22:12






신카이 카나타와 키스했다, 고 모리사와 치아키는 생각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시기, 거리에는 들뜸과 설렘이 가득했다. 쏟아지는 일들로 정신없었지만, 모리사와의 운영 방식에는 '휴식'이 최고였기 때문에 아쉽지만 큼직큼직한 일정을 모두 미루고 모두에게 휴식을 주었다. 연습에 레슨에 라이브에 따지고 보면 항상 일만 하는데 크리스마스 정도야 푹 쉬면서 만끽하는 게 좋지 않나 싶은 생각에 내린 결론이었다. 결과적으론 그 배려에도 불구하고 길거리 라이브를 하고 말았지만. 아, 문제는 이게 아니라 바로 그다음, 다음이었다. 갑작스럽게 진행된 라이브로 혼이 쏙 빠져나갔다. 다행히 키류가 만들어 놓았다는 무대 의상이 있어서 시즌에 맞게 그럴듯한 산타 복장으로 무대를 진행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정식적으로 준비한 라이브가 아니었기에 정신도 없었고 긴장감도 심했다. 거기다 1학년도 없이 신카이와의 라이브. 물론 둘이서 무대에 서는 게 한두 번도 아니라 모리사와에겐 문제 될 일은 아니었지만, 하필 감기 소동으로 난리가 난 직후여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도 모자라 눈까지 내리기 시작하니, 아 이 무대는 끝난 게 아닐까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 불안감으로 올라간 무대, 긴장한 덕분에서였는지 대 성공이었다. 살짝 바닥이 미끄러웠지만, 히어로에게 그 정도 방해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무사히 무대를 끝내고 내려오자 먼저 간 신카이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도 멋있었네요! 치아키!"



파란 산타복을 입은 신카이의 코는 루돌프처럼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볼도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마도 물놀이 탓에 감기에 걸린 듯 보였다. 그런 주제에 뭐가 좋다고 저렇게 웃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 알 수가 없었다. 방금까지 모든 게 불안하고 엉망이었는데 그 웃음이 뭐라고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는지 모리사와는 알 수 없었다. 아직 1학년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계속 이렇게 눈이 오면 이 뒤의 라이브는 중지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그냥 안심되었다. 웃고 있는 신카이 카나타를 보니 그랬다. 그리고 왜, 그런 순간들이 있지 않은가. 꼭 키스해야 할 거 같은 순간들.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 보면 저도 모르게 느껴지는 그 순간들. 그 순간이 모리사와에게 그랬다. 키스를 해본 적도 없었고 어떻게 해야 하는 지도 몰랐지만 덥석 그의 뺨을 붙잡았다. 웃으며 괜찮은 척을 하더니 실제론 그렇지 못했는지 신카이 카나타의 입술은 찼다. 하지만 입술과 달리 조심스럽게 열리는 그 안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첫 키스는 보통 단 것과 많이 비교하던데 모리사와에게 있어서 신카이와의 키스는 소다맛에 가까웠다. 시원하고 달콤하고 어딘가 톡 쏘는 맛.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너무너무 좋아서 아마 1학년들이 달려오는 발소리를 듣지 못했더라면 눈이 다 쌓이도록 그를 붙잡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대장공, 요란하게 불리는 자신의 이름을 듣고서야 모리사와는 꽉 붙잡고 있던 신카이의 얼굴을 놓아주었다. 많이 놀랐겠지? 화를 내겠지? 뺨을 맞아도 할 말이 없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조심스레 그와 눈을 마주하는 순간



"어라? 치아키. 저는 제대로 「숨」 쉬고 있는데요?"



약간은 멍한 그의 눈에 심장이 덜컹 떨어졌다. 그는 지금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해서 그 어느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하하... 아니, 라이브 한 후에 숨이 차니까! 그러니까 인공호흡이랄까..."
"아, 마우스 투 마우스군요!"



마우스 투 마우스? 그건 또 뭔데. 툭 튀어나온 단어에 모리사와는 입을 열었다. 지금이라도 키스라 정정해주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지만 그럴 틈도 없이 저를 부른 목소리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신카이에게 상황을 이해시키고 정리할 틈도 없이 그렇게 크리스마스 라이브가 끝났다.

그리고 해가 지났다.
그날 자신이 신카이에게 한 것은 분명히 키스였으나 키스가 될 수 없었다. 설명해야 할 타이밍도 놓쳐 버린 채, 시간만 훌쩍 지났다. 아니 차라리 시간만 지났으면 다행이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이게 정말 무슨 호흡 운동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신카이가 자신에게 '마우스 투 마우스'라는 이름으로 키스를 조르기 시작했다. 라이브가 끝난 직후, 물놀이하다가, 조금 걷다가, 같이 귀가하다가. 자신의 "여기다!"라는 로맨틱한 타이밍과는 달리 신카이의 호흡 안정 운동은 제멋대로였다. 언제 한 번은 교실로 찾아와 "마우스 투 마우스 해요!"라는 소릴 뱉은 덕에 급히 썩 로맨틱하지 못한 화장실에서 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이유도 없는 키스들이 쌓이고 쌓이고 쌓이는 날들. 모리사와는 그 틈에서 점점 괴로움을 느꼈다. 이유는 간단하면서도 이상했다.



"하카제."
"왜, 모리사와군?"



혹시 신카이가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이런 걸 아무렇지 않게 요구하면 어쩌나 싶은 불안감. 그 때문에 모리사와는 괴로웠다. 그리고 그중에 가장 유력 인물이 바로 제 눈앞에 있는 하카제 카오루였다. 하카제는 여자가 많았다. 여자들과의 대화에 능숙했다. 그러니 스킨쉽이나 키스 같은 것에도 능숙하겠지. 만약 자신이 없는 곳에서 신카이가 호흡에 답답함을 느낀다면, 친한 하카제에게도 툭 요구할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카나타 말이다..."



모리사와는 말을 골랐다. 어떻게 뱉어야 이상하지 않을까. 그냥 직구로 카나타와 했느냐 묻고 싶은 마음이 부풀어 올랐으나 "응, 했는데?"라고 돌아올 경우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말을 고르고 또 고르고. 제 꼴이 답답했는지 하카제가 "뭐야? 도대체?"라 짜증 내던 순간, 모리사와는 퍼뜩 중요한 사실 하나를 떠올렸다. 하카제 카오루는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모리사와는 눈을 깜빡이며 하카제를 빤히 들여보았다. 하카제의 입버릇은 항상 비슷했다. 항상 남자아이들의 소굴은 답답하다는 둥, 민들레가 없는 학교는 삭막하다는 둥 그런 말들. 그런 소리를 떠드는 걸 보면



"아니다."



응. 그럴 리가 없지. 절대로. 설령 신카이가 그런 부탁을 했더라도 하카제 선에서 "에? 남자랑 그런 취미 없거든?"이라는 소리로 딱 잘라냈을 것, 암.



"잠깐, 모리사와 치아키군. 지금 머릿속으로 엄청 실례되는 생각 하고 있지 않아?"
"아니. 오히려 너에게 감사하고 있다. 고맙다! 하카제!"



황당해 하는 그의 목소리는 뒤로 넘기며 모리사와는 하하하,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고 그렇게 소리 내어 웃다가 얼굴 가득 '짜증'이라는 단어를 담아 이쪽을 보고 있는 이츠키 슈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다시 불안감이 솟았다.



"...이츠키!!!"



신카이와 사이 좋은 건 이 학교에 하카제 카오루뿐만 아니었다. 이츠키 슈 역시 그와 사이가 좋았다. 아, 잠깐. 누구? 이츠키 슈? 이츠키와 카나타라. 나쁘지 않은 그림이었지만, 이츠키 슈가 타인과 가까이 붙어있는 모습은 영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래, 이건 아니지. 암. 이상하게 그리고 막연하게 이츠키는 아닐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냥 그런 기분이 들었다.



"네 놈, 지금 도대체 무슨 실례되는 생각을...!!"
"이츠키, 카나타와 친한 녀석이 누구 있지?"
"뭐?"
"카나타와 친한 녀석 말이야!"

"그걸 왜 나에게 묻지? 가서 직접 물으면 될 것을."



흥, 그가 대화도 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리며 대화를 잘라냈다. 물론 직접 물으면야 빠르게 해결될 일이지만, 본인에게 다가가 "나 말고 누구랑 키스했어?"라고 묻는 거 마치 드라마에 나오는 전 남친 같은 포지션이잖아. 그런 포지션보다 히어로 포지션 같은 게 좋았다. 모리사와는 붉은 특촬복을 입은 자신을 떠올리며 툭툭 허리에 댄 제 손가락을 두드렸다. 그러다 시야로 복도를 지나가는 긴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히비키!!!"



그래, 히비키 와타루. 신카이와 함께 오기인 이제는 삼기인으로 불리는 녀석이었다. 그다지 자신과는 썩 교류가 없는 사이지만, 신카이와는 달랐다. 신카이의 과거를 함께한 이였고 아마 자신보다 신카이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을



"...사쿠마 레이?!!"



녀석이 또 있었잖아? 복도로 기세 좋게 뛰쳐나왔으나 모리사와는 늘어나는 후보자들에 입만 떡 벌렸다.



"오야오야? 유성대의 불타는 하트를 가진 모리사와 치아키군 아닙니까? 열정적으로 제 이름을 외치시다니! 너무 부끄럽군요!"
"..."
"거기다 저의 귀한 친구의 이름까지! 무슨 일이죠?! 당신의 고민, 이 히비키 와타루가 모두 해결해 주겠습니다!"



잠깐 잠깐, 솔직히 이렇게까지 멀리 올 필요도 없는 거 아니야? 바로 자기의 눈앞에만 해도 후보자가 셋이나 있었다. 타카미네 미도리, 나구모 테토라, 센고구 시노부. 착한 아이들은 신카이가 "힘들어요."라고 울먹이면 하는 수 없이 도와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 아니, 잠깐 이거 좀 이상하지 않아? 그림이 이상한데? 이건 절대로 아닐 거 같고, 그럼 칸자키인가? 칸자키?!



"치아키군, 지금 표정이 어메이징하네요!!"
"히비키! 너 혹시...!"
"혹시?"
"카나타와..."
"카나타? 오야오야, 이거 또 귀한 친구의 이름이!"



안돼 물어볼 수 없어. 이런 걸 묻고 다니는 건 정말 히어로 실격 같은 기분이 드는걸. 모리사와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거기다 실제로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이 뭐라 개입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신카이가 뭘 하고 다니든 그건 그의 선택이고 의지였으니까. 거기다 애초에 이 고민의 시작은 자신이 원인이었다. 처음부터 제대로 신카이 카나타에게 그 입맞춤에 대해 이해시켰다면, 이런 문제는 발생할 리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럴 타이밍을 놓쳐서... 잠깐, 타이밍을 놓쳐? 모리사와는 픽 웃었다. 타이밍을 놓쳤다는 건 뻔뻔한 핑계였다. 그와 지금까지 나눈 무수한 키스 중에 설명할 수 있는 타이밍은 몇 번이고 있었다. 그런데 하지 않았다. 왜? 모리사와는 멀뚱히 저를 바라보는 히비키를 앞에 두고 머리를 굴렸다. 왜 하지 않았지? 그야, 무서웠으니까. 왜? 신카이에게 설명하면 미움 받을까 봐. 뭘? 자신이 한 키스를. 왜? 그야-



"...히비키."
"치아키군의 머리가 엉망진창이 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던데, 뭘까요?!"
"누군가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은 이유가 뭘까."
"흐음, 인간은 미움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 하지만 미움받기 싫다라~ 어려운 문제죠!"
"...아니 다른 사람의 미움 따위는 아무래도 좋아! "
"특정한 상대라면 답은 뻔한데요! 그거야말로 사랑! 사랑이죠!"



사...사랑? 사랑이라니! 낯간지러운 말에 모리사와는 서둘러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러지 않으면 귀에서 연기가 쏟아져 나올 거 같았다. 만화 영화처럼 귀에서 펑 하고 제 안에서 터진 무언가가 칙칙폭폭 소리를 내면서.



"오야오먀? 저 지금 어메이징한 걸 목격한 기분! 누군가요! 제게 말해보세요, 치아키군~ 이 히비키 와타루 무덤까지 안전하게 당신의 비밀을-"
"아니다! 고맙다! 히비키!"



그에게 고마웠지만, 극구 사양하며 서둘러 걸음을 돌렸다. 히비키 와타루에게 모두 털어놨다간 몇 시간 뒤, 교내 상공 위에서 장미꽃과 함께 제 비밀도 다 여기저기 흩뿌려질 게 뻔했다. 그것만은 싫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품고 있던 비밀이 여기저기 뿌려지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으나, 신카이와 처음 입을 맞추었던 그 날처럼 자신이 제대로 말 할 기회를 놓쳐버리는 게 싫었다. 또 놓쳐버리는 게 싫었다. 어느새 가벼워진 발걸음은 자신이 컨트롤 하지 못할 정도로 속도를 내었다. 빠르게 복도를 내달리는 소리가 경쾌했다. 발에 날개가 달린 것도 아닌데 그랬다. 날이 좋아서 그런가 심장도 널뛰었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도착한 곳, 언제나처럼 늘 그 자리에 있는 분수대. 그리고 신카이 카나타.



"카나타!!"



언제부터였을까. 모리사와는 자신의 부름에 천천히 분수대에서 뺨을 떼어내는 신카이를 눈에 가득 담으며 떠올렸다. 처음엔 분명 자신에겐 '이용 목적'이 있었다. 오기인의 신카이 카나타. 홀로 남은 그의 외로움을 이용했다. 유성대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그가 필요하다고 여겼으니까. 그런데 정말 언제부터였을까. 귀찮아하는 그를 억지로 레슨에 참여시켰을 때? 아니면 처음으로 같은 무대에서 그의 노래를 들었을 때? 그것도 아니면 겨울에 물놀이하는 그에게 잔소리를 퍼부었을 때? 혹은 가끔 그가 자신의 앞에서 외롭게 보였을때? 도대체 언제부터 그를 좋아했던 걸까. 알 수가 없었다. 걸음을 하나하나 옮기면서 그와 함께했던 날들을 떠올려 보아도 다 소중해서 도대체 어디가 시작인지 알 수가 없었다.



"치아키, 오늘 날씨가 좋네요. 치아키도 「물놀이」하러 왔나요?"



 잔소리는 싫어요! 그가 아이처럼 입술을 부풀리며 덧붙였다. 그런 그의 눈높이에 맞춰 앉으며 모리사와는 꾸욱 차디찬 분수대를 쥐었다.



"카나타."
"네, 치아키."
"나 오늘 꼴사나운 생각을 했어."



제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 줄도 모르고 애꿎은 친구들과 동료를 끌어들였다. 바보 같고 무례한 행동이었다. 사랑에 빠지면 물인지 불인지 분간도 못 하고 앞도 뒤도 확인하지 못한다더니 정말 그랬다. 나중에 모두에게 사과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신카이와 눈을 마주쳤다.



"괜찮아요, 치아키는 꼴사납지 않아요. 항상 제 눈에는 「히어로」인 걸요."



살짝 젖은 손이 머리 위로 앉았다. 착한 아이, 착한 아이. 그가 입버릇처럼 하는 소리를 노래처럼 재잘거리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카나타."
"네, 치아키."
"우리 마우스 투 마우스 할까?"
"으음, 저 지금은 괜찮은데요?"
"그럼, 키스할까?"



모리사와는 용기를 냈다. 자신만만하게 말을 꺼낸 건 좋았는데 얼굴이 화끈했다. 아마 지금 거울을 보면 제 유닛복만큼 붉은 얼굴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거 같았다. 어디론가 숨고 싶은 기분. 하지만 모리사와는 이번에야말로 도망치치도 피하지도 않고 신카이의 대답을 기다렸다. 다행히 그는 고개를 젓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웃으며 자신을 들여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도망치지 않을 거야.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며 우물쭈물하지도 않을 거야.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을 우리의 시작으로 만들지 않을래?


그런 마음을 가득 눈에 담으며 모리사와는 살짝 몸을 일으켰다. 딱 좋게 시선이 공중에서 얽혔다. 물을 머금은 입술은 언제나처럼 부드러웠다. 그렇게 모리사와 치아키는 신카이 카나타와 키스했다. 이번에야말로 키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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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타 생일 기념 혼자서 전력달린 기분...^^

급하게 쓰느라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뭔가 첫키스도 정의 못하고 에베베하는 치아카나가 보고시퍼따!


카나타 생일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