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스가] The Light
2016. 7. 19. 21:58









"생일 축하한다."
"생일 축하해요, 오이카와상!"
"생일 축하."

촛불을 불기 무섭게 축하 인사가 쏟아졌다. 불에 살짝 녹아내린 29라는 숫자 초를 바라보며 오이카와는 어색하게 웃었다. 29살이라니. 이젠 장난으로도 어른이 아니라는 우스갯소리도 하지 못할 나이가 되어버렸다. 선물이요. 날에 어울리지 않게 센치해지는 제 기분을 눈치챘는지 쿠니미가 서둘러 쇼핑백을 내밀었다. 유명 해외 브랜드의 쇼핑백. 크기나 포장으로 보아 향수일 게 분명해 보였다. 뒤를 이어서 킨다이치 역시 어색하게 웃으며 기다란 백을 건넸다. 이건 와인.

"우린 나중에 줄게."
"네가 제일 갖고 싶은 거로."

오랜만에 만난 후배들의 선물 공세에 옆을 돌아보자 차례대로 마츠카와 그리고 하나마키가 뻔뻔하게 빈손으로 대답했다. 옛날 같았으면 그 빈손이 섭섭해서 무어라 징징 대기라도 했을 텐데, 오늘은 그런 기분도 들지 않았다. 어차피 이 자리도 이와이즈미가 끌고 오지 않았으면 참가하지 않았을 터였다.

"뭐 갖고 싶냐?"

억지로 이 자리를 마련한 이와이즈미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예전이라면, 이 질문에 쏟아질 답은 여러 개. 눈으로 찍어둔 구두, 세일만 기다리고 있는 셔츠, 부드러운 가죽이 인상적이었던 가방, 최신식 노트북 등등. 이와이즈미가 해줄 수 있는 선에서 답을 고르는 건 아마 어렵지 않은 일이었겠지. 하지만 왜일까. 지금은 하나의 답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멍하니, 집에서 끌어 신고 나온 슬리퍼 속 제 발을 들여보며 그 답을 뱉었다. 아주 멍청한 대답인 걸 알면서도 뱉어 보았다.

"스가와라 코우시."

조금은 서글픈 목소리에 이와이즈미의 짜증 섞인 한숨이 터졌다. 너 진짜 이럴래? 마치 그렇게 몰아붙이는 듯한 숨이었다. "갖고 싶은 것을 물어봤잖아요. 오이카와상. 사람은 '것'에 해당하지 않는다고요." 킨다이치가 순식간에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우려 어색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그런 조건이라면 지금 자신이 떠올릴 수 있는 물건은 없기에 오이카와는 고개를 저었다.

"병신같이 굴지 마, 쿠소카와."

결국 이와이즈미가 화가 났는지 목소리를 낮추며 경고했다. 알았어, 그렇게 대답하고 웃으면 분명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분위기는 돌아올 텐데 그럴 기분이 나지 않았다. 애초에 생일 파티 따위 관심도 없었다. 하고 싶지도 않았다. 가장 축하받고 싶었던 사람에게 축하받을 수 없는데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런 기분으로 집에 틀어박혀 있던 자신을 끌고 나온 건 이와이즈미 하지메였다.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데려다 앉혀놓고 후배들까지 불러낸 건 자신이 아니라 이와이즈미 하지메였다. 그러니 아무래도 좋았다. 이딴 생일 파티는.

"에이, 왜 그래. 좋은 날! 자자 그만하고-"
"니가 헤어져 놓고 이렇게 청승 떠는 거 지겹지 않냐?"

하나마키가 중재하려 했지만 그만둘 생각은 없었는지 이와이즈미가 날카롭게 물었다.

"1년 넘게 청승 떨었으면 다 떤 거 아니야? 언제까지 이럴 건데? 이럴 거면 도대체 왜 헤어졌냐? 이렇게 깔끔하게 굴지 못할 거면 왜 그랬냐고, 쿠소카와."
"...어쩔 수 없었어."
"어쩔 수 없었다고?! 그래, 그렇다고 치자. 그래도 선택은 네가 했잖아!"
"..."
"배구랑 애인이랑 저울질하다가 버린 건 너잖아! 그래놓고 이러는 거 웃긴다고 생각 안 하냐?!"

쾅, 테이블 위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화를 참지 못한 그가 맥주잔을 내려친 탓이었다. 잔뜩 화가 난 그의 얼굴을 보며 오이카와는 차라리 잘되었다 싶었다. 안 그래도 누군가에게 비난을 받고 싶었던 참이었다.

"잘했어."
"그래, 잘 결정했어."

다들 그렇게 말했다. 자신이 스가와라 코우시와 이별했을 때, 모두 그렇게 말했다. 누구도 비난하지 않았다. 그래서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네가 잘못했다고, 좋지 못한 선택이라고, 멍청한 짓이었다고 말해주는 이가 한 명도 없으니 돌아버릴 것 같았다. 이래서야 마치, 우리의 사랑이 잘못된 거 같았으니까. 그래서 이와이즈미의 화가 분노가 그리고 비난이 오이카와는 기뻤다. 기뻐서 눈물도 나고 웃음도 났다. "야, 결국 오이카와 토오루가 미쳤나 보다." 마츠카와의 진지한 농담에 푸스스 웃음을 터트리며 오이카와는 테이블로 무너졌다.

"헤어지자."

고민과 걱정과 두려움의 무게와 달리 말은 아주 간단했다.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울고 울었던 것과 달리 정말로 간단하고 깔끔했다. 정적 속에 에어컨 소리만 작게 울렸다. 자신의 생일이라며 스가와라 코우시가 예약까지 해 준비한 카페엔 사람이 없었다. 유명 파티시에의 숍에서 주문했다는 케이크는 빛도 보지 못하고 상자째였다. 스가와라는 한참을 눈만 깜빡이더니 "농담하는 거야?"라며 웃었다. 그리곤 이내 "이런 농담, 진짜 재미 없어."라며 얼굴을 찌푸렸다.

"농담 아니-"
"재미없다고 했어, 오이카와."

오이카와란 호칭은 스가와라 코우시가 화가 났을 때 쓰는 신호였다. 그 신호를 무시하고 오이카와는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농담 아니야, 라고.
이 어려운 이별의 시작은 새벽에 걸려온 단 한 통의 전화 때문이었다. 열대야로 잠들지 못하는 자신을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에이전트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지금 이 시간에 무슨 일이냐는 자신의 질문에도 "지금 사무실로 와."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에이전트 실장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곤히 잠든 스가와라 코우시를 한 번 눈에 담고 서둘러 새벽을 달렸다. 프로 선수로 활동하면서 이렇게 긴급한 전화는 받은 적이 없었기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렇게 불안함을 품고 도착한 에이전트 사무실은 새벽임에도 모두 불이 들어와 있었다. 도착하기 무섭게 날아드는 것은 "왔어?"라는 인사가 아닌 서류 봉투였다. 안에는 언제 어디서 찍혔는지도 모를 사진들이 수십 장이나 되었다. 모두 스가와라 코우시의 사진이었다.


"누군지 설명 좀 해."


실장은 화가 난 목소리로 추궁했다. 오이카와는 웃으며 물었다. 이게 설명이 필요한 사진인가요? 라고. 그 뻔뻔함에 미쳤냐는 실장의 목소리가 공간을 쩌렁쩌렁 울렸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말로 설명이 필요한 사진은 아니었으니까. 자신의 차에 올라타는 스가와라 코우시, 자신의 귀에 속삭이는 스가와라 코우시, 자신의 아니 우리의 집을 오가는 스가와라 코우시, 자신의 품에 안긴 스가와라 코우시. 누군지 모르지만 똑똑한 자였다. 자신이 아니라 스가와라 코우시에게 따라붙은 것. 달라붙는 카메라도 시선에 예민한 저와 달리 평범한 그는 경계심이라는 게 없는 사람이니까.


"우선 돈으로 입막음은 했어. 필름도 모두 수거했으니 이 사진으로 문제 되진 않을 거야."
"그거... 다행이네요."
"다행? 이게 다행이라고? 오이카와, 이건 다행이 아니야!"
"..."
"한 놈만 있겠어? 애송이 협박법도 아는 사실을 기자들이 모를 거 같아? 너 이러다가 큰일 나."
"괜찮아요. 각오하고 있었어요."
"각오? 무슨 각오? 코트 위에서 야유 들을 각오? 라커룸에서 널 피하는 선수들을 마주할 각오? 비난받을 각오? 구단에서 알면 너 계약 해지 사유야. 알아? 커리어 끝내고 싶어?!!"
"...실장님-"
"세상이 변했지, 그래 많이 변했어. 그런데 아직 여긴 아니야. 오이카와. 네가 서 있는 이 나라, 몸담고 있는 세계는 아직 덜 변했다고."
"괜찮아요. 전 다 감당할 수 있어요."
"그래, 너야 괜찮다고 치자. 얘는? 얘는 괜찮데?"


그녀가 테이블에 흩어진 스가와라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물었다. 그녀의 손끝에서 사진을 치워내며 오이카와는 입을 다물었다.


"안 괜찮을 걸. 너를 향한 원색적인 비난, 반응 그거 같이 받아줄 수 있데? 그거 감당할 수 있데?"
"감당 안 시켜요. 그건 제 일이니까-"
"네 일이라고? 그럼 이 친구에 대한 건? 하루아침에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 자기 이름이 튀어나오고, 온갖 성희롱과 비난이 판칠 텐데 그것도 네 일이야? 얘는 상관없어?!"
"..."
"대중의 시선에 면역력도 없는 평범한 사람이 정말 이 상황을 버틸 수 있을 거 같아. 오이카와? 이 바닥에서 구르는 너도 매일 같이 경기 끝나고 올라오는 반응에 감당 못하는데?!"
"..."
"애인 다치게 하고 싶지 않으면, 정리해. 그게 옳은 거야."
"..."
"곁에 있는다고 그게 사랑은 아니잖아. 그것만 사랑은 아니잖아."


허튼소리.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실제로 입에 담지는 못 했다. 그녀의 말에 어느 정도 수긍하는 자신이 있었으니까. 곧 구단에서도 호출이 있을 거라는 실장의 말 대로, 다음날 연습 도중에 구단주 사무실로 불려갔다. 문제의 사진이 구단 쪽에도 도착했는지, 팀 매니저도 구단주도 설득하기 바빴다. 유능한 선수를 이렇게 잃고 싶지 않다. 그들의 결론에 오이카와는 웃었다. 자신의 편에 서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대단한 선수였지만 대단한 사람은 아니었다. 코드 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자유롭지 못한 계약 덕이었고, 지금 누리는 것은 모두 그 계약 위에서였다. 이걸 잃는 순간 오이카와는 대단한 선수조차도 아니었다. 대단한 선수가 아닌 오이카와 토오루에겐 스가와라 코우시를 지켜줄 어떠한 방패도 그리고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이별을 택했다. 가장 안전하게 스가와라 코우시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

"무슨 말이라도 좀... 해봐. 제발..."

스가와라 코우시는 황당해하다, 화를 내다, 결국은 슬퍼했다. 약 10년을 만났는데 그 시간 동안 보아왔던 스가와라 코우시의 모습 중에서 가장 엉망인 모습이었다. 몇 번이고 머리를 넘기는 손가락 끝은 떨렸고, 눈동자는 흔들렸다. 그런 그를 달래지 않으려 오이카와는 애를 썼다. 꽉 쥔 주먹을 더 쥐고 손톱을 박아 넣고 뒷 입술을 물었다. 그에게 항상 좋은 남자이고 싶었지만, 오늘만큼은 그래선 안되었다. 스가와라 코우시가 자신을 미워할 수 있게, 원망할 수 있게 나쁜 남자가 되어야만 했다. 금방이라도 울 거 같은 얼굴을 두고 오이카와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신이 벌인 일이면서도 참 현실감이 없어 웃음이 나올 거 같았다. 그런 자신을 스가와라가 급히 붙잡았다.

"너 이대로 가면, 나 울 거야. 입술도 마구 물어뜯고 손톱도 엉망으로 씹을 거야. 당장 다이치 부를 거야. 다이치 앞에서 울 거야. 속도 다 버리게 매운 거 잔뜩 먹고, 밤새도록 술 마시고 외박도 할 거야. 담배로 필 거고 청소도 안 할 거야. 회식이고 모임이고 다 나가서 첫 차 타고 들어갈 거고 다른 사람도 만날 거야. 너 지금 가버리면, 나 그럴 거라고!"

초조하면 입술을 물어뜯는 스가와라 코우시, 생각이 많으면 손톱을 엉망으로 씹어 대는 스가와라 코우시, 자신이 아니라 사와무라 다이치를 의지하는 스가와라 코우시, 매번 매운 거 먹고 배탈로 고생하는 스가와라 코우시, 연락도 없이 밤새도록 술 마시는 스가와라 코우시, 외박하는 스가와라 코우시, 어울리지 않게 담배를 문 스가와라 코우시, 청소도 안 하고 늘 어지러놓는 스가와라 코우시, 회식이며 모임이며 나가서 즐기느라 연락 안 되는 스가와라 코우시, 그래놓고 첫 차 타고 피곤한 얼굴로 들어오던 스가와라 코우시, 나 아닌 다른 사람 앞에서 웃는 스가와라 코우시, 그리고 우는 스가와라 코우시.
모조리 오이카와 토오루가 싫어하는,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스가와라 코우시.


그 협박을 들으며 오이카와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자신을 붙잡은 스가와라의 손이 마구 떨렸다. 가만히 그 위로 손을 겹쳤다. 꽉 잡아 주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떼어냈다. 등 뒤로 울음소리가 터지는 걸 알면서도 돌아섰다. 그렇게 나오면서 오이카와는 왜 이 상황이 현실감이 없는지 알아차렸다. 자신은 지금까지 스가와라 코우시를 단 한 번도 홀로 두고 나온 적이 없었다. 모르는 곳에 그를 홀로 둔 적도 없었다. 그토록 소중했던 사람이었다. 자신의 전부였다. 스가와라 코우시는 오이카와 토오루였다.


일방적인 이별 후, 마음은 조금도 정리가 되지 않았는데 관계는 빠르게 정리되었다. 스가와라 코우시만이 알고 있던 휴대폰 번호를 지웠다. 당연 기존에 사용하던 번호 역시도 바꾸었다. 함께 살던 집을 나와 새 아파트를 구했다. 짐은 사정을 모두 들은 이와이즈미가 대신 옮겨 주었다. 그리고 연습장으로 찾아온 사와무라에게 맞았다. "쓰레기 같은 새끼." 그의 말에 반박도 못하고 입만 다물었다.


엉망이 된 일상은 계속 엉망이었다. 겉으로는 멀쩡하게 돌아가는 듯 보였지만, 오이카와 스스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가슴에 구멍이 뻥 뚫렸다. 매일 같이 철철 피가 흘렀다. 그런데도 모두가 잘했다며 칭찬했다. 똑똑한 선택이라며 등을 두들겼다. 정말로?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그렇게 끊임없이 물으며 오이카와는 몇 번이고 무너졌다. 스가와라 코우시가 없는 자신의 인생이 온전하지 못할 거라곤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더 나빴다. 하루하루가 눈앞에서 까맣게 물들기만 했다. 죽어만 나갔다.

"언제 즈음 그만할래."

위로가 담긴 이와이즈미의 질문에 오이카와는 고개를 들었다.

"못해."

걔가 없는데 내가 어떻게 멀쩡하게 살아. 눈물이 후두둑 쏟아졌다.

"그럼 가서 다시 잡아. 잡혀 줄 거야. 스가와라."
"..안돼."
"왜!!"
"이번 일이야 돈으로 막았지만, 기자들에게 걸리면 돈으로도 안돼. 걘 그거 못 버텨. 나랑 낮에 데이트하는 것도 조심스러워하는 앤데, 절대로 그거 못 버텨."
"..."
"힘든 건, 나만이면 돼. 걘 안돼."

 미안, 오이카와는 쏟아지는 눈물을 손바닥으로 막으며 급하게 사과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스스로에게나 가엽고 안타깝지 남들이 보기엔 지치고 미련해 보일 게 뻔했으니까. 빈말로도 괜찮다는 소리 한 번 안 하는 이와이즈미와 말 없이 자리만 지키고 있는 이들에게 다시 사과한 후 오이카와는 일어섰다. 태워다 준다며 하나마키가 따라나섰으나 그냥 한없이 걷고 싶었기에 거절하고 슬리퍼를 끌었다.


평일의 늦은 저녁, 거리엔 차도 사람도 없었다. 침묵이 조용히 가라앉은 거리, 오이카와에겐 모든 게 죽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지익 지익 슬리퍼를 끌며 걷다 손목에 찬 시계를 바라보았다. 입고 있는 운동복과 어울리지 않는 고급 시계는 스가와라 코우시가 준 수많은 선물 중의 하나였다. 생일 선물이었는지,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는지- 그에게 받은 게 너무도 많아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선물이었다. 그 시계 속 바늘이 0시로 향해가고 있었다. 곧 자신의 생일도 끝이었다. 하루 종일 많은 사람들에게서 축하를 받고, 심지어 망쳐버리긴 했지만 파티도 열었다. 이만하면 충분한데, 생일이라 그런지 욕심이 생겼다. 가장 듣고 싶은 사람에게 축하 인사를 듣고 싶었다. 이기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아니 축하 인사가 아니라도 좋아, 그저 목소리라도, 목소리도 안된다면 숨소리라도, 잠깐이라도, 1초라도 좋으니까-


"..."


스가와라 코우시가 고팠다. 매일매일 그랬지만 지금은 더 그랬다. 텅 빈 구멍을 바람이 스쳐 허한 소리를 뱉었다. 오이카와는 윙윙대는 제 안의 소리를 들으며 휴대폰을 들었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를 아주 익숙하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눌러보았다. 머릿속으로 당장 끊으라는 소리를 무시하며 스피커에 가만히 귀를 가져다 댔다. 조금만, 정말로 조금만. 목소리만 듣고 끊으면 돼. 그러면


-"여보세요?"


돼.
그러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기계 너머로 들리는 그리운 목소리에 오이카와는 그러지 못 했다. 여보세요? 한 번 더 울리는 그 목소리에 참지 못하고 또 울음이 터졌다. 그 소리가 흘러 들어가기라도 할까 서둘러 입을 틀어막았다. 끊어줘, 제발 끊어줘, 코우시. 자신이 못하는 일을 바라며 기다렸지만 전화는 끊어지지 않고 침묵 속에서 계속 이어졌다. 그리곤 조용히 스가와라가 물었다.


-"내가 지금 네 이름을 부르는 게 편해, 아니면 그냥 모르는 척 끊어주는 게 편해? 뭐가 널 더 힘들지 않게 하는지 알려줘."


모르겠어. 대답 대신 오이카와는 고개만 저었다. 더는 버티고 설 힘이 없어 등을 둥그렇게 말아 앉았다. 한참을 말이 없던 스피커 너머로 다시 소리가 울렸다.


-"잘 지내?"


나는 그럭저럭. 스가와라가 조용히 말했다.


-"우리 헤어진 날, 나는 네가 다시 돌아올 줄 알았어. 그래서 계속 거기서 울었어. 너 나보다 먼저 일어난 적 없었잖아. 그래서 그날도 네가 다시 돌아올 줄 알고 계속 거기서 기다렸어."
"...."
-"그런데 넌 결국 안 왔고, 정리하러 온 카페 주인이 대신 달래줬어. 겨우 추스르고 나왔는데... 집으로 가는 게 무서웠어. 거기 텅 비어 있을까 봐. 그래서 일주일인가? 계속 여기저기 떠돌아다녔어. 회사 휴게실에서 잤다가, 호텔에도 갔다가. 그리고 겨우 용기 내서 집에 갔는데 네 짐이 하나도 없더라. 그래서 우리가 진짜 끝났다는 걸 알았지."


토오루, 하고 스가와라가 조용히 이름을 불렀다. 그가 부르는 제 이름은 여전히 따스했다.


-"나, 그대로야. 그 이후론 나 울지도 않았고, 입술도 안 물어뜯었어. 손톱도 말짱하고 다이치에게 조금 네 욕은 했지만.. 그래도 많이 찾진 않았어. 집에 들어가는 게 무서워서 처음 일주일은 외박했지만, 지금은 안 해.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많이 안 마셔. 회식이나 모임에도 잘 안나가. 가도 일찍 일찍 들어온다? 청소도 주말마다 열심히 해.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안 만났어. 나 안 변했어."


그리곤 그가 조용히 덧붙였다. 그래야 네가 미련이라는 핑계라도 대고 나에게 돌아올 수 있잖아,라고. 자신을 비난하고 미워해도 모자란데 스가와라 코우시는 다정했다. 더는 울음소리를 숨길 수 없어 오이카와는 있는 그대로 토해냈다.


-"그리고 아직 우리의 집에서 살고 있어."


쏟아진 울음은 주워 담으려 해도 쉽지 않았다. 들썩이는 어깨를 어쩌지 못하고 오이카와는 바닥으로 무너졌다. 좋아해, 좋아해. 말할 수 없는 고백을 울음으로 뱉어내며 휴대폰만큼은 추락하지 않게 꽉 붙들었다.


-"생일, 축하해."


이 말이 작년부터 정말 하고 싶었어.
가장 듣고 싶었던 이의 축하 인사와 함께 전화가 끊어졌다. 끊어졌다는 신호음만이 귓가에 맴돌았지만 오이카와는 전화를 끊을 수도 그렇다고 일어설 수도 없었다. 묵직함이 몸을 짓눌렀다. 스가와라 코우시와 자신의 미래의 무게였다. 함께 할 때에는 느껴지지도 않던 것이 혼자가 되니 너무도 잘 느껴졌다. 과연 이걸 내가 버텨낼 수 있을까? 코우시? 오이카와 토오루는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버텨내는 것보다 더 자신이 없는 건, 너 없이 살아가는 것. 오이카와는 천천히 허리를 일으켰다. 길에 가라앉은 고요를 온 몸으로 받아내며 눈을 감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누군가의 함성도 아찔한 플래시도 번쩍이는 코드도 아닌


"스가와라 코우시."


이 어둠 속에서 가장 빛나는 너.
여전히 그가 가장 빛났다. 어둠 속에서 빛을 택하는 건 당연한 일, 오이카와는 엉망으로 웃었다. 그 빛만 떠올리고 있으려니 지금까지 미처 자신이 도달하지 못 했던 것이 보였다. 아마 또 그를 울리게 될지 모르지만, 괜찮아. 이번엔 내가 달래줄 거니까.
오이카와 토오루는 천천히 일어섰다. 다 죽어나간 거리에 자신만이 숨 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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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썼던 이별의 날 같은 그런.. 이별?????? 을 오이카와 입장에서 한 번 써보고 싶었는데.. ㅋ..ㅋㅋ...

생일인데.........

생일 추카해.. 내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