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와라상!!!"
쩌렁쩌렁하게 사무실을 울리는 목소리에 막 [등록] 버튼을 누르던 스가와라가 쭈욱 발로 의자를 밀며 몸을 빼냈다. 무슨 일이에요? 홍보실 입구로 달려들어 온 구단 스태프를 보며 묻자 그가 뻘뻘 땀을 흘리며 입을 벙긋거렸다. 그, 저, 그게- 말이 되지 못하는 쏟아지는 언어에 슬쩍 짜증이 일었지만 스가와라는 차분하게 문장의 완성을 기다렸다.
"그..!!그...!! 우시지마선수가 또 싸우는데요...!!!"
"네?!"
또? 한가로운 오후의 평화를 깨고 날아든 소식에 스가와라는 서둘러 제 카메라에 꼽혀있던 usb짹을 거칠게 분리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왜 또 싸우는데요? 할부로 긁어 산 고급 구두의 경쾌한 발소리를 울려대며 묻자 스태프가 곤란한 얼굴로 대답했다.
"뻔하죠, 늘."
상대가 도발할 기세로 시비를 걸고, 우시지마는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겠지. 보지 않아도 딱 떠오르는 상황에 피곤해져 절로 한숨이 타고 흘렀다. 누군가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거나, 따지면 그에 제대로 반응해달라 일러준 게 벌써 석 달 전인데도 그의 그 눈치 없는 행동은 고쳐질 줄을 몰랐다. 둔하다고 해야 할지 무감각하다고 해야 할지. 정말로 의미를 몰라 띄우는 물음표였지만 받아들이는 상대의 입장에서는 무시에 가까운 행동이었기에 늘 이런 식으로 와전되고 싸움으로 번지고 마는 것을 스가와라는 몇 번이나 목격했다. 서둘러 달려 실내 연습장으로 향하자 반질하게 잘 닦인 코트 위에서 하라는 연습은 안 하고 언성을 높이고 있는 사내들이 눈에 들어왔다. 현역 프로 선수들이라 다들 기골이 장대해 조금만 몸을 틀고 목소리를 높여도 스가와라에게는 꽤 위협적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가릴 때가 아니라 다짜고짜 그 틈을 파고들었다.
"무슨 일이에요, 또 무슨 일인데 싸우고 그래- 정말! 매니저님은요? 감독님은요?"
말려야 할 사람들은 다 어디 있고 땀내 나는 남자들만 바글바글 달라붙어 싸우고 있는 건지. 스가와라는 찌푸린 얼굴로 선수들을 떼어내며 물었지만 아쉽게도 이 질문에 제대로 대답해주는 이는 없었다.
"타이밍에 맞춰서 뛰어달라고 했잖아, 네 멋대로 뛰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그쪽이 나에게 맞추면 되는 거 아닌가?"
"하?! 내가 무슨 예언자야? 네가 어디로 어떻게 뛸지 알고 그걸 다 하나하나 맞춰주냐고!"
"나와 함께 했던 다른 세터들은-"
"지금 이 팀 세터는 나거든?!?! 우시지마 와카토시?!!"
아, 또다. 저번 주에도 이 문제로 싸우지 않았던가. 싸우고 있는 두 사람에게서 뿜어져 오는 소리는 아마 저번 주도, 그리고 지지난번 주에도 들었던 그 대화와 똑같았다.
"그래서, 맞춰 줬다고 생각하는데. 맞춰줘도 그쪽이 다시 타이밍을 틀렸으니까-"
언성을 높이는 상대와 달리 우시지마의 목소리는 침착하기 그지없었다. 그가 이 반복되는 싸움들 틈에서 흥분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니까.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거짓말이나 자기변명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실제로 그가 하는 말에 틀린 것은 없었다. 저번 주에도 또 지지난번 주에도 그전에도 이 세터와 우시지마는 몇 번이고 볼을 올리고 치는 타이밍에 대해 대화하고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우시지마는 세터가 원하는 타이밍에 맞춰 뛰어주었다. 문제는 그 타이밍이 언제나 제멋대로라는 것일 뿐. 그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저 세터에게 있었지만, 누구도 그 점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우시지마는 이 무리에서 미운 오리 새끼와 같았다.
"그만들 하죠, 연습 중에 왜 또 싸우고 그래요."
"스가와라군, 들었어? 우시지마 저 자식이 또 뻔뻔하게 구는 거?"
"하하, 봤죠."
그리고 네가 또 그에게 시비를 거는 것도. 스가와라는 뒷말을 삼킨 채로 어색하게 웃으며 두 사람 사이에 섰다. 무뚝뚝한 얼굴의 우시지마가 저를 내려보고 있었지만, 그쪽으로는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세터를 달래기 위해 그에게 몸을 틀었다.
"나츠오상이 선배잖아요, 우리 팀에서 제일 오래 있었잖아요. 우시지마군은 이제 막 입단해서 1년도 안 됐는데 좀 봐주세요. 아직 적응이 필요해서 그래요."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 외국물 좀 먹었다고 선배 말이 말 같지도 않은 모양인데-"
"에이, 그럴 리가 있겠어요? 제가 잘 타일러서-"
"코트 위에서 나이, 선배가 뭐가 중요한지 모르겠군. 애초에 실력이 없는 쪽이 문제 아닌가?"
그러니까! 네 말이 맞는데 그걸 그렇게 솔직하게 담지 마라니까?! 스가와라는 머릿속이 하얗게 말라가는 것을 느끼며 서둘러 우시지마의 말을 막기 위해 돌아섰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발끈한 세터의 움직임이 빨랐다.
"저 새끼 가만 안 둘 거야!!!"
학연, 지연, 선배, 후배. 코트 위에서 가장 불필요해 보이는 것들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히는 판에서 우시지마의 행동은 용납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육탄전이 용납되는 것도 아니었다. 빠르게 뻗어지는 남자의 주먹에 스가와라는 뭐라 말릴 틈도 없이 두 사람 사이로 몸을 던졌다. 퍽, 아주 낯선 소음과 감각이 뺨을 치고 심지어 코까지 밀고 들어왔다. 아찔하게 번지는 고통에 몸이 절로 휘청였지만 다행히 뒤에서 꽉 잡아준 단단한 팔 덕분에 꼴사납게 코트 바닥으로 구르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맞았다, 아프다, 창피하다. 그 현실에 눈물을 흘릴 틈도 없이 스가와라는 제 팔뚝을 잡아준 손에 가득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정신없이 저를 붙잡은 우시지마의 저지자락을 붙잡았다.
"참아."
네가 안 참으면 맞은 내가 뭐가 되겠어. 당장에라도 발을 그리고 손을 뻗을 것 같았던 남자에게 재빨리 속삭인 후 아픈 근육을 당겨 겨우 입에 호선을 그렸다.
"코트 위에서 주먹질하면 감독님에게 혼나요, 나츠오상."
"미..미안해! 스가와라군... 그러니까 왜 거길 끼어들-"
"오늘분 연습 끝난 거면 이제 판 끝내고 다들 돌아가죠, 저도 제 일이 있는 사람인데."
그려낸 호선을 말끔하게 지우며 스가와라가 남자의 말을 잘라냈다. 아무리 열이 받아도 그렇지, 같은 선수에게 이렇게 진심인 주먹을 휘두르면 어쩌자는 거야? 그러다 다치면 누가 책임지려고. 심지어 상대는 우시지마 와카토시라고? 이 구단에서 제일 비싼 몸이란 말이야. 그런데 누가 누굴 때리겠다고, 지금. 밀려드는 짜증과 맞은 고통으로 찡하게 아픔 뺨을 붙잡으며 스가와라가 휘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제서야 말릴 생각도 없이 구경하던 구경꾼들이 꼬리를 말듯 서둘러 돌아섰다. 아직 분해 보이는 나츠오 역시 더는 말을 하지 못하고 몸을 돌렸다.
"괜찮-"
"을 리가 있나!"
모두가 코트를 벗어나자 그제야 우시지마가 잡았던 손에 힘을 풀며 퍽이나 다정하게도 물어왔다. 하지만 스가와라는 그 얄미운 질문에 빠르게 돌아보며 빽 짜증을 내질렀다.
"내가 몇 번을 말해요? 우시지마군? 그냥 누가 뭐라고 하면 네네 하고 말라고 했잖아요. 그깟 타이밍 우시지마군이라면 몇 번이고 다시 맞춰줄 수 있잖아. 지금까진 다들 우시지마에게 맞춰줬겠지만, 여긴 다르다니까요? 다들 오래 팀에서 헌신한 선수들이고 그만큼 자존심도 강해요. 특히나 이 스포츠 바닥이 더럽고 떠 더러워서 우시지마군 같이 졸업하자 외국 나가서 뛴 선수들에게는 얼마나 텃세를 부리는데. 학연도 없지 지연도 없지. 근데 또 잘나긴 엄청 잘났으니 얼마나 고깝겠어요. 그렇게 발악하는 상대방 하나하나 대응하지 말고 그냥 네, 하고 넘어가 달라고 이야기 했던 거 기억 안 나요?"
"나."
"그런데 왜 또 싸워요. 나 지금 일하다가 불려 왔잖아. 난 이 팀의 커뮤니티 매니저이지 우시지마군 개인 매니저나 베이비시터 아니거든요?"
명함에 버젓하게 커뮤니티 매니저 스가와라 코우시라고 적혀도 있건만, 구단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를 착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외국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던 우시지마 와카토시를 비싼 가격에 영입해오면서 구단주가 말하긴 했었다. "스가와라군, 우시지마 선수와 같은 고향 출신이라며? 잘 부탁해."라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냥 빈 껍데기에 같은 소리지, 실제로 그를 자신에게 부탁한다는 의미는 절대로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모니터 앞에 앉아 경기 사진들을 정리하고 영상을 편집하고 SNS로 대응하는 일로도 시간이 모자라 죽을 것만 같은데 왜 거기에 우시지마 와카토시라는 거대한 짐을 얹어주는 건지, 스가와라는 터져 나오는 한숨을 숨기지 않은 채로 뺨을 문질렀다. 대신 맞게 만든 게 미안해서인지 아니면 잔소리에 풀이 죽은 건지 우시지마는 꾹 입을 다물고는 시선을 피했다. 꼭 주인에게 야단맞은 커다란 개를 앞에 둔 기분이 들었다. 정확하게는 짐승에 가까운 덩치였지만.
"뭘 또 풀이 죽고 그래요."
남들은 절대로 알아차리지 못할 미세한 변화였지만, 요 1년간 대부분 같이 붙어 지내서인지 스가와라는 그의 엉덩이 뒤로 커다란 꼬리가 가라앉은 것이 똑똑하게 보였다.
"괜찮아요, 별로 안 아파."
"뺨 부었어."
"원래 잘 부어요. 닥터 찾아가서 찜질하면 금방 가라앉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마무리 정리하고 가요."
부모님에게도 안 맞아 본 뺨이었지만 그렇게 언급했다가는 눈앞의 우시지마 와카토시가 땅이라도 파고 들어갈 것만 같아 스가와라는 애써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가 무어라 더 말을 하고 싶어하는 듯 보였으나 스가와라는 가볍게 고갤 숙여 인사한 후 코트를 벗어났다. 제대로 맞았는지 화끈거리는 뺨을 손바닥으로 꾹 누르고 얼음팩이라도 받기 위해 의무실로 향하자 다행히 아직 퇴근하지 않은 팀 닥터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뺨은 왜 그래?"
"맞았어요."
"누구한테?"
"나츠오상에게."
"또 우시지마군을 잡았구먼? 거기 끼어들었지?"
하하, 돗자리 펴셔도 되겠네요. 마르게 웃으며 스가와라는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막 퇴근하려던 길이었는지 자켓을 걸치던 팀 닥터는 불평 없이 서둘러 냉장고를 열어 선수들 용으로 쌓아두는 아이스팩을 들고 와 뺨에 대어주었다. 싸늘하게 식어가는 뺨에 인상을 찌푸리며 스가와라는 꾹 팩을 눌러 고정시켰다.
"심하게 맞았어?"
"아뇨, 그냥 주먹질이었어요."
"우시지마군이 좀 살가운 스타일이면 좋을 텐데. 안 그래도 혼자 특출나서 미운털 박힌 와중에 성격도 무뚝뚝해서 스가와라군이 고생이네, 고생이야."
"...그러게요. 같은 고향 출신이라고 너무 묶어두는 거 아니에요? 솔직히, 고등학교 때 네트 너머에서 만난 것 빼고는 인연이라고 할 것도 없는 사이인데. 저쪽은 저 기억도 못 할 거라고요."
"하하, 그래도 우시지마군이 스가와라군 말이라면 잘 듣잖아."
닥터의 말에 스가와라는 슬쩍 이마를 문질렀다. 그래,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우시지마 와카토시가 유일하게 말을 듣는 상대가 자신이라는 것. 팀 매니저도, 감독의 말에도 뚱하고 답도 잘 안 하는 주제에 제 말이라면 따르고 듣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우시지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스가와라 코우시를 호출했다. 그가 팀 닥터의 말을 안 듣고 접질린 발목으로 코트에 들어가려고 할 때도, 감독이 지정한 포지션이 마음에 안 든다며 입을 다물고 있을 때도, 인터뷰 요청을 거부하겠다며 나설 때도 모두들 스가와라 코우시를 찾았다. 막 알을 깨고 나온 새가 처음 본 것을 어미로 생각하고 따르듯이 우시지마 와카토시의 행동은 참 맹목적이라 때때로 기분이 이상하기까지 했다.
"우시지마군이, 스가와라군을 참 좋아하는 모양이야."
좋아하는 것에도 정도가 있지, 이건 조금 달랐다. 웃으며 건네는 팀 닥터의 말이 스가와라에게는 조금도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퇴근하려는 사람을 붙잡아 죄송하다 사과하고 의무실을 나와 사무실로 돌아갔다. 남은 일을 처리하고 정리하고 나니 벌써 퇴근 시간이 훌쩍 넘어 창밖으로는 어둠이 짙게 깔려있었다. 가라앉은 뺨을 문지르며 스가와라는 자신의 자켓과 가방을 챙겨 일어섰다. 오늘 그 싸움만 아니었더라면 이 시간까지 남아있을 필요도 없었는데. 빠르게 지나가 사라진 저녁 시간을 아쉬워하며 나서는 걸음을 재촉했다. 그나마 이 늦은 퇴근에 위로가 되는 것은 전차에 사람이 적을 거라는 것 정도였다. 애써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막 사무실 건물을 나서는데 멀지 않은 곳에 익숙한 차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앞에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사내 역시 익숙해 스가와라는 걸음을 멈추었다.
"우시지마군?"
자신의 부름에 다른 곳으로 뻗어있던 시선이 내려와 닿았다. 스가와라는 그에게 향하며 슬쩍 그가 바라보고 있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불이 꺼진 홍보팀의 사무실이었다.
"나 기다렸어요?"
여기서 뭐해요? 라고 묻기엔 이유가 너무도 빤히 보여 스가와라는 직접적으로 물었다. 아니라고 대답해주길 원했지만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몇 시간을 기다린 거야? 아까 연습 끝나고 가라 했으니 마무리 운동 끝내고 샤워하고 준비했다고 해도 3시간 정도가 더 남았다. 스가와라는 애써 당혹스러운 얼굴을 감추며 일단 이유부터 물었다.
"왜요? 무슨 할 말 있어요?"
"나 때문에 다쳤으니까."
"괜찮다고 했는데..."
"그래도. 타, 집까지 데려다줄 테니."
"...어.."
전차 시간 아직 넉넉하게 많은데. 스가와라는 그리 말하려 했지만 그보다 제 손에 들린 서류가방을 빼앗는 우시지마가 더 빨랐다. 성큼 자신의 차 문까지 열어주는 그의 행동에 결국 입을 다물고 올라탔다. 자신의 월급으로는 꿈도 꾸지 못할 고급 외제 차에 조심스레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며 스가와라는 앞만 노려보았다. 탁, 차 문을 닫아주고 빙 돌아 운전대를 잡은 우시지마는 말없이 매끄럽게 차를 출발시켰다. 그의 차에 몸을 기대며 스가와라는 제집의 주소를 조용히 불렀다.
오래 기다리고, 그리고 퇴근하는 자신까지 픽업해 태워놓고 상대는 말이 없었다. 그 어색한 공기 속에서 스가와라는 저도 모르게 긴장했는지 손에 자꾸만 땀이 차 곤란했다. "우시지마군이, 스가와라군을 참 좋아하는 모양이야." 낮에 들었던 팀 닥터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그러니까 그 좋아하는 정도가 자신이 생각한 범위를 훌쩍 넘은 거 같은데, 이걸 그냥 두고 보아야 하는지 아니면 우시지마와 대화를 하는 게 나은지 스가와라는 골치가 아파졌다.
"있지, 우시지마군-"
그래도 확실하게 하는 게 낫겠다 싶어 스가와라는 조심스레 운을 띄웠다. 우시지마가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그게 자신이 오해하고 있는 정도의 범위인지, 아니면 팀 닥터가 농담처럼 말한 가벼운 범위인지가 스가와라는 궁금했다.
"혹시 나 좋아해요?"
스스로 묻는 것도 참 창피해 괜히 심장이 뛰어댔다. 차라리 가볍게 응, 이라고 해준다면 좋을 텐데. 아마 그러겠지. 가벼운 대답을 생각하며 건넨 대답에 우시지마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끼익- 요란한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도로 한복판에 차를 세웠을 뿐이었다. 거칠게 서는 바람에 절로 흔들리는 몸을 들썩이며 스가와라는 놀란 눈으로 우시지마를 바라보았다. 빵빵, 갑작스러운 정차에 뒤 차가 항의하듯 소음을 울리며 비켜나갔지만 그에 대한 사과할 정신도 없는지 우시지마는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크게 변화한 얼굴은 아니었지만, 그는 무척 당황하고 있었다.
"...왜 당황하고 그래?!"
나도 당황하잖아! 여기선 그냥 응! 하고 가볍게 대답했어야지! 놀라 따지자 우시지마가 천천히 시선을 마주했다.
"갑자기 무슨 질문인지 모르겠군."
설마, 지금 아닌 척 하는 거 아니지? 이렇게 차 세워놓고 수습할 생각은 아닌 거지? 얼굴이나 덩치만 보면 참 위압감 넘치는 사내이면서도 껍질 하나를 벗겨놓으면 이렇게 어리숙하고 맹했다. 스가와라는 웃기지도 않은 그의 변명에 결국 웃음을 터트리며 운전대를 두드렸다.
"일단, 출발부터 해."
"...."
"놀라서 운전도 못 하겠어요?"
아니, 아니야. 그가 고개를 저으며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 좋아한다, 그 말은 간지러운 범위의 것인 모양이었다. 우시지마 와카토시가 자신을 좋아한다, 왜? 그리고 언제부터? 머릿속에서 꼬리를 물고 또 무는 생각을 흘려놓으며 스가와라는 찬찬히 네온사인이 스쳐 가는 남자의 얼굴을 살폈다. 이쪽을 의식하는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앞만 바라보는 게 참으로 안쓰러우면서도 귀엽게 보였다. 배구판에 뛰어난 선수는 많았지만, 우시지마 와카토시와 같은 선수는 없었다. 얼굴은 다른 팀에서 뛰고 있는 오이카와 토오루보다야 쪼오끄음 부족하다면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건 사람 취향 차이니까. 이쪽도 나쁘진 않았다. 키도 여기가 더 큰걸. 말주변이 없고 눈치가 없다는 게 문제지만 그 부분도 귀여운 정도의 수준이니 단점은 아니었다. 그런 남자가 자신을 좋아한다. 거부감부터 들어야 맞는데 스가와라는 어쩐지 쑥스러운 기분이 더 앞섰다. 그렇게 침묵이 가득 찬 차는 빠르게 달려 이내 익숙한 건물 앞에 멈춰 섰다. 무어라 말을 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우시지마는 여전히 침묵했다. 너무 놀렸나, 스가와라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 슬쩍 먼저 입을 열었다.
"차라도 마시고 갈래요."
"아니."
대답 한 번 참 빠르네. 단칼에 거절하니 조금 서운했다. 음, 그 간질거리는 범위가 아닌 건가? 자신의 이야기가 질 나쁜 농담이라 생각해 삐친 건가? 얼굴에 표정이 없으니 파악도 불가능했고 확신도 서지 않았다. 매고 있던 벨트를 풀러 내며 스가와라는 자신의 가방을 챙겨 들었다. 어쨌거나, 싫지는 않아의 좋아 정도라면 뭐 나쁘지 않지 않은가. 그래도 좀 얄밉네. 방금 자신은 '이런 남자라면 괜찮을지도'까지 생각하며 쑥스럽기까지 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스가와라는 막 열려던 차의 문고리를 놓으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손을 뻗어 우시지마의 뺨을 붙잡았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남자가 도망가지 못하게 훅 몸을 뻗어 가까이 닿았다. 곧 부딪힐 것만 같았던 입술의 거리를 앞두고 스가와라는 멈췄다.
"키스할 줄 알았죠? 지금."
뺨이 완전히 굳었어. 슬쩍 뺨으로 뻗었던 손을 뻗어 거두며 아슬했던 거리도 멀리 떨어트려 놓았다.
"아니긴 뭘 아니야, 나 좋아하는 거 맞네."
"..."
"그럼 내일 봐요. 내일은 싸우지 말고, 알았죠?"
타인을 놀리거나 장난을 거는 것에는 취미가 없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즐거웠다. 스가와라는 히죽 웃으며 다시 차의 문고리를 잡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잡으려고 했다. 훅, 제 뺨을 돌려세우는 커다란 손이 아니었다면 분명 잡았을 것이었다. 뺨이 돌아감과 동시에 지익-하고 벨트가 한계까지 늘어가는 소리가 차내를 울렸다.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조수석까지 성큼 다가온 우시지마의 입술이 제 입술을 덮었다. 놀라 꾹 다문 입술을 열게 하려는지 남자의 다른 손이 가볍게 목을 쥐었다. 목젖을 내리누르는 거친 행동에 스가와라는 저항할 틈도 없이 제 입술을 열어주었다. 두텁고 뜨거운 살덩이가 입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꾹 남자의 옷자락을 쥐며 다정하면서도 거칠고, 부드러우면서도 투박한 입맞춤을 했다. 마지막으로 아프지 않게 아랫입술까지 슬쩍 물고 떨어진 우시지마가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로 경고했다.
"위기감을 가져."
라고.
그 말은 즉, 고백과도 같았다. 스가와라는 비명이라도 지를 것 같은 제 입술을 손바닥으로 눌러 감추곤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 그리곤 뒤도 몰아보지 않고 뛰듯 걸으며 결심했다. 절대로 우시지마 와카토시에게는 장난치지 말아야지. 그는 농담을 모르는 남자였다. 그는 언제나 솔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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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우시스가가 나왔다. 꿈 내용은 잘 기억이 안나지만 스가가 파스타를 만들고 만두를 튀겼는데
만두의 반을 태워먹어서 돌처럼 만들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 우시지마가 스가를 너무 다정하게 바라보아따.
그래서 우시스가. 진짜 오랜만이다..
제목은 딱히 생각이 안나서.. 나중에......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