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띵, 음악이 되지 못하는 소리가 공간을 가득 울렸다. 그저 튕기는 것에 지나지 않는 그 소리를 들으며 오이카와는 누워있던 소파에서 고개를 꺾었다.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니 벌써 8시 15분을 향해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맛층, 언제까지 치고 있을 거야?"
평소라면 진즉 귀가했을 시간, 라멘을 쏘겠다는 마츠카와 잇세이의 말에 속아 배구 연습이 끝나기 무섭게 그를 따라 연습실에 따라왔으나 라멘도 없었고 제대로 된 음악도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먼저 가겠다는 하나마키와 이와이즈미를 따라나서는 거였는데. 라멘 한 그릇에 넘어간 자신이 한심해지는 순간이었다.
"지루하면 너도 치지그래?"
"난 기타 못 치잖아."
"요즘 여자애들은 운동하는 남자보단 음악 하는 남자를 멋있게 생각한다더라."
누가 그래? 어이가 없어 묻자 녀석이 픽 웃으며 "내가 그래." 라며 우습지도 않은 대답을 내놓았다. 물론 여자아이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 시작한 운동이라기엔 모두가 너무도 진지했던 터라, 말도 안 되는 말에 화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띵띵 쳐대면 없는 인기도 다 사라지겠다."
"유카는 좋다던데. 기타만 잡고 있어도 폼 난다고 일단 들고 있으래."
"...유카가 누구야?"
시답지 않은 농담에 시답지 않게 받아치다 튀어나온 생소한 이름에 오이카와는 절로 인상을 구겼다. 유카라니, 자신이 알기론
"네 여자친구 이름 마유미아니었어?"
마유미였는데. 옆 반의 양 갈래 한 여자아이. 몇 번 배구부 연습이 끝나길 기다리는 모습을 보기도 했고 점심시간에 둘이 도시락을 펼쳐 먹는 것도 봤는데.
"아, 새 여자친구."
똑똑하게 기억나는 얼굴을 언급하며 묻자 마츠카와가 씩 웃으며 기타를 내려놓으며 답을 내놓았다. 새 여자친구라니, 마유미와 사귄 지도 한 달이 아직 안 지난 걸로 아는데 벌써 새 여자친구라니.
"와, 맛층 너 진짜 죄 많은 남자구나."
쉬지 않고 연애하는 타입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빠른 환승까지 할 줄은 몰랐기에 오이카와는 순수하게 감탄하며 말했다.
"아니지, 나는 그래도 '선택'이라는 걸 하잖아. 진짜 죄 많은 남자는 누구도 선택하지 않는 오이카와 토오루지."
"내가 뭘?"
"등하굣길 기다리는 여자애들, 배구부 연습 시합 따라다니는 여자애들, 쉬는시간 점심시간 너 불러내는 여자애들, 엊그제 너 따라다니며 사탕 준 여자애들. 걔들에게 꿈과 희망만 줄 뿐 누구도 선택하지 않잖아."
자신이 언제 꿈과 희망만 줬다고? 무슨 디즈니랜드도 아니고. 어이가 없어 누워있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뭐, 근데 그건 어쩔 수 없나?"
하지만 자신이 무어라 따지기도 전에 마츠카와가 정정했다.
"오이카와 토오루에게 꿈과 희망은 따로 있으니까."
"내 꿈과 희망이 뭔데?"
"왜, 있잖아. 아침에 우리랑 같은 전차 타는 샐러리맨."
갑자기 툭 튀어나온 화제에 부러 쓰고 있던 인상이 절로 풀려나가는 게 느껴졌다. 마주하고 있던 마츠카와 역시도 보였는지 "너 진짜 그 사람 이야기만 나오면 표정관리 안 되는구나?" 하고 지적했다. 그 말에 아니라고 부정할 틈도 없이 웃음이 세었다.
매일 오전 배구부 연습을 위해 서둘러 타는 전차에서 만나는 샐러리맨, 오이카와는 몇 달 째 그를 좋아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매일 보는 얼굴이라 눈에 익었고 그다음에는 그 눈에 익은 얼굴을 쫓기 바빴다. 이름도 나이도 정확한 직업도 모르지만, 어느새인가 저도 모르게 좋아하고 있었다. 적당하게 핏되는 정장 차림에 손에 꼭 쥔 서류 가방. 거기서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계절에 맞게 싱글 코트를 걸쳤느냐 걸치지 않았느냐 정도일까. 항상 깔끔하고 단조로운 모습. 그 모습이 그를 완전한 어른이라 알려주고 있었지만, 얼굴만 보면 아직 제 또래처럼 보이기도 했다. 거기다 매일 뭐가 그리도 신기한지, 적당한 자리에 앉아 이리저리 전차를 둘러보는 모습을 보면 호기심 가득한 아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매일 같은 풍경이 지겨울 법도 한데 그는 항상 즐거워 보였고 그런 그를 보고 있으면 오이카와 역시도 즐거워졌다.
그러니, 뭐. 마츠카와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오이카와 토오루의 현재 꿈과 희망은 아침 전차 안, 그 샐러리맨이었다.
"그나저나 엊그제 밴드 빌려주고 어떻게 됐어?"
"아무 일도 없었어."
엊그제 전차에서 있었던 작은 소동 아닌 소동을 언급하며 묻는 마츠카와의 말에 오이카와는 금세 풀어졌던 얼굴을 굳히며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와 다름없던 아침, 7시 45분 즈음 그가 사는 역에 여느 때처럼 전차가 도착했지만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 월요일이라 서둘러 출근했나 보다. 하나마키의 확인 사살에 절로 우울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잠깐만요!!!" 라는 목소리가 울린 것은. 요란한 구두 소리와 함께 드디어 그가 눈에 들어왔다. 급하게 계단을 뛰어내려오는 모습에 오이카와는 저도 모르게 기둥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벌써 주말 이틀 동안 그를 보지 못 했다. 오늘 이대로 그를 이 전차에 태우지 못한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순간이 또 날아갈 터였다. 그래서 정신없이 달려오는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치익,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그의 뻗어진 팔을 붙잡았다. 구겨지는 정장과 함께 잡히는 팔은 생각보다 얇아서 세개 쥐지도 못 했다. 그렇게 훅, 그를 당겨 전차에 태웠다. 분명 금방 다음 전차가 올 테니 무리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지만, 오이카와는 무리하고 싶었다.
"하...아..하...감..감사합.."
아슬하게 세이프. 무릎을 쥐고 숨을 고르게 내쉬려 노력하며 그가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아침부터 무리하게 뛴 탓인지 텁텁하게 터져 나오는 호흡에 그의 목소리가 뚝 끊기고 말았다. 거기다 붉게 물든 얼굴. 괴로운 모양이었다. 물이라도 있으면 건네고 싶었으나 자신에게 있는 거라곤 집 앞 근처에서 기다리던 여자아이들에게 받은 사탕이 전부였다. 사탕 같은 건 더 괴롭겠지?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괜찮아요?"
라는 말 말고는 줄 게 없었다. 도대체 전차에 왜 자판기는 없는 거야. 애꿎은 철도 시스템을 씹으며 묻자 그가 두어 번 고개를 끄덕이곤 서둘러 자리를 찾아 움직였다. 멀어지는 그의 정장 바지 사이로 붉게 물든 양말이 눈에 들어왔다.
"아, 달리다 까졌나 보다."
저만 본 건 아닌지 앉아있던 이와이즈미 역시 지적했다. 너흰 보지 마. 그의 상처가 제 상처도 아닌데 절로 발이 시큰해지는 감각. 그 감각을 느끼며 서둘러 세 사람의 시선을 쇼핑백과 가방 그리고 몸으로 막아섰다.
"기회다, 쿠소카와. 가서 번호를 따."
"뭐?"
"그래, 말도 걸었겠다 아는 척해봐."
"안돼, 미쳤어?"
"나 밴드 있다. 이거라도 주면서, 말 걸어봐. 얼른."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 굴며 버티고 서있었건만, 쪼르르 앉은 세 사람이 저보다 더 호들갑을 떨었다. 심지어 하나마키는 제 주머니에서 다 구겨진 밴드 하나까지 쥐며 재촉했다. 싫어, 절대로 싫어.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거나 괜한 친절이라며 그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오이카와는 완강하게 버텼으나, "오늘 화이트 데이잖아. 사랑은 이런 날 이루어지는 거지." 라는 마츠카와의 말에 저도 모르게 홀랑 넘어가 밴드를 쥐고 말았다. 하지만 쥐기만 했을 뿐, 좀처럼 타이밍을 잡기 어려웠다. 가서 다시 말을 걸기에도 이상했고 대뜸 밴드만 전해주는 것도 이상했다. 그렇게 속으로 발만 동동 구르는 사이, 그가 항상 내리는 역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울렸다.
"야 쿠소카와, 우물쭈물하다가 기회 날린다."
"알아! 아는데...!!!"
아는데 뭘 어떻게 하라고! 그를 전차 안으로 잡아끌고, 괜찮으냐 말을 건 것은 정말로 오늘을 아예 놓쳐 버릴까 하는 마음에 눈이 멀어서 벌인 사고와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도 있었고 모레도 있었다. 오늘 그냥 말 한 번 섞어 본 걸로 만족해도 되는 게 아닐까? 이걸로도 오늘 하루는 그냥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결심하며 포기하려는 찰나, 그가 자신을 스쳐 지나갔다. 오이카와는 열차에서 내리려는 그를 붙잡지도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오, 멍창한 새끼."
그 꼴이 답답했는지 툭, 앉아있던 이와이즈미가 가볍게 운동화로 정강이를 찼다. 아파, 왜 그래! 그렇게 외치려던 입에서
"저기요."
라는 말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갔다. 다행히 그 말은 우르르 내리는 다른 샐러리맨들 틈에서 제대로 닿았는지, 밀려 내려버린 그가 저를 돌아보았다. 막상 불렀는데 어떻게 하지? 아주 짧은 시간, 눈만 깜빡이고 있자 답답했는지 하나마키가 멋대로 밴드를 쥔 손에 무언가를 쑤셔 넣었다. 사탕이었다.
"이..거요."
서둘러 문이 닫힐까 그리고 겨우 만들어낸 기회를 날릴까 그에게 밴드와 사탕을 내밀었다. 미친놈이라고 오해하면 어쩌지? 이상한 눈으로 저를 보면 어쩌지? 거절하면 어쩌지? 온갖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그러다 결국엔 차라리 열차 문이 닫혀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불안을 가라앉히듯 그가 손을 내밀었다. 작아 보이고 보드라워 보이는 하얀 손에 아침의 빛이 내려앉았다. 미친, 이거 청춘 영화 한 장면 같아. 그런 허튼 생각을 하며 오이카와는 그의 손에 조심스럽게 사탕과 밴드를 내려놓았다.
"오늘도 힘내세요."
그리고 용기를 냈다. 용기를 내는 김에 한 번 더
"내일 또 만나요."
내보았다.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다.
물론 문이 닫히고 시야에서 그가 사라지기 무섭게 전차 바닥에 쪼그려 앉았지만.
그게 바로 엊그제의 일. 그리고 어제, 오늘. 오이카와는 더 두근대는 마음으로 전차에 올랐으나 그를 만날 수 없었다. 정확하게 7시 45분에 그가 사는 역에 전차는 도착했으나 이번에는 잠깐만요, 라는 목소리도 땅을 울리는 구두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니 말 그대로 아무 일도 없었다.
주말도 아닌데, 왜 전차에 타지 않았을까. 그런 질문을 담아 마츠카와를 바라보았으나 그는 지잉, 울려대는 제 휴대폰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이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매정하게 말했다.
"미안, 유카 온대. 라멘 나중에 먹자."
라고.
매정하고 또 매정한 말이었지만, 잊고 있던 어제의 아침 텅 빈 플랫폼을 떠올리니 저도 모르게 입맛이 뚝 사라진 참이라 오이카와는 별 불만 없이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미안해! 나중에 곱빼기로 쏠게! 등에 대고 마츠카와가 외쳤지만, 대꾸할 기분도 들지 않았다. 털레털레 연습실을 나오자 짙게 깔린 어둠이 저를 반겼다. 저녁을 걸렀는데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배는 고프지 않았으나 마음이 고팠다. 애써 잊고 있던 어제와 오늘 아침을 떠올리니 더더욱 그랬다.
"주지 말걸.."
분명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한 거야, 그래서 다른 전차를 타는 거야, 나를 피해서. 그게 아니고서야 주말도 아닌데 그를 이틀이나 전차에서 보지 못한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아악!!"
주지 말 걸!! 뒤늦은 후회를 하며 오이카와는 마구 자신의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렸다. 뒤늦은 후회라도 했으니 누군가 가엽게 여겨 타임머신이라도 만들어줬으면 하는 심정이 들었다.
"이렇게 인류와 과학이 발전했는데 타임머신이 없다는 건 말도 안 돼."
내가 반드시 찾아낼 거야. 중얼중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머리도 거르지 않고 뱉으며 역으로 향했다. 한번 가라앉기 시작하는 기분은 좀처럼 다시 살아나질 않아 멍하니 빈 플랫폼에 앉아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8시 45분에 들어온다는 다음 전차의 안내를 들으며 고개도 숙였다. 내일 아침도 그가 서있어야 할 곳에 또 그가 보이지 않는다면 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애타게 누군가를 그리고 상상하고 떠올리고 기대하고 바라는 건 처음이라 좀처럼 마음이 돌아오질 않았다. 분명 방금까지 마츠카와와 그녀의 여자친구들에 대해 떠들 때에는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훅 떠올리고 나니 멈춰지지가 않았다. 원래 누구를 좋아한다는 건 이런가? 이렇게 불쑥 튀어나와 사람을 괴롭히고 힘들게 하고 슬프게 하고? 다들 어떻게 이런 걸 잘 해내는 거지. 오이카와는 다시 마츠카와를 떠올렸다. 걔는 별로 안 힘들어 보이던데.
"아, 모르겠다."
어차피 고민해도 답은 나오지 않는 질문이었다. 열차가 들어온다는 알림판에 불이 깜빡이는 것을 확인하며 오이카와는 천천히 의자에 붙였던 엉덩이를 떼어냈다. 노란 안전선 뒤에 서서 가만히 제 신발의 앞 코만 바라보았다. 자신이 엉망으로 헝클어트린 머리를 달려온 열차가 한 번 더 엉망으로 흐트러 놓았다. 치익,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내리는 사람들을 피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사람들이 다 내리고 나서야 전차에 올랐다. 퇴근 시간과 겹쳐 그런지 자신이 늘 하교할 때 타고 다니던 전차의 풍경과는 많이 달랐다. 약주라도 하셨는지 붉게 얼굴이 오른 샐러리맨들과 손잡이를 꽉 붙잡고 선 오피스 레이디들 그리고 삼삼오오 모여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시시덕대는 대학생들과
"어..."
자신의 꿈과 희망. 빈자리를 찾아 쓱 훑던 오이카와는 반대편 문 입구에 서있는 익숙한 얼굴에 저도 모르게 벙찐 소리를 내었다. 귀에 이어폰을 꼽고 기둥에 기대 있는 그는 요 며칠 나타나지 않아 자신을 괴롭게 했던 이였다. 도대체 어디서 뭘 했어요? 그리 따져 묻고 싶어 울컥했으나 제 괴로움보다 그의 얼굴에 깔린 피곤함이 더 짙어 보여 오이카와는 눈썹 사이에 절로 지었던 인상을 풀었다.
그나저나, 그가 일하는 역은 더 가야 나오는데 왜 여기 먼저 타고 있는 걸까. 외근이라도 나갔다 바로 퇴근하는 길인가? 아니면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길? 그보다 가서 말을 걸어도 괜찮을까.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는 게 아닐까? 아니 자신을 기억하기는 할까? 온갖 궁금증이 머릿속을 헤엄쳐댔다. 일단은 손잡이를 잡기는 했으나 그의 곁으로 가고 싶어 위치도 힘을 주고 선 다리도 어정쩡했다. 에라 모르겠다, 설마 엊그제 일인데 잊어버리진 않았겠지. 이틀 동안 보지 못 했던 마음을 참지 못하고 오이카와는 용기 내어 발을 뻗었다. 그리고 사람들 틈을 파고들어 그가 기대 선 기둥을 잡는 순간, 덜컹하고 크게 차가 흔들렸다. 그 흔들림에 기둥에 기대 있던 그의 몸도 같이 흔들렸다. 아니 정확하겐 흔들렸다기보다는 중심이 무너졌다. 자신의 품으로.
"괜찮아요?"
심장이 쾅쾅 울렸다. 제 가슴팍에 쏟아진 그의 몸을 잡지도, 안지도 그렇다고 붙들지도 못하고 오이카와는 기둥을 잡은 손으로 중심을 버텼다.
"아, 죄송합...어?"
많이 놀랐는지 그가 서둘러 떨어지며 고개를 들었다. 다 뱉지 못한 사과의 말과 함께 동그랗게 뜬 눈을 보고 있으니 오이카와는 저도 모르게 풀어진 웃음이 나왔다. 아, 날 기억하고 있구나. 안도감이 흘렀다.
"또 만났네요."
드디어, 라는 앞에 붙이고 싶은 말은 간신히 참았다. 어디서 살짝 술이라도 하고 들어가는 길인지 목과 귀까지 붉게 달아오른 그가 살며시 웃으며 끄덕였다. 그 웃음에 오이카와는 저도 모르게 꽉 기둥을 쥐였다. 참, 이게 뭐라고. 방금까지 우중충했던 마음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제 안을 뛰어 돌아다녔다. 마음이 움직이는 쿵쿵댐을 오이카와는 삼켜내며 겨우 입을 열었다.
"같...같이 돌아가도 될까요?"
어른스러운 말을,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른스러운 목소리로, 어른스러운 척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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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관리 듣다가 뭔가 오이카와 버전의 약간 동상이몽같은 두 사람이 보고 시퍼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