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스가] 수요일의 바다
2015. 5. 17. 22:44





수요일, 고요한 바다에는 언제나 한 사내가 앉아있었다. 매주 매달 매년 질리지도 않는지 수요일만 되면 검은 머리의 사내는 언제나 같은 자리 같은 위치에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동상과 같은 모습이었다. 어른들은 그를 쉬쉬했다. 어디서 정신 나간 인간이 마을에 흘러들어왔다 떠들었다. 경찰에 신고도 몇 번인가 넣었던 것 같지만 아쉽게도 그가 나쁜 짓을 하거나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는 것은 아니라 특별한 조치가 내려지진 않았다. 이름이 뭘까, 왜 수요일마다 나타나는 것일까,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것일까. 어린 오이카와 토오루는 그에게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늘 바다를 지나며 어머니는 "함부로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면 절대로 안돼." 라고 경고했고 수요일이 오면 마을의 아이들은 바다가 아닌 산으로 나가 놀아야 했다. 그래서 스무 살이 되어 마을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오이카와는 그 사내에 대해 아는 것이 조금도 없었다. 처음에는 이질적이고 이상했던 풍경들이 하루하루 쌓이니 일상이 되고 익숙해져 관심과 호기심은 금세 시들하게 사라져 버렸다. 그가 어디서 왔는지, 나이는 몇인지, 이름은 무엇인지 어린 시절에는 그런 세세한 것을 궁금해했던 것 같은데 그 마을을 떠나는 순간 수요일의 바다를 지나치면서도 그의 곧은 등에 시선조차 가지 않았다. 


일상이라 묶을 수 있는 범위는 언제나 사람이 자리를 잡는 터전부터 시작되는 모양인지 해가 여러 번 지나고 다시 마을로 돌아왔을 때, 오이카와는 다시 그의 등에 시선이 쏠렸다. 코로 채우는 소금기 가득한 냄새들은 아직도 이렇게나 익숙한데 수요일의 햇빛을 받아내는 그의 흰 목덜미는 그렇지 못했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기다릴 부모님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면서도 오이카와는 자신의 낡은 운동화를 모래 위로 끌어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자신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릴 텐데도 바다를 향해 시선을 고정한 사내는 절대로 뒤 한 번 돌아보지를 않았다. 혹시 이 바다나 마을에 원한이 있는 귀신인 것은 아닐까? 요즘 귀신들은 낮 밤 안 가리고 활동한다던데. 오이카와는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없는 것들을 떠올리며 웃었다. 그러고 보면 자신의 아버지는 그를 진짜로 '귀신' 취급을 했다. 바다 근처는 무서워 가기도 싫다며 다른 요일에도 가까이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말이 맞으면 어쩌지, 가까이 그의 곁에 붙어 서며 오이카와는 뒤늦은 후회를 했지만 그 후회보다 한발 빠르게 입이 열렸다. 



"여기서 뭐 해요?"



곤란함과 고민이 담기지 않은 깔끔한 말투였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소리에 사내가 슬쩍 턱을 올리며 고개를 젖혔다. 이 뜨거운 햇혙 아래 있으면서도 조금도 타지 않은 흰 피부가 부서지는 빛에 바다처럼 반짝였다. 그 위에 둥둥 떠 있는 검은 눈동자가 한가득 자신을 담았다. 



"사람을 기다려요."



사내는 멍해 보이는 눈으로 그렇게 말했다. 사람을 기다린다고? 뜻밖의 대답에 오이카와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니까 사람을 기다린다고? 수요일마다? 매주 매월 매달 나와서? 자신이 이 마을에 태어났을 때에도 그는 이 바다 앞에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이 마을에서 자라는 순간 속에도 그는 이 바다 앞에 있었다. 그건 기다림으로 정리하기엔 너무도 길고 긴 시간이었다. 



"여기서 만나기로 했어요. 수요일에."



사내는 찬 목소리로 덤덤하게 대답했다. 



"언제의 수요일인지 물어봤어야 했는데."



그저 '수요일'에 만나자. 사내가 받아낸 약속은 그런 형태를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언제의 수요일인지 모를 그 수요일을 위해 늘 이 바다에 나와 있다는 소리였다. 조금 미련한 거 아닌가? 오이카와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의 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래서 그 언제인지 모를 수요일을 기다리고 있다고요?"
"네."
"너무 길지 않아요? 상대방은 벌써 잊었을지도 모르는데."
"맞아요. 그랬을지도 몰라요."



사내는 웃으며 동의했다. 그런데 왜 아직도 그는 이 바다에 나오는 것일까? 그 가능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항의하는 거에요."



그의 멍한 검은 눈동자가 순간 번뜩이는 듯이 보였다. 



"날 잊었든, 버렸든 나는 이곳에 있고 너를 기다린다고. 날 가지고 놀았든, 거짓을 속삭였든 나는 여전히 이곳에 있고 너를 기다린다고."



어찌 보면 달콤해 보이는 말이었지만 사내의 입을 타고 흐르는 것은 싸늘한 모양을 띄우고 있었다. 뼈까지 얼어붙을 것 같은 말투에 오이카와는 그가 정말로 '귀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서야 끼쳐오는 두려움에 서둘러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그럼, 다음 주에도 또 만나겠네요?"



공포를 평온함으로 포장하며 어색하게 물었다. 사내는 웃으며 대답했다. 네, 다음 주에. 라고. 


또 만나겠네요, 다정하게도 물었지만 실제로 오이카와는 두 번 다시 그 바다에 가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그 사내의 등만 보고 살았다 하더라도 흐른 시간이 몇인데 그가 아직 어린 청년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함부로 말을 걸지 말라는 어머니의 충고와 그를 '귀신'이라 여기던 아버지를 따랐어야 했는데 이미 너무 늦어버린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슬슬 피어오르는 불안감과 공포도 익숙한 집에 들어서자 싸그리 녹아 사라져 버렸다. 왜 이리 늦었냐며 반기는 부모님의 얼굴을 보니 바다에 남겨진 사내의 얼굴은 금세 잊혀졌다. 그렇게 오랜만에 부모님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다음 날, 산책을 핑계 대고 바다로 향했다. 늘 그렇듯이 사내는 모래 위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돌아온 수요일, 오이카와는 아침 일찍 운동화 끈을 고쳐 묶고 바다로 향했다. 다신 가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먹은 게 무색하게도 발은 멋대로 그 바다로 향하고 있었다. 그가 오는 것을 몰래 살피기 위해 꽤 일찍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모래 위에 그가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오이카와에게 사내는 "다시는 안 올 줄 알았는데." 라며 웃었다. 아마 그날 자신이 급하게 숨긴 공포를 들킨 모양이었다. 무서워하지 말아요. 사내가 그리 덧붙였으나 조금도 신뢰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무서운 것보다 그에게 묻고 싶은 궁금증이 더 강했다. 어린 시절부터 궁금했던 것들. 이름과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 수요일에 바다를 찾는 이유를 알았으니 이번에는 그 기다린다는 상대에 대해. 본격적으로 자릴 잡고 이야기를 꺼내는 오이카와의 질문을 사내는 가만히 들어주었다. 쏟아지는 질문에 딱히 대답해줄 생각은 아니었는지 무릎에 기댄 얼굴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럼 그 기다린다는 사람이요,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에요? 이 마을 사람이라면 제가 찾아 줄 수도 있을 텐데."



이번 질문은 조금 마음에 들었는지 그가 가만히 웃었다. 



"어떤 사람이냐니. 그냥 사람이에요. 당신하고 똑같은 사람. 처음에 이 마을에 왔을 때, 길을 잃은 날 도와주었어요. 그게 고마워서 다음날 그를 만나러 또 이곳에 왔었어요. 조개나 물고기 같은 먹을거리를 들고. 다행히 그를 어렵지 않게 만났고 이야기를 나누고 친해졌어요. 그 계기로 나는 매일같이 이 바다에서 그를 만났죠.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달가운 질문이었는지 신나게 떠들던 그는 점점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끝냈다. 



"그와 함께하면 즐겁고 행복하고 따뜻했어요. 그래서 그와 함께하는 삶을 꿈꾸고 동경했죠. 그래서 전 다 포기하고 이 마을에 남기로 결심했어요. 그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면서도 그를 택했죠. 멍청하게도. 그는... 기뻐했어요. 제가 보기엔 그렇게 보였어요. 손을 잡아주고 몇 번이나 내게 입을 맞췄죠. 그러면서 말했어요. 나와 함께하고 싶지만 이 마을에선 힘들다고. 그러니 함께 도망가자고."
"그래서요?"
"그래서요? 라니. 결말이 궁금해요? 보면 알잖아요? 난 혼자 남겨졌어요. 그는 나에게 수요일에 이 바다 앞에서 만나자 했어요. 데리러 오겠다고 했죠. 그래서 나는 그를 믿고 내 가족과 내 삶을 포기하고 여기에 왔는데- 그는 나타나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우습게도 제가 날을 착각했다 생각했죠. 다음 수요일, 그다음의 수요일, 그리고 또 그다음의 수요일. 수많은 수요일을 그에 대한 믿음으로 버티고 기다렸어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알았죠. 그는 절대로 나를 데리러 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쓸쓸한 얼굴로 사내가 제 무릎 위로 쏟아진 까만 머리를 손가락으로 빙빙 돌렸다. 



"그는 아직 이 마을에 있어요. 마음 같아서는 그를 찾아가 이루고 있는 날들을 망치고 내게 사랑한단 입을 찢어놓고 목에 손톱을 박아 넣고 싶어요."



또다. 또 그의 검은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 눈빛과 함께 사내는 천천히 손을 뻗어 오이카와의 입술, 내려 손끝으로 목을 더듬었다. 당장에라도 찢고 찔러넣고 싶은 얼굴을 하고선.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만 사내는 얼굴에 그려냈던 증오를 단숨에 감추며 아이처럼 웃어 보였다. 다음 주에 또 만나요. 선을 긋는 작별에 오이카와는 하는 수 없이 모래 위로 앉혔던 엉덩이를 들어야 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라는 말을 지키려는 것은 사내일까 아니면 자신일까. 오이카와는 수요일이 오면 이끌리듯 바다를 찾았다. 여전히 그림처럼 바다 앞을 차지한 그는 시간이 쌓이면 쌓일수록 반갑게 오이카와를 맞이했다. 가끔은 아이처럼 웃기도 했으며 어떤 때는 요염한 여인처럼 눈을 접기도 했다. 가끔 그가 눈을 번뜩일 때마다 다음은 없다고 스스로 선을 그으면서도 오이카와는 홀린 듯이 계속 바다를 찾아갔다. 찾아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서로 나누는 말의 가짓수가 늘면 늘수록 멀어졌던 거리가 좁혀들어가고 있었다. 사내는 치사하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는 않았다. 대부분은 오이카와가 이야기를 하는 쪽으로 그다지 재미없는 주제에도 그는 웃으며 들어주었다. 그렇게 일방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오이카와는 어느새인가 그를 향한 공포와 두려움을 말끔히 지워냈다. 그 이후론 모든 것이 빨랐다. 수요일은 언제나 기대되었고, 그의 웃음이 보고 싶었다. 그가 수요일이 아닌 다른 날에도 자신을 만나주길 바랐으며 동시에 그를 수요일의 바다에 묶어놓은 상대가 미워졌다.




개강을 알리는 연락이 도착했지만 오이카와는 도쿄로 올라가지 않았다. 학교는? 걱정스럽게 묻는 아버지의 말에 웃으며 아직 방학이라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일삼았다. 휴학 신청을 하려면 다시 도쿄로 가야 했지만 오이카와는 이 마을에서 그리고 그의 바다에서 떠나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의 걱정스러운 시선이 등에 달라 붙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이카와는 모르는 척 바다를 향해 뛰었다. 수요일이 아닌 바다에도 혹시나 싶어 늘 자리를 잡고 그를 기다렸다. 그를 닮아가고 있었다. 그게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좋았다.




어느 날의 수요일,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억수로 쏟아지는 비에 오이카와는 우산을 단단히 챙겨 들고 바다로 향했다. 마을의 소문으로 이미 오이카와의 행동을 알고 있는 아버지가 단단히 화를 내고 말렸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집을 나섰다.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빗소리에 지워져 더는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귀신에 홀렸다며 딱한 눈빛을 보냈지만 오이카와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와 있으면 즐거웠고 행복했다. 그의 곁에 있고 싶었고 그와 함께하고 싶었다. 퍽퍽 발이 깊숙하게 빠지는 모래를 밟으며 바다에 도착하자 이 빗속에 우산 하나 없이 사내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슬쩍 우산을 대 비를 막아주자 놀라 든 고개가 귀여웠다. "오늘도 왔네요." 젖은 얼굴로 웃으며 반기는 그에게 오이카와는 충동적으로 허리를 숙여 입술을 가져갔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것이 굳어 어쩔 줄 몰라 하더니 이내 틈을 갈라주었다. 오이카와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제 혀를 밀어 넣었다. 사내의 싸늘한 팔이 뻗어와 목을 안으며 달라붙었다. 아, 그를 적시려는건 아니었는데. 그리 후회하면서도 오이카와는 이내 우산을 내려놓고 그의 차가운 몸을 품으로 끌어안았다. 굳어있던 아까의 입술이 거짓말과 같이 농염하게 달라 붙어왔다. 함께 얽혀오는 혀는 달콤해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의 몸을 더듬고 안으면서도 오이카와는 그를 더 만지고 가두고 싶었다. 마치 머릿속에서 불꽃이 터진 듯이 아찔했다. 그의 손톱이 자신의 목을 긁어 내리고, 그 틈에서 붉은 피가 비친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이카와는 멈추지 못했다. 괜찮아, 그를 위해서라면 내 목 정도야. 입술 정도야. 심장 정도야. 기꺼이 줄 수 있어. 



"하아..."



오랫동안 맞물려 있던 것이 떨어지며 짙은 숨을 뱉어내게 했다. 오이카와는 번들하게 젖은 눈으로 사내를 담았다. 흥분감에 엉망이 된 자신과 달리 그는 무척이나 평화로운 얼굴로 쓱 제 입술을 닦아내며 웃었다. 



"처음 그 남자랑 키스했을 때도 이런 맛이었어요."



그가 이 차가운 비에도 질리지 않은 붉은 입술로 못된 소리를 중얼댔다. 



"아버지는, 잘 계시니?"



그리곤 뜬금없는 것을 물었다. 조금은 서글퍼진 그의 얼굴을 보며 오이카와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담은 '아버지'라는 단어가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는 것 즈음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 정도로 자신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에게 분명 호기심으로 접근한 사람들은 많았을 것이었다. 오이카와는 어린 시절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었다. 그런데도 이토록 길게 그와 무언가를 나누는 사람은 이 마을에 없었다. 유일하게 자신만이었다. 그건, 자신이 아버지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건, 그가 기다리던 사람의 아들이기 때문에.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을 애써 머릿속에서 지우며 오이카와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그의 뺨을 붙잡았다. 



"그런 소리 하지 마요."



그 입술로 그 사람을 찾지 마요. 내가 여기 있잖아. 간절한 목소리가 요란한 비를 뚫고 흘러나왔다.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사내는 키득 이며 웃었다. 그래, 알았어. 그리곤 손바닥을 잡아떼어냈다. 



"그럼, 나랑 같이 갈래요?"
"...어디로요?"
"내가 사는 곳으로."



그가 사는 곳. 그곳이 어디인지 몰랐지만 오이카와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빠르게 나온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사내는 웃으며 손을 잡아왔다. 손가락 사이로 얽히는 감각이 차게 온몸을 옭아매 왔다. 찰박찰박, 젖은 모래를 걸어 사내는 바다로 향했다. 발을 간지럽히던 물은 금세 무릎까지 차올랐고 이내 허벅지까지 담갔다. 비와 바람으로 인해 거칠어진 파도가 마구잡이로 몸을 흔들어대고 있었으나 오이카와는 얽혀진 손을 놓지 않았다. 어느새인가 이 바다처럼 어둑하던 그의 까만 머리카락은 은빛으로 변해 반짝이고 있었다. 검게 물들어 있던 눈동자는 밝은 빛으로 변해 자신을 담고 있었다. 걸치고 있던 옷가지들은 물에 녹아 사라져버렸고 그대신 그의 허리 아래로 은빛의 비늘들이 가득 돋아나 이 어둠 속에서도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징그러워요?"



그가 하나로 뭉쳐 내려가는 제 다리를 내려보며 물었다. 아니, 오이카와는 짧게 대답하며 그가 제대로 설 수 있도록 허리를 안아 잡아주었다. 다행이네. 그는 징그러워했거든. 그가 씁쓸하게 떠들었다. 하지만 이내 가볍게 그 얼굴을 지우며 목에 팔을 감았다. 더는 그의 체온이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 이름은 스가와라 코우시."



그가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오이카와는 요란하게 뛰는 제 심장에 웃으며 서둘러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알아요, 오이카와 토오루."
"..."
"토오루라는 이름은 후에 내가 그를 위해 주고 싶었던 이름이었거든."
"..."
"멋대로 써버렸으니, 다시 가져가야지."



이름을? 오이카와는 그렇게 묻고 싶었으나 다시금 달라붙는 입술에 질문을 삼키고 말았다. 꽉 목을 안은 몸이 뒤로 넘어갔다. 그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오이카와는 급히 그의 몸을 더 바짝 끌어안았다. 차가운 물이 온몸을 휘감으며 눈 위로 어둠이 들어찼다. 코와 맞물린 입술 틈으로 짠 것들이 쏟아져 흘러들어왔다. 하지만 오이카와는 그를 놓지 않았다. 턱턱 막혀오는 숨에도 그를 놓치지 않았다. 머리 위로 울리는 빗소리가 순간 아득해졌다. 그리고 모든 것이 암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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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주제 : 바다



너말고 당신 아들~

이름말고 당신 아들~