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울리는 전화는 보통 불행을 예고한다. 크든 작든, 혹은 대단하던 대단하지 않든 간에. 끊임없이 울리는 벨 소리를 무시하고 잠들려 머리를 시트로 파묻었지만 한 번 끊겼다 다시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멈출 줄을 몰랐다. 결국 하는 수 없이 오이카와는 반만 눈을 뜬 상태로 침대 곁을 지키는 서랍으로 손을 뻗었다. 더듬더듬 그 위를 더듬어 휴대폰을 찾아내 버튼을 밀어 눌렀다.
"여보세요."
당연하게도 잠긴 목소리가 칙칙하게 튀어나갔다. 별 볼 일 없는 전화면 욕을 해줘야지, 싶어 호흡을 가다듬는 순간.
-"오이카와? 아 미안, 다름이 아니라 나도 지금 급하게 연락받아서.. 그, 회계팀에 마츠자카상 알지? 네 위에 기수였던.. 그 사람, 사고가 나서.. 어.. 미안, 나도 당황해서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월요일 출근 하지 말고 옷 잘 챙겨입어서 장례식에 가야 할 것 같은데.. 그 주소가-"
더듬더듬, 당황하고 놀란 기색이 역력한 회사 선배의 전화를 받으며 오이카와는 튕기듯 몸을 일으켰다. 얼굴을 알고 있던 누군가가 죽어서 놀랐다기 보다 그의 죽음 뒤에 남겨질 한 얼굴이 떠올라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역시, 새벽에 울리는 전화는 불행했다.
주말 내내 시간은 잘도 흘렀다. 흰 와이셔츠에 검은 양복 그리고 타이까지 검은색으로 맞춰 늘어놓은 후, 꼭 그의 장례식에 자신이 참석해야 하는가를 고민했지만 그렇다고 다시 옷가지들을 옷장에 걸어놓지는 않았다. 월요일 아침, 평소처럼 출근하는 시간에 일어나 꽉 검은 타이를 둘러매고 선배가 메시지로 남겨놓은 주소까지 가볍게 차를 몰았다. 주말 내내 누군가를 떠올려서인지, 혹은 그저 월요일에 동반되는 피곤 때문인지 모를 침침함을 날리기 위해 중간에 내려 커피까지 빈속에 들이부었다. 바쁜 사회인의 패턴으로 무장된 위는 쓰라리단 소리 없이 잘도 넘겨받았다. 그렇게 다시금 차를 몰아 '마츠자카'라는 이름이 적힌 집 앞에 섰을 때는 이른 아침임에도 조문객들이 꽤 많았다. 주말 동안 자신처럼 새벽에 급작스럽게 부고를 들은 회사 동료들도 있었고 여기저기 눈물을 훔치는 그의 친구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틈에서 어렵지 않게 직속 선배가 저를 발견하고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네왔다.
"갑작스럽지? 나도 팀장님에게 연락받고 놀랐다."
"..무슨 일이래요?"
"사고였데. 교통사고. 아직 29살밖에 안되었는데 참, 사람 인생 덧없다고 느껴져서 우울하다."
교통사고라, 있을 법한 특별하지 않은 사인이었다. 슬퍼 보이는 선배의 등을 쓸어 위로하며 오이카와는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 익숙한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 29살, 꽃답다고 포장하자면 꽃답다고 혹은 청춘이라면 청춘이라 포장할 수 있는 나이에 갑작스레 눈을 감아버린 사내의 사진이 크게 흰 꽃 사이에 파묻혀 있었다. 구불구불 피어오르는 향 너머로 사내는 활짝 웃고 있었다. 아마 그의 사원증 사진이 저 얼굴이었던 것 같은데. 자세히 본 적은 없으나 스쳐 지나가며 그의 배 부근에서 흔들리는 것을 본 기억이 남아있었다. 처음 입사해 저 사진을 찍을 당시만 해도 이렇게 또 다른 식으로 이용될 것이라고 그는 몰랐을 텐데. 선배의 말처럼 정말 덧없다고 느껴졌다.
"사장님이 출근은 안 해도 된다고 하더라."
"그래요?"
"작은 회사다 보니 다들 서로 알고 지냈잖아, 아까보니 인사팀에 유리코는 저 구석에서 펑펑 울더라. 듣자하니 짝사랑 중이었데."
"아.."
검은 머리를 단정하게 귀 뒤로 넘기고 그 머리만큼이나 단정한 복장으로 수줍게 복도를 거닐던 여직원 하나를 어렵지 않게 그려냈다. 그에게 고백 한 번 못해본 것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를 여자의 눈물을 상상하며 오이카와는 주말 내내 끈적하게 신경 쓰이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분명 이 자리에 있을 그를 찾아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훑어 보았지만 쉽사리 눈에 걸리지 않았다.
"선배, 그 회계팀에 저랑 같이 입사했던 그 사람은요?"
"누구? 스가와라 코우시? 너는 네 동기 이름도 기억 못 하냐? 이 작은 회사에 동기라곤 걔 하난데?"
너무 무신경한 거 아니냐며 핀잔을 주는 선배의 말에 가볍게 웃어넘겼다. 동기라고 해도 부서가 달랐고 하는 일이 달라 업무적인 일이 아니면 마주칠 일이 그리 없는 사람이었다. 작은 회사라 해도 4층짜리 빌딩을 모두 사용하고 있었고, 자신이 일하는 영업팀과 회계팀은 층 자체도 달랐으니까.
"글쎄, 그러고 보니 안 보이네. 아직 안 왔나? 걔도 충격이 클 거야. 자기 직속 선배였잖아."
너도 내가 죽으면 충격이 크겠지? 라며 장난스러운 그러면서도 별로 즐겁지 않은 선배의 농담에 허허 웃으며 오이카와는 스가와라 코우시를 찾기 위해 자리를 벗어났다. 선배의 말대로 그는 충격이 클 것이었다. 아마 여기서 가장 클지도 모르지. 언젠가 회사 비상계단에서 보았던 그의 붉은 얼굴을 떠올리며 오이카와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저마다 떠나는 이를 기리는 사람들의 틈에 섞여 있을 그를 찾아보았지만 정말로 오지 않은 것인지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안 보여?"
"네. 안보이네요."
한참을 찾다 결국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오니 어디서 맥주를 받았는지 아침부터 잔을 들고 있는 선배가 혀를 차며 '매정하네' 라고 그를 매도했다. 음, 매정한 건 아닐 텐데. 오이카와는 참견하고 싶었지만 그 정도로 누군가를 변호할 살가움은 없었기에 그냥 입을 다물어 버렸다.
적당하게 자리를 지키고, 아직 이 현실을 받아내기 힘들어하는 그의 부모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상사와 다른 직원들과 인사하고, 딱히 엄청나게 슬프다는 마음은 크게 들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안타깝다와 같은 감정들을 표현하고 나오는 길, 오이카와는 멀지 않은 곳에서 드디어 스가와라 코우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마츠자카의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아니, 움직이고 있었다. 걸어오는 것처럼 몇 발자국 발을 떼더니 이내 휙 돌아 걸었다. 그리곤 다시 돌아 다시 발을 떼더니 또다시 돌아 걸었다. 그 행동을 몇 차례나 반복하는 걸 눈에 넣으며 오이카와는 그가 언제부터 여기서 저러고 있었을까를 고민했다. 아마 주말 내내 뜬 눈으로 잠을 못 잤겠지. 당장에라도 병원이든 어디든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꾸역꾸역 눌러 삼키며 제 눈으로 죽음의 실체를 확인할 오늘만을 기다렸겠지. 아침이 되기 무섭게 헐레벌떡 달려왔겠지. 그리고 그의 끝을, 그들의 마지막을 확인할 자신이 없어서. 아마도. 저렇게. 계속.
쌀쌀해진 날씨에 구두와 팔랑이는 정장 바지 사이에는 양말이 없었다. 셔츠 위에 자켓도 코트도 없었다. 차에 올라타려던 오이카와는 하는 수 없이 막 코트에서 꺼내던 차 키를 다시 집어놓고 그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뭐라 말을 걸어야 하나, 괜찮아요? 혹은 멀쩡해요? 아니면 뭐, 살아는 있어요? 하지만 입을 타고 흐른 것은
"...지금 왔어요?"
아주 그럴듯하고 이 상황에 잘 어울리는 평범한 물음이었다. 막, 다시 돌아서려던 스가와라 코우시가 돌아섰다. 아마 그가 로봇이었다면 그 움직임엔 끼긱끼긱이라는 소리가 붙었을 것이었다.
"네."
그는 작은 심호흡 후에 대답했다.
"급하게 왔나 보네, 넥타이도 없고 자켓도 없고. 잠도 못 잤나봐요. 눈 밑이.."
"..."
"거뭇하네요."
정확하게는 붉었지만. 붉은 자국은 그가 잠을 못 잤다는 게 아니라, 방금까지 어마어마하게 울었다는 증거였지만 오이카와는 친절하게도 모르는 척 하며 웃었다.
"네, 너무 놀라서요."
평온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스가와라 코우시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럼, 들어가 볼게요." 라며 억지로 걸음을 옮겼다. 아마 자신에게 들켰으니 이대로 돌아가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오이카와는 막 바람을 뚫고 저를 스쳐 지나가려는 그런 남자의 팔뚝을 가볍게 붙잡았다. 한 손에 다 잡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얇은 게 느껴지는 그의 팔뚝을 잡아 다시금 제 앞에 끌어다 놓았다.
"그러고 들어가려고요?"
차림이 아니어도 너무 아니었기에 지적했다. 아, 그제야 제 차림을 확인한 그가 어색하게 웃었다. 하는 수 없지, 썩 그에게 친절을 배풀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그를 저 안으로 들여보내면 온갖 시선을 받게 될 것이 뻔했기에 오이카와는 구두를 벗었다. 찝찝해도 참아요. 그래도 신은 지 몇 시간 안 지났어요. 칙칙한 검은 양말을 벗어 내밀었다. 그리고 코트를 벗어 안에 입고 있던 정장 자켓도 내밀었다. 마지막으로 두르고 있던 검은 타이도 풀어 그의 목에 걸어주었다.
"그런 꼴로 보내면 마츠자카 선배도 걱정할 겁니다."
"고마워요."
"별말씀을."
들어가봐요. 툭툭, 평소보다도 더 작아 보이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돌아섰다. 추워라, 혼잣말처럼 중얼대며 코트로 서둘러 두 손을 숨겼다. 양말 없이 신은 구두의 감촉이 끝내주게 별로였다. 그 감촉을 어기적어기적 끌어 걸으며 차에 오르는 동안에도 스가와라 코우시는 움직일 줄을 몰랐다.
자신의 슬픔을 슬픔 그대로 비추지 못하고 토해내지 못하는 기분은 도대체 어떤 형태일까. 평소보다 이른 출근길, 오이카와는 스가와라 코우시를 떠올렸다. 그와 마츠자카의 관계를 알게 된 것은 반 년 전의 일로 정말 우연한 목격에 의한 것이었다. 점심시간, 식사하기 위해 다 비운 사무실에 홀로 남아 끝내지 못한 서류 작업을 하고 잠깐의 쉬는 시간을 갖기 위해 옥상으로 향하던 길. 그곳에서 두 사람의 입맞춤을 보았다. 비상계단의 어두운 틈에서 울리던 입술이 맞물리는 소리, 얽히는 숨소리, 사랑이 섞인 이름들. 조금만 더, 라고 보태던 마츠자카의 말에 웃으며 "안돼요." 라고 단호히 말하던 스가와라 코우시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울렸더랬다. 살면서 보았던 스캔들, 예를 들어 몇 반의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더라, 아니면 어느 연예인이 누구와 사귄다더라와 같은 이야기보다 더 놀라운 장면이었지만 딱히 호들갑을 떨고 싶은 생각은 아니었기에 오이카와는 자신이 본 것을 가볍게 넘겨버렸다. 놀랍긴 하지만, 뭐. 둘이 사귀나 보네. 그럴 수도 있지. 다들 알면 난리가 나겠지만, 모르니까 뭐 상관없지 않나? 딱 그 정도의 기분.
그 이후 간간이, 두 사람이 일한다며 같은 책상에 달라붙어 있다던가. 탕비실에서 함께 커피를 탄다거나, 휴게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들을 보며 남들이 보기에 그저 절친한 선후배 사이의 모습들 틈에서 오이카와는 사랑을 발견했지만, 늘 거기 놓여있는 화분이나 혹은 자신 책상의 연필꽂이처럼 보고 넘겨버렸다.
그런데 그중의 하나가 사라졌다. 남겨진 이는 그 사라진 것에 대한 애정도 애도도 슬픔도 그리움도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신경이 쓰였다. 동정이라던가 관심은 아니었지만, 유일하게 그들의 관계를 목격한 자로서 알고 있던 사람으로서 떠오르는 아주 자연스러운, 그런 것.
"뭐라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네."
동정 같은 싸구려도 아니었고 관심 같은 비싼 것도 아닌데. 이게 도대체 뭐람. 스스로 떠올려도 정의할 수 없는 기분과 감정을 안고 오이카와는 엘리베이터에 올라 자신의 사무실이 아닌 회계부가 있는 층의 버튼을 눌렀다. 다른 의미는 없었다. 커피용 자판기가 그쪽에 있었을 뿐이었다.
띵, 하고 울리는 소리를 비집고 나와 자판기로 향하는 길, 흘끔 유리 벽 너머로 막 아침을 시작하기엔 이른 회계부 사무실을 들여보았다. 아직 누구 하나 차지 않은 빈 사무실, 그리고 데스크들 틈에서 어렵지 않게 스가와라 코우시를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아주 멀쩡해 보였고,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어제 오전에 보았던 붉은 눈가라던가 엉망이던 옷차림은 말끔하게 사라진 채, 어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회사원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하마터면, 아 내가 착각했나? 하고 오해할 뻔했다. 그가 서 있는 곳이 마츠자카의 데스크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늘 마시던 모 브랜드의 캔 커피를 떠올리며 구두를 끌던 발길을 돌려 회계팀의 문을 열었다. 퉁, 소리와 함께 열리는 유리문에 스가와라 코우시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일찍 출근했네요."
웬 참견이람? 이라 따져도 이상하지 않을 인사를 던지자 그가 웃으며 "네. 일이 있어서요." 라고 온화하게 말했다.
"일이요?"
"팀장님이, 선배 데스크를 정리해달라고 해서요. 끝나고 해도 되지만.. 아무래도 다들 눈길이 갈 테니까.. 미리 정리해 두려고요."
다들요? 그쪽이 아니라? 그렇게 묻고 싶은 것을 꾹 참으며 오이카와는 말없이 끄덕였다. 조용히, 늘 그가 앉던 사무실 의자를 빼낸 스가와라 코우시가 어디서 사 왔는지 깔끔한 종이 상자를 펴 책상에 얹어놓았다. 파티션에는 아직 주인의 흔적이 그대로 남은 메모들이 들러붙어 있었다.
"도와줄게요."
"괜찮아요. 혼자 할 수 있어요."
"뭐, 아직 출근 시간 널널하니까."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 다른 직원의 의자에 걸쳐 놓자 그가 하는 수 없다는 듯이 백기를 들었다. 마츠자카의 데스크는 깔끔했다. 아직 처리 중인 서류들은 종류별로 다 분류되어 정리되어 있었고, 키우고 있던 화분 역시도 물받침 정도는 더러울 법한데 그렇지 않았다. 항상 단정하고 깔끔하게 옷을 입는다는 여직원들의 말을 떠올리며 오이카와는 하나둘 물건들을 챙겨 상자에 집어넣었다. 처음엔 하나둘, 정리하던 스가와라 코우시는 어느새인가 손을 멈추고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그가 쓰던 볼펜, 그의 흔적이 남은 메모지, 그가 키우던 화분. 어느 것 하나 그는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런 그를 대신해 오이카와는 물끄러미 떼어 보고 있던 메모지를 대신 들어 구겼다. 스가와라 코우시는 놀란 얼굴로 저를 바라보았지만, 왜요? 라며 못되게 굴었다.
그렇게 책상 위, 아래, 그리고 서랍까지 정리한 후, 마지막으로 체크할 겸 가장 위에 서랍을 열었을 때였다. 보통 필기구를 정리해두는 플라스틱 선반을 꺼내던 동시에 무언가가 팔랑,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멍하니 바닥으로 떨어져 놓이는 것을 바라보는 스가와라 코우시를 대신해 손을 뻗었다. 한 장의 폴라로이드 사진이었다. 사실상 사진은 엉망인 수준이었다. 플래시가 터져 한가득 찍혀있는 스가와라 코우시의 모습은 허연 밀가루 떡 같았고, 그도 모자라 그의 뺨에 붙은 누군가의 입술 덕에 얼굴 형태도 그리 온전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누구보다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자요."
사랑에 빠진, 심취한, 담긴 사내의 웃음. 오이카와는 계속해서 보아왔던 스가와라 코우시와 별반 다르지 않은 그 사진 속 모습을 가만히 들여보다 그에게 내밀었다. 덜덜 떨리는 손이 겨우, 정말 겨우 사진을 거두어 들었다.
"저번 회식 때... 다들 술 먹고 게임 하면서 찍은 사진인데..."
마치 자신이 오해라도 할까 그가 더듬더듬 변명을 뱉어놓았다.
"팀장님이 다..다정하게 찍어보라고 해서.. 찍었는데.. 선배는 뭘.."
애써 웃으며 나오는 변명과 달리 사진을 들여보는 눈은 하염없이 흔들렸다.
"뭘 이런 걸.. 다.. 보관하고.."
답답해라. 덧붙여 애처로워라. 오이카와는 정리하느라 살짝 더러워진 손으로 아무렇지 않게 머리를 쓸어 넘기며 입을 열었다.
"울어요."
"...네?"
"아직 다들 출근하려면 시간 남았고, 모르는 척해 줄 테니까."
"..."
"울고 싶으면, 울어요. 어디 가서도 못 울잖아요."
그가 토해내지 못하는 고통은 아마 이 앞으로 계속될 것이었다. 연인이 상처가 되고 딱지가 되고 고름이 되어 흐를 것이었다. 그래도 아프다, 슬프다, 고통스럽다, 죽을 것 같다고 어딘가에 토해내지 못하겠지. 그 누구도, 이 세상 누구도 두 사람이 연인이었음을 알지 못하니까. 떠나버린 이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했던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을 테니까.
"제 앞에서라면 괜찮아요."
단 한 사람, 자신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 말에 놀랐는지 스가와라 코우시의 손이 더 떨려왔다. 마치 지진이라도 온 듯, 건물 전체가 흔들리는 듯, 덜덜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어떤 기분으로 서 있던, 버티던, 살아가던 간섭하지도 상관하지도 않을 거예요. 약속할 테니까, 지금은 그냥 다 잊어버리고 솔직하게 울어요."
"..."
"지금 기회를 놓치면, 영영 못 울지도 몰라요."
제가 변덕이 심해서. 장난스레 입꼬리를 당겨 웃어 보이자 그제야 스가와라 코우시가 겨우 웃었다. 겨우 웃음과 동시에 그의 접힌 눈을 타고 버티던 눈물들이 주룩주룩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잘리지도, 끊기지도 않은 눈물들이 쏟아져 내려 그의 손등을, 그의 추억을 적셔 내려갔다. 이윽고 그 눈물처럼 버티지 못하고 몸이 무너져 내렸다. 차가운 사무실 바닥에 주저앉아 어린아이처럼 제 몸을 보호하듯 웅크리고 울기 시작하는 다 큰 남자를 내려보며 오이카와 역시 털썩, 바닥에 앉았다. 아, 캔커피 사야 하는데. 자신의 목적을 뒤늦게 떠올렸지만 떠날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이른 아침부터 퍼지는 남자의 울음소리를 노래 삼아 감상하며 멍하니. 그리고 조용함으로 남겨진 이의 슬픔을 위로했다. 슬픔은 쉬이 끊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