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른 전력 60분 참가 / 주제: 고장
형이 죽었다. 정말로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형이 죽었다는 사실이 카게야마에게 있어서는 놀라울 수는 있어도 슬프지는 않았다. 참 이상한 일이었지만 그랬다.
형은 어려서부터 별난 인간이었다. 학교를 빠지고 목에 건 카메라를 들고 산에 처박히거나 훌쩍 어딘가를 다녀오는 특이한 인간이었다. 평범한 부모님과 평범한 동생인 자신이 형성한 가족이라는 틀 속에서 형만이 이상하다고 카게야마는 어려서부터 늘 생각했다. 항상 커튼이 쳐져 있는 형의 방에는 그가 찍은 사진들이 늘 정신 없이 붙어 있었다. 대부분은 풍경 사진으로 풍경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찍지 않았다. 친구들이, 가끔 가족들이 자신을 찍어달라고 요구해도 형은 늘 고개를 저었다. 그 언젠가 카게야마가 "형, 형은 왜 사람은 안찍어?"라고 이유를 물었을 때 "인간은 별로 아름답지 않으니까."라며 대답하던 형은 스무 살이 되던 해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집을 나섰다. 홀로 도쿄로 올라가 자립을 시작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다. 내놓은 자식이라도 자식은 자식이기에 카게야마는 가끔 부모님의 등쌀에 못 이겨 반찬들이나 음식들을 챙겨 허름한 형의 아파트에 찾아갔다. 정말이지- 귀찮았다. 웃으며 자신을 반기는 형이 카게야마는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그저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왜 밖에 나와서 이렇게 고생을 하며 지내는지, 왜 부모님 말은 듣지 않는 것인지 모든게 카게야마에게는 불만이었다. 허름한 아파트는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워 카게야마는 도쿄까지 올라왔으면서도 그 집에서 오래 머무는 것을 꺼렸다. 그리고 어느 날, 형은 또 떠날 준비를 했다. 외국에 있는 사진 학교를 갈 거야. 편의점 도시락을 입으로 쑤셔 넣으며 형은 웃어 보였다. 그의 등 뒤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풍경 사진들이 가득 붙어 있었다. 정말이지 말릴 수 없는 사람이었다.
형이 영국으로 유학을 결심하자 집은 또 한 번 발칵 뒤집혔다. 2년 동안 공사 현장에서 일하며 모았다는 돈으로 벌써 모든 준비를 끝낸 형은 멋대로 부모님에게 통보만 던진 상태였다. 하지만 단지 그 유학이라는 통보가 집안을 뒤집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행동에는 칭찬을 해줘야 마땅하다고 카게야마는 생각했으니까. 형이 집안을 뒤집은 통보는 <유학>이 아닌 <커밍아웃>이었다. 대뜸 찾아와 전 사실 남자가 좋아요, 라고 고백한 첫째 아들의 말에 아버지는 근처에 있던 골프채를 휘둘렀고 어머니는 그저 울기만 했다. 그렇게 쫓겨난 형은 그 이후 연락 한번 없이 영국으로 떠나버렸다. 그때 어머니가 했던 말을 카게야마는 잊을 수가 없었다.
"네 형은 고장 난 거야. 불량품이였어."
가라앉은 눈으로 자신에게 중얼거리는 어머니를 보며 카게야마는 문득 궁금해졌다. 그럼 나는? 나는 고장 나지 않은 완제품인가?
영국에서 형은 틈틈이 엽서나 편지를 보내왔다. 대부분 수신인은 카게야마로 간단한 안부 인사와 부모님에게 사랑한다고 전해달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정말로 형은 우리 가족을 사랑했을까? 조금이라도 생각은 했을까? 카게야마는 그 편지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우리 가족을 생각했더라면 그런 폭탄을 던져두고 도망치듯이 혼자 사라지는 것은 반칙이었다. 덕분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늘 형의 문제로 크게 싸웠고, 카게야마는 집이 싫어졌으니까. 그래서 단 한 번도 그 소식들에 카게야마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자신과는 달리 형은 항상 평화로운 소식들을 전했다. 수업이 어떻다, 교수님이 어떻다, 학교생활은 그리고 영국은 어떻다. 상을 받았다, 친구들과 공동 전시를 하게 되었다, 잡지에 인터뷰 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 형이 영국으로 간 지 2년 뒤 도착한 편지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그 편지를 시작으로 도착하는 소식들은 항상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햇살을 받는 그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웃는 얼굴이 얼마나 따스한지, 눈가에 있는 눈물점이 얼마나 예쁜지부터 시작해 항상 같은 시간에 산책하는 그를 따라 공원에 간다든지, 그가 키우는 식물이라던가, 그가 마시는 음료라던가, 그가 읽는 책에 관한 별로 궁금하지 않은 것들이 편지를 빼곡 채워갔다. 카게야마와 부모님에 대해 표현하던 애정들은 점점 뒤로 밀려 PS.수준이 되어 버릴 정도였다. 짝사랑을 시작한 형의 편지는 1년 뒤, 그 사람이랑 사귀게 되었어라는 소식으로 끝나버렸다. 형은 그 이후 더는 편지나 엽서를 보내지 않았다. 외롭지 않은 형은 너무도 가볍게 부모님과 자신을 버렸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형이 집이 나간 순간부터 우리 가족은 형을 버렸던 셈이었으니까.
형에게 남자 애인이 생겼다고 부모님에게는 말씀드리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부모님은 더는 형에 대해 대화하는 것을 거부했다. 형이 주제가 되는 날은 항상 부모님의 말싸움으로 번져 어느새인가 금기처럼 암묵적으로 형의 이야기는 집에서 나오지 않게 되었다. 형이 만들고 간 숨 막히는 공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카게야마는 도쿄로 대학을 진학했다. 그리고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카게야마는 평범하게 대학을 졸업해 적당한 회사에 취업을 했다. 가끔 가족 모임에 들려 "아들이 참 잘 자랐네요"라는 칭찬을 듣는 부모님 곁에서 카게야마는 억지로 몇 번이나 웃는 것으로 아들의 의무를 다했다. 그리고 바쁘게 생활하던 어느 날 우연히 잡지에서 형의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일본의 신예 사진작가를 소개하는 페이지에는 한가득 형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영국에서 생에 첫 개인 전시회를 연다는 소식도 함께. 하지만 카게야마는 잡지 속에 웃고 있는 사내가 자신의 형이라는 생각이 크게 들지는 않았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얼굴이었지만 어쩐지 너무도 이질적이게 다가왔다. 하지만 카게야마는 어렵지 않게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사진과 함께 실린 기사에 적힌 인터뷰.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에 대한 형의 답.
[인간이요. 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간을 알고 있어요. 그 사람이 항상 저에게 영감을 줘요.볼 때마다 숨이 멎을 것 같은 사람이에요.]
그 언젠가 방에 틀어박혀 풍경 사진만 찍어대던 형은 없었다. 카게야마가 기억하는 형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형의 사인은 사고였다. 빗길 교통사고라고 들었다. 과속으로 달리던 차가 빗길에서 미끄러지며 전복되었고 형은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카게야마는 새벽에 영국에서 결려 온 전화를 가만히 받으며 상대편의 울음 섞인 목소리를 담담히 들었다. 슬픔에 젖은 사내는 형의 죽음을 알리는 것이 무척이나 괴로운 듯했다. 어렵지 않게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카게야마는 알 수 있었다. 형이 그토록 사랑했던, 사랑한 사람. 장례 문제도 있고 형의 물건들이 있으니 영국에 와달라는 그의 부탁을 부모님에게 전했지만 두 분 모두 거절했다. 먼저 떠난 고장 난 아들을 용서할 수가 없는 듯했다. 그래서 카게야마는 할 수 없이 영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정말, 귀찮았다.
영국에 도착해 전화 한 사내가 알려 준 형의 스튜디오로 향하는 길 카게야마는 우중충한 날씨를 보며 혀를 찼다. 어차피 형은 일본으로 부모님의 품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을 테니 그에게 장례는 원하는 대로 치르셔도 된다고 했다. 그가 얼마나 고마워하던지, 카게야마는 웃음이 다 나왔다. 형의 장례따위 카게야마에게 있어서는 아무래도 좋았으니까. 낡은 런던의 아파트 3층에 위치한 형의 스튜디오에 도착 한 카게야마는 엉성한 영어로 경비원에게 사정을 설명한 후 열쇠를 받아냈다. 두터운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늘 엉망이던 형의 방 풍경과는 달리 너무도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구두를 끌며 안으로 들어 선 카게야마는 스튜디오 한 가운데 크게 걸려 있는 사진에 시선이 멈추었다. 색이 옅은 머리를 가진 사내의 얼굴이 클로즈업된 사진이었다.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내의 얼굴을 본 순간 카게야마는 어렵지 않게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형의 연인, 형이 사랑했던 유일한 인간. 사진에서 시선을 뗀 카게야마는 천천히 스튜디오를 구경했다. 벽에 걸려있는 넘겨지지 않은 달력에는 커다랗게 동그라미 표시가 되어 있었다. [너의 생일] 그렇게 적혀 있는 날짜는 형이 죽은 그 날이었다. 비오는 날, 과속, 생일. 어렵지 않게 사고 원인을 추리하며 카게야마는 시선을 돌렸다. 여러 카메라 장비들이 주인을 잃었지만 먼지 하나 없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선반에는 알 수 없는 트로피들이, 책장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서적들이 꽂혀 있었다. 이 모든 걸 일본으로 다 들고 가야 하는 걸까? 가져간다 해도 이걸 다 어쩌지? 카게야마는 심드렁하게 그런 고민을 하며 책장에 꽂혀 있는 앨범들을 뒤적였다. 형이 찍어 낸 수많은 사진들이 앨범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사물도 있었고 인물도 있었고 풍경도 있었지만 가장 많은 것은 방금 확인했던 그 사내였다. 커피를 마시고 있는 모습, 렌즈를 보고 수줍게 웃고 있는 모습, 스튜디오를 배경으로 서 있는 모습, 책을 읽고 있는 모습 등등 형이 얼마나 그를 사랑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의 모습이 가득했다. 탁, 소리 나게 앨범을 접은 카게야마는 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심장이 떨리는 것 같았다. 형의 감정에 동화라도 된 것일까. 그런 우스운 일이 어딨냐며 속으로 혀를 차며 카게야마는 닫혀 있는 방문에 다가가 천천히 문을 밀어 열었다.
열린 문 사이로 따스한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형의 방으로 보이는 공간에는 커다란 데스크와 넓은 침대만이 덜렁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러그 위에 모포를 두른 사내가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바닥에 흘러 내린 옅은 머리색, 감긴 눈 아래 찍혀있는 눈물점, 웅크린 마른 몸. 카게야마는 천천히 다가가 무릎을 굽혀 앉으며 사내를 내려 보았다. 사진 속의 그 인물이 자신의 눈앞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울었는지 말라붙은 눈물 자국이 안쓰러웠다. 애처로워 보였다. 카게야마는 저도 모르게 천천히 손을 뻗어 사내의 이마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넘겨 주었다. 정말로 이상한 일이지만 방금전 떨리던 심장이 이번에는 요동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의 손길에 눈썹을 꿈틀하던 사내가 천천히 눈꺼풀을 밀어 떴다. 동그란 까만 눈동자가 드러나며 자신을 담아냈다. 형이 말한 숨이 멎는다는게 이런 기분이었구나. 카게야마는 웃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스가와라 코우시상. 동생, 카게야마 토비오입니다."
자신도 결국 멀쩡한 제품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천천히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키는 스가와라를 두 눈에 가득 담으며 카게야마는 생각했다. 자신도 역시 고장이 난 모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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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게야마에게 형이 있다는 설정.
카게야마 부모님은 결국 자식 농사를 이렇게 망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