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어깨. 운동부에 어울리지 않는 어깨라고 오이카와 토오루는 생각했다. 그가 등에 지고 있는 숫자는 어깨에 비해 커보였고, 그가 걸친 운동복 역시도 그렇게 보였다. 운동계로는 보이지 않네, 그게 카라스노 2번에 대한 오이카와 토오루의 첫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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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기억하고 외우는 일은 귀찮았다. 마주하고 스쳐 가는 사람이 수가 한둘이 아닌데 그걸 하나하나 기억하고 외우는 건 쓸모 없다고 오이카와는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의 첫인상으로 멋대로 별명을 붙이기 시작했다. 카라스노 2번도 그랬다. 운동계의 19살 소년에게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혹은 굴욕적일지도 모를 별명을 붙였다. 상쾌군. 간질간질한 게 참 우스웠다. 하지만 첫인상은 첫인상이라 했던가. 코트에 들어선 순간, 오이카와는 이번엔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했다. 그는 전혀 상쾌하지 않았다.
도대체 자신은 그의 어떤 점을 상쾌하다 느꼈던 걸까.
카게야마 토비오와의 더블 플레이, 끈질기게 노려오는 퍼스트 터치, 거기다 마지막 안면 리시브까지. 상쾌하긴커녕 오히려 참 남자다운 플레이였다. 전략적이며 투지까지 느껴졌다. 이미 멈춰버린 고교 마지막 무대의 점수판을 보며 오이카와는 웃었다. 더는 그의 어깨는 떠오르지 않았다. 이제 떠오르는 것은 코트 너머에서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던 두 눈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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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눈동자가 신경 쓰여 예선전 기록이 실린 배구 잡지를 샀다. 아직 결과는 다 나오지 않았지만, 우선은 카라스노도 참가 고교니 어디 구석에 프로필 정도는 적혀있겠지 싶었다. 예상대로. 특집 페이지로 이루어진 자신네나 시라토리자와와 달리 아주 구석에 사진 하나 없이 자리 잡은 카라스노의 프로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스가와라 코우시, 카라스노 고교 3학년, 배구부 소속, 포지션은 세터. 오이카와는 잡지를 보다 턱을 문질렀다. 처음 연습 경기로 잠깐 만났을 때, 선수들을 다독이는 모습이 익숙하다 싶었는데 3학년이라 그랬던 모양이었다. 잠깐, 3학년인데 벤치 스타트라고? 오이카와는 카게야마 토비오를 떠올렸다. 그런 괴물이 들어왔으니 어쩔 수 없나.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배구부에 남아있다니, 놀라웠다. 그래서 동질감을 느꼈다. 동시에 천재의 그늘에서 벗어난 자신과 달리 머물러 있는 그에게 동정심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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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시내에서 스가와라 코우시를 만났다. 아니, 일방적으로 보았다. 그는 운동화를 고르고 있었다. 배구화를 보는 듯했다. 그의 곁에 익숙한 얼굴도 눈에 들어왔다. 추가로 놀라운 얼굴까지. 오이카와는 멍하니 심각한 얼굴로 배구화를 들여보고 있는 카게야마 토비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서 배구화를 흔들어 보이는 스가와라 코우시도 보았다. 어떻게 저런 관계가 가능하지? 같이 배구화를 고른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오이카와는 3년 전, 카게야마 토비오와 선후배 관계였지만 그와 무엇을 함께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매번 귀찮게 이것저것 알려달라는 후배를 떼어놓기 바빴다. 빠르게도 쫓아오는 그에게 붙잡힐까, 잡아먹힐까 두려워 도망치는 데 급급했다. 즐거운 시간 따위 없었다. 조금도, 정말 요만큼도. 그런데 나와 똑같은 스가와라 코우시, 너는 왜 지금 웃고 있는 거지? 오이카와는 너무도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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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카와 토오루는 스가와라 코우시를 만나고 싶었다. 만나서 묻고 싶었다. 우리 같지? 라고. 재능을 가진 천재에게 치졸한 마음이 들었던 게, 비열한 마음을 품었던 게, 미움만 가득 가졌던 게 나뿐만이 아니지? 라고 묻고 싶었다. 그 질문을 떠올릴 때마다, 카게야마 앞에서 웃고 있던 스가와라 코우시가 함께 떠올랐다. 오이카와는 부단히 그 웃음에서 거짓을 찾으려 노력했다. 코치의 지적에 못 이겨 억지로, 감독의 부탁에 어쩔 수 없이 카게야마 토비오와 어울리며 플레이하며 웃던 자신을 그에게서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참 이상하게도 보이지가 않았다. 그날, 자신이 우연히 본 스가와라 코우시의 미소는 정말 순수하게 웃음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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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카와는 스가와라 코우시를 만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머릿속으로 종일 그와 자신을 겹쳐보고 비교하는 건 이제 의미가 없었다. 당사자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지 않는 이상 모두 제 생각일 뿐이었다. 연습이 없는 월요일, 집으로 가는 버스가 아닌 다른 버스에 올랐다. 버스 밖 풍경에서 점점 건물이 사라졌다. 대신 논밭이 나오고 우거진 나무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풍경 사이로 익숙한 교복들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검은 가쿠란, 카라스노 고교의 교복이었다. 그 교복을 입은 누군가를 떠올리자 속이 이상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도로가 비포장이라 그런지 멀미를 하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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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카와는 자신에게 닿는 호기심 어린 시선에 익숙하게 미소로 답하며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그 시선엔 완벽한 이방인인 저에게 경계태세는 찾아볼 수 없었다. 언젠가 마츠카와가 지나가는 소리로 "너, 참 편한 얼굴 가지고 있다."라고 했는데 새삼 그 말의 뜻을 알 거 같았다. 체육관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카라스노는 아오바죠사이에 비해 부지 자체가 작았다. 헤맬 필요도 없었다. 그저 코트에 배구화가 닿는 그 익숙한 소리를 찾아 걸으면 되었다. 그렇게 도착한 체육관, 열린 문 사이로 한창 연습 중인 배구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안에는 카게야마 토비오도 있었고 찾고 있던 스가와라 코우시도 있었다. 튄 공을 받기 위해 그가 달렸다. 플라잉 리시브. 무릎이 바닥에 쓸렸다. 그의 손목이 공을 받아냈다. 집중적인 연습이었는지, 같은 행동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스가와라 코우시의 무릎이 붉어졌다. 손목이 붉어졌다.
"오이카와상?"
오이카와는 그 붉은 손목에서 시선을 돌렸다. 땀에 젖은 카게야마가 당황한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놈이 물었다. 무슨 일이냐니-
"너 말고,"
너에게 볼일은 없고
"너."
오이카와는 어느새 이쪽을 보고 있는 스가와라 코우시를 마주하며 말했다. 일은 그에게 있었다. 나? 그가 조금 놀란 얼굴로 확인하듯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퍽 당황한 얼굴로 주장과 눈빛을 교환했다. 연습 이탈을 해도 되는지 그런 걸 묻는 듯했다. 끄덕이는 주장의 허락을 받고 그가 신을 갈아 신었다. 그리고는 스쳐 지나가며 짧게 말했다. "따라와."라고. 명령은 아니었지만, 오이카와는 그의 등을 따라 걸었다. 어느새인가 교정에는 주황빛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마 곧 순식간에 어둠이 떨어질 것이었다.
"무슨 일이야?"
빈 야구 연습장, 그 철조망을 등으로 지며 그가 물었다.
"아프지 않아?"
오이카와는 지금 가장 신경 쓰이는 걸 우선으로 물었다. 그건 카게야마 토비오를 뜻하는 게 아니었다. 붉게 오른 그의 손목에 대한 이야기었다. 자신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그가 웃으며 팔랑팔랑 손을 흔들어 보였다. "괜찮아, 이정도는 훈장이지." 소년다운 미소였다.
"설마, 손목 안부 물으려 온 건 아닐 테고. 무슨 일이야? 뭔가.. 좀 무서운데."
너랑 이렇게 대화할 사이 아니잖아. 그런 뜻을 담아 스가와라 코우시가 빙그르르 눈동자를 굴렸다. 불편해하는 게 단번에 느껴지는 행동이라, 빨리 끝내기 위해 이번엔 제대로 물었다.
"카게야마 토비오가 좋아?"
조금, 조금 더 괜찮게 말할 수 있었을 텐데. 어쩐지 그와 마주한 순간부터 머리는 뒤죽박죽, 버스 멀미는 아직도 남아있는지 울렁대 제대로 머리가 굴려가질 않았다. 덜렁 던져놓은 그 질문에 그가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다 이내 입꼬리를 가라앉히며 입을 열었다. 응, 좋아.
"대화는 조금 서툴지만, 그런 녀석은 우리 팀에 카게야마만도 아니고. 열심히 하는 것도 좋고, 열정적인 것도 좋아. 보고 있으면 배울 것도 많고 자만하는 법 없어서 좋아. 배구밖에 모르는 점도 좋고, 부럽고, 배울 게 많다고 생각해."
그 대답엔 조금의 거짓도 보이지 않았다. 솔직하고 깔끔했다. 오이카와는 어쩐지 기운이 빠졌다. 뭐야, 나랑 다르잖아. 이상하게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런 저를 뜯어보며 스가와라 코우시가 물었다.
"그러는 넌? 카게야마가 싫어?"
"싫어."
오이카와는 빠르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뜻도 분명했다. 예상 가능한 답 아니었던가? 제 대답에 그는 조금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키웠다. 이제 "왜?"라고 묻겠지. 거기에 대해서 뭐라 대답해야 할까. 하지만 그 고민은 별 의미가 없었다.
"언젠가 네 자리를 뺏길 거 같아서? 널 끌어내릴 거 같아서? 널 따라잡을 거 같아서?"
스가와라 코우시는 이미 자신의 이 치졸함을 알고 있었다. 다 들켜버린 것 같아 창피했다. 창피해서 얼굴이 뜨거워졌다. 뜨거워서 입술만 달싹였다.
"그러면 넌 계속 그렇게 네 앞을 막는 라이벌을, 모든 선수를 미워하고 싫어할 거야?"
할 말이 없었다.
"그런 거 피곤하지 않아? 누군가를 미워하는 거, 그만큼 자신에게 스트레스로 돌아오는 거잖아."
그러니까 적당하게 그만두는 게 어때? 이제 내년이면 애도 아닌데. 아직은 애인 주제에 그가 어른스럽게 굴었다.
"넌 괴롭지 않아?"
난 괴로웠어. 나는 너랑 같다고 생각했어. 적어도 너는 이런 날 이해해줄 거라 생각했어. 이 감정을, 답답한 마음을 다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어.
하지만 달랐다니, 오이카와는 자신의 목소리에 묻어나오는 간절함이 창피해 견딜 수가 없었다.
"괴로웠지. 그런데 난 열아홉이잖아. 이런 건 금방 이겨낼 수 있어."
그런 자신을 타이르듯, 부드러운 목소리가 교정을 울렸다. 그리곤 스가와라 코우시가 성큼 한 발 뻗어왔다. 조금 떨어져 있던 거리가 한 발, 가까워졌다.
"아마 열여섯이었으면 더 괴로웠겠네."
그리곤 손을 뻗어 멋대로 남의 머리를 토닥였다. 내년이면 어른이라며. 아이 취급하지 말라고 화를 내야 하는데, 어쩐지 울컥해서 그의 손을 치워내는 일 대신 입술을 물었다. 울음을 참는 제 입술 대신 노을의 빛을 담은 입술은 친절하게도 속삭였다.
"많이 힘들었겠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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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게야마를 향한 자신의 마음은 명백한 질투였고 시기였다. 그 마음은 응원받기엔 많이 못된 성질이었다.
하지만 사실은, 사실은 누가 이런 자신을 이해해주길 바랐다. 치졸하고 나약하고 욕심 많고 못났던 자신을. 비참하고 괴로운 이 마음의 정체를 같이 알아주길 바랐다. 그래서 스가와라 코우시에게 멋대로 동질감을 느꼈다. 나와 같다고, 그가 나와 같다고. 그게 얼마나 잘못된 행동인 줄도 모르고. 창피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정당하게 만들려 하다니. 오이카와는 부끄러웠다. 그리고 다음은 알 수 없는 온갖 감정들이 넘실댔다. 많이 힘들었겠다. 별거 아닌 위로였는데 그게 뭐라고 울컥해서 돌아가는 길, 버스 뒷좌석에 앉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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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와라 코우시는 오이카와 토오루가 아니었다. 그걸 깨닫고 나니 그에 대한 동질감도 동정심도 흔적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래, 그거로 이제 끝이어야 하는데, 끝이었어야 했는데.
"...오이카와?"
왜 네가 자꾸 생각이 날까.
오이카와는 멍하니 자신을 올려보는 스가와라를 내려보았다. 하교를 서두르는 다른 학생들의 시선이 자신의 뺨이며 콧등이며 이마에 들러붙는 게 느껴졌다.
"나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걸까?"
분명 집에 가는 버스에 올랐던 거 같은데. 왜 정신을 차리니 여기일까. 황당함을 담아 묻자 덩달아 황당해진 스가와라가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러게."
"...뭐?!"
"우선-"
오이카와는 자신이 맨 가방끈을 꽉 쥐였다. 그의 어깨, 그의 눈동자, 그의 손목, 그의 입술이 잊히지 않는 이유,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와 자신을 동일 선상에 놓고 싶었던 것, 그에게 이해받고 싶었던 이유 역시도 사실은 알고 있었다.
"친구부터 할래?"
그래서 그가 한 발, 자신에게 뻗어왔던 것처럼 따라 뻗었다.
열아홉이 할 만한 대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른이 할 만한 대사도 아니었다. 초등학생에게 어울리겠네. 아니면 유치원생. 어쨌거나 지금 자신에겐 어울리지 않는 대사라는 생각에 얼굴이 뜨거웠다. 확실히 이상한 제안이었는지 스가와라 코우시의 표정은 돌아올 줄 몰랐다. 그렇게 한참을 대답을 고르는지 말이 없던 그는 이내
"친구부터면, 그다음은 뭔데?"
아직은 못되고 약고 치졸한 자신을 간파했다. 글쎄, 오이카와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어른이 되면 알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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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부터라는 말로 내편, 애인, 가족까지 에스컬레이터 타려는 오이카와...
길어져서 글을 토막토막... 졸려서 퇴고는 나중에...
전력주제는.. 어깨 손목 입술
아 오이카와의 감정은 그냥 여기서만의 설정인 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