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스가] 너 더불어 나
2015. 7. 27. 12:39








치이익, 프라이팬 위로 연기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흘렀다. 때려 넣은 마늘이 달궈진 올리브 오일과 섞여 보글보글 몸을 태우고 있었다. "마늘을 많이 넣는 게 스가와라상만의 비법인가요?"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여자 MC에 말에 웃으며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비법일게 뭐 있어.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의 기본 재료이고 자신은 매운 게 좋으니 많이 때려 넣은 것밖에 없었다. 녹화 시작 전, 스마트폰으로 찾아보았던 레시피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스가와라는 달달 볶은 마늘 위로 소금을 솔솔 뿌려 넣었다. 



"그분에게도 자주 해주시는 요리인가요?"

"네?"



예상은 했지만 빨리도 튀어나온 질문에 요리하던 손이 잠깐 멈칫했다.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써 어색하게 띄운 웃음을 부끄럽게 뒤바꾼 뒤 스가와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피어오르는 연기에 살짝 붉어진 얼굴도 쑥스러운 태를 내며.



"네, 가끔 해요."



가끔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내뱉는 자신을 보면 스가와라는 배우를 직업으로 삼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순순히 대답한 게 즐거운지 페퍼론치노 거기에 파슬리까지 볶는 내내 그녀는 '그분'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반갑지 않은 상대의 이야기를 계속 언급했다. 그 외에 해주는 음식은 무엇이 있느냐, 같이 데이트하러 나가면 파스타를 즐겨 먹느냐, 디저트까지 혹시 풀코스로 준비해 주느냐와 같은 요리 방송에 어긋나지 않는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묘하게 자신에게서 벗어난 핀트들이었다. 하지만 공개 연애 한 달째, 스가와라는 그에 대한 화제가 곧 자신의 화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화제는 진짜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어차피 인기로 주목으로 관심으로 밥 벌어 먹는 직업인 만큼 나쁘지는 않았다. 


요리를 끝내고 같이 나란히 마주 앉아 돌돌 파스타로 면을 말며 "둘이 밥을 먹을 때에는 무슨 대화를 주로 해요?" "서로 바쁜데 함께 밥 먹는 시간은 좀 자주 갖는 편인가요?" 그와 관련된 주제로 끝없는 토크를 하고 나니 벌써 3시간에 걸친 짧으면 짧은 길면 긴 녹화가 끝나가고 있었다. 둘이 밥을 먹을 때에는 "4시 방향에 파파라치 있으니까 좀 웃죠?" 혹은 "꼭 이렇게 사람 많은데 와서 밥을 먹어야겠어요?"라는 시비조의 대화를 자주 하는게 일상적이었다. 서로 바쁘지만 어쨌거나 브라운관 앞에서 커플인 척 떠드는 입장이라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데이트겸 식사라는 룰이 있어요, 라고 솔직하게 대답하고 싶었으나 스가와라는 꼭꼭 자신이 만든 아주 엉성한 파스타를 삼키며 "이런저런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해요." "네, 바빠도 같이 얼굴 마주하고 식사하려고 서로 노력하는 편이에요."라며 다정한 연인 흉내를 냈다. 



"수고하셨습니다."



밝게, 쾌활하게, 사람 좋아 보이게. 스가와라는 머릿속으로 자신이 지어낼 수 있는 여러 가지 미소를 떠올린 후 목청 높여 인사를 했다. 짝짝짝 수고했다는 의미의 박수를 받으며 쨍하게 켜져 있던 조명 아래에서 드디어 탈출했다. 부리나케 걸어 내려오자 대기하고 있던 매니저가 다가와 핸드폰을 내밀었다. 



"오이카와군 연락 왔었어. 방송국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다는데?"

아, 오늘이 그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의 데이트 겸 식사하는 날이었던가. 피곤한데. 저쪽에서 또 이래저래 잔소리를 쏟아댈 것 같아 한숨을 쉬며 스가와라는 스마트폰의 잠금을 풀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내려오세요.]

"..."



부탁? 아님 명령? 말투를 들은 게 아니니 타이핑으로 된 말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다. 단지 이 메시지를 보고 '방송국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다는데?' 라고 부드럽게 설명한 매니저가 대단해 보일 뿐이었다. 어딜 봐도 이건 그거잖아. 내려와, 하는 명령. 스가와라는 머리를 긁적이며 작은 한숨을 쉬었다. 애써 아침부터 숍으로 출근해 셋팅했던 머리가 망가졌다. 어쨌든, 기다리고 있다니 여유롭게 옷을 갈아입고 잠깐 물로 목을 축이고 쉴 틈은 없을 것 같았다. 살짝 치민 짜증을 억지로 집어 던지며 나갈 준비를 하기 위해 대기실로 들어섰다. 서두르는 모습에 등 뒤로 "데이트 있나 봐요?" 라는 허튼 참견이 따라붙었지만, 이미지로 먹고사는 직업 스가와라는 쑥스럽게 웃으며 "네."라고 대답했다. 


데이트라, 데이트. 그래 따지고 보면 데이트였다. 사람들이 보기에 그 배구선수 오이카와 토오루와 그 배우 스가와라 코우시는 명백히 공개 연애 중인 커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속은 공개된 관계처럼 사랑스럽거나 애틋한 감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계산과 타협으로 이루어진 엉망인 관계였다. 스가와라는 한 달 전, 자신이 저질렀던 끔찍한 실수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한 달 전, 스가와라 코우시는 고작 데뷔 1년차로 대표작이라곤 조연으로 등장한 수요일 드라마가 전부인 필모를 가지고 있는 빽도 뭣도 없는 신인 배우였다. 그것도 시청률 3%. 동시간 때 꼴찌라고 들었다. 대형 기획사의 푸쉬와 그 연줄로 돌아가는 연예계 판에서 소형 기획사, 심지어 바닥부터 시작해온 스가와라 코우시가 명함을 내밀고 들이밀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차라리 입담이라도 좋아 예능에서 활약하거나 노래라도 잘해 음반이라도 몇 장 내었으면 모를까, 아쉽게도 스가와라 코우시는 연기하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그다지 없는 불운한 배우였다. 멀티형 스타들이 사랑받는 세상에서 오로지 외길 주의자는 외면받는 것이 너무도 당연했다. 그러던 차에 들어온 것이 스폰서 이야기였다. 어느 돈 많은 회장님께서 저를 어여쁘게 보았는지 사적으로 한번 만나고 싶다, 라는 이야기가 매니저를 통해 전해져왔다. 사무소 측에서는 당연히 배우 보호 차원으로 거절은 했으나 직원 월급도 간당간당한 판에 막다른 길이라 생각했는지 결국 본인인 스가와라에게까지 슬쩍 말을 흘린 것이었다. 할게요. 목 끝까지 싫다는 말이 나왔지만 절로 대답이 쏟아졌다. 상대방 옆에서 술 좀 마시고 비위 맞춰 주고 아양 좀 떨어주는 거야 연기자인 자신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그 정도면 될 거라고 스가와라는 아주 안일하게 생각한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상대방이 생각한 스폰의 계약 범위는 옆에 앉아 술을 따라주고 웃어주고 대화를 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 정도면 어디 긴자의 바에 가서 멋진 누님을 잡고도 그들 기준 푼 돈에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래서 밍기적 밍기적, 스가와라 생각으로는 최선을 다한 접대에 불만이 찼는지 스폰을 제안한 상대는 알딸딸하게 술이 오르자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룸의 소파 위로 저를 눕히고 올라타는 행태에 스가와라는 빽 비명을 내질렀다. 이거 왜 이래? 다 알고 왔으면서? 라던가 빼는 것도 적당히 해야 귀엽지 라고 웃어대는 노인네 품에서 셔츠가 뜯어지고 벨트가 풀어졌다. 그리고 그 주름진 손이 엉덩이를 움켜쥐었을 때, 스가와라는 정말이지 보이는 것이 없었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양주병 밖에는. 


스폰이라는 단어에 정당방위라는 말이 수용이 될지 아닐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은 내려쳤다. 억, 소리를 내며 넘어가는 커다란 몸뚱이를 서둘러 밀어내고 벌컥 룸 문을 열었다. 제 꼬라지가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여기서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깟 광고, 그깟 드라마 안 찍어도 그만이었다. 오디션을 보고 지금처럼 열심히 하면 길은 뚫리겠지. 이런 더러운 짓까지 안 해도 길은 있을 거라니까? 스스로를 달래면서 펑펑 울며 빠져나왔는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냅다 잡아탄 엘리베이터에서 오이카와 토오루를 만났고 너무 놀란데다 겁을 먹은 탓에 "괜찮아요?" 라고 묻는 그에게 안겨 펑펑 운 것이 화근이었다. 아마 제정신이었다면 알지도 못하는 남자 품에 안겨서 눈물 콧물 짜내며 신세 한탄을 하거나 울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문제는 자신이 공포에 질려있는 데다가 접대하며 같이 술을 몇 잔 들이켰다는 사실이었다. 녹진하게 녹은 뇌는 풀릴 줄을 몰랐고 당황한 오이카와 토오루는 저를 거리에 매정하게 두고 갈 수 없어 진정 될 때까지 기다려 주었는데, 하필 그 모습이 그를 따라다니던 주간지 기자에게 목격되고 말았다. 


<배구 선수 오이카와 토오루 - 배우 스가와라 코우시, 한밤중의 위험한 밀애> 아주 유치한 제목이 다음날 주간지 메인 페이지에 실렸다. 아침 점심 저녁 상관없이 모든 방송이 이 스캔들에 대해 떠들었다. 셔츠가 반쯤 벗겨지고 바지 벨트까지 풀어진 신인이자 무명에 가까운 남자 배우가 유명 배구 선수 품에 안겨서 우는 사진은 누가 보아도 이상한 것이었다. SNS에서는 빠르게 오이카와 토오루가 저 신인 배우를 강간한 게 아니냐, 혹은 스폰을 한 게 아니냐라는 루머가 돌기 시작했다. 오이카와 토오루 측에서도 스가와라 쪽에서도 부정했지만 호불호 없을 정도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배구 선수의 스캔들은 그리 쉽게 가라앉지를 못했다. 


그래서 그 스캔들을, 웃기지도 않은 루머를 가라앉히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사실은 연인 사이라고. 사귄 지는 석 달 정도 되었고 사적인 모임에서 만나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있다고. 어쨌든 주간지 파파라치를 달고 나타난 것은 오이카와 토오루였고 술 먹고 추태를 부린 것은 자신이었으니 쌍방으로 잘못은 있었다. 거기다 오이카와 입장에서는 누굴 강간했느니 스폰을 대주느니 하는 더러운 소문에 엮여 이미지가 나빠지는 것보다야 거짓말을 하는 편이 훨씬 나았고 스가와라야 당연 안 떠서 늙은 노친네에게 몸 로비하려고 했어요, 그러다 일어난 사고에요! 라고 털어놓는 것보다야 그와 입을 맞추는 편이 백배는 나았다. 그리고 "우리 연인이에요." 라고 선언하기 무섭게 스가와라 코우시는 오이카와 토오루의 효과를 보았다. 그의 연인이라는 이유로 지금까지 막혀있던 길이 뻥 뚫렸다. 오디션도 보기 힘들었던 배우에게 어마어마한 양의 대본들이 도착했고 약 1000명도 되지 않았던 SNS의 팔로워는 금세 몇십 배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사무소 대표님이 싱글벙글 웃으며 "대어를 잡았어!" 라고 외치는 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인권조례가 통과한 이후 커밍아웃하고 지내는 유명인이나 커플이 한두 사람이 아녔으므로 남남 커플이라는 것은 그리 사람들의 놀라움을 사지 못했다. 그저 지금까지 사생활 관리에 철저했던 오이카와 토오루가 공개 연애를 한다는 것만이 사람들의 관심을 샀을 뿐이었다. 그리고 스가와라는 그 덕을 지금 톡톡하게 받아내고 있었다. 


그러니 그가 나오란다고 안 나갈 수가 없는 입장. 스가와라는 선글라스에 모자까지 푹 눌러쓰고 매니저의 배웅을 받으며 서둘러 방송국을 나섰다. 밤거리에 선글라스를 끼니 세상이 온통 깜깜하게만 보였다. 예전엔 전차를 타고 출퇴근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가려도 날아드는 시선이 많았다. 고마운 관심을 한몸에 받으며 스가와라는 방송국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익숙한 차를 찾아 조수석 문을 열고 올라탔다. 



"사람을 부를 때는 좀 더 공손하게 해주세요."



그리곤 인사대신 불평을 털어놓았다. 차창에 비스듬하게 기대 있던 사내가 이쪽을 보며 "그 정도면 공손하지 않습니까? 나름 최선을 다했는데." 라며 시동을 걸었다. 그리곤 손을 뻗어 멋대로 남이 쓴 모자를 벗겨냈다. 



"뭐하는 거예요?"

"우리 둘이 찍힌 파파라치가 꽤 비싼 값에 거래 된다고 하니, 그 얼굴 좀 보이라고요."

"제가 버는 돈도 아닌데 왜 그런 봉사를 해야 하는데요."

"그 사진이 곧 그쪽의 돈이 되어 돌아오고, 내 쪽의 평판도 나아질 테니까. 아직도 그쪽의 스폰이니 뭐니 하는 소문이 끊이질 않거든요."



불만스럽다는 듯이 오이카와 토오루가 툴툴대며 차를 출발시켰다. 부웅, 움직이기 시작하는 차 흔들림에 같이 흔들리는 몸을 서둘러 바로 잡으며 스가와라는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자신보다 저쪽의 피해가 막심하니 어렵지 않은 이야기라면 들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스가와라는 슬쩍 미안한 마음을 담아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어 챙겨 넣었다. 



"녹화는 잘했습니까?"



어디로 가는지 목적지도 말해주지 않으면서 그가 시선을 앞으로 고정한 채로 물어왔다.



"네. 요리방송이라 못하는 요리 잘하는 척하느라 고생 좀 했지만, 나쁘지 않았어요. 아, 그보다!"



스가와라는 서둘러 그의 옆얼굴에 시선을 고정하며 말을 이었다. 



"하도 그쪽 질문이 쏟아져 와서 제가 적당하게 대답했으니까, 나중에 인터뷰에서 언급하면 말 좀 맞춰줘요. 뭐... 그쪽보다 제 존재감이 아~주 아~주 미미해서 누가 묻기나 할까 싶지만."



슬쩍 비꼬듯 말을 늘리며 부탁했다. 그쪽에게 알리오 올리오를 잘해준다고 뻥 쳤어요. 매운 거 좋아해서 마늘도 많이 넣는다고 했어요. 바빠도 얼굴 마주하고 밥 먹으려고 노력한다고도 떠들었어요. 줄줄 이어지는 거짓말에 그가 어처구니가 없는지 픽 소리를 내며 웃었다.



"뭐가 웃긴데요."

"일단 전 매운 거 질색이고, 기름진 파스타도 질색인데."

"..."

"마늘 냄새나는 건 더 질색이고."

"...그럼.. 뭐 프로필이라도 보고서로 작성해서 주지 그랬어요? 내가 달달 외우는 건 자신 있는데."

"그럴 걸 그랬네요. 배려도 상의도 없이 남의 식성까지 떠들 줄 알았더라면."



하여간 말이 곱게 나가는 편이 없지. 툭 튀어나온 그의 말에 스가와라는 인상을 구기며 다시금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어느새 번잡한 시내를 빠져나간 차는 한적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도대체 어딜 가는 거야? 가로등 불빛이 듬성듬성해지자 괜히 불안감이 몰려왔다. 슬쩍 제 옷을 확인하고 셔츠 단추가 잘 잠겨졌는지 확인하며 스가와라가 부산을 떨자 그 행동의 이유를 눈치챘는지 그가 또 한 번 웃었다. 



"제 취향은 살집이 있어 딱딱하지 않고 가슴이 보드라운 여자니까, 그 머리 굴리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보죠?"

"남자들이 말하는 살집있는 여자는 결국 마른 여자랬어요."

"그럼 그쪽은 어떤데요."

"전 몸매나 얼굴 안 보거든요?"



웃기시네, 마치 그렇게 말하듯 그가 헛웃음을 쳤다. 



"전 저에게 잘해주는 사람이 좋아요. 저 좋다는 사람이 좋아요."

"갭니까?"

"네?"

"먹이 주면 좋다고 다가가 꼬리 흔드는?"



개라니, 무슨 단어 선택이 저따위지? 강아지!! 스가와라는 빽 정정하며 외쳤다. 이렇게 어감 귀여운 단어도 있는데 개라니, 개나 강아지나 그게 그거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는 개 같네 보다는 강아지 같네가 더 나았다. 



"그게 문젭니까?"



그 짜증 섞인 말에 그는 어이가 없는지 마른 웃음을 뱉으며 그렇게 말했다. 


시답지도 않은 싸움 끝에 차가 멈춰선 곳은 한적한 호숫가 근처의 레스토랑으로 차 키를 뽑으며 오이카와 토오루가 말하길 "기자들 눈을 피해 데이트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 였다. 물론 어딘가에 따라붙은 기자나 파파라치는 있겠지만, 그걸 모르는 척 다정한 연출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 모습을 연출하려는지 오이카와 토오루는 먼저 내려 차 문을 열어주는 에스코트를 보였다. 심지어 손까지 내미는데, 스가와라는 차 안에서 개니 강아지니 식성이니 몸매니 하며 그와 다투었던 말싸움을 생각하니 어이가 없었다. 자신도 연기자지만 저보다 카메라 앞에 더 많이 서보았을 그는 명배우에 가까웠다. 차고 커다란 그의 손을 마주하며 스가와라는 이끌리듯 레스토랑으로 들어섰다. 예약했는지 들어서자마자 바로 자리로 안내받을 수 있었다. 평일의 저녁이고 외곽에 위치한 레스토랑인지 그리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몇몇 자리가 채워진 테이블에서 자연스럽게 시선이 이쪽으로 달라붙었다. 스가와라는 그 시선이 오이카와나 자신을 묶은 '둘'보다는 오롯이 자신 '하나'에 달라붙는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게, 제 차림새가 그리 이 레스토랑에 어울리는 편은 아니었다. 

자켓에 단정한 여름 니트를 받쳐입은 그와 달리 자신은 셔츠에 반바지 차림이었다. 거기다 니삭스. 방송용 의상이 튀어도 너무 튀었다. 이런 데는 좀 얌전하고 점잖은 차림이 어울리는데. 스가와라는 테이블에 도착하기 무섭게 그의 손을 놓으며 폭,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부터 이런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 데리고 올 예정이면 일단 이야기를 해 주세요."

"왜요."

"저도 좀 꾸며야죠. 애도 아니고 반바지에 니삭스 차림으로 쫄래쫄래. 안 그래도 당신 팬들이 우리 오빠 얼굴에 먹칠하네, 발목 잡네, 이용하네 아주 불을 켜고 악플을 다는데! 진짜 이번 데이트 사진 뜨면 또 그럴걸요? 나이 먹을 만큼 먹어놓고 저딴 옷차림으로 꼴값 떤다고?!"

"..꼴 값이라니.. 그정도로-"



오이카와 토오루가 슬쩍 고개를 빼내어 다리부터 머리끝까지 시선으로 훑어보았다. 그리곤 '나쁘진 않은데.' 라고 다정한 소리를 뱉어줄까 기대했더니 입을 다물었다. 진짜 꼴 값인 모양이었다. 그래서 내가 26살 먹고 반바지랑 니삭스는 아니라고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요즘 유행하는 패션이라며 스타일리스트 누님이 얼마나 몰아붙이던지. 유명 브랜드에서 협찬 들어왔다고 해서 겨우 입었지 그도 아니었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패션이었다. 



"뭐 먹을래요."

"맛없는 파스타 먹어서 그렇게 출출하진 않아요. 그냥 적당하게 시켜주세요."

"본인이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었나?"

"요리 못 해요. 레시피 보고 외워서 연기한 거야. 세세하게 배우의 생활을 캐묻지 말고 주문이나 하시죠."



그러고 보니, 아까 방송에서 여MC가 말하길 "그분은 요리도 잘하시던데, 그럼 같이 자주 주방에서 지내겠네요?" 라고 물었었다. 아니 이쪽은 요리를 사실 전혀 못 하니 주방에 드나들 일도 없었지만, 저쪽은 어떨까. 배구도 잘해, 얼굴도 잘생겨, 몸매도 좋아... 뭐 성격은 좀 별로지만, 정말 요리도 잘할까. 



"요리 잘해요?"



궁금한 것은 못 참는 성격이라 스가와라는 대뜸 메뉴판에 시선을 고정한 그에게 물었다. 



"네."



그리고 시원하게도 대답이 나왔다. 아, 그러셔요. 뭐 빼는 법이 없네. 흥, 스가와라는 잘난 사내를 앞에 두고 질투인지 아님 그냥 단순한 짜증인지 모를 갈증을 들이키는 물로 해결하며 입을 다물었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적당하게 웨이터를 불러 요리를 주문했다. 무슨 ~숑 ~리아제 스러운 이름이 줄줄 자연스럽게 입을 타고 흘러나왔다. 외식이라곤 패스트푸드에 가 치킨버거 셋트 주세요, 감자튀김은 L size로요를 외치던 자신으로서는 생소한 것들이었다. 



"이런 데 자주 오나 봐요."



그러지 않고서야 저런 기름진 단어들이 술술 나올 리가 없었기에 물었다. 오이카와는 그의 팬들이 말하는 예의 '완벽한 미소'를 띄우며 대답했다.



"그쪽이랑 이렇게 엮이지 않았을 경우엔 아름다운 미녀들하고 자주 왔죠."

"...아, 네. 거참 죄송하게 되었네요. 칙칙한 남자랑 마주하게 만들어 송구합니다."



뼈가 있는 말에 지은 죄가 더 큰 스가와라는 할 말이 없어 툴툴댔다. SNS를 켜 '망할 오이카와 토오루가 날 개 같다느니 칙칙하다드니 하는데 더러워서 못 어울리겠다!' 라고 뻥뻥 외치고 싶은 충동을 이겨내며 스가와라는 다시금 잔에 남은 물을 들이켜 목을 축였다. 이래 봬도 제 팬들은 자신을 천사라고 불러주는 데 말이다. 물론, 조오금 오글거리긴 하지만. 



"저... 스가와라상?"



오글거려도 어떠냐 개보단 천사가 낫지. 암.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고 위로하며 마음을 다잡고 있을 때 즈음 누군가 자신을 불렀다. 퍼뜩 잔으로 박혀있던 시선을 들자 얌전한 투피스를 차려입은 긴 생머리의 미인이 테이블 앞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놀란 눈으로 "네?" 하고 묻자 그녀가 복숭아처럼 붉힌 뺨으로 핑크색 다이어리를 내밀었다.



"팬인데 혹시 사인 해주실 수 있으세요?"



팬? 내 팬? 지금 당신 눈앞에 오이카와 토오루가 있는데 쟤 말고? 스가와라는 벙찐 기분으로 그녀를 올려보았다.



"데뷔 때부터 팬인데.. 그 <모범 교사> 드라마 저 1화부터 챙겨봤거든요! 교복 입은 스가와라상 진짜 귀여워서...!! 저 집에 DVD도 다 있어요."

"저..정말요?"



데뷔 때부터 팬이라니. 시청률 3%를 최고점으로 기록하고 사라진 <모범 교사>를 1화부터 챙겨봤다니, 심지어 자신도 사지 않은 DVD도 가지고 있다니. 진심이었다. 그녀는. 스가와라는 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막지 않으며 반짝이는 그녀의 눈과 마주했다.



"네네, 저 스가와라상이 나온 인터뷰나 잡지도 다 가지고 있어요. DVD사서 응모권도 여러 번 넣어서 이벤트에도 갔었는데..! 저 진짜 팬이에요."

"아.. 감사합니다. 진짜 감사합니다."



지금에야 다들 스스럼없이 '팬이에요!' 라고 외치는 사람은 많았지만, 대부분은 아주 안일한 관심뿐으로 그마저도 한 달 전부터 생긴 것이었다. 그전에는 이렇게 다가와 누가 사인을 요청하고 팬이라고 말해주는 이가 없었다. 스가와라는 저도 모르게 벅차올라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서둘러 그녀가 내미는 펜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아직은 정해진 사인같은게 없어 대충 그리듯 제 이름 한자를 적어 넣었다. 그 틈에도 그녀는 감격했는지 자신에 대한 찬양을 멈추지 않았다.



"교복 입었던 스가와라상 진짜 작고 귀여웠는데.. 물론 지금도 진짜 귀엽고 예쁘고 잘생기셨어요. 이번에 들어가는 형사 드라마 저 진짜 한 회도 놓치지 않고 보려고 준비하고 있고, TV도 새로 샀어요."

"진짜요?"

"그럼요, 스가와라상의 얼굴을 좀 더 크고 깨끗한 화면으로 보고 싶달까..!!"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이거든요! 스가와라상은! 그녀가 강하게 외치며 말했다. 스가와라는 낯간지러운 그녀의 찬양에 연신 끄덕이며 다이어리와 펜을 돌려주었다. 이렇게 만나서 너무 기쁘다, 앞으로도 계속 응원하겠다. 줄지어 말을 끝낸 그녀는 아쉬운 얼굴로 머뭇머뭇하더니 이내 제 테이블로 돌아갔다. 



"봤어요? 제 팬이래요! 완전 팬이래요!"



그녀가 돌아가기 무섭게 스가와라가 소란스럽지 않을 정도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오이카와에게 물었다. 네 보고 있어서 압니다. 그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의자 등받이가 안 보일 정도였어요."

"뭐가요?"



덧붙이는 의미 모를 말에 스가와라가 흥분으로 붉어진 뺨을 손등으로 훔치며 물었다.


 

"개처럼 꼬리를 하도 흔들어 대서."

"..."

"정말로 잘해주면 누구라도 다 좋은가 보죠? 그쪽은."



그가 삐딱하게 고개를 움직이며 물어왔다. 뭐야, 왜 저렇게 짜증이 났는데. 혹시, 방금 그녀가 테이블로 돌아가면서 슬쩍 저쪽을 보고 싸늘하게 노려보던데 그거 때문에 심기가 거슬렸나? 아니, 뭐 일본에서 호불호 없는 인기 스타라도 그렇지 뒤져보면 불호도 있을 수 있는 거지, 뭐 쪼잔하게 그거 가지고 참. 스가와라는 쯧쯧 속으로 혀를 차며 웃었다. 



"괜찮아요, 사람이 살다 보면 미움을 받을 수도 있고 그런 거지."

"네?"

"이해합니다. 이해해요."



전혀 이해 못 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의 달라붙는 말에 스가와라는 무시하듯 씩 웃어 보였다. 그가 뭐라 더 입을 열려 했지만 이내 테이블 위로 무슨무슨 숑 무슨무슨 리아제같은 음식들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맛없는 파스타로 채워졌던 배는 완벽한 요리를 보고 슬쩍 허기를 느끼는지 요동쳐댔다. 스가와라는 출출하지 않다고 말했던 자신의 발언을 까맣게 잊어버린 채로 서둘러 포크를 들었다. 그리고 한동안 테이블에는 포크와 나이프 소리만이 울려댔다. 적막한 데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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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배구선수 x  배우로 보고싶은게 생겨서..........

퇴고 수정 오탈자 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