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카나] 조개 줍기
2017. 4. 30. 01:07







찰칵, 셔터 소리가 교실을 울렸다. 찰칵찰칵, 연이어 터지는 소음에 모두가 웃었다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바보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흔히 말하는 빛나는 졸업장이 담긴 지관통이 공중에서 흔들렸다. 여기저기서 받은 꽃다발이 움직이며 잎이 팔랑댔다. 조용힌 그 소음 속에서 모리사와 치아키는 자신의 손에 들린 지관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졸업, 인생에 이미 몇 번 경험한 일인데 늘 어색하고 신기했다. 거기다 이번의 졸업은 조금 특별했다. 어른이 되기 바로 직전이었으니까.



"모릿치, 피스-"
"우앗!"



잠깐, 잠깐. 감상에 젖을 시간 정도는 줘야지. 갑자기 어깨동무를 하며 달려는 하카제의 행동에 모리사와는 서둘러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눈앞으로 다가온 화면에 멍청한 얼굴을 한 자신이 한가득 차 있었다. 멋진 포즈나 표정을 짓기도 전에 하카제의 손이 버튼을 눌렀다. 찰칵, 셔터 소리가 울렸다.



"나중에 메일로 전송해줄게?"

"정말이지, 멋대로. 뭐 아무래도 좋아. 이것도 추억이니까."
"아무래도 좋다니, 이게 다 추억인데! 뭔가 모릿치 답지 않은 부정적인 말이네. 무슨 일 있어? 뭐 나라도 괜찮다면 잠깐 정도는 들어줄 수 있는데 말이야."
"그냥. 졸업이라니 기분이 이상해서."
"내일이면 이 바보 같은 녀석들로 아침을 맞이하지 않아도 된다니 최고잖아."



여자아이들이라면 매일매일 괜찮지만 말이야? 진짜 진짜.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소리를 그가 떠들어 대며 과장해 웃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금세 얼굴을 굳힌 하카제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카나타는?"
"아.."



아침, 학교에 오자마자 그를 찾았다. 하지만 만날 수 없었다. 아마 피하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원인을 따지자면 아마도 자신. 반례제 때, 그에게 계속 함께하지 않겠느냐 제안했지만 애매한 대답만 돌아온 참이었다. 빙빙 둘러 말했지만, 그게 거절이라는 것 정도는 모리사와도 잘 알고 있었다. 신카이 카나타는 늘 솔직한 편이지만, 자신에 관한 것은 항상 숨겼다. 처음엔 그런 그의 행동에 미덥지 못한 자신을 탓했지만, 지금은 알 수 있었다. 그건 신카이 나름의 다정함이었고 배려였다. 굳이 그 마음을 밟으면서까지 모리사와는 신카이의 영역에 침범하고 싶지 않았다. 그랬는데



"잘 모르겠어."



이제 곧 이별이었다. 타카미네도 나구모도 센고쿠도 별로 걱정은 되지 않았다. 셋은 훌륭하게 성장했다. 불안하지 않았다. 함께 이 학교에 있으니 얼마든지 만나면 다시 만날 수 있었고 그럴 생각이었다. 하지만 신카이는, 카나타는 달랐다. 그는 내일이 되면 마치 자신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를 조금 귀찮게 하고 있었다. 그게 싫어 아마 숨어버린 모양이었다.



"카나타군 참 수수께끼 같은 사람이지? 다정하면서도 냉혹하고 가까운 듯하면서도 거리감 있고."
"..."
"나 말이야, 카나타군에게 말했어. 너 정도는 얼마든지 돌봐줄 수 있다고."



어깨를 으쓱하며 하카제가 말했다.



"어디사는 누구씨는 배려한다고 눈치만 보다 너무 늦어버린 모양이지만, 난 다르거든. 남자라면 나설 때는 나서는 거잖아? 그래서 제안했는데.. 무리하지 말란 소리만 들었어. 정말 무리는 누가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약간 서운했는지 그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카나타군에게는 거절의 레퍼토리가 백 개는 있는 거 같아. 그 말과 동시에 띠링, 휴대폰이 울렸다. 방금 찍은 사진이 전송되어 있었다.



"난 여기까지야. 내가 카나타군에게 다가갈 수 있는 거리 말이야. 모릿치는 좀 더 있는 모양이니까 카나타군을 부탁할게."
"응."



부탁받은 이상, 이루어 내야 히어로겠지. 자신은 없었지만, 있는 척 허세를 부르며 끄덕였다. 안 그래도 사실 한 번 더, 마지막으로 제안할 생각이었다. 아직 자신은 대단한 어른도 아니고 하카제 카오루처럼 책임지겠다거나 그런 간지럽고 멋들어진 소리는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뭐라도 전하지 않으면 정말 눈앞에서 그를 영영 놓칠 것만 같았다.



"모리사와, 있다가 끝나고-"
"미안, 세나. 잠깐 볼 일이 생각났다. 나중에!"



하아? 툭 잘린 말에 화가 났는지 다가온 세나 이즈미가 무어라 입을 열었지만 그걸 기다려주지 못하고 교실을 서둘러 나왔다. 가방도 빛나는 졸업장도 후배들에게 밭은 꽃다발도 모두 두고.


처음은 분수대. 그가 있을 때는 그 모습이 참 이상했는데, 그가 없는 지금은 비어있는 분수대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다음은 3-B. 그와 오랜 친구인 히비키 와타루에게 종일 교실에서 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만 전해 들었다. 마지막으로 해양 생물부. 다행히 신카이 카나타는 그곳에 있었다. 이 넓은 학교 안에서 그가 갈 만한 곳이 이 정도밖에 없다는 게 슬펐지만, 그래도 만났다는 사실에 웃음이 나왔다.



"카나타."
"치아키. 좋은 『아침』이에요."
"벌써 2시야, 졸업식도 끝났고 지금은 좋은 낮이야."
"아, 그런가요? 저 오늘 종일 여기에 있어서 시간을 잘 몰랐어요."



캄캄하게 잠긴 어둠 사이로 그가 소중하게 여기는 수조들만이 불을 반짝였다. 3년 동안, 마음을 주고 아끼고 관리했던 것들. 그랬으면서 부담이 될 바에 살처분하는 게 낫다고 말해 한동안 시끄러웠었다. 다행히 그리고 무사히 하카제가 설득시켜 살려둔 곳. 살처분이니 뭐니 떠들었던 것 치고는 역시 마음은 아니었는지 그는 다정한 눈으로 가만히 수조를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뭘 그렇게 보는 거야?"
"프로그 피시에요!"
"프로그 피시?"
"네. 여기 산호초 사이에 있는 아이 보이죠? 이게 프로그 피시랍니다."



톡톡 수조를 두드리며 신카이가 설명했다. 그의 손끝이 향한 곳, 어둑함을 밝히는 빛 아래 펼쳐진 산호의 틈에 마치 보호색처럼 비슷한 색의 무언가가 조심스레 움직이고 있었다.



"『헤엄』을 못 쳐서 물속에서 『걸어』다니는 물고기예요."
"오, 신기하네."
"부럽네요~"



헤엄은 못 쳐도 숨은 쉴 수 있잖아요, 키득키득 장난스레 웃으며 그가 떠들었다. 그런 신카이의 머리를 가만히 내려보다 모리사와 역시 곁에 자리를 잡았다. 물속에서 숨 쉬는 것들에 대해선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그의 소중한 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아 가만히 프로그피쉬와 마주했다.



"카나타, 있잖아-"
"아, 치아키! 『줄』 것이 있어요."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려는 찰나, 신카이가 말을 끊었다. 그리곤 가볍게 손뼉을 치곤 무언가를 가방에서 꺼냈다. 오늘 교실에 가지 않았을 가방엔 지관통이 들어있지 않았다.



"자요."
"...이게 뭐야?"
"『조개』랍니다!"



적당한 크기의 유리병엔 온갖 조개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억지로 자신의 손을 잡아 편 신카이는 뚜껑을 열어 모래 하나 없이 잘 닦인 조개들을 올려주었다.



"이건 치아키가 여름 방학이 끝나고 준 『조개』"
"이건 우리 같이 해군 라이브를 했을 때 주웠던 『조개』"
"아, 이건 카오루의 서핑에 따라갔을 때 주웠던 『조개』랍니다. 헤엄을 치지 못해서 『시시』했어요."
"또.. 이건, 레이의 부탁으로 일했던 가게 앞에서 가져온 『조개』"
"이 작은 건 테토라가 주워준 『조개』랍니다. 튼튼해 보이죠?"



하나하나 그가 손가락으로 집어가며 조개들을 설명했다. 조개 하나에 추억 하나. 잊어버리지도 않고 설명하는 그의 말에 모리사와는 슬쩍 입술 뒤를 물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이상한 소릴 토해내 버릴 것만 같았다.



"이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조개』"



마지막, 하얗게 조각처럼 빛나는 조개를 가만히 문지르며 신카이가 말했다.



"처음 치아키의 권유로 유성대에 『들어』왔을 때, 치아키가 줬던 거랍니다~"



조개를 줬는지 아닌지는 기억나질 않았다. 그때는 동료를 모으는 것에 급했으니 그가 원하는 건 뭐든지 쥐여주고 싶었겠지. 지금은 그런 목적이 없는데도 그가 원하는 건 다 해주고 싶었다. 친구로서 가족으로서 그 이상으로서 뭐든지. 그런 제 마음을 알기는 알까. 알면서도 이렇게 거절하고 피하는 걸까. 그럼 자신에게도 가능성은 이제 없는 게 아닐까. 여기까지 찾아온 주제에 덜컥 마음이 약해졌다. 그런 자신을 모를 신카이는 알 수 없는 멜로디를 작게 흥얼대며 손바닥 위의 조개들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항상 그가 분수대에서 허밍 하는 음들은 청량하고 즐거웠는데 이 어둠 속에서 둘리는 음은 어쩐지 서글펐다.



"카나타."



진로를 앞두고 그와 대화하면서 그에게 우주의 끝이라도 바다의 밑이라도 필요하다면 언제든 달려가겠다 이야기했었다. 진심이었다. 지금도 그 마음에는 변함없었다. 그러니까 카나타



"혹시 갈 곳이 없거나 힘들면 언제든지 괜찮으니까-"
"괜찮아요, 치아키."
"..."
"치아키는 저에게 많은 걸 주었잖아요. 있을 곳도 지낼 곳도 전부."
"아니야, 카나타 나는-"
"지상에서 숨 쉬는 방법도 알려주었어요."



전, 괜찮아요. 신카이 카나타가 조용히 손을 접어주며 말했다. 손 가득 조개들이 따갑게 다가와 박혔다. 역시 거절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아팠다. 그 아픔을 눈치챘는지, 접힌 손 위로 다정한 온기가 다가와 머물렀다. 온기 위로 자그마한 목소리가 속삭였다.



"이건 그에 대한 『감사』의 선물이랍니다."
"..안돼, 이건 네 소중한 조개잖아? 이런 소중한 걸 함부로 주면-"
"괜찮아요. 치아키도 『소중』하니까요. 그러니까 치아키가 가졌으면 좋겠어요."
"싫어. 받을 수 없어. 이건... 그냥..! 맡아두는 거로 할게."



조개는 그의 추억이었다. 그가 이 학교에서 숨 쉬고 버티면서 모아온 소중한 추억. 그걸 받는 건 어쩐지 완벽한 이별의 형태가 되어버릴 거 같아 서둘러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뒷입술을 문 각오와 달리 코가 시큰해졌다. 목소리도 숨도 엉망으로 튀어나갔다.



"언젠가 카나타가 진짜로 지상에서 제대로 숨 쉬는 날이 오면 그때 돌려줄게."
"..."
"그러니까, 받으러 와."



신카이 카나타가 홀로 서고 싶다면 그게 어떤 길이든 자신은 봐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진심으로 고집을 부린다면 이길 수 없을 테니까.



"이게 우리의 끝은 아니야. 그렇지?"



세상엔 아직 줍지 못한 조개들이 많았다. 모리사와는 그 조개를 모두 신카이 카나타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이게 끝이라고 말하지 말아줘. 답지 않게 눈썹이 휘어졌다. 그토록 간절했다. 이번만큼은 두리뭉실한 대답이 아니길 바라며 모리사와는 눈을 감았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들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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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잠깐 생각나서 트위터에 끼적끼적 쓴 애를 써 보아따.

무려 공포 게임을 보며.............. ㅎㅎㅎ 수정할 곳 많은데 너무 졸리니까 아침에..

눈 뜨면 이벤트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