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스가] Bluebird
2017. 7. 18. 22:12



찰칵, 터지는 셔터음에 스가와라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찰칵, 이번에는 내쉬었다. 촘촘하게 뚫린 구멍 너머로 보이는 번쩍이는 조명들과 스튜디오를 지키고 선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최대한 경직된 몸을 풀어보려 노력했지만, 역시 좀처럼 쉽지 않았다.



"블루버드! 좀 더 활기차게! 팀 마스코트가 그렇게 축 처져서야 굿즈가 팔리겠어?!"



결국 보다 못했는지 카메라 감독이 빼액 소릴 질렀다. 분위기를 망치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스가와라는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을 느끼며 침을 꼴깍 삼켰다. 주르륵 흐르는 게 기분 나빠 닦아내고 싶은데, 현재 자신은 커다란 인형탈 안에 들어가 있으니 불가능했다.



"행운의 상징, 파랑새잖아! 좀 더 이렇게 날개를 펴면서 움직여보자! 그래! 좋아!"



몸소 시범까지 보이는 카메라 감독의 말에 스가와라는 이를 악물고 팔을 허우적댔다. 움직일 때마다 텁텁한 커다란 날개가 퍼덕이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파란 깃털이 다 뽑히도록 이 악물고 움직이니 그제야 마음에 들었는지 OK사인이 떨어졌다. 통과라는 의미었다.



"10분 쉬고 다음 이어갈게요!"



꿀 같은 휴식, 당장에라도 인형탈을 벗어 던지고 싶었지만 스가와라는 꾹 참고 선풍기 앞에 섰다. 커다란 탈을 뚫고 들어오는 바람은 아주 미미했으나, 그래도 군데군데 뚫려있는 틈이나 구멍으로 느껴져 나쁘진 않았다. 블루버드, 괜찮으면 물 마실래요? 그런 제가 안쓰러웠는지 촬영 스태프가 다가와 물었으나 스가와라는 고개를 저었다. 물을 마시려면 탈을 벗어야 하는데, 그건 좀 피하고 싶었으니까.


블루버드, 배구팀 선케이블루 소속. 행운의 번호가 연달아 새겨진 777번의 유니폼을 입고 코트 위에서 춤을 추고 선수들을 응원하는 파랑새로 팀의 마스코트였다. 그리고 스가와라 코우시의 직업이기도 했다. 오늘의 촬영은 새 시즌을 앞두고 홍보용 카탈로그, 시즌마다 이루어지는 연례행사와 같은 일로 벌써 3번째 참여인데도 여전히 카메라 앞에만 서면 속이 울렁대고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렇게 커다란 인형탈을 쓰고 있는데도 그랬다. 스가와라는 벗지 못하는 자신의 탈을 한번 부드럽게 두드려 보며 꾹 눈을 감았다. 
누군가에게 무언가가 싫어진 때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대충이라도 모두 적당한 답을 말해주겠지만 스가와라 코우시에게 있어 "언제부터 카메라가 싫었어요?"라 묻는다면 해줄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게 그냥 자신의 자아가 형성되던 순간부터 자신은 이미 카메라가 싫었으니까. 굳이 정해야 한다면 아마도 태어나던 날부터일까.
유명 배구 선수로 젊은 시절을 보내고 은퇴 후, 현재는 배구팀 잔케이의 감독인 아버지 스가와라 유스케와 당시 일본을 뒤흔들었던 여배우 나나지마 마리코의 사이에서 태어난 외동아들인 스가와라 코우시는 태어나 세상에 마주한 순간부터 카메라 앞이었다. 당시 워낙 인기 있던 스포츠 스타와 여배우의 만남으로 결혼 전부터 화제였던 커플은 결혼하고 나서도 늘 사람들의 관심을 몰고 다녔는데, 그 관심이 커플을 넘어 두 사람의 아이인 자신에게로 옮겨진 것이었다. 그 관심이 너무도 거대해 더는 버티며 무시할 수 없었던 부모님은 다른 스타 부부와 달리 아이었던 자신을 전면적으로 공개했다. 기억나지도 않는 몇 번의 방송 출연도 했다. 그런데도 관심은 사그라지기는커녕 더더욱 커져 자신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에는 온갖 방송국과 파파라치 기자들이 학교 앞을 진을 치고 있을 정도였다. 차에서 내린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은 앞으로 함께 지낼 친구들의 눈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플래시와 카메라 렌즈가 전부. 곱게 교복을 입고 가슴에 코사쥬까지 달았으나, 그날 스가와라는 입학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차라리 그 정도였다면 좋았을 텐데. 어릴 때 잠깐 출연했던 방송 장면은 끝없이 스가와라가 자라는 내내 꼬리처럼 달라붙었다. 가까이 다가오는 아이들은 스가와라 유스케와 나나지마 마리코의 아들 스가와라 코우시에게만 관심이 있었지 정작 자신이 뭘 하고 싶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아이들은 언제나 주위를 둘러쌓고 어떤 연예인을 봤는지 따위만 물어댔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등교하는 일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급식 시간에 먹는 도시락까지 누군가가 찍어 인터넷에 올렸고, 아이들 손에 들린 휴대폰 카메라는 파파라치들의 좋은 돈벌이 수단처럼 변해갔다.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건 일상, 머리를 쓰다듬거나 멋대로 안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 정도면 다행이지, 6학년 즈음엔 모르는 사람에게 끌려가기까지 했는데 그 덕에 이 관심은 기름 부은듯 활활 타올랐다. 연예나 방송프로에 관심 없던 사람들까지 이제 자신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유명 여배우가 울며 "아이를 돌려주세요."라 황금시간 뉴스에서 기자회견 하는데 모를 수가 없었다. 3일 만에 경찰 손에 이끌려 돌아오던 날은 머리 위에 헬기까지 떠 있었다.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자신의 얼굴이 실렸고 이제 정말로 일본 사람이라면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듯 했다.
그 후 입학한 중학교에서 그 사건을 들먹이며 놀리던 애를 때렸다 <학교에서 폭력 휘두르는 양아치 스가와라 코우시>라는 루머에 시달렸다. 카메라를 들고 다가오던 아이들도 사라졌다. 이어서 고등학교. 다 자란 아이들은 더 최악이었다. 교묘한 괴롭힘과 악의는 툭툭 날아왔고 한 번 날아온 말들은 금세 커져 온갖 소문이 되었다. 바로 잡을 기운도 없었던데다가 아버지가 막 감독직에 오르던 시기라 무시하고 버텼더니 행동 하나하나에 꼬투리가 잡혔다. 잘난척을 하니 어쩌니 악의 없이 던져진 말들은 그대로 상처가 되었다. 결국 참지 못해 유학을 결심했지만, 어디 아프리카의 외딴 섬에서 공부하지 않는 이상 같은 나라 사람을 피할 수는 없었고 역시나 <20살이 된 스가와라 코우시의 현재>같은 제목으로 누군가가 몰래 찍은 사진들이 여기저기 퍼져나갔다. 이어 부모가 번 돈으로 팔자 좋다는 악플이 도배되었다. 
그래서 스가와라 코우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밖을 나가는 것도 싫었고 누군가와 만나는 것도 싫었다. 대학도 포기, 사회생활도 포기.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방에만 틀어박힌 자신에게 찾아온 희망이 바로 이 블루버드였다.



"원래 카도씨라고 30년이나 구단에서 이 일을 하신 분이 계셨는데 알다시피 운동팀의 마스코트도 활동량이 필요한 일이거든. 카도씨도 이제 막 50에 접어들어서 은퇴하고 싶으신가 봐."



다 커서 방에만 틀어박힌 자신이 안쓰러웠는지, 아버지의 오랜 친구분이 물어다 준 일. 그는 강요하는 게 아니라며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스가와라에겐 거절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탈을 쓰면 누구도 자신이 스가와라 유스케와 나나지마 마리코의 아들 스가와라 코우시, 그 유괴당한 스가와라 코우시라곤 알 수 없었다. 이보다 좋은 조건은 없었다. 문제도 없었다. 그렇게 빽으로 당당하게 취업, 자신의 정체를 아는 건 인수인계해준 카토씨뿐. 사람들의 시선과 카메라에 해방되어 처음으로 그렇게 세상 밖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그렇게 벌써 3년 차. 마스코트 업무만 제대로 해주면 누구도 딱히 불만을 터트리지 않으니 일은 쉬웠다. 탈을 벗지 않는 자신의 뒤에서 돌아다니는 소문은 지금까지 평생 시달린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인형탈로 인해 얻어진 이 자유는 스가와라에게 있어서 잃고 싶지 않은 가장 소중한 것이었다. 그러니 고작 더위와 목마름으로 이 탈을 벗어 던질 수는 없는 일, 스가와라는 "혹시 필요하시면 드세요."라며 두고 간 물병에 시선을 잠깐 준 후, 다시 꿋꿋하게 선풍기만 바라보았다.



"수고하십니다!"



그렇게 얼마나 시원하지도 않은 바람을 갈구하며 서 있었을까, 스튜디오 가득 커다란 목소리가 울렸다. 슬쩍 시선을 돌리자 문 앞에 유니폼을 입은 훤칠한 선수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오이카와 토오루. 해외에서 활약하다 부상으로 귀국, 재활 치료를 끝내고 이번에 선케이블루로 영입된 선수였다. 부상으로 실력이 떨어졌네 어쩌네 말이 많았지만, 그래도 일본에서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선수였다. 아버지 입에서 "과거의 나와 닮았지!"라는 평가가 들려올 정도니까 말 다했지. 그를 자신의 팀이 놓친 것을 분개하며 떠들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스가와라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그가 자신에게로 걸어오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블루버드 맞죠? 선케이블루의 마스코트! 만나서 반가워요, 오늘 촬영 파트너라고 들었어요."
"네, 반갑습니다."



척 악수를 내미는 그의 손짓에 스가와라도 파란 날개를 내밀며 입을 열었다. 그가 당황한 듯 보였으나 곧 "아, 블루버드는 보안이 중요해서 절대로 탈을 벗지 않아요!"라는 팀 매니저 신이치씨 덕에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아, 그렇군요. 납득했는지 오이카와 토오루가 웃으며 날개를 잡아 흔들었다. 네, 아이들의 동심은 소중하니까요. 아이들 따위 질색이지만 스가와라 역시 웃으며 그의 손을 흔들었다.



"인사는 그 정도로 하고 그럼 바로 촬영 들어갈까요?"



아까와 달리 슈퍼스타의 등장 때문인지 카메라 감독이 한껏 밝은 목소리로 분위기를 띄웠다. 새를 상대할 때와는 정반대의 텐션이라 조금 웃음이 나왔지만, 그런 거로 상처를 받기에 스가와라 코우시는 이미 인간의 너무나 많은 여러 모습을 겪은 참이었다. 작게 웃은 제 목소리가 들렸는지 오이카와 토오루가 의아하게 바라보았지만, 딱히 그에게 설명할 필요는 없었기에 서둘러 몸을 돌려 카메라 앞에 섰다.


여러 광고를 찍은 탓일까, 오이카와 토오루는 포즈를 취하고 카메라 앞에 서는데 막힘이 없었다. 자신이 조금 굼뜨게 굴어도 어색하게 굴어도 그가 모두 커버하니 아까처럼 감독이 목소리를 높이는 일도 사라졌다. 저렇게 웃으면 경련도 안 오나. 스가와라는 그와 함께 새 시즌 유니폼을 잡아 들며 생각했다. "이제 마지막 컷입니다!" 감독의 밝은 목소리에 그가 더 입꼬리를 올렸다. 대단한 사람, 그리 생각하며 스가와라 역시 보는 이 없는 탈 너머에서 안심하고 입꼬리를 올려보았으나 저 멀리 위치한 카메라 렌즈와 눈을 마주친 순간 엉망으로 굳고 말았다.



"수고하셨습니다."



길고 긴 촬영의 끝. 자유를 얻는 대신 카메라 앞에서 피할 수 없는 직업이었지만, 그래도 시즌 휴식 중에는 이렇게 카탈로그나 자잘한 촬영 외에는 할 일이 없어서 편했다. 큰일이 끝났으니 이제 당분간은 쭉 쉬겠지. 스가와라는 머리 위로 기지개를 켜고 싶은 걸 꾹 참으며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더 빠르게 진행될 수 있는 일을 자신 때문에 질질 끈데다 감독의 짜증까지 터트린 미안함을 가득 담아. 수고하셨어요. 잊지 않고 오이카와 토오루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아, 블루버드도요!" 그가 스태프가 건네준 물 병을 따며 대꾸했다. 이제 끝났다고 생각해서 일까, 깜깜한 털 안도 답답했고 남자의 목을 타고 넘어가는 물도 너무 맛있어 보였다. 꾸벅, 스가와라는 탈이 떨어지지 않게 붙잡아 인사한 후,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개인 사무실이나 방이 없었기 때문에 짐은 홍보팀 사무실이나 차에 두었고 옷은 선수들용 라커룸이나 화장실을 이용했다. 오늘은 사무실의 대부분 사람들이 출근하는 날이라, 짐은 차에 옷은 지하 주차장에서 갈아입었다. 이 꼴로 지하 주차장까지 가야 한다는 게 끔찍했으나, 괜히 벗고 돌아다니다 사람을 마주치는 게 더 불편했기 때문에 스가와라는 빠르게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는 비상계단 문을 열었다. 당장 자판기에서 물부터 사서 마시고 싶었지만, 슬프게도 블루 버드의 777번 유니폼에는 주머니가 없었다.



"새 시즌에는 가방이라도 하나 만들어 달라고 신이치씨에게 부탁해보자."



아마 웃으며 그 정도는 허락해주지 않으실까. 신이치상, 다정하시니까. 스가와라는 언제나 자신을 챙겨주는 팀 매니저를 떠올리며 계단으로 발을 뻗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날개를 잡아당긴 것은.



"저기-"



잠깐이라 외칠 틈도 없이 몸의 균형이 무너졌다. 답답하게 꽉 차있던 공기가 펑, 하고 터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실제로 터지진 않았지만, 어쨌든 그런 느낌이 들었다. 땀이 흘렀던 몸으로 훅 찬 공기가 닿았다. 동시에 찌익-하고 요란하게 찢어지는 소리도 들렸다. 카토씨 은퇴 직전에 블루 버드의 얼굴이 조금 더 아이들 취향으로 귀엽게 바뀌면서 인형 탈과 옷도 바뀌었는데, 그렇다고 해도 약 10년은 된 옷이었다. 최근에 조금 헤진 것을 보고 신이치씨가 "이거 새로 제작해야겠네. 그때까지만 좀 조심스럽게 입어줘."라고 부탁한 참이었다. 그런데 뭐야, 이 찌익은? 그걸 판단할 필요도 없이 스가와라는 인형탈 틈으로 날개가 아닌 튀어나온 자신의 팔을 눈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비상계단 천장의 등도. 다음으론 쿵, 머리부터 바닥에 닿았다. 온몸이 비명을 질렀으나, 불행 중 다행으로 인형탈을 붙잡은 터라 머리에 큰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괘.. 괜찮아요?!?!?"



빛 너머로 하얗게 질린 오이카와 토오루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반 이상 찢어져 버린 인형 옷을 든 그의 손에는 뚝뚝 물이 맺힌 새 음료수 병이 들려있었다. 그깟 150엔 정도 하는 음료수, 제가 뽑아마셔도 됩니다만. 스가와라는 욕이 튀어나올 것 같은 걸 꾹꾹 참아내며 급히 몸을 일으켰다.


"괜찮아요?! 팀닥터 출근했-"
"괜찮아요!!!"



당황한 얼굴로 달려 내려오려는 그에게 손을 뻗으며 다급하게 말했다. 온몸이 비명을 지르고 무릎에선 아마 피라도 나는지 뜨끈했으나, 그가 사람을 부르고 치료를 목적으로 남은 반의 반쪽 인형옷과 생명줄과 같은 탈을 벗으라고 하면 그게 더 큰일이었다. 그 일을 막기 위해서라면 무릎 한 쪽 정도야, 아니 두 쪽, 없는 세 쪽까지도 스가와라는 내어줄 수 있었다.



"괜찮으니까... 다가오지 마세요."



스가와라는 멈칫한 오이카와 토오루를 두고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덜컹대는 인형탈은 한 손으로 꽉 붙잡았다. 미안해요, 그의 진심 어린 사과에는 대답하지 않고 서둘러 남은 계단을 밟았다. 아파서 절뚝대는 다리로 지하 주차장에 다 다를 때까지 고맙게도 다른 발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괜히 과거를 생각했다. 평소처럼 그냥 일에만 집중할걸. 떠올려도 별 좋을 것 없는 옛날 일을 우르르 떠올렸더니 봐, 이렇게 또 안 좋은 일이 일어나잖아. 아파서인지 아니면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서인지 아니면 평소와 달리 너무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서인지 온몸이 떨렸다. 스가와라는 덜덜 떨리는 입술로 겨우 숨을 내뱉으며 자신의 차로 뛰어들었다. 뒷 문을 열고 인형탈을 벗어던지고 땀으로 젖어 달라붙은 제 옅은 머리를 떼어내며 팔에 얼굴을 묻었다. 허억, 허억. 거친 숨이 좀처럼 멎지 못하고 조용한 차를 울렸다. 그렇게 숨이 멎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어둠에 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