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스가] 또 저질렀다.
2017. 3. 1. 16:35




주말 저녁, 도로에 차가 가득했다. 꽉 막힌 앞을 바라보며 오이카와는 슬쩍 목을 덮고 있던 니트를 당겼다 놓았다. 히터를 높게 튼 것도 아닌데 공기가 건조하게 다가왔다. 그 기분을 읽었는지 조수석에서 불쑥 손이 내밀어졌다.



"물 마셔. 차 오늘 많이 막히네."
"그러게."



센스있는 애인은 편하다. 애인을 편하다고 평가하는 건 어쩐지 어감이 이상했지만, 그래도 이 이상 어떤 표현을 해야 하는 지 오이카와는 알 수가 없었다. 뚜껑까지 따낸 병을 받아들고 적당하게 시원한 물을 넘기자 그나마 기분이 좀 나아졌다.



"그나저나 커플 모임이라니, 토오루는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왜 저번 주에 내가 친구 소개해준다고 했더니 싫다고 했잖아. 바쁘게 거울로 모습을 체크하며 떠들어대는 애인의 목소리에 오이카와는 라디오로 손을 뻗었다. 저녁의 황금 시간대인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사연들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부담스러우니까 그렇지."
"그럼 나는 안 부담스럽고?"
"부담스러워?"
"조금. 그래도 토오루 친구를 만난다고 하니, 좀 떨리네. 소개해달라고 해도 거절해서 나는 토오루가 친구도 없는 줄 알았다니까."
"그럴 리가."
"친구 애인은 만나봤어? 예뻐? 나 오늘 힘 좀 줬는데."



그녀가 길게 흘러내리는 웨이브 머리를 곱게도 넘기며 물었다. 확실히 평소보다 기합이 들어간 모습이었다. 올라탔다고 표현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높은 힐, 조금만 움직여도 올라갈 것 같은 타이트한 니트 원피스에 풍성하게 붙인 속눈썹까지.



"예뻐."



누구라도 한 번, 아니 두세 번은 돌아보고 또 돌아보게 할 외모에 오이카와는 솔직하게 평가했다. 그 칭찬이 좋은지 그녀가 보조개를 살짝 밀어내며 웃었다.



"진짜로?"
"응. 내가 만났던 사람 중에서 가장 예쁜 거 같은데."
"지금 할 소리는 아닌 거 같은데요, 오이카와 토오루씨."



농담으로 넘기는지 그녀가 눈만 애교스럽게 흘긴 후, 다시 거울로 제 모습을 체크했다. 머리를 넘겼다 뺐다, 입술을 오므렸다 열었다 작은 움직임이 차 공간으로 부산스럽게 울려댔다.



"거울 닳겠다."
"중요한 자리니까 완벽하게 보이려고 그러지."
"지금도 완벽해."
"그 8년 만났다던 전 애인보다?"



뜬금없는 그녀의 도발에 오이카와는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의 애인은 쿨했다. 적어도 오이카와가 알기로는 그랬다.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며 도합 8년을 만난 전 애인의 이야기를 했을 때도 습관이 무섭다고 저도 모르게 툭툭 던지는 과거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그녀는 "오래도 만났네." "그러고도 잘도 만났네." "헤어지고 만나길 반복하는 거, 지겹지 않았어?" 등등 꽤 여러 가지 반응으로 가볍게 넘겼다. 미안해, 실수였어. 사과할 필요도 없이. 아마 저만큼이나 누군가를 만나는데 부족함도 어려움도 없을 사람이라 여유로운가보다 싶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이렇게 툭, 치고 나올 줄이야. 그것도 오늘 같은 날에.



"말했잖아. 걘 완벽하고 거리가 멀다니까."
"그래. 들었지. 지겹게."
"지겹게라니. 그렇게까지 이야기한 적 없는데."



차는 여전히 느릿느릿하게 움직였다. 흘러나오는 라디오 위에 반짝이는 시계를 확인하니, 약속된 시간까지 20분도 남지 않았다. 아, 늦으면 잔소리 \들을 텐데. 오이카와는 초조함에 핸들을 두드렸다.



"뭐 할 때마다 툭툭 튀어나왔잖아. 그걸 합치면 '지겹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는 될걸?"
"그랬나?"
"응. 오죽하면 내가 토오루 전 애인의 취향까지 알까?"



그녀가 키득대며 붉은 입술을 움직였다.



"강아지를 좋아하고, 아이스크림은 바닐라를 제외한 맛만 고르고 탕수육은 소스를 부어 먹고 소고기 덮밥보단 돼지고기 덮밥, 라멘은 소유(간장), 옷은 항상 깔맞춤에... 그거 때문에 많이 싸웠다며? 또 뭐가 있었더라? 아아, 음료는 겨울에도 아이스! 밥 먹을 때, 항상 맛있는 건 늦게 먹는다고 했고... 야구보다는 축구, 축구에선 무슨 팀이라고 했지? 토오루랑 라이벌 팀 응원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리고 음식의 간은 항상 강하게?"
"...왜 이렇게 잘 알아?"
"맨날 토오루가 떠들었으니까! 하나도 맞지 않아서 매번 싸우고 헤어졌다며."



반성 좀 해. 마음에 담고 있었던 모양인지 그녀가 떠들던 입술을 꾹 다물며 날카롭게 외쳤다. 미안, 오이카와는 대충 사과하며 조금씩 풀려가는 도로를 바라보았다.
8년, 손가락을 접어보면 그다지 많은 숫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으로 떠올리면 꽤 긴 시간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전 애인과는 그 긴 시간이 우습게도 맞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오이카와는 강아지보다 고양이를 좋아했다. 아이스크림은 기본적으로 이것저것 섞인 맛보다는 바닐라를 선호했다. 탕수육은 당연히 바삭하게 튀긴 음식이니 찍어 먹는 게 좋았는데 전 애인은 늘 멋대로 소스를 부었다. 그 문제로도 수십 번을 싸웠으나 나아진 적이 없었다. 간단한 야식을 먹으러 나가더라도 늘 맞질 않았다.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자신과 달리 전 애인은 소고기를 좋아했다. 라멘을 먹어도 진한 돈코츠보단 늘 쇼유를 시켰다. 처음 만났을 때는 패션 센스가 없었는지 매번 색을 맞춰 입어서 그 습관을 고치느라 꽤 오랜 시간을 고생했다. 동거하고 나선 좀 나아졌던가? 뭐, 대부분 자신이 선물해서 받쳤으니 나아질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는 게 정확하고. 또 영하로 떨어지는 기온에도 매번 아이스 음료를 먹었다. 폭염에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쥐고 걷는 자신과는 확실히 반대였다. 야구를 좋아하는 자신과 달리 축구를 좋아했고, 그도 모자라 축구팀도 갈렸다. 같은 일본인 선수가 있음에도 자신은 도르트문트 상대는 샬케04. 리그에서 맞붙으면 그날은 새벽부터 전쟁이었다. 그뿐만인가? 자신이 봐주고 받아주길 버릇했더니 늘 이기적이었다. 배려라곤 눈곱만큼도 몰랐다. 정리정돈에 철저한 저와 달리 항상 옷을 여기저기 벗어놓고 던져놨으며, 깔끔하고도 거리가 멀었다. 배려심 역시 모자라 늘 요리하면 못하는 주제에 간만 강하게 만들어 몇 번은 따로 밥상을 차려 먹은 적도 있었다. 식물을 좋아하는 자신과 달리 선인장 하나도 곱게 못 키우는 성격에... 뭐, 말하자면 길었다. 길고도 길고 또 길었다.



"어, 여기 레스토랑 맞지? 다 왔네?"



그럼에도 8년을 만났다. 그 사이에 수십 번은 헤어지긴 했지만, 도합 8년. 지긋지긋하게도 싸우고 지긋지긋하게도 사랑했던 관계. 오이카와는 이미 끝나버린 관계를 떠올리며 빈 주차장 공간에 차를 세웠다. 마지막까지 거울을 놓지 않는 그녀를 바라보며 과거를 떠올렸다. 전 애인은 거울하곤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뭘 꾸밀 줄을 알아야지.



"친구는 어떤 사람이야?"



차에서 내리며 그녀가 물었다. 오이카와는 대답 대신 저를 맞이하는 중식 레스토랑으로 들어서며 어깨만 으쓱댔다.



"대학 동기라고 했나?"
"응."
"그럼 10년 정도 알고 지냈겠네?"
"응."
"그 친구분 애인은 만난 적 있어? 어때?"



몰라. 오이카와는 예약 명단을 확인하며 고개를 저었다. 전 애인이라면 자신의 저번 애인 때, 모임에서 본 적 있지만 지금 현재 애인은 만난 적이 없었다. 아마 최근에 생겼겠지. 항상 새 애인이 생기면 "나도 애인 생겼어. 네 애인 소개해주라."라며 억지를 부려댔으니까. 그 뻔뻔한 얼굴을 떠올리며 오이카와는 먼저 직원의 안내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깔끔하지도 못하고 세심하지도 못한 주제에 항상 약속 시간에는 철저했던 사람답게 역시나 안내받은 테이블에는



"왜 이렇게 늦었어?"



뚱한 얼굴의 스가와라 코우시가 인사 대신 불만부터 던져댔다. 갑작스러운 잔소리에 당황한 애인을 대신해 의자를 빼내며 오이카와는 사과부터 입에 올렸다. 무시하면 시끄러워질 게 뻔하니까.



"차가 막혔어. 퇴근 시간이잖아."
"그럼 더 일찍 나왔어야지."
"나나미 회사가 7시 퇴근이라고 했는데, 8시 약속을 우긴 건 너잖아. 인사해. 여긴 마츠하라 나나미, 나나미. 여긴... 스가와라 코우시."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마츠하라 나나미라고 해요."



겨우 이루어진 소개에 나나미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뭐가 불만인지 "이야기라니, 제 욕만 들었겠네요!"라며 그가 그다지 지금 어울리지도 않는 농담을 던졌다. 만나자고 궁금하다고 조른 건 저쪽이면서 왜 이렇게 심통이 났을까. 오이카와는 슬쩍 치미는 짜증을 익숙하게 눌러 삼키며 빈 옆자리를 턱으로 가리켰다.



"애인은?"
"아, 헤어졌어."
"뭐?"

"한... 세 시간 전엔가? 오늘 너랑 약속 잡았다고 설명하는데.. 화를 내잖아. 뭐 괜찮아. 어차피 오래 갈 생각도 없었어."



그가 먼저 주문했는지, 반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은 티를 휘휘 저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보나 마나 뻔하지, 머리로 생각도 안 하고 분명 되는대로 지껄였을 터였다. 좋게 말하면 솔직, 나쁘게 말하면 멍청한 게 스가와라 코우시였다.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걸 해 본 적이 없는지 항상 직구를 던졌다. 오늘도 아마, 적당한 거짓말이나 꾸밈을 지우고 사실대로 떠들었겠지. 자신과 달리. 이별이란 단어를 가볍게 떠드는 행동에 당황했는지 눈빛을 보내는 나나미에 오이카와는 어색하게 웃으며 서둘러 메뉴판부터 찾았다.



"코스로 주문할까?"
"싫어. 따로 시키자. 넌 싱겁게 먹잖아. 난 매운 게 좋아."
"속 탈 난다고 몇 번을 말해?"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었으면 앞으로도 아무문제 없을 거라고도 몇 번을 말해? 나는 마파두부. 게살 수프도 시길래. 같이 먹을 것도 주문할까? 유산슬? 깐풍기? 탕수육 먹을래?"
"소스 붓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튀김옷이 부드러운 편이 맛있잖아."
"바삭하지 않으면 튀기는 의미가 있어?"



질리지도 않는 논쟁. 몇 번이나 떠들었던 대사를 앵무새마냥 다시 떠들어대며 오이카와는 손을 들었다. 웃으며 다가온 직원에게 적당하게 이것저것 추천을 받아 메뉴를 부탁하자 "마파두부는 맵게요!"라고 스가와라 코우시가 외쳤다. 그 언젠가 아침 점심 저녁을 모두 매운 음식으로 채웠다, 골골거렸던 모습을 떠올리며 오이카와는 그 몰래 직원에게만 살짝 고개를 저었다. 보통으로 간을 맞춰달라는 의미었다.



"어... 스가와라군은 대학 동기라면서요? 토오루랑.."



 자신이 주인공이어야 할 자리, 약간은 밀려났다 생각했는지 서둘러 나나미가 입을 열었다. 긴장했는지 약간은 부자연스럽게 웃고 있는 그녀가 걱정되어 오이카와는 조심스레 테이블 위에 올려진 손을 붙잡아 주었다.



"아, 네. 10년인가? 우리? 지긋지긋하게 만났어요."
"그렇구나. 토오루가 주변 이야기를 잘 해주지 않아서, 스가와라군 같은 친구가 있다는 것도 얼마 전에 알았어요."
"반년이나 만났다며? 이와이즈미군이나 다른 친구들에겐 소개 아직 안 해준 거야?"



여기서 이와이즈미 이야기가 왜 나와. 오이카와는 재빠르게 화살을 돌리는 스가와라의 공격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와이즈미군..?"
"아, 이와이즈미군이라고 오이카와와 어릴 때부터 친한 녀석이 있어요. 아직 소개 못 받으셨구나. 너무 서운해하지 말아요. 신중한 편이라 그래요, 오이카와가."



그러니까. 이와이즈미 하지메가 여기서 무슨 상관인데. 지금은 미국에 간 제 오랜 친구까지 들먹이는 그의 행동에 오이카와는 급히 목을 축였다. 텁텁한 히터에서 벗어났는데 이상하게 목이 탔다. 아니, 사실 히터 탓은 아니었다. 스가와라 코우시 앞에선 항상 목이 탔으니까. 여러 가지 의미로.



"나나미씨는 오이카와랑 어떻게 만났어요?"
"아, 우리요? 클럽에서 만났나? 친구들이랑 놀고 있는데 혼자 왔다면서 말을 걸더라고요."
"세상에."



호들갑을 떨며 스가와라 코우시가 이쪽을 바라봤다. 반년 전, 클럽. 그가 작게 입술만 움직이는 걸 보며 슬쩍 시선을 돌렸다.



"이만하면 괜찮다 싶어서 제가 어울려줬죠."
"나나미씨가 아까워요."
"어머, 그렇게 생각해요?"
"네."



얘가 얼마나 잔소리가 심한데요. 아주 질려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얼굴 앞에서 떠들어대며 스가와라 코우시가 크게 웃었다. 옆 테이블에서 슬쩍 이쪽을 살피는 걸 보고 오이카와는 헛기침을 했다. 자신의 신호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스가와라 코우시는 소리를 줄일 줄 모르고 입을 움직였다.



"아! 맞다! 저번 주에 경기 봤어? 너희 이겼더라? 우린 비겼는데!"
"...몰라. 안 봤어."
"왜?"
"그야..."



네가 없으니까. 오이카와는 당연하게 대답했다. 애초에 축구에 관심도 없었다. 스가와라 코우시가 밤마다 한 손에 리모컨을 쥐고 한 손으론 제 팔을 잡아 소파에 끌어 앉혔기에 억지로 본 거뿐이었다. 좋아하는 팀이 갈린 건, 조금의 반항이었다. 스가와라 코우시가 좋아하는 것에 그냥 딴지를 걸고 싶었던 유치한 질투 같은 것. 덕분에 열성 팬인 척 좀 하느라 몇 번 경기를 챙겨보고 함께 시합이 붙는 날에는 약 올리려 티셔츠를 사는 애 같은 행동을 조금 했었다. 하지만 더는 그와 함께하지 않는 주말을 축구 시청에 쓸 필요는 없었다.



"4월 1일 저녁엔 뭐해? 토요일 밤!"
"글쎄. 아직 멀어서 모르겠는데."
"더비전 같이 볼래?"



라이벌전을 함께 보자는 제안에 끄덕이는 순간, 자신이 쥔 나나미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토요일 밤, 뭘 하기로 했던가? 자신이 잊어버린 약속이 있었나 싶어 그녀에게 시선을 돌리는 순간,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스가와라 코우시가 주문한 게살 수프였다.



"드실래요?"



커다란 그릇에 정갈하게 담겨 나온 수프 속 수저를 들며 스가와라 코우시가 나나미에게 물었다.



"괜찮아요."
"아, 뜨겁겠다. 나는 뜨거운 건 싫은데."



제 그릇에 덜며 그가 중얼댔다. 수저를 타고 흐르는 진득한 액체가 잠깐의 움직임을 버티지 못하고 후둑, 식탁보에 떨어졌다. 조심성 없긴, 오이카와는 서둘러 나나미의 손을 놓고 대신 냅킨을 뽑아 흔적을 덮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스가와라 코우시는 앞접시에 던 수프를 살살 식히더니 맛있는지 빠르게 먹어 치웠다.



"천천히 먹어. 체한다."
"수프 먹고 체하는 사람 없어."
"있었잖아."



없기는. 몇 년 전에, 수프 먹고 거하게 시트 위에 토했던 놈이 어디의 누구더라. 굳이 달콤하지도 않은 기억을 끄집어내며 오이카와가 지적하자 스가와라가 불만이었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내가 아파서 아무것도 먹기 싫다고 했는데 네가 억지로 먹여서 그런거잖아. 그러니까 그건 체한 거 아니야."



강하게 우기며 그가 입을 열었다. 밥 먹는 게 그리 어려운 행위도 아닌데, 스가와라 코우시는 늘 깔끔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역시나 입가에 묻어나오는 진득한 액체를 보며 오이카와는 손을 뻗었다. 입가를 훑고 지나간 손가락은 이번엔 자신의 입가에 닿았다. 아주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그리고



"토오루."



나나미가 자신을 불렀다. 그녀의 딱딱한 부름에 오이카와는 뒤늦게 자신의 손가락에 머물던 감각을 떠올렸지만, 이미 늦었다고 느낀 것처럼 정말 늦은 모양인지 매서운 손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짝, 하고 울리는 소리에 이번엔 옆 테이블뿐만 아니라 모든 테이블의 눈이 이쪽으로 향했다. 그것만이면 다행이지, 그녀는 멈추지 않고 이번엔 찻잔을 들었다. 고맙게도 식어버린 액체가 줄줄 머리를 타고 뺨을 타고 턱 끝으로 쏟아져 내렸다.



"연락하지 마."



사람은 학습하는 동물이었다. 오이카와는 이 비슷한 상황을 몇 번이고 겪었다. 그런데도 또 이 꼴이라니. 또각또각 멀어지는 구두 소리에 한숨이 터져 나왔다. 오늘은 정말 조심하려고 마음 준비를 단단히 했는데. 그런 제 마음을 알 리 없는 스가와라 코우시는 "학습 능력 부족이네, 토오루군."이라 정확한 곳을 찔러오며 웃었다.



"...너 때문이야."



당황한 얼굴로 다가온 직원이 내민 타올로 턱을 닦아내며 오이카와는 매섭게 따졌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이젠 아예 수프 그릇을 제 쪽으로 끌어당긴 스가와라는 뻔뻔하게도 입을 움직였다.



"어차피 너도 알았잖아. 이 자리에 나오면 이렇게 헤어질 거라는 거."
"..."
"네가 나와놓고 왜 내 핑계를 대?"



그래, 그의 말이 맞았다. 오이카와는 피곤한 얼굴을 손바닥으로 덮으며 과거를 떠올렸다. 8년, 스가와라 코우시와 만나고 사랑하고 싸우고 헤어지는 순간을 반복했던 그 시간만큼 중간중간에 꼭 이런 만남이 있었다. 헤어진 전 애인에게 현재 애인을 소개하는 웃기지도 않는 자리. 대부분은 스가와라 코우시가 요구하는 자리였다. 안 나가면 그만, 거절하면 그만이었지만, 그의 말대로 오이카와는 늘 스가와라 부름에 응했다. 그리곤 몇 번은 그가 뺨을 맞았고 다른 몇 번은 자신이 이렇게 뺨을 맞았다. 그 후에는



"그래서? 어디로 갈까? 너희 집? 아님 우리 집? 그것도 싫으면 호텔?"



아무렇지 않게 또 지긋지긋한 연애를 시작했지. 그래, 그랬다. 오이카와는 오늘 메었던 넥타이를 오늘 입었던 셔츠를 누굴 위해 골랐던가를 떠올렸다. 적어도 방금 자신의 뺨을 때린 그녀를 위해서는 아니었다. 항상, 늘 항상 오이카와는 스가와라 코우시만 위했으니까. 깨끗하게 비워진 수프 그릇을 스가와라가 밀어내자 이번엔 마파두부가 내려앉았다. 한 입 크게 물어 오물오물하는 그의 입술에, "싱거워!"라고 찌푸리는 그의 미간에 그리고 "네가 주문 바꿨지?"라 따지며 매섭게 뜨는 눈에 입을 맞추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오이카와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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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둘 다 좀 나쁘고 쓰레기 가튼.. 그런 거시 보고싶어서...

나오는 길에 "그나저나 반년 전? 클러업? 너 나랑 헤어지자마자 클럽 갔냐?!" 라고 따지는 스가와라 코우시때문에 차 안에서 한바탕 싸우고 호텔가서 풀었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