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차 오이카와를 쓰고 싶었는데...... 이렇게 쓰는게 맞는지도 모르겠고.
살짝 쿠로스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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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휘 티스푼으로 식어가는 커피를 젓는 시야 사이로 불쑥 붉은 장미가 들어찼다. 눈앞의 어마어마한 장미 다발에 스가가 놀라 고개를 들자 언제 왔는지 오이카와가 서 있었다.
"이게 뭐야?"
"오다가 샀어. 받아."
퉁명스러운 스가의 물음에 오이카와는 당연하다는 말투로 그리 말했다. 그 대답에 스가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입술을 타고 한숨이 나왔다.
"이러지 마. 이러지 않기로 약속했잖아. 우리."
받을 수 없는 마음, 받을 수 없는 선물들. 스가에게는 오이카와가 건네는 모든 것이 이제는 부담스러웠다. 단호하게 거절하는 말에도 오이카와는 평온한 얼굴로 꽃을 거두었다. 아, 그래. 그랬지. 전혀 상처받지 않은 말투였다. 스가의 반대편의 의자를 빼 앉은 오이카와는 주인을 잃은 꽃다발을 테이블에 아무렇지 않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딸랑하고 울리는 벨소리와 함께 카페 문이 열렸다. 오이카와의 뒤로 보이는 익숙한 얼굴에 스가는 서둘러 굳어있던 얼굴을 펴고 몸을 일으켰다.
"쿠로오. 여기야."
스가를 찾아 두리번거리던 시선이 자신을 부르는 이름에 다정하게도 와 박혔다. 서두르는 발소리에 오이카와가 물잔을 아득 잡는 것을 눈치챘지만 스가는 애써 무시했다.
"미안, 내가 늦었지. 오래 기다렸어?"
"아니, 나도 막 왔어. 오이카와도 방금 왔고."
"다행이네. 잘 지냈어요? 그쪽은?"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풀러내며 쿠로오가 물었다. 방금 전까지 싸늘하게 굳어있던 얼굴을 싹 지워낸 오이카와가 "그럼요, 저는 항상 잘 지냈죠."라며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띄워냈다. 스가를 먼저 앉히며 자리에 앉던 쿠로오는 다가온 카페 직원에게 테이블에 놓인 커피와 같은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는 그 곁에 놓인 장미꽃을 바라보았다.
"꽃..?"
"아, 있다가 마키짱이 온데."
스가가 서둘러 변명하듯 오이카와의 애인을 언급하며 거짓말을 뱉었다. 다행히 크게 의심하지 않는지 자리에 앉는 쿠로오를 보며 손에 땀에 차는 기분을 만끽했다. 숨 막힐 정도의 긴장감에 질식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억지로 웃었다. 정적이 쌓인 테이블 위, 스가는 어디서부터 이 관계를 고쳐나가고 바로잡아야 할지 조금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오이카와와는 꼬박 4년을 만났다. 먼저 사랑에 빠진 것도, 매달린 것도, 고백한 것도 모두 스가였다. 주변에 항상 사람이 많고 그중에서도 여자가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전하는 데에, 그를 붙잡아 곁에 두는 데에 급급해 모든 것을 무시했다. 그래서 함께했던 그 시간동안 오이카와가 낯선 향수를 달고 자신을 품에 안아도, 그의 공간에 낯선 손길이 다녀간 흔적을 발견해도 스가는 모른 척 외면했다. 사귀는 것도 만나는 것도 어쨌든 자신이라며 위로하고 어리석은 합리화를 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쌓여 무너졌다. "헤어지자." 스가는 오이카와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 그래도 조금은 이유라던가 거절을 담아주길 바랬다. 하지만 단지 <그래>라는 대답 하나로 아슬했던 관계가 흔적도 없이 녹아내려 사라졌다. 그렇게 스가가 버텨내던 4년이라는 시간이 간단한 대답으로 끝나버렸다.
하지만 놀랍게도 끝나버린 줄 알았던 관계는 우습지도 않은 <친구>라는 말로 포장되어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진짜로 무슨 용건이야? 코우시는 내게 애인 소개시키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고, 덧붙여서 그쪽은 나 별로 안좋아하잖아."
오이카와가 뒤늦게 주문한 에이드 잔의 스트로우를 저으며 물었다. 상대방을 그쪽이라고 칭하는 표현에 스가가 인상을 찌푸리며 뭐라 입을 열려 했으나 그보다 쿠로오가 빨랐다.
"네, 별로 좋아하지는 않죠."
똑같이 받아치는 날이 선 대답에 스가가 한숨을 쉬며 쿠로오를 돌아보았다. 그러지 마. 작게 속삭이자 뻔뻔하게도 내가 뭘? 이라며 모른채를 한다. 이러다 둘이 테이블 사이로 으르렁 거릴 것이 뻔했기에 스가는 서둘러 입을 열어 오늘의 용건을 뱉었다.
"우리, 영국에 가기로 했어."
대뜸 던져진 그 말에 오이카와가 제대로 못 들었는지 "뭐?"라고 반문했다.
"회사에서 해외 지부로 발령이 나서 스가를 데리고 가기로 했어요. 영국으로."
"아, 좋은 소식이네. 그래서 언제 돌아오는데?"
"모르죠. 기본으론 2년 정도고 거기서 자리 잡으면 계속 지낼 겁니다."
마치 진짜야? 라고 묻는 듯한 오이카와의 눈빛에 스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그렇게 정한 건데? 날카로운 말투에 스가가 살짝 마른 입술을 축였다. 화가 났다. 이 대화에 오이카와가 화를 낼 이유는 조금도 없었음에도 그는 화를 내고 있었다.
"우리가 언제 그렇게 정하든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있지. 내가 코우시의 가장 친한 친구니까."
"헛소리 집어치우시죠."
"진짜 마음에 안 드네. 코우시, 말해봐. 진짜 저거랑 영국 갈 거야?"
"...쿠로오를 그런식으로 부르지 마. 그리고 진짜야. 나 영국 갈 거야."
단호한 스가의 말에 오이카와가 살짝 입을 열었지만 이내 굳게 다물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카페에 흐르는 조용한 음악의 박자에 맞춰서.
"가지마."
이윽고 겨우 열린 입에서 나온 말은 그것이 전부였다. 가지마. 참 애달픈 목소리였다. 스가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가지마- 저 대답을 원했던 자신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헤어지자는 말에 적어도 저런 대답을 원했는데 오이카와는 늘 늦었다. 애정이라는 감정도, 스가가 원하던 대답도. 모든 것이.
"... 나 잠깐 화장실 좀."
머리가 아팠다. 지끈지끈하게도 아팠다. 다녀오라는 쿠로오의 말에 스가는 서둘러 테이블을 벗어났다. 고작 저런 연극에 속아 미련을 놓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도 미웠다. 그리고 그 꼴을 쿠로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말 한마디에, 행동 하나에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꼴 사나운 모습을 쿠로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서둘러 화장실로 들어선 스가는 세면대를 붙잡았다. 커다란 거울속에 자신의 얼굴을 한 추한 남자가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안돼. 흔들리지 마."
주문을 외듯 스가는 자신에게 말했다. 오이카와의 저 변덕에 넘어가지 마. 넘어가지 마...
꽉 대리석 타일을 쥐며 스가는 몇 번이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그런 등 뒤로 구두 소리가 울렸다. 천천히 고개를 들자 언제 따라 왔는지 오이카와가 입구 벽에 붙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후- 스가는 크게 숨을 내쉬며 굽어있던 허리를 폈다.
"쿠로오는?"
"마키가 왔거든."
자신의 애인의 이름을 대는 오이카와가 뻔뻔하게 말했다.
"먼저 나가볼게. 쿠로오 곤란하겠다."
호감 없는 상대의 친하지도 않은 애인과 같이 기다리고 있을 쿠로오를 떠올리며 스가가 오이카와를 스쳐 나갔다. 아니 정확하게는 나가려했다. 두터운 팔이 강하게 허리를 잡아당기지만 않았더라면. 오이카와의 팔에 붙잡혀 밀어지듯 차가운 바닥에 등이 닿았다. 그리고 따뜻한 손이 급히 뺨을 붙잡아 왔다. 그늘로 가려지는 시야 사이로 서투른 입술이 닿았다. 밀어내는 스가의 손에도 불구하고 오이카와는 강하게 얼굴을 붙잡은 채로 입안을 어지럽혔다. 망할 자식! 스가는 목 안으로 욕을 삼키며 발로 오이카와의 구두 위를 밟았다. 그제야 이 우습지도 않은 입맞춤이 끝이 났다.
"뭐하는 짓이야?"
"가지마."
"그만해. 오이카와."
"가지마 코우시."
애달픈 그 목소리에 스가는 인상을 찌푸리며 오이카와의 어깨를 밀어 떨어트렸다. 상처받은 그 눈을 피하지 않은 채로 입을 열었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
"가지 말라고? 그 이야기를 왜 이제서야 하는데?"
"..."
"내가 가장 원하던 순간에는 고작 <그래> 그 한마디로 끝을 낸 주제에 왜 이제와서 이러는데?!!"
공공장소에서 소리를 크게 내면 안 된다는 기본 상식을 떠올리면서도 스가는 점점 화를 담은 자신의 목소리를 눌러 죽이지 못했다.
"너는 나에게 가지 말라고 할 자격 없어. 이제 넌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니까. 친구? 그 우스운 관계로 네가 내 연애사에 끼어들어 망쳐놓는 것도 지긋지긋해."
"네가 이상한 놈들만 만나니까 그런 거잖아. 특히 저 쿠로오 테츠로가 제일 별로야."
"쿠로오를 그런식으로 말하지 마."
"둘이 영국 가서 뭘 할 건데? 유럽에서 신혼이라도 차릴 셈이야? 사귄 지 니들 아직 1년도 안 되었잖아. 그런데 외국에 가서 같이 산다고? 거기서 결혼이라도 할거야?"
"..."
"그게 네가 꿈꾸던 거야? 어? 그래서 저 녀석이 이루어준데?"
"그래!!"
스가가 한 번 더 소리를 내질렀다.
"그래, 그럴 거야. 결혼이든 뭐든 쿠로오랑 영국 가서 지낼 거야. 그게 도대체 너랑 무슨 상관인데? 내가 꿈꾸던 거냐고? 그래. 내가 꿈꾸던 거야. 다정하고 나를 생각해주는 연인. 질리도록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해주는 연인. 그게 뭐가 나빠? 내가 많은걸 바라는 거야? 당연한 거잖아! 사랑하는 상대에게 확인받고 싶은 게 당연한 거잖아! 그걸 마치 웃기지도 않은 농담처럼 취급하지마!!"
"...."
"네가 나에게 못 해줬다고 해서, 그런 게 불가능하다는 것처럼 이야기 하지 마."
절대로 다시는 오이카와 토오루로 인해서 울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던 것도 같은데 목소리가 떨려왔다. 누군가 조금이라도 자신을 툭 건드리면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예감에 스가는 고개를 들어 서둘러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런 나도 좋다고 했잖아."
그런 스가를 보며 오이카와가 조용히 말했다.
"이런 나도 좋다고... 네가 먼저 말했잖아. 이런 나라도 괜찮다고 곁에 있겠다고 먼저 네가 그랬잖아!!"
"그건 내가 멍청해서 그랬어."
"..."
"내가 적어도 너를 변화시킬 줄 알았거든. 내가 너를 변화시킬 줄 알았어. 그 착각으로 4년을 버텼어. 그런데 생각해봐. 20년 넘게 그렇게 이 사람 저 사람 만나 온 오이카와 토오루를 내가 무슨 수로 바꿔?"
"코우시..제발..."
"네가 잠결에 다른 사람 이름을 부르고, 다른 사람과 만난 후 나를 만나러 나타나고, 다른 사람에게 준 선물을 나에게 똑같이 건네도! 나는 내가 너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어. 그렇게 내가 멍청했다고. 그랬던 과거가 죽고 싶을 정도로 창피하고 가여우니까 .. 내가 너를 좋아했다는 그런 이야기는 이제 그만해. 나 잊고 싶어."
좋았던 기억도 분명히 있 을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무너진 시간의 틈에서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만한 것들을 스가는 찾아내고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타나질 않았다. 그런 시간이었다. 그런 감정이었다. 그런 건 누구라도 떠올리고 남기고 싶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입안으로 겨우 울음을 참아내는 스가를 보며 오이카와가 조심스레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으려 몸을 뺐다. 저 손에 닿으면 잡힐 것 같았다.
"내가 잘못했어."
"그만해."
"좋아해."
"그만하라고 했어."
"원하는 게 이런 거라면 해줄 수 있어. 좋아해, 사랑해, 가지마. 네가 원하는 게 이런 거라면 나도 해줄 수 있다고!!"
"..싫어."
스가는 천천히 눈을 손바닥으로 누르며 말했다.
"이젠 싫어. 그러니까 그만해."
고개를 저었다. 제발 그만해주기를 바랬다. 자신을 바라보는 저 눈도, 좋아한다고 말하는 저 입고 모두 보고 싶지 않았다. 저 연극에, 말에 속아 넘어가면 분명 자신은 또 무너질 것이 분명했다. 더이상 사랑하고 싶지 않았다. 사랑받고 싶었다. 누구라도 좋으니 사랑받고 싶었다. 단지 그 뿐이었다. 그리고 오이카와는 그러지 못했다. 스가는 더는 일방적인 감정으로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그랬기에 저 말에, 저 손에 붙잡힐 수 없었다. 그렇게 다짐하며 스가는 겨우 눈물을 삼키고 오이카와를 지나쳤다. 더이상 오이카와는 자신을 붙잡지 않았다. 그게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펐다. 추한 미련이었다. 가여운 미련이었다. 그렇게 추스르지도 못한 마음을 안고 밖으로 나오자 언제부터 있었는지 벽에 기대 서 있던 쿠로오가 천천히 몸을 세웠다. 그리고는 말없이 내미는 그의 손에 스가는 서둘러 다가가 그것을 붙잡았다. 단단한 손이 꽉 잡혀 왔다.
"울지마. 울고 싶으면 비행기 타고 나서 울어."
"..."
"그래야 내가 안심할 것 같아."
조용히 닿는 그 목소리에 스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자신의 사랑은 끝났다.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었다. 언제 챙겨왔는지 자신의 외투까지 들고 있던 쿠로오는 카페가 아닌 밖으로 향했다. 스가는 그 단단한 손에 이끌려 그저 걸었다. 그렇게 오이카와를 떠나는 길, 복도의 문 너머로 보이는 아까의 그 테이블에는 또 다른 피해자가 장미꽃을 안고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잠시나마 자신의 것이었던 그 꽃을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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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남친이 쿠로오인 이유는
원작에서 오이카와가 모르는 사람으로 설정하려다보니 그냥 얻어 걸림.
똥차처럼 구는거 보고 싶어서 썼는데 1도 모르겠다. 사실 기분이 우울해서 아무것도 안써진다.
흐규흐규 그렇다고 잘 써진 날이 있던것도 아니지만^^.. 뻔뻔하다. 나 새끼..
치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